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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37)화 (37/394)

37화

10. 신경전

김우진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욕실로 들어갔다. 그동안 나는 구급상자를 찾아 꺼냈다.

“다친 곳은 더 없어?”

씻고 나온 김우진에게 묻자 녀석은 샤워해서 그런지, 볼을 발갛게 물든 상태로 고개를 휙휙 저었다.

“발목 삐지 않았냐?”

“심하진 않은데.”

“앉아 봐.”

나는 내 앞에 소파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엉거주춤 앉아서 멀뚱히 날 바라보는 김우진의 발목을 붙잡고 확 끌어당겼다.

“으악!”

“그러네. 이 정도면 간단한 테이핑만 해 둬도 내일이면 가라앉겠다.”

심하게 부었으면 응급실을 가거나 병원 열릴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을 텐데, 다행이었다.

“……야, 내가 할게.”

“테이핑 할 줄은 알고?”

남한테 발목이 잡힌 게 어지간히 창피한지 김우진이 아까보다 훨씬 붉어진 얼굴로 나를 앙칼지게 노려봤다.

“그러는 너는 왜 할 줄 아는 건데?”

해 준대도 지랄이네.

“닥치고 얌전히 받아.”

한 번만 더 투덜거리면 얄짤없이 그만두려는데,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김우진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테이핑을 받았다.

테이핑을 끝낸 후 간단히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하품하며 침실로 들어선 나는 김우진을 만난 이후부터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았던 핸드폰에 메시지가 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뭐지?”

피곤함에 뻑뻑해진 눈을 문지르며 메시지를 켰다.

「천사연: 도착했나?」

이 자식은 왜 이렇게 연락을 해 대냐…….

메시지가 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2시간 전이었다.

“으음.”

기껏 집으로 보낸 놈을 다시 데려왔으니 천사연에게 대충이라도 설명은 해야 할 텐데, 뭐라고 적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실은 우연히 깡패에게 쫓기는 김우진을 발견하고 구해 줬는데, 사정을 들어 보니 좀 불쌍해서 내가 지내는 방으로 다시 오라고…… 아, 너무 구구절절하다.

한참 동안 핸드폰 액정을 노려보던 나는 신중하게 답장을 작성했다.

「한이결: 어근데 김우진 데려왔어」

「한이결: 그렇게 됐음」

답장이 오면 더 설명해 주려고 했지만 천사연은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바쁜가. 나는 괜히 뒷머리를 쓸어 넘기며 핸드폰을 내려놨다.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자.

***

다음 날 아침, 푹 자고 일어난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여기저기 뻗친 머리를 손으로 대충 쓸어 넘기며 침실을 나오자 맛있는 냄새가 코를 스치고 지나갔다.

“뭐 하냐?”

주방으로 가자 프라이팬을 들고 서 있는 김우진이 보였다. 내 목소리에 움찔 놀라며 돌아본 김우진은 어딘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일어나?”

“늦다고?”

나는 시계를 봤다. 오전 11시 32분. 쉬는 날 일어난 시간치고는 무난하지 않나?

“요리해? 내 것도 있어?”

“날 뭐로 보는 거야? 당연히 같이 만들었지.”

“오.”

그건 좀 놀라운데. 생각보다 매너가 있구만.

“뭔데?”

“……오므라이스.”

“맛있겠네.”

그래. 잠자리를 제공했으면 밥은 네가 해야지. 아주 올바른 가사 분담이다.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컵에 따른 나는 주방을 빠져나와 거실로 이동했다. 물을 마시며 리모컨을 찾아 TV를 켰다.

[C13 구역 게이트 관리 실패에 대한 비난 여론이 점차 거세지고 있습니다. 오전 10시경 길드 관리 본부에서 진행된 회의에 참석한 천사연 마스터는 이번 사건에 깊은 유감을 나타냈으며, 강승건 마스터에게 책임감을 갖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C13 구역 게이트 담당 길드인 블런은 강한 징계를 받을 것으로…….]

회의 참석을 위해 관리 본부로 들어서는 강승건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신경질적인 낯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여기저기에 불려 다니며 고생 좀 한 모양이다. 혀를 차며 컵에 든 물을 마저 마셨다.

[다음 소식입니다. 어제 영상이 뜨며 화제가 된 인물이죠. C13 구역에 나타난 몬스터를 깔끔한 솜씨로 처리한 A급 능력자입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아나운서 옆에 뜬 사진을 본 나는 놀라서 컵을 놓쳤다.

채앵!

바닥으로 떨어진 컵이 산산이 조각나며 장렬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컵 깨지는 소리에 김우진이 헐레벌떡 거실로 달려 나왔다.

“무슨 소리…… 미친! 안 다쳤어?”

“닥쳐 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뉴스에 시선을 고정했다.

[영상 속 주인공은 천사연 마스터와 A급 능력자입니다. 전문가들은 바람 능력자로 추정 중이며, 천사연 마스터와 뛰어난 호흡을 보여 준 데에 큰 놀라움을 표했습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을 했는지 김우진이 경악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뭐야. 저거 너야?”

[놀랍게도 청년은 레퀴엠 길드 소속이 아닌 무소속으로 밝혀졌습니다. 천사연 마스터와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며, 얼마 전 클리어한 SS급 게이트도 참여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천사연의 품에 안겨서 하늘을 날고 있는 내 얼굴이 화면에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나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그러고 보니 구경꾼들 사이에 방송 카메라가 몇 대 있기는 했지. 거리가 꽤 돼서 찍어 봤자 별거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무소속인 사람 신상을 저렇게 뉴스에서 대놓고 공개하나?’

능력자랑 일반인 취급이 많이 다른 거야 알고는 있었지만…….

“어이가 없어서.”

“야, 한이결……. 괜찮아?”

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짜증 내자 옆에 서 있던 김우진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갑갑한 숨을 푹 내쉬며 깨진 유리컵을 밟지 않도록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나 일단 좀 씻을게. 미안한데, 그 깨진 컵 좀 치워 줘.”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냉수마찰이 필요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김우진을 뒤로하고 욕실로 들어섰다.

***

침묵이 내려앉은 회의실 문을 누군가가 거칠게 열며 들어섰다.

“다 왔습니까?”

또각, 또각. 구두 굽 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날카로운 인상의 게이트 관리 센터장 최미진이 들고 있던 파일철을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화려한 금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며 잔뜩 지루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던 제이나 길드 마스터, 홍시아가 눈꼬리를 휘며 인사했다.

“흐흥. 오랜만이네, 최미진 센터장.”

새까만 단발머리를 쓸어 넘기며 최미진이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로 간의 쓸데없는 인사는 넘기도록 하죠. 이유는 다들 아실 테고.”

“크흠.”

그 말에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주변 눈치를 살피던 강승건이 땀을 흘리며 헛기침을 했다.

“틀어.”

“예.”

최미진의 명령에 수행원이 노트북을 조작하자, 회의실 화면을 통해 영상 하나가 재생됐다.

영상 속에는 게이트 밖으로 터져 나온 몬스터를 순식간에 해치우는 천사연과 어느 남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주하 대신 로헌의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하태헌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한이결?’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새하얀 얼굴. 틀림없다. 천사연 품속에 안겨 있는 남자는 자신이 아는 그 한이결이 맞았다.

“내가 무슨 말 할지 알고 있겠죠, 강승건 마스터?”

“그, 최미진 센터장! 이건 오해가 있는 게…….”

“오해고 나발이고. 3개월 만에 게이트를 두 번이나 터뜨리다니, 아주 대단하군요. 심지어 뒷수습은 천사연 마스터가 하고?”

“아니, 들어 봐. 내가 그때 하필 외부 일정이.”

“외부 일정?”

최미진이 대놓고 비웃음을 지었다.

“귀한 집 자제들과 하는 골프? 게이트가 터진 상황에서 골프 핑계를 대고 싶습니까?”

“그거야 길드를 키우려고 그런 거지! 다 생각이 있다고!”

“하아.”

강승건이 얼굴까지 붉히면서 소리를 지르자, 최미진이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나 원, 답답해서. 강승건 마스터. 길드는 능력자와 게이트를 수월하게 관리하기 위해 있는 겁니다. 기업을 상대로 뒷돈 챙기라고 있는 게 아니라. 길드 마스터라는 위치에 맞게 게이트나 열심히 관리할 것이지, 어딜 일정 운운하며 놀러 다닙니까, 놀러 다니기를.”

“뭐, 뭐? 놀긴 누가 놀아? 말 다 했어, 최미진 센터장?”

강승건이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원래 그런 게 사업이야! 그리고, 그깟 게이트 잠깐 터진 게 어때서? 천사연 마스터가 안 왔어도 우리 길드 애들로 충분히 막아 냈어! 설령 좀 피해가 있었더라도 아버지께 말씀드리면!”

“……이봐요, 강승건 마스터.”

최미진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강승건의 말을 끊어 냈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그쪽이 뭐가 예뻐서 의원님이 이번 사태를 수습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들이랍시고 있는 놈이 하는 일이라고는 아비 얼굴에 똥칠하는 거밖에 없는데?”

“최미진 센터장!”

“그렇게 자신 있으면 지금 의원님께 연락해 보세요. 사고 쳐서 보상금이 만만찮게 필요한데 놀러 다니느라 돈 한 푼 없다고.”

“…….”

“해 보시라고.”

냉정한 말에 거친 숨을 내쉬며 최미진을 노려보던 강승건은 욕설을 내뱉으며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다.

콰앙!

“휴우…….”

회의실 문짝이 부서져라 닫히는 소리에 최미진이 지친 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며 홍시아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최미진 센터장은 여전하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성의 없이 대꾸한 최미진이 손짓하자 수행원들이 각 서류를 마스터들에게 나눠 줬다.

“블런 길드 징계에 대한 설명과 게이트 재분배 안내 서류입니다. 블런 길드 소속 게이트의 70%를 각자 나눠서 맡아 주시길 바랍니다.”

“에이, 쓰레기만 왔네.”

서류를 넘겨 본 홍시아가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천사연 마스터. 죄송하지만, C 구역 전체 게이트 서브 관리권을 유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뭐, 원한다면 그래 줄 수야 있는데.”

지금껏 조용히 앉아 있던 천사연이 느긋한 어조로 대답했다.

“대신 배분율은 좀 높여야겠더군요. 이번 일로 우리 길드도 이미지 손해를 좀 봐서.”

“……알겠습니다. 12%로 올리도록 하죠.”

C 구역 전체 게이트 서브 관리권을 떠맡는 대가로 게이트로 생긴 수익의 10%는 무조건 레퀴엠 길드로 들어간다. 말이 10%지, C 구역에 속한 게이트 숫자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강승건이 친 사고 덕분에 이제는 10%에서 12%가 되었으니, 공평의 추가 기운 셈이다.

그래도 최미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구역 전체를 관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걸 감당할 만한 길드는 아직까지 레퀴엠이 유일했다.

“일단 중요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만…….”

잠시 말을 멈추고 무언가를 고민하던 최미진은, 이내 천사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천사연 마스터.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천사연이 해 보라는 듯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는 최미진이 무엇을 물어볼지 이미 눈치챈 듯했다.

“영상 속에 A급 능력자.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까?”

“맞아, 맞아! 나도 어제 뉴스로 보고 너무 궁금했다니까. 대충 봐도 엄청나게 끼고도는 것 같은데. 웬일이야?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적 없잖아.”

홍시아가 흥미로 반짝이는 눈을 하고 끼어들었다. 줄곧 서류에만 집중하던 하태헌도 어느새 고개를 들고 천사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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