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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58)화 (58/394)

58화

  

방으로 들어온 김우진은 혹여 한이결에게 들릴까, 핸드폰 음량을 잔뜩 줄인 채로 전화를 걸었다.

[이야, 김우진.]

“자료 내놔.”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김우진은 냅다 본론부터 꺼냈다. 잠시 멈칫하던 상대방이 못 말리겠다는 어투로 대답했다.

[이럴 줄 알았지. 최소한 인사말 정도는 해 주지 그러냐?]

“쓸데없는 소리 말고.”

[알겠다, 알겠어. 엄청 재촉하네.]

통화 너머로 부스럭거리는 종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바로 보내 주면 돼? 쌓인 정보가 많지는 않은데.]

“일단 보내 주고 계속 찾아봐. 그리고…….”

김우진이 힐끔 방문을 바라봤다. 이어지는 목소리가 한층 더 작아졌다.

“내가 따로 부탁한 건?”

[흐음……. 안 그래도 그 건에 대해서 말해 줄 게 있는데.]

하이드의 목소리가 어딘가 탐탁지 않았다. 김우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뭐 문제 생겼어?”

[문제라고 해야 할지…….]

“제대로 설명해.”

잠시간 말이 없던 하이드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사실 게이트는 제쳐 두고 한이결부터 찾아봤거든. 재밌는 냄새가 나서.]

타닥. 타닥. 키보드 소리가 목소리 사이사이로 들려왔다.

[너도 알고 있지? 평범한 사람은 신상정보부터 살아온 행적까지 모조리 터는 데 반나절이면 충분한 거.]

“그래.”

[한이결은 어디 보자. 약 43시간가량 정말 샅샅이 뒤져 봤는데…….]

말을 듣던 김우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최근 행적은 나와. 정확히 C13 구역 영상이 뜬 이후부터. 하지만 그 이전 기록은 어디에도 없어.]

“무슨 뜻이야?”

[어디서 태어났고, 누구와 살았고…… 가족관계나 주민등록 번호 같은 건 등록되어 있어. 하지만 그뿐이야. 그 외에 모든 것은 흔적조차 없다는 거지.]

“…….”

[한마디로 구청 가서 등본 떼면 알 수 있는 정보 말고는 없어. 그거라도 줘?]

“필요 없어.”

[흐흠, 그렇겠지.]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김우진은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여동생 관련해서는?”

[한이결과 마찬가지야. 실종으로 처리되어 있기는 한데, 그 이상의 정보는 없어. 깔끔해.]

“방법이 없는 거냐?”

[음…….]

하이드가 이제껏 들어 보지 못한 난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노력이야 해 보긴 하겠는데, 확답은 못 주겠다. 이 정도로 깨끗하게 지워 낸 거면 상대도 나처럼 능력자인 게 확실해서.]

능력자를 이용해서 한이결과 그의 동생에 대한 정보를 삭제한 거라면…….

‘마스터.’

분명 천사연이겠지. 이 정도로 철저할 줄이야.

‘하긴. 어설프게 감췄으면 한이결이 벌써 찾아냈을 테니.’

이전과 달리 지금의 한이결은 천사연을 상대로 어떻게든 원하는 것을 얻어 내고 있으니까.

김우진은 침울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동생에 대한 정보를 알아 내면 한이결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포기하지 말고 더 찾아봐 줘. 동생은, 그…… 몸이 많이 아픈 거로 알아. 병원 쪽으로 뒤져 봐.”

[병원? 뭐, 일단 알겠어. 게이트 문서는 애 하나 시켜서 지금 보내 줄게.]

“그래.”

통화를 끝내고 방을 나온 김우진은 소파에 누운 채 눈을 감고 있는 한이결을 발견했다. 고른 숨을 내쉬고 있는 단정한 얼굴에 입 안이 절로 말랐다.

“한이결.”

침대로 가서 편하게 자.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지만 잠에 빠져든 한이결은 미동조차 없었다.

“…….”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과 그 아래로 길게 드리운 속눈썹, 새하얀 뺨, 보기 좋게 자리 잡은 입술이 차근차근 시선에 박혀 들어왔다.

헐렁한 티셔츠 위로 가냘픈 목덜미와 자세 때문에 살짝 도드라진 쇄골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쿵쿵 뛰었다.

자신도 모르게 팔을 들어 올린 김우진은 살짝 떨리는 손끝으로 한이결의 볼을 쓸었다.

“음…….”

그러자 한이결이 앓는 소리와 함께 더듬더듬 손을 들어 자신의 볼을 만지는 김우진의 손을 살짝 붙잡았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김우진이 흠칫 놀라는 사이, 한이결이 눈을 떴다.

“아, 잠깐 눕는다는 게 자 버렸네…….”

“…….”

“김우진?”

의아한 듯 자신을 바라보는 한이결의 눈동자에 김우진이 시선을 피하며 붙잡힌 손을 슬쩍 뺐다.

“드, 큼. 들어가서 자라고.”

목소리가 어째 거칠게 나왔다.

“아니, 안 잘 거야. 자료는?”

“퀵으로 보내 준대. 한두 시간 정도 걸릴 거야.”

“좋네.”

고개를 끄덕인 그는 잠 좀 깨게 세수라도 해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김우진은 붉어진 목덜미를 손으로 가렸다.

***

도착했다는 연락에 김우진이 1층으로 내려가서 자료를 받아 왔다. 크라프트지 서류 봉투에 담긴 자료를 꺼내 들고 천천히 읽어 봤다.

“믿을 만한 정보인 거야?”

“응.”

길드마다 클리어가 완료된 게이트, 진행 중인 게이트, 대기 중인 게이트로 깔끔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딱 봐도 전문가의 솜씨인데.

‘김우진에게 이런 도움을 받게 될 줄이야.’

원작에서는 한이결만큼이나 등장이 적은 김우진이었던 터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 구해 온 건지 알려 줄 생각은 없는 거지?”

그 물음에 김우진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모르는 게 나아.”

“그래, 그럼.”

나는 흐트러진 종이를 한데 모아 툭툭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정보 제공자가 누군지도 모르니 믿기 어렵기는 해.”

“그렇겠지.”

“그러니까 그냥 널 믿을게.”

“……나를?”

“그래. 너의 선택을 믿겠다는 뜻이야.”

“내 선택을 믿겠다고…….”

멍한 표정으로 내 말을 따라 중얼거리던 김우진의 얼굴이 점차 붉어지기 시작했다. 목덜미부터 시작해서 온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김우진이 입가를 가리며 말했다.

“……처음 들어. 그런 말…….”

“애초에 안 믿었으면 이런 부탁 하지도 않았지. 아무튼 고맙다.”

김우진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웅얼웅얼 대꾸했다.

“더, 더 말해. 뭐든지. 다 해 줄게…….”

“지금은 딱히 없는데.”

“나중에라도…….”

“그래.”

심하게 부끄러워하는 김우진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애가 그동안 친구가 없었어서 그런가. 이런 말에 유독 약한 것 같았다.

‘하긴, 저 성질에 친구가 있으면 신기하지.’

입만 열었다 하면 욕을 줄줄 뱉어 내던 과거의 김우진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이야 나한테는 꼬리를 좀 내렸지만, 기본적으로 녀석은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이니까.

‘내가 갔다 온 D17 구역 게이트도 있네.’

D17 구역 게이트 자료를 따로 빼며 김우진에게 물었다.

“이 정보, 계속 받을 수 있지?”

“응.”

“그럼 다음 주쯤에 한 번 더 받아 줘.”

“알겠어.”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D17 구역 게이트 설명을 천천히 읽어 내렸다.

‘공간이 뒤틀린 위치와 어둠 속에 있던 복도. 그 아래에서 만난 S+급 몬스터, 여신상. 자세하게 적혀 있네.’

이 내용은 하태헌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히지 않은 정보들이었다. 아마 길드 관리 본부 회의에서 말했겠지. 마스터끼리는 정보를 교환해야 위험 대비를 할 수 있을 테니까.

바로 내가 원하던 정보였다. 소파에 앉아서 시간을 들여 자료를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히 훑었다. 다행히 뒤틀린 공간은 D17 구역 외에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상 현상이 발견된 게이트 확률은 50% 정도. 난이도 상승은 최소 1단계에서 최대 2단계.’

S+급 몬스터는 제이나 길드 소속 게이트에서 추가로 발견됐다. 다행히 큰 피해 없이 처리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 자료를 보고 있는데, 소파 구석에서 지이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해서 보니 아까 던져 둔 내 핸드폰이었다.

“뭐지?”

액정을 보니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 누구지.

“예.”

고민 끝에 전화를 받자 상대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이결. 지금 어디지?]

“……박건호 팀장님?”

옆에서 다 읽은 자료를 정리하던 김우진이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뭡니까? 쓸데없는 연락하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요.”

[쓸데없는 일이 아니니까 그렇지. 지금 시간 좀 되나?]

“바쁩니다.”

[안 바쁜 거 다 알아. 어제 게이트 끝내고 돌아왔잖아.]

“알면서 떠보신 겁니까? 만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데요.”

[그러지 말고. 진짜 급한 일이라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괜히 받은 것 같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뭔데요?”

[지금 대표실로 올라와 줬으면 좋겠는데.]

대표실? 설마 천사연까지 있는 건가? 나는 일단 알겠다고 대답하고 통화를 끊었다. 대체 뭐길래 그 두 명이 모여 있는 거냐.

아, 진짜 가기 싫은데 게이트 문제일 것 같아서 거절도 못 하고. 피곤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우진이 따라 일어났다.

“어디 가?”

“잠깐 위층에 좀…….”

“같이 가. 나도 갈래.”

……데려가도 되나? 뭐, 혼자 오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그러든가.”

그렇게 나는 김우진을 등에 달고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이미 보고 받은 듯, 수행원은 별다른 말 없이 대표실 문을 열어 줬다.

“마스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아닙니다.”

들어가자마자 박건호의 진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실에는 박건호와 천사연뿐만 아니라 우서혁도 함께 있었다.

“한이결.”

천사연과 대립하고 있던 박건호가 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빛내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나는 그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뜻을 담아 바람으로 벽을 세웠다. 물론 박건호는 아랑곳 안 하고 바람을 뚫고 다가왔다.

개 같은 S급 같으니.

“뭡니까? 더 접근하면 그냥 갈 겁니다.”

“매정하긴.”

울상 짓는 박건호를 무시하며 천사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심해하는 눈빛으로 박건호를 보던 천사연이 내게 말했다.

“부른다고 냉큼 오다니, 실망스럽군.”

“부른 사람한테 실망해야지, 왜 저한테 실망합니까?”

“박건호는 실망할 것도 없는 놈이고.”

천사연은 평소와 달리 웃음기가 없었다.

“한이결이 가든 말든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아. 쓸데없는 짓 그만하지, 박건호 팀장.”

“저 말고 다른 S급을 보내시는 게 어떻습니까? 우서혁 비서와 합이 맞는 길드원은 많을 텐데요.”

“다른 S급들은 이미 일정이 정해져 있어.”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일부러 팀 이렇게 짰다고.”

“박건호 팀장은 내가 그 정도로 한가해 보이나?”

그제야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아무래도 박건호가 맡은 클리어팀에 우서혁이 합류한 모양이다. 그게 싫어서 이렇게 항의 중이고.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설마 팀장님, 저보고 오라고 한 이유가…….”

“우서혁 비서 빼고 그 자리에 한이결 넣어 주시죠, 마스터.”

웃기고 있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 가기 싫은데요.”

“왜? 같이 가면 좋은 추억이 될 거다.”

“댁이나 그러시겠죠.”

눈치 없는 박건호를 밀어내며 우서혁에게 물었다.

“우서혁 씨는 괜찮으세요?”

“저도 가기 싫습니다.”

“…….”

무뚝뚝한 표정과 달리 솔직하게 대답한 우서혁은 이어 말했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사안이고, 마스터의 명령이므로 따를 뿐입니다.”

“그렇군요…….”

“본인이 불편하다고 막무가내로 바꿔 달라는 건 좀 꼴불견이기도 하고요.”

“…….”

저거 지금 박건호 욕한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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