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거창하게 먹을 생각은 없으니 패스트푸드점에 들려서 햄버거 세트를 샀다. 기름진 향이 가득한 비닐봉지를 들고 낡은 주택가 골목에 들어섰다.
어둠이 내려앉은 지저분하고 좁은 골목은 낡은 가로등만이 유일하게 빛났다.
“옛날 생각나네…….”
오래전, 일을 막 시작할 즈음에 살았던 곳과 여러모로 비슷한 장소에 나는 과거를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이 부근인 것 같은데.’
집마다 주소 판이 없거나 망가져 있어서 제대로 된 위치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한참 동안 골목길을 헤매는데, 어딘가에서 남자의 걸걸한 고함이 들려왔다.
“이 새끼, 너 거기 안 서!”
우당탕, 상자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맞은편에 사람이 나타났다.
뭔가 싶어서 걸음을 멈추고 지켜봤다. 도망치던 사람은 이내 뒤쫓아 온 남자에게 붙잡혀 길바닥을 거칠게 굴렀다.
“김우진 이 시벌놈아, 뭣도 없는 새끼가 빌빌거리는 게 불쌍해서 거둬 준다는데 뭐 이리 튕기고 지랄이야? 어?”
“시발, 이거 놔!”
야밤에 벌어진 추격전을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나는 김우진이라는 이름에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몇 걸음 다가가자 가로등 불빛에 붙잡힌 사람 얼굴이 비쳤다.
‘진짜 김우진이네.’
이미 한 대 얻어맞았는지 입가가 찢어지고 옆얼굴이 붉었다. 발버둥 치는 김우진을 우악스럽게 잡아 누른 남자가 퉁퉁한 볼살을 한껏 위로 올리며 비아냥거렸다.
“길드 들어갔다고 네가 언제까지 해 먹을 것 같냐? 능력도 존나 애매한 새끼가 길드에서 받아 줬다고 기세등등해서는 시발….”
“크윽…….”
땀에 젖은 붉은 머리카락 사이로 남자를 노려보던 김우진이 이를 갈며 말했다.
“좆 까, 시발. 몇천을 준다 해도 안 갈 거니까 좀 꺼지라고!”
“이 새끼 봐라?”
남자가 실크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며 주먹을 쥐었다. 주먹은 대충 봐도 김우진의 얼굴보다 컸다.
“네가 시발, 숨넘어가게 처맞아도 계속 이 지랄하나 내가 본다.”
김우진의 눈동자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거기까지 지켜보던 나는 한숨을 쉬며 능력을 끌어 올렸다. 후욱, 몸이 앞으로 빠르게 튀어 나갔다.
“넌 오늘 뒤질 줄 알, 커헉!”
내 발에 어깨를 제대로 후려 맞은 남자가 옆으로 날아갔다. 고통을 대비해 눈을 질끈 감고 있던 김우진이 놀란 얼굴을 했다.
“하, 한이결?”
“어.”
“너, 너 이 새끼, 뭐야!”
불시에 습격을 당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나는 심드렁히 말했다.
“지나가던 사람.”
“그럼 시발, 가던 길 갈 것이지, 왜 끼어들고 지랄이야!”
아. 나는 대답을 정정했다.
“사실 직장 동료야.”
“뭐?”
인상을 험악하게 구긴 남자가 분노의 찬 음성으로 외쳤다.
“길드 소속자 새끼라는 거야? 능력자가 감히 일반인은 건드려? 당장 레퀴엠 길드에 네놈을 신고―”
“아, 잠깐. 생각해 보니 직장 동료도 아니네. 나 무소속이거든.”
남자가 순간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넋 놓고 나를 올려다보던 김우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이결, 네가 여기는 왜 왔어?”
“저녁 같이 먹으려고.”
말한 김에 들고 있던 패스트푸드 봉지를 김우진에게 넘겼다. 얼떨결에 봉지를 건네받은 김우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는 너는 왜 얻어맞고 다녀?”
“이건…….”
“야, 아그야!”
나와 김우진을 번갈아 보던 남자가 짜증스러운 어투로 소리쳤다.
“괜한 일에 끼어들지 말고 꺼지지 그러냐? 지금 가면 몸 성히 보내 줄게!”
그 말에 허구한 날 시비가 걸리던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는 씨익 웃으며 받아쳤다.
“내가 할 말인데. 지금이라도 눈치껏 꺼져. 애 괴롭히지 말고.”
내 말에 남자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양 주먹을 쥔 남자가 내게 달려왔다.
“너 이 새끼, 죽여 버리겠어!”
턱을 향해 날아오는 뻔한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손을 휘둘렀다. 바람이 남자의 다리를 휘감아 아래로 끌어당겼다. 남자가 어억, 비명을 내지르며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아이고, 편해라. 욕설을 내뱉는 남자를 바라보며 바람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남자의 몸이 번쩍 떠올라 벽에 부딪히고, 팔이 저절로 움직여서 본인 얼굴을 후려치고, 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꽥꽥거리며 소리를 질러 대던 남자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허겁지겁 내게서 도망쳤다.
두고 보자! 삼류 악당 같은 대사를 던지고 멀어지는 남자의 등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저렇게 의지가 없어서야. 내가 남자와 놀아 주는 사이, 다친 몸을 추스르고 일어난 김우진은 어색한 시선으로 날 바라봤다.
“……야, 한이결.”
“왜.”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날렸더니 배만 더 고파졌다. 햄버거 다 식었겠네.
“너 진짜로, 왜 온 거야?”
김우진이 찢어져서 피가 흐르는 눈가를 대충 소매로 훔치며 물었다.
“말했잖아. 저녁 같이 먹으려고 왔다니까. 할 얘기도 있고.”
나는 찬찬히 김우진의 상태를 살폈다. 자세히 보니 넘어질 때 다쳤는지 손에 까친 상처가 있고, 바지도 지저분했다. 아무래도 치료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튼 집부터 가자. 앞장서. 아까부터 네 집 찾으려고 한참 돌아다녔다.”
“지, 집? 내 집?”
“그럼 남의 집 가자고 하는 거겠어? 바보 같은 질문 그만하고 가자고.”
한참을 머뭇거리던 김우진이 앞장섰다. 뒤에서 본 김우진은 걸음걸이가 영 불편해 보였다. 저 녀석, 발목도 삐었나 본데.
김우진의 집은 코앞이었다. 잔뜩 녹슨 문을 열고 들어선 김우진은 지하로 향했다.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진하게 났다.
삐거덕거리는 철문을 두고 멈춰 선 김우진이 살짝 우울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미리 말해 두는데, 안에 엄청 좁아. 그, 지저분하기도 하고.”
“그렇게 따지면 난 아예 집도 없거든? 알겠으니까 열어.”
무심한 내 반응에 김우진이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었다.
집 안은 예상했던 대로 굉장히 좁았다. 낡은 매트리스가 구석에 놓여 있고, 부실한 주방 옆에는 옷이 걸린 행거가 보였다.
작은 창밖으로 비치는 골목길 바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와, 진짜 비슷하네.’
반지하 방은 다 이런 식으로 생겼나 보다. 내가 살았던 방도 딱 이랬는데.
작은 접이식 테이블을 펼친 김우진이 그 위에 패스트푸드 봉투를 올려놨다.
“……좁지?”
“그렇긴 한데 별 상관없어.”
방은 작아도 청소는 제대로 했는지 생각보다 훨씬 깔끔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온 나는 테이블 앞에 앉아서 햄버거 포장을 벗겨 냈다.
“일단 먹자. 배고파 죽을 뻔했네.”
“어? 으응.”
내 말에 재빠르게 화장실 가서 손을 씻고 온 김우진도 햄버거 하나를 쥐었다. 입가가 찢어져서 햄버거 먹기 영 불편할 텐데도 녀석은 우물거리며 열심히 먹었다. 조용한 방 안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울렸다.
“김우진.”
콜라를 쪼옥 빨며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 찾았냐?”
내 말에 잊고 있었던 아침이 떠올랐는지, 김우진이 얼굴을 왕창 구기며 짜증을 냈다.
“시발, 그걸 말이라고 해? 혼자 어딜 싸돌아다니는 거야?”
“일이 좀 있어서.”
“너 번호 당장 내놔. 전화하려고 해도 번호도 모르고…….”
“어차피 핸드폰 두고 가서 연락했어도 못 받았어.”
“기다리려고 했는데 마스터가 와서…….”
“알았어, 알았어.”
찡찡거리는 것을 중간에 끊어 내자 김우진이 잔뜩 시무룩해졌다. 그 꼴을 보자니 양심에 좀 찔려서 한마디 덧붙였다.
“다음에는 가능하면 말해 주고 갈게. 됐지?”
“…….”
김우진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삐죽였지만, 표정이 한층 풀렸다.
배를 채운 나는 기름진 손을 닦아 내고 매트리스에 가서 누웠다. 먹자마자 눕는 건 건강에 심히 안 좋았지만 알게 뭔가 싶다. 다 귀찮고 피곤했다.
나를 힐끔거리던 김우진은 부지런하게 쓰레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동네 한량처럼 건들거리며 매트리스 위를 뭉그적거리던 나는 다 치울 때쯤에 몸을 일으켰다.
“약 가져와.”
“어? 약?”
“그래. 민아린 씨가 자리를 비워서 치료도 못 받는데, 약이라도 발라 둬야지.”
“괜찮은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김우진은 착실하게 연고와 반창고를 챙겨 왔다. 산 지 한참 된 것처럼 보이는 꾸깃꾸깃한 반창고를 빼앗으며 말했다.
“앉아. 해 줄 테니까.”
“아니, 내가…….”
“화장실에 있는 깨진 거울로 어느 세월에 하게? 됐으니까 앉아.”
눈치를 살피던 김우진이 내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눈 감아.”
약 발라 주는데 시선을 교환하기에는 좀 그래서 녀석의 눈을 감겼다. 순순히 눈을 감은 김우진을 두고 연고를 손가락에 짰다.
“윽.”
“참아.”
입가에 있는 상처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자, 꽤 따가운지 김우진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내가 봐도 섬세하지 않은 투박한 손길을 녀석은 미간을 구긴 채 얌전히 받아 냈다.
“입 다 발랐으니까 이제 설명해 봐.”
“뭐를?”
피가 흘렀던 눈 밑은 가까이서 보니 상처가 심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군.
“뭐긴 뭐야. 너 때린 새끼 누군지 설명하라고.”
“…….”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일 때까지 아무 말도 안 하던 김우진은 조심스럽게 눈을 뜨며 내 팔을 붙잡았다. 코앞에서 마주한 김우진의 고동색 눈동자가 불빛에 일렁였다.
“내 능력 때문에 그래.”
“너보고 일 도와달라 그러냐?”
“응. 사실… 예전에 잠깐 도와줬었어.”
김우진이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오른쪽 눈썹 아래로 작은 점이 보였다. 저런 곳에 점이 있네.
“17살 때 처음 능력을 각성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런 쪽에서 일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왔어.”
그럴 만하지. 나 같은 놈들 눈에는 김우진의 능력이 꽤 쓸 만할 테니까.
“그때는 나이도 어리고 생활이 힘들어서, 그래서…… 받아들였어.”
그러나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았을 리 없다. 그런 놈들은 어리숙한 사람들 등쳐먹는 것을 제일 잘하니까.
“처음에는 괜찮았어. 일도 별로 어렵지 않고, 돈도 줬으니까.”
“갈수록 일은 위험해지고 돈은 안 줬겠군.”
“맞아. 그러다 운 좋게 마스터 눈에 띄어서 그 새끼들한테서 도망칠 수 있었어. 사정을 설명하니 마스터가 길드 방을 빌려줘서 집도 한동안 비웠고.”
“오늘 찾아온 놈은 그때 일하던 곳 소속이야?”
“아니. 그 새끼는 달라. 두 달 전부터 어떻게 알았는지 계속 찾아오고 있어. 나한테 약 운반을 도와달라고…….”
“잘 거절했네. 약 다루는 새끼들은 집요한 구석이 있으니까 절대 엮이지 마.”
“어? 으응.”
김우진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매번 찾아올 때마다 이 난리를 피우냐?”
“저번까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제안만 하고 갔는데, 내가 집에 잘 안 오고 피하기 시작하니까 급해졌는지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하더라고.”
“쯧.”
이래서 약쟁이 새끼들은 상종을 하면 안 된다니까.
“어쩔 수 없네. 그냥 내 방에서 계속 같이 지내.”
“어?”
“오늘 처맞고 갔으니까 당장 내일부터 우르르 몰려올 텐데, 감당할 수 있냐?”
그 말에 김우진의 눈이 반짝하고 빛이 났다.
내내 뻣뻣하게 앉아 있던 김우진은 몸에 힘을 빼고 내게 슬쩍 기대며 대답했다.
“아니이, 감당 못 하지……. 오늘도 무서웠는데.”
“음. 그렇겠지.”
녀석이 날카로운 눈꼬리를 아래로 내리며 슬픈 얼굴을 했다. 그 처량함이 비 오는 날 버려진 고양이를 보는 듯했다.
“그러니까 어제처럼 내 방에서 지내라고. 소파는 좀 불편한가?”
“아냐. 소파도 괜찮아. 여기보다 훨씬 좋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우진처럼 예민한 놈이 이런 일을 어떻게 견디겠어. 어쩔 수 없지.
“방을 하나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쓰는 방에 너만 들어오는 거면 상관없겠지. 지금 바로 짐만 챙겨서 가자.”
“알겠어.”
고민이 해결돼서 기분 좋아졌는지, 김우진이 날 보며 살짝 웃었다. 그 모습에 나도 피식 웃었다.
꼭 나이 차 많이 나는 동생 둔 것 같네. 하여간 귀여운 놈.
얼굴 외에 다른 자잘한 상처들도 치료해 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마 강제로 문 따고 들어올 거야. 웬만한 살림살이 다 부서질 텐데, 중요한 건 제대로 챙겨.”
“괜찮아. 딱히 없어.”
김우진이 챙긴 짐은 핸드폰과 충전기, 옷 몇 가지뿐이었다. 엄청 간소하네.
“가자.”
그렇게 김우진을 등에 달고 길드 건물로 돌아왔다. 예상치 못하게 같이 지낼 상대가 생겼지만, 뭐 딱히 나쁘지는 않았다.
어쨌건 지금으로써는 김우진이 제일 편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