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11. 조심해
1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N42 구역은 천사연을 찍기 위해 몰려든 기자들과 구경꾼, 미리 대기 중이던 길드원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천사연이다! 도착했어!”
“천사연 마스터!”
차가 게이트 입구로 들어서기 무섭게 기자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급히 투입된 경호원이 기자들을 막아서는 동안, 나와 천사연은 차에 내려서 길드원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마스터.”
길드원 중 가장 키가 크고 체격이 있는 남자가 천사연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했다. 경호원과 마찬가지로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남자는 깔끔하게 올린 포마드 헤어와 딱딱한 표정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인원은?”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 남자는 이윽고 나를 바라봤다.
“아. 그러고 보니 같이 게이트에 들어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겠군.”
나와 남자를 번갈아 돌아보던 천사연이 내 어깨를 가볍게 끌어당겼다.
“이쪽은 한이결. 무소속이지만 클리어를 도와주러 온 고마운 용병이지.”
알아서 소개해 주니 좋긴 한데 이 애매한 자세는 뭐야.
“반갑습니다. 마스터의 수행비서로 일하고 있는 우서혁입니다.”
“예… 반갑습니다.”
우서혁은 이 상황이 어색하지도 않은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담담히 나와 악수했다.
“우서혁은 내 명령으로 2개월 동안 일본에서 지내다가 엊그제 도착했어. S급이니 이번 게이트에서 큰 도움이 될 거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서혁이라. 나는 어색한 미소를 유지하며 머릿속으로 소설 내용을 열심히 떠올렸다.
‘나왔던 것 같기도 하고. 잘 기억나지 않은 걸 보면 그다지 비중 있는 인물은 아닌가 본데.’
주인공인 하태헌과 별다른 접점이 없던 인물인 모양이다. 아무래도 소설 특성상 여자들은 만나는 족족 기억나는 반면, 남자들은 분량이 없어서 그런지 긴가민가했다.
“자, 그럼.”
내 어깨에 팔을 올린 천사연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준비가 끝났으면 들어가기 전에 인터뷰를 해야겠지.”
“……?”
그걸 왜 날 보면서…… 잠깐.
“놔주시죠.”
불길함을 감지한 나는 뒤늦게 천사연의 팔을 뿌리치려고 끙끙거렸지만 소용없었다.
“이왕 얼굴도 공개된 김에 인터뷰도 하지 그래.”
“싫습니다.”
눈앞에 서 있는 우서혁 때문에 억지로 존댓말까지 쓰려니까 아주 죽을 맛이었다. 목 끝까지 올라온 욕설을 내리누르며 거절했지만 천사연은 들은 척도 안 하며 나를 카메라 앞으로 잡아끌었다.
“천사연 마스터!”
“이쪽 한 번만 봐 주세요, 레퀴엠 마스터!”
미리 준비되어 있던 인터뷰존에 나와 천사연이 등장하자 대기 중이던 카메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플래시를 마구잡이로 터뜨렸다.
눈앞을 가득 메운 새하얀 빛무리와 잔뜩 흥분해서 마이크를 들이미는 기자들을 보고 있자니 기가 절로 빨렸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시작되는 N42 구역 게이트 클리어는 나흘간 진행될 예정이며, 저를 포함해 총 12명의 인원이 출발합니다.”
나와 반대로 천사연은 특유의 미소를 지은 채 능숙하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얼굴 바로 앞에서 터지는 플래시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인원은 누구누구입니까?”
“근접팀 5명, 원거리팀 4명, 힐러 2명, 측정 1명입니다.”
“이미 측정이 끝난 게이트에 측정 능력자를 데려가는 이유가 있습니까?”
“게이트를 보다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측정을 많이 할수록 이득이 있습니까?”
“안정성 부분을 따지자면 최소 3번의 측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는 힐끔 천사연의 눈치를 살폈다.
측정 능력자는 게이트 내부에 변화가 생겼는지 확인하려고 데려가려는 거겠지.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하태헌과 함께 들어갔던 게이트도 B급이었는데도 S+급 몬스터가 나타났으니까.’
그런 경우가 또 생기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때 게이트에 들어간 사람이 나와 하태헌이라서 다행이지, 일반 길드원으로 구성된 클리어팀 앞에 S+급 몬스터가 나타났다면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다.
“천사연 마스터. 함께 서 있는 능력자는 누구입니까?”
진지하게 몬스터를 생각하던 나는 이어지는 질문에 움찔 몸을 떨었다. 내 옆에 바싹 붙어 있던 천사연이 내가 놀랐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나지막이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이분은 A급 무소속 능력자로, 이번 클리어 일정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굉장히 각별한 사이죠.”
“하. 하… 하…….”
나는 딱딱한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웃었다. 천사연, 이 개새끼가.
“낯익은 얼굴이다 했는데, C13 구역에서 천사연 마스터와 함께 활약한 그 A급 능력자 분이셨군요!”
“성함 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이쪽 봐 주세요! 사진 한 번만 찍겠습니다!”
“엇, 어…… 그러니까. 저는 한이결, 이고.”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해 볼 거라고는 꿈도 꿔 본 적 없는데. 차라리 무기 들고 패싸움을 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이런.”
내가 당황하며 멍청하게 말만 더듬자 천사연이 나와 카메라 사이를 슬쩍 끼어들며 말했다.
“우리 이결이가 이런 건 익숙지 않아서 많이 놀란 것 같군요.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이 미친놈이?
“방금 뭐라고…… 천사연 마스터!”
“마스터! 잠시만요!”
찰칵!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음이 한층 더 요란스러워졌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천사연을 부르짖는 기자들을 막기 위해 대기 중이던 수행원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정말 끔찍한 경험이야. 기자들을 뒤로하고 인터뷰존을 빠져나온 나는 울렁이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나직이 읊조렸다.
“이 또라이 같은 새끼야…….”
“그걸 이제 알았나?”
천사연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하며 인벤토리에서 재킷과 검을 꺼냈다.
“슬슬 출발하지.”
천사연이 앞장서고, 그 뒤를 나와 우서혁이 자리했다. 혼돈의 빛으로 일렁이는 게이트를 바라보며 천사연이 검으로 땅을 두어 번 툭툭 두드리더니, 망설임 없이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천사연을 쫓아 나도 게이트 입구에 몸을 밀어 넣었다. 차가운 기운이 전신을 감싼 것도 잠시, 축축하고 불쾌한 공기가 코끝으로 느껴졌다.
“지하 감옥?”
“정확히는 지하 던전.”
어디선가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음울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어깨를 짓눌렀다. 벽에 설치된 작은 횃불만이 유일한 빛이었으며, 군데군데 날벌레와 지네가 기어 다니는 게 보였다.
“뒤처지면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하니.”
천사연이 주변을 살피는 내 손목을 잡아끌며 말했다.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
“아, 진짜. 작작…….”
자꾸만 휙휙 잡아당기는 행동이 짜증 나서 한마디 하려던 그때, 옆에 서 있는 우서혁과 눈이 딱 마주쳤다. 젠장.
“……그으럼요, 마스터. 자알 붙어 다니겠습니다~”
“큭.”
힘이 들어가는 미간을 억지로 피며 말하자, 천사연이 고개를 돌리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재밌냐, 이 새끼야?
게이트 안으로 모든 길드원이 도착하자 천사연은 느긋하게 이동을 시작했다. 천사연이 건네준 자료에 적힌 대로라면 클리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삼 일. 일부러 천천히 둘러보기 위해 일정 자체를 사흘로 잡았다고 한다.
“첫 번째 방이군.”
촤르르륵!
천사연이 특정한 벽을 누르자 앞을 가로막았던 녹슨 쇠창살이 쇠사슬 감기는 소리와 함께 위로 올라갔다. 저 쇠창살 문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한 번 들어가면 뒤로 돌아 나갈 수 없었다.
은은한 촛불이 일렁이는 커다란 방 안은 수십 개의 관이 놓여 있었다. 먼지 쌓인 관이 가득 채워진 방 안의 풍경은 소름 끼치도록 을씨년스러웠다.
“김지훈, 박유준.”
천사연의 부름에 뒤에 서 있던 길드원이 달려왔다. 그중 김지훈은 어째 낯익다 싶더니, SS급 게이트를 클리어했던 근접팀 중 한 명이었다.
“미믹 숫자 세 보고 오도록. 47개에서 적거나 많은지 확인해.”
“네!”
각자 무기를 꺼내 든 김지훈과 박유준이 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신중하게 관의 숫자를 세어 가던 둘은 금방 돌아왔다.
“47개 확인되었습니다.”
“숫자 변동 없습니다.”
“처리해.”
보고가 끝나자마자 천사연은 옆에 있던 관 중앙에 검을 꽂아 넣었다. 푸학, 새빨간 피가 튀어 올랐다.
끼에에에엑!
미믹이 발버둥을 치며 입을 벌렸다. 새까만 기운 사이로 사람의 치아와 비슷하게 생긴 커다란 이빨이 보였다.
키에에엑! 끼에에엑!
길드원에게 공격당한 미믹의 비명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미믹은 B급으로, 물건으로 위장한 뒤 가까이 다가오는 상대방을 집어삼키는 도플갱어 타입의 몬스터였다.
미믹의 숫자가 워낙에 많아 일일이 처리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별다른 무기가 없어서 단단한 관을 뚫을 수 없는 나는 얌전히 자리를 지켰다. 우서혁도 마찬가지였다.
‘능력이 뭐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의 능력자는 무기를 사용한다. 그렇기에 무기가 없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맨몸인 우서혁은 무표정으로 앞만 바라봤다. 그의 능력의 궁금증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기다리던 미믹 처리가 모두 끝났다.
방을 가로질러 끝으로 가자, 또 다른 녹슨 쇠창살이 다음 방으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천사연은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바닥 문양 한 부분을 밟았다.
쿠구궁, 촤르륵!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어디 표식이라도 있는 건가. 숨겨진 장치의 위치는 자료에도 나와 있지 않던데.
“위치를 다 외운 겁니까?”
“방 하나당 총 15개의 장치가 있지. 그중 무작위로 하나야.”
“무작위라고요?”
즉, 방 하나를 열기 위해서는 15대 1 확률로 맞는 장치를 찾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방금 한 번에 성공했잖습니까. 아까도 그렇고.”
“운이 좋았지.”
단호한 대답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성의 없는 대답은 그렇다 치고, 이 선 긋는 태도는 뭐야.
‘어째 게이트에 들어올 때마다 저러는 것 같네.’
설마 이런 부분이 천사연이 말하는 ‘숨기는 것’ 중 하나인 건가.
두 번째 방은 자료에도 나왔듯이 사람 형태의 A급 몬스터, 구울이었다. 우리가 방으로 들어서자 시체처럼 누워 있던 몬스터가 일제히 눈을 뜨며 일어섰다.
그으윽, 그어어억.
겉모습은 좀비와 흡사하지만 구울이 신체가 훨씬 단단하고 반사 신경이 뛰어나다. 항상 굶주려 있는 탓에 상당히 난폭하며, 뛰어난 후각으로 적을 구분한다.
그아아악!
가까이 있던 힐러를 향해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들던 구울의 심장에 창이 꽂혔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구울을 상대하기 위해 힐러와 측정 능력자를 막아선 길드원들이 곧바로 전투를 시작했다.
모여 있는 구울 틈으로 파고든 천사연이 능력도 쓰지 않은 채 능숙하게 검을 휘둘렀다. 천사연의 안전을 확인한 나는 길드원의 등 뒤를 노리는 구울에게 칼날 형태의 바람을 날렸다.
“윽!”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느라 옆구리를 노리는 구울의 날카로운 손톱을 뒤늦게 알아챘다. 황급히 몸을 뒤로 빼며 공중으로 올라가자 구울이 시끄럽게 울어 댔다. 다행히 옷만 좀 찢어졌을 뿐, 상처는 없었다.
“우서혁 씨!”
아차. 내가 날아오르자 옆에 있던 우서혁에게 구울이 몰려들었다. 내가 급히 그에게 능력을 사용하려던 그때였다.
“미친.”
우서혁이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기운의 흐름이 끊길 뻔했다. 떨어지는 몸을 가까스로 다시 띄우며 떨리는 눈으로 우서혁을 바라봤다.
‘아, 아니. 대체 왜…….’
다가오는 구울은 신경도 안 쓰며 우서혁은 차분하게 한 겹 한 겹 벗었다. 검은 정장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까지 푼다. 놀랍게도 전투 중인 다른 길드원들은 그런 우서혁을 신경도 안 썼다.
드디어 셔츠까지 벗어 손에 든 우서혁이 정면의 구울을 마주 봤다. 키가 2m를 훌쩍 넘는 구울들이 우서혁의 냄새를 맡고 신나서 달려왔다.
우서혁이 옷을 들지 않은 반대 손을 들어 올렸다. 탄탄한 근육으로 가득했던 팔 전체가 점차 새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 충격적인 광경에 나는 넋을 놓고 구경했다.
우드득, 우득.
우서혁의 팔에서 뼈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더니, 새까만 팔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살이 차오르며 두툼해지고, 길게 뻗어 나온 손톱은 대충 보기에도 딱딱하고 날카로워 보였다.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형태의 팔을 우서혁은 구울을 향해 망설임 없이 휘둘렀다.
콰지직!
구울 두 마리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상체가 통째로 갈려 나갔다. 구울뿐만 아니라 그 뒤에 벽까지 손톱 모양으로 움푹 파였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본 나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대체 저게 뭐야,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