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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57)화 (57/394)
  • 57화

    15. 잘못 걸렸다

    [14번째 방에서 공간 뒤틀림 현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곳에는 S+급 몬스터가 존재했으며, 몬스터를 처리해야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나는 멍하니 TV 화면을 바라봤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하태헌의 인터뷰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게이트 내부에 뒤틀린 공간이 있으며, 높은 등급의 몬스터가 추가로 등장했다는 소식은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느끼는 골칫거리는 게이트뿐만이 아니었다.

    “하아…….”

    나는 핸드폰 액정 속 사이트 메인에 떠 있는 인터넷 기사를 클릭했다.

    「로헌 길드의 하태헌, 인기 A급 용병과 아는 사이? 의외의 친분」

    제목부터 가관이다. 나는 침착하게 스크롤을 내렸다.

    「최근 로헌 길드의 부마스터 자리를 맡게 된 SS급 하태헌이 무소속 A급 능력자, 한이결과의 인연을 공개했다.

    D17 구역 게이트를 클리어하러 나선 하태헌은 용병으로 참여한 한이결과 함께 S+급 몬스터를 처리한 직후, 숨기고 있던 관계를 밝혔다.

    무슨 사이인지 묻는 길드원의 질문에 하태헌은 각성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게 다칠 뻔했던 하태헌을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지던 한이결의 모습을 보아 각별한 사이일 거라는 추측이 잇따랐다.

    이 소식에 누리꾼들은 현재 무소속인 한이결이 어느 길드로 가게 될지 관심을 모았다.

    한편, 하태헌은 능력자 전문 프로그램 ‘퍼스트 헌팅’에 출연 예정이다.

    [email protected]

    사진 제공| 한윤종 기자」

    뭐야. 기사 내용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나는 내친김에 댓글도 확인했다.

    「순공감순

    lias***

    기사 ㅄ같이도 썼네. 각별은 무슨.. 눈앞에서 사람 떨어지는데 버리냐그럼? 바람능력도 잇다는데??

    wlstj***

    양손에 SS급이네ㅋㅋㅋ로헌vs레퀴엠이면 닥 레퀴엠아님?? 부마가 어딜 길마한테 비빔ㅋㅋ

    └응~어딜가든 역겨워~

    └뭘 역겨워; 그냥 그러려니 하는거지 찐따새끼 부럽나보네ㅉㅉ

    └역겨운거ㅇㅇ ㅈ도 능력없는게 인맥빨로 가는거자너

    └A급인데 무슨 능력이 없어 ㅈㄴ웃기네ㅋㅋ댓글쓴놈 C급은 되냐?

    dksr***

    퍼헌에 하태헌이 나온다고?? 요즘 인터뷰도 많이 하드만. 부마됐다고 로헌에서 겁나 굴리나보네

    vdds***

    블읍읍 길드가 싸지른 똥 치울라고 여기저기 난리네. 그 새끼는 해명 기사 하나 없고 뭐한대냐?

    └골프치러 가셨답니다~^^

    └그때 같이 골프친놈들도 신상 다 떠야된다.

    └C12구역 피해자들 아직도 시위하지 않음? 인성 씹레전드ㄷㄷ

    └뜨겠냐? 다 돈좀 만지는 집안 자식들이라는데

    asse***

    한이결이 누군데 이 난리임? 관심도 없는놈 기사 계속 쓰네.

    └관심 많은데?

    └아싸쉑이라 남들 다 아는거 혼자 모르나보네ㅋ」

    “…….”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핸드폰 화면을 껐다.

    하태헌이나 천사연이나 통제되지 않는 놈들만 주변에 있으니 성가신 일도 두 배로 늘어났다.

    “나 왔어.”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소파에 누운 채로 고민하는데, 외출했던 김우진이 돌아왔다.

    “어디 갔다 와?”

    “장 봐 왔어.”

    김우진이 근처 마트 로고가 박힌 봉지를 들어 올렸다. 담긴 게 꽤 많은지 크기가 컸다.

    게이트 클리어를 끝내고 레퀴엠 길드로 돌아온 나는, 손만 대충 치료하고 바로 기절하듯 잠을 잤다.

    그 모습을 보고 나한테 보양식을 해 주겠다고 잔뜩 벼르던 김우진은 아침이 밝자마자 쏜살같이 마트를 다녀온 모양이었다.

    “겨우 4일 지났는데 무슨 살이 빠졌다고…….”

    “살만 빠진 줄 알아? 얼마나 고생했으면 그렇게 지쳐서 돌아와?”

    “아니, 그거야.”

    “나도 뉴스 봤어. S+급 몬스터 상대했다며.”

    “…….”

    “그래서 가지 말라고 한 건데, 남의 말은 듣지도 않고. 그리고 손까지 다쳤잖아.”

    “……그만해. 알겠어.”

    내가 손을 휘휘 저으며 항복하자 김우진이 입을 삐죽이며 주방으로 갔다. 어째 갈수록 잔소리가 심해지는 거 같은데.

    “뭐 해 줄 건데? 네가 해 주는 거 다 맛있어서 나야 좋지.”

    어쨌든 맛있는 걸 해 준다면 거절할 이유는 없다. 재료를 꺼내고 있는 김우진에게 살살 웃으며 다가가자, 녀석이 고개를 슬쩍 숙이며 대답했다.

    “소갈비탕 하려고 했는데…… 먹고 싶은 거 따로 있으면 그거 해 줄게.”

    미간을 찌푸리며 잔소리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부끄러워하는 얼굴만 남았다. 갑자기 뭐야.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김우진을 떨떠름하게 바라보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이결 씨, 저 왔어요~”

    “민아린 씨.”

    발랄한 목소리의 주인은 민아린이었다. 그녀는 문을 열어 준 내게 활짝 웃으며 인사하다가, 붕대가 감긴 손을 발견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어. 역시 다쳤네요.”

    “아, 이건…….”

    “게이트 다녀왔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해서 와 본 건데… 일단 들어가도 되죠?”

    “그럼요.”

    민아린이 룰루랄라 방 안으로 들어오자 김우진이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내 손을 치료하는 것을 보고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싹 지웠다.

    “다행히 저번보다 심한 상처는 아니네요.”

    “그냥 놔둬도 금방 나을 텐데요.”

    “생활하기 불편하잖아요.”

    그렇긴 했다. 나는 붕대를 풀고 말끔해진 손을 두어 번 쥐었다 폈다.

    “감사합니다.”

    “뭘요. 그보다 아침 식사 준비하나 봐요?”

    민아린의 동그란 눈에 기대감이 서렸다.

    “같이 먹을래요?”

    이 아침부터 날 치료해 주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온 민아린이었다. 아침 정도는 당연히 대접해야 했다.

    “어머, 좋아요! 메뉴가 뭐예요?”

    “소갈비탕이라고 하던데요.”

    “세상에. 우진 씨가 이결 씨 고생했다고 맛있는 거 해 주시나 보다.”

    눈치도 빠르지. 그렇게 나는 민아린을 등에 달고 주방으로 향했다.

    “뭐 도와줄 거 있냐? 양파를 썬다든가.”

    “됐어. 또 다칠 일 있어?”

    준비하는 동안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물어본 건데, 녀석이 자존심을 건드렸다. 어이없다. 다른 건 몰라도 칼 하나는 잘 다룰 자신 있는데.

    “야. 나도 그 정도는 할 줄 알아.”

    그 말에 김우진은 어딘가 찝찝한 표정으로 내게 양파와 칼을 건넸다. 뭐 이쯤이야. 당당히 도마 위에 양파를 올리고 칼을 쥐었다.

    “그, 이결 씨…….”

    “미쳤어? 칼을 왜 그렇게 잡아?”

    지켜보던 민아린과 김우진이 기겁하며 내 팔을 붙잡았다. 왜들 이러세요.

    “이렇게 잡는 거 아니야?”

    “음, 양파가 아니라 사람을 찌를 때 그렇게 잡기는 하죠…….”

    “칼을 가로로 눕혀서 잡으라고!”

    아 맞아. 나는 헛기침을 하며 김우진이 알려 준 대로 칼을 고쳐 잡았다.

    “이제 썰면 되냐?”

    “어. 일단 반절로 잘라 봐.”

    반절로 자르라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팔을 휙 들었다. 이 정도 힘으로 내리치면 깔끔하게 잘리겠지.

    “미친 새끼야!”

    “이결 씨, 손! 손!”

    김우진이 다시 한번 내 팔을 붙잡았다. 민아린의 외침에 그제야 양파 위에 올려진 내 손을 발견했다. 양파 썰 생각만 하느라 미처 손 위치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하하. 제가 실수를.”

    “실수 좋아하네. 너 나가!”

    “이번에는 우진 씨 말 듣는 게 좋겠어요.”

    김우진은 나를 주방 밖으로 뻥 차 냈다. 변명할 새도 없이 쫓겨난 내게 민아린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요리를 전혀 안 해 보셨나 봐요, 이결 씨.”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청소년 시기에는 대부분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으로 때웠고, 일을 시작한 후로는 항상 사 먹었다.

    “너, 어디 가서 요리한답시고 칼 잡거나 하지 마. 알겠어?”

    갈비탕이 완성된 후, 식사하는 와중에 김우진이 새로운 잔소리를 시작했다.

    “맞아요. 아까도 위험할 뻔했잖아요.”

    “하루가 멀다고 게이트 들어가서 다쳐 오는데 이젠 요리하다가도 다칠래?”

    “…….”

    나는 조용히 밥을 입 안으로 욱여넣었다. 언젠가부터 이 두 사람은 모였다 하면 잔소리를 엄청나게 했다. 한 명으로도 힘든데 두 명이나 협동 공격을 하니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보양식을 먹고도 어쩐지 시들시들해진 나는 언제나처럼 소파에 드러누웠고, 민아린은 일이 있다며 방을 나갔다.

    김우진이 깎아 준 사과를 아삭아삭 먹으며 한가하게 여유를 즐기는데, 핸드폰에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수환: 이결 씨!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저 김수환입니다!」

    「김수환: (이모티콘)」

    김수환이 인사와 함께 고양이가 손을 흔드는 그림을 보내왔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답장했다.

    「한이결: 네. 잘 들어와서 쉬고 있습니다.」

    「한이결: 김수환 씨도 회식 즐겁게 하셨습니까?」

    「김수환: 그럼요^^ 저희 소고기 먹었는데.」

    「김수환: (사진)」

    「김수환: 다음에는 꼭 같이 가요~」

    「한이결: 그러죠.」

    곧이어 김수환이 일련번호와 링크를 보내왔다.

    「김수환: 53263」

    「김수환: (링크)」

    「김수환: 팬카페 링크랑 초대번호예요. 가입 버튼 눌러서 초대코드에 저 번호 써넣으면 하루 내로 가입 완료될 겁니다.」

    아하. 이런 의미의 초대권이었군.

    「김수환: 가입 완료되면 공지글 보시고 규칙 지켜서 활동하시면 돼요^^」

    「김수환: 혹시 모르는 거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메시지 주세요!」

    「한이결: 감사합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링크를 눌렀다. 그러자 ‘SS급 능력자 하태헌 팬카페’라는 제목과 함께, 하태헌의 옆모습이 찍힌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떴다.

    “와.”

    흩날리는 새하얀 눈송이 사이로 보이는 하태헌의 얼굴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멋있었다. 웬만한 연예인보다 잘나간다더니, 사진 찍는 전문가들도 따라다니나 보다.

    나는 겨우겨우 회원가입 버튼을 찾아서 김수환이 알려 준 일련번호를 써넣었다. 뭔가 여기저기 번쩍거리고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많아서 적응하기 어려웠다.

    “뭘 보길래 그렇게 심각해?”

    “어? 아냐.”

    김우진의 말에 나는 급히 핸드폰 화면을 닫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부탁했던 일은 어떻게 됐어?”

    별다른 기대를 하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김우진이 아무런 정보를 얻어 내지 못했다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맡긴 지 며칠 지나지 않았으니까.

    “얻어 냈어. 원하면 오늘 갖다 줄게.”

    그러나 내 예상과 다르게 김우진은 담담하게 성공했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 오히려 불안해졌다.

    “……너 뭐, 쓸데없는 짓 한 거 아니지?”

    “안 했어. 날 뭐로 보는 거야?”

    “이상하잖아. 네가 나라면 걱정 안 하겠냐?”

    “걱정?”

    까칠하던 김우진의 눈꼬리가 살짝 유해졌다.

    “걱정했다고?”

    “그럼 안 해?”

    내가 김우진에게 부탁했던 것은 게이트 진행 상황과 이상 현상 대한 상세한 정보였다. 관리 본부에서 언론을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내용 그 이상의 정보.

    그런 정보는 국가에서 게이트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만큼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김우진이 의심스러웠다.

    “솔직하게 말해. 이상한 놈들이랑 거래라도 한 거야?”

    “안 했어. 진짜야. 나도 그 정도는 가릴 줄 안다고.”

    재차 묻는 말에도 김우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의심 그만하고 자료부터 받아 봐. 보고 나서 쓸 만한지 정하면 되잖아.”

    “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우진의 말대로 이미 자료가 준비됐다면 일단 받아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알겠어. 전화 좀 하고 올게.”

    김우진이 핸드폰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찜찜한 기분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괜찮은 건가,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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