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국내 1위 길드는 레퀴엠이고, 2위는 로헌이었지만 두 길드 간의 격차는 꽤 컸다.
하태헌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내 말에 반박하는 대신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그 말을 순순히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저는 그저…….”
말을 잇던 나는 갑작스럽게 흔들리는 땅에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하태헌에게 손목이 붙잡힌 상태라 넘어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불길함에 온몸이 긴장됐다.
쿠구구궁!
“뭐지?”
다시 한번 주변이 크게 흔들렸다. 뒤로 휘청이는 내 상체를 하태헌이 지탱해 주며 고개를 들었다.
까악, 까악!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수많은 까마귀가 일제히 날아오르며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정신없이 들려오는 까마귀 울음 사이로 끼이익 소리가 들렸다.
“설마…….”
그아아아아, 묵직한 포효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나는 급히 코트를 하태헌에게 넘겨주며 능력을 끌어 올렸다.
“일단 여길 빠져나가죠.”
하태헌이 코트를 입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큭!”
땅이 한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나는 미끄러지는 하태헌을 껴안으며 급히 공중으로 날았다.
“가죽을 찢어 내고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태헌이 바싹 붙은 내 허리를 붙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까보다 훨씬 더 붉게 빛나는 심장을 지나쳐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지금이요!”
하태헌이 검을 들고 위를 향해 길게 휘둘렀다. 마치 어둠을 베어 내는 것처럼 새까만 가죽이 반으로 갈라지고 그사이에 하늘이 드러났다.
갈라진 가죽 사이로 빠져나오자, 진동의 원인이 발아래에 나타났다.
“살아 있었던 건가?”
“아뇨, 죽은 건 맞습니다.”
사체인 줄 알았던 정체불명의 거대한 생명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울부짖으며 몸을 뒤틀고 있었다. 뚫려 있는 뱃가죽에서 까마귀 떼가 쏟아져 나오고, 그그극 거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렸다.
“저건 기계예요.”
“기계?”
“시체를 개조한 것 같습니다.”
사체 내부에서 발견했던 낯선 물체. 그건 커다란 기계 부품의 일부였다.
“심장을 포함해서 몸 대부분이 기계로 채워져 있을 겁니다. 저건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어요.”
기이잉, 기기잉!
굳게 닫혀 있던 두 눈을 번쩍 뜬 생명체가 우리를 향해 입을 쩍 벌렸다. 목구멍 중앙에 불길한 빛이 일렁였다.
“헉……!”
나는 급히 방향을 틀었다. 오싹한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자마자, 뜨거운 레이저가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 땅에 내리꽂혔다.
콰과광!
메마른 흙바닥이 굉음과 함께 잔뜩 갈라지고 무너져 내렸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래도 시체는 S급 몬스터인 것 같군.”
“갑자기 작동된 이유는…….”
나와 하태헌의 시선이 동시에 코트로 향했다. SS급 코트. 그야 물론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그어어어!
몬스터가 육중하고 긴 꼬리를 휘두르며 발을 굴렀다.
“아이템이 숨겨진 위치는 알고 몬스터의 존재는 몰랐던 건가?”
“……네.”
하태헌의 지적은 정확했다. 소설에서는 저런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은 터라, 나는 이 상황 자체가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나타난 S급 이상의 몬스터라니.
‘어째서지? 내가 원작의 흐름을 뒤틀었기 때문에?’
본래 내용대로라면, 하태헌은 3개월 이후에 SS급 코트를 얻게 된다. 3개월이라는 시간을 앞당겨서 코트를 빼냈으니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몬스터가 깨어난 건가?
“집중해.”
고민하는 사이, 다시 한번 몬스터가 레이저를 쏘았다. 내 허리를 휙 잡아당겨 아슬아슬하게 레이저를 피한 하태헌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래. 지금은 원인을 분석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바람의 강도를 높이며 물었다.
“하태헌 씨. 저 몬스터, 상대해 볼 만합니까?”
“……일단은. 보통 몬스터랑 달라서, 능력치가 확실하게 가늠되지 않아.”
“개조되었다고는 해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나는 몬스터의 움직임을 집중해서 살폈다. 다리로 땅을 짓누르며 꼬리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그 몸짓은 굉장히 부자연스러웠다.
“내부에 돌아가는 기계가 녹슨 것 같습니다. 몇 군데 고장도 좀 난 것 같고.”
저렇게 큰 몸체를 지탱하는 기계가, 제대로 된 관리 없이 멀쩡할 리 없다. 그런 부분을 다 따져 본다면.
“아무리 높아도 S+정도. SS급은 아닙니다.”
“S+라면 이번 회의에서 레퀴엠이 새롭게 공표한 등급이군.”
사라락.
사방에서 새까만 먼지가 몰려왔다. 길고 날카로운 창이 하태헌의 등 뒤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쿠드드득!
몬스터가 꼬리를 휙 휘둘렀다. 땅이 움푹 파이며 튀어 오른 돌조각이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바람으로 돌조각을 쳐 내며 뒤를 바라봤다.
하나둘 생겨나던 검은 창은 어느새 숫자가 수백 개에 달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생겨난 검은 창이, 하태헌의 손짓 한 번에 엄청난 속도로 몬스터를 향해 쏘아졌다.
끼이이익-! 끼익!
살가죽에 박혀 들어간 검은 창은 폭발과 함께 터졌다. 몬스터의 커다란 몸에 수많은 폭발이 일어나며 적갈색 액체가 줄줄 새어 나왔다. 검을 고쳐 잡은 하태헌이 몬스터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나는 천사연과 함께한 전투를 경험 삼아, 바람의 흐름을 오롯이 하태헌에게 집중시켰다. 새까만 검날이 머리 위를 지나가는 몬스터의 커다란 앞발을 가차 없이 베어 냈다.
적갈색 액체가 얼굴에 튀었다. 진득한 액체는 머리 아플 정도로 진한 기름 냄새를 풍겼다.
“꽉 잡아.”
나는 하태헌의 목덜미에 팔을 감았다. 동시에 몬스터가 꼬리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치며 흙먼지가 뿌옇게 올라와 시야를 가렸다.
“으윽……!”
몬스터의 뒷다리에서 무릎이 갈라지고 기관총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히 나와 하태헌을 겨눈 기관총이 굉음과 함께 총알을 퍼붓기 시작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기관총을 알아챈 하태헌은 앞으로 쏠리는 몸을 허벅지에 힘주고 버티며 검을 세웠다. 새까만 검이 먼지로 흩어지더니 이내 커다란 방패로 모습을 바꾸었다.
투두두두!
귀가 먹먹할 정도로 총성이 울렸지만, 하태헌이 만들어 낸 방패에 모두 막혔다. 총성이 끝나자 방패는 다시 검으로 형상을 바꾸어 손에 잡혔다. 나는 바람을 하태헌의 발밑과 검 끝으로 흘려보냈다.
바람의 흐름으로 속도가 더 빨라진 하태헌의 검이 몬스터의 뒷다리를 그대로 잘라 냈다. 가죽 너머로 뼈 대신 기계가 보이며 기름이 콸콸 쏟아졌다.
끼이이익!
구쿵, 구쿵!
다리가 잘려 나가자 몬스터가 균형을 잃으며 비틀거렸다. 뿌옇게 올라오는 흙먼지가 나와 하태헌을 감쌌다.
“아예 다리를 모두 잘라 내는 쪽이…….”
하태헌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자욱한 흙먼지 너머로 무언가가 우리를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저건, 까마귀?”
까아악! 까악!
까마귀치고는 몸집이 너무 크다. 몬스터가 미간에 박힌 금색 눈을 번뜩이며 입을 쩍 벌렸다. 하태헌이 사정거리 안에 다가온 적을 베어 냈다.
“윽, 원래 나타나던 놈들입니까?”
“아니, 처음 본다.”
까마귀를 피하고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까마귀들이 깍깍거리며 순식간에 따라붙었다. 독수리 버금가는 크기의 까마귀 몬스터 수십 마리가 우리를 향해 입을 벌려 댔다.
눈을 파먹을 것처럼 달려드는 까마귀를 하태헌이 계속해서 베어 냈다. 나는 공중에서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 가며 하태헌을 도왔다.
“으윽……!”
강렬한 통증이 머리를 쑤셨다. 능력에 한계를 느낀 나는 다급히 물었다.
“여기, 출구 게이트 많이 멉니까?”
“북쪽으로 20분 정도.”
하태헌이 검을 휘두르며 몰려드는 까마귀들을 노려봤다. 그 순간, 하태헌에게 안겨 있던 내가 움찔할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일렁였다.
까마귀들 사이로 새까만 구체가 동시에 여러 개 생겨나며, 폭탄처럼 터졌다.
쿠우웅!
키에엑! 키엑!
가까이에서 폭발한 구체에 까마귀들의 몸이 터지고 찢겨 나갔다. 개조된 몬스터를 처리하지 못하도록 꾸역꾸역 몰려오는 까마귀 숫자에 하태헌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나는 흔들리는 시선을 억지로 붙들며 말했다.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아이템은 얻었고…… 이대로는…….”
잠시 고민하던 하태헌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북쪽으로 몸을 틀었다. 나는 몸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식은땀을 흘리며 능력을 사용했다.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까마귀에게서 벗어나려면, 속력을 늦출 수 없었다.
“허억, 헉…….”
치미는 두통을 이기지 못하고 하태헌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슬쩍 바라본 등 너머에는 수백 마리의 까마귀가 쫓아오고 있었다. 미치겠네.
키아아악!
펄럭이는 코트를 잡아채는 까마귀의 목을 정확히 베어 낸 하태헌이 내 허리를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을 줬다. 흐릿한 정신이 조금은 선명해졌다.
“거의 다 왔다.”
심장에서 몰아치는 기운이 더는 못한다는 표현이라도 하듯이 삐죽삐죽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온몸에 힘이 빠지며 강제로 눈이 감겨 왔다. 혀를 짓씹으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흐으…….”
“한이결?”
아주 잠깐, 시야가 새까맣게 물들었다가 돌아왔다. 능력이 끊겼었는지 하태헌은 공중이 아닌 땅을 밟고 달리고 있었다. 축 늘어진 내 몸을 안은 채 달리던 하태헌이 외쳤다.
“한이결, 숨 쉬어!”
다행히 출구 게이트가 코앞이었다. 도망치는 것을 알아챘는지, 까마귀가 기괴하게 울부짖으며 날개를 접고 하태헌을 향해 내리꽂혔다. 개떼처럼 물고 늘어지는 까마귀를 검으로 일일이 베어 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출구 게이트까지 남은 거리는 20m. 나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능력을 다시 한번 끌어 올렸다.
“크윽!”
누군가 뒤통수를 도끼로 내려찍는 것만 같은 강렬한 고통과 함께, 하태헌의 다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발을 떠미는 바람에 맞춰 앞으로 뛰쳐나간 하태헌은 게이트 출구를 향해 몸을 던졌다.
까아악! 까악!
우리를 막아 내는 데 실패한 까마귀들이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와 하태헌은 게이트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나는 더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한이결. 정신 차려, 한이결!”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자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로 하태헌의 얼굴이 보였다. 내 뺨을 붙잡은 하태헌을 멍하니 올려다보던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코트, 잘…….”
“뭐?”
“잘, 챙……겨 입…….”
하태헌의 잘생긴 미간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그게 지금 할 말인가? 한계 이상으로 능력을 사용했어. 당장 힐러에게 기운을 받아야―”
“힐……러보다는.”
나는 더듬더듬 등에 멘 백팩을 만졌다. 다행히 그 난장판 속에서도 무사했다.
“……연 씨.”
“한이결.”
“차수연 씨를… 불러…… 만나야…….”
“이 상황에서 차수연 씨를 만나겠다고? 무슨…….”
“…….”
“잠깐. 한이결? 한이결!”
하태헌이 다급히 나를 불렀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겨우겨우 붙잡고 있던 정신이 뚝 끊어지며 눈이 감겼다.
변명할 여지 없는, 완벽한 기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