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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3)화 (23/394)
  • 23화

      

    나는 거칠어지는 숨을 가다듬으며 김우진에게 능력을 사용했다. 이미 모래에 다리가 묻힌 민아린과 다르게 김우진의 몸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야, 한이결! 너……!”

    김우진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내 이름을 외쳤다. 녀석이 무슨 말을 할지는 듣지 않아도 알았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민아린에게로 다가갔다.

    “위, 위험…… 위험해요, 이결 씨.”

    내가 무릎을 꿇고 모래를 파내기 시작하자 민아린이 울먹이며 내 어깨를 밀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모래를 파냈다.

    “제가 지켜 준다고 했잖아요.”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 민아린의 몸으로 쏟아지는 뜨거운 모래를 파내고 또 파냈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머리를 어지럽히던 길드원들의 비명이 점차 사라졌다. 모래 자체가 마치 몬스터라도 된 것처럼 사람을 마구잡이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결 씨.”

    미친 듯이 모래를 치워 내는 내 노력을 비웃는 것처럼 민아린은 빠른 속도로 몸이 먹혀들어 갔다. 두 팔과 손바닥이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괜찮아요, 민아린 씨.”

    민아린은 이제 울지 않았다. 눈물이 멈춘 얼굴은 무척이나 차분했다. 반대로 나는 극에 달한 초조함에 목이 메인 것처럼 호흡이 버거웠다.

    “민아린 씨는 절대 여기서 죽지 않아요. 제가 압니다. 그러니까…….”

    민아린은 하태헌에게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고작 이런 곳에서 죽을 리가 없다.

    ……분명 그럴 텐데.

    내 말을 들은 민아린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무언가 더 말해 주고 싶어서 입을 벌렸지만 아무 소리도 뱉어 내지 못했다. 잊고 있던 끔찍한 감정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 이성을 파먹기 시작했다.

    조각상처럼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은 민아린이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텅 비어 모래만 남은 눈앞이 믿기지 않았다. 주변이 무서울 만큼 고요했다.

    그제야 나는 주변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우진…….”

    모래를 피해 공중으로 띄운 김우진 또한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김우진!”

    어디 갔어. 지겨울 만큼 내 뒤만 따라다니더니, 이런 중요할 때는 왜 말도 없이 사라지는 거야.

    “시발!”

    사람을 집어삼킨 모래처럼 부정적인 감정이 발끝에서부터 내 몸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울분을 힘겹게 삼켜 내며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SS급 게이트를 너무 우습게 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웃고 떠들 게 아니라 무슨 대책이라도 세웠어야 했다. 질척한 후회가 나를 덮쳤다.

    「너 하나가 모든 것을 망쳤어.」

    환청이 들려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두 눈을 감쌌다. 어디선가 소독약 냄새가 흘러 왔다.

    「염치도 없는 새끼…….」

    휘이잉, 바람에 목소리가 흩어져 날아갔다. 그만해. 이럴 때가 아니야. 나는 조각조각 갈라지는 머릿속을 어떻게든 붙잡으려 노력했다.

    “하아, 하아…….”

    생각해. 해결할 방법이 분명 있을 거야. 이대로 끝일 리가 없어. 아직 보스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어째서…….

    “……한이결?”

    거친 숨을 몰아쉬던 나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여태껏 보이지 않았던 천사연이 서 있었다. 모두가 사라진 사막 한가운데에서 나와 천사연이 마주 섰다.

    “흠.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천사연…….”

    나는 멍하니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천사연은 모래에 삼켜지지 않은 건가.

    “너, 너 괜찮아?”

    존댓말을 할 정신도 없었다. 나는 떨리는 눈으로 천사연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봤다. 한 손에 검을 뽑아 들고 날 바라보고 있는 천사연은 평소와 같았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한숨이 나왔다.

    “사람들이 사라진 게…… 보스 몬스터 때문이야?”

    “…….”

    “너는 SS급이라서 당하지 않은 거고?”

    “그래.”

    그렇다는 건…….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소설에서는 분명 큰 피해 없이 클리어했다고 적혀 있었다. 아직 가능성이 있는 건가.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면 사람들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든가.

    ‘살아 있을지도 몰라.’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떨리던 몸이 진정됐다. 나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모래 속으로 끌려간 사람들을 구하기까지 제한 시간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최대한 빨리 보스 몬스터를 찾아서 죽이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천…….”

    천사연에게 보스 몬스터에 관해 물어보려고 고개를 든 나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천사연과 시선을 마주했다. 집중하느라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놀라서 본능적으로 물러서려던 나를 천사연이 순식간에 붙잡았다.

    “크윽!”

    시야가 휙 뒤집히며 몸이 모래 위로 넘어졌다. 내 목을 움켜쥔 천사연이 발버둥 치는 팔다리를 잡아 눌렀다.

    “시발, 갑자기 무슨……!”

    “이상하네. A급 맞는데.”

    날 내려다보는 천사연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가식적인 미소가 사라지고 무기질적인 검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어째서 너는 사라지지 않은 거지, 한이결.”

    “내가, 윽, 어떻게 알아!”

    “게다가 보스 몬스터의 존재도 알고 있고.”

    목을 붙잡은 손의 힘이 점차 강해졌다. 나는 벗어나기 위해 능력을 끌어모았다.

    “얌전히 있어.”

    “허억!”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심장에서 손으로 이동하던 능력의 움직임이 강제로 차단당했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양손으로 천사연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 개새끼…….”

    오른손으로 모든 능력자의 기운을 차단하는, 천사연이 가진 또 하나의 힘이었다. 이 사기적인 능력을 고작 A급인 내게 사용할 줄 상상도 못 했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상했지.”

    천사연이 날 내려다보며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는 이 모든 게 그저 따분해 보였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큭…….”

    “설마 그 여자가 벌써 개입했나?”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천사연이 긴 손가락으로 내 볼을 툭툭 두드렸다.

    “어떡할까, 이결아. 내가 널 여기서 죽여 버리는 게 좋을까, 살려서 지켜보는 게 좋을까.”

    미친 새끼. 나는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좆 까, 새끼야…….”

    “흐음.”

    그 말을 끝으로 목을 조르는 힘이 한층 더 강해졌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흐… 억…….”

    반사적으로 허리가 비틀리며 가슴 부근이 찢어질 것처럼 고통이 밀려들었다.

    정말로 죽을지도 몰라.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오며 눈이 감겼다. 그 순간이었다.

    “커헉, 콜록! 허억, 헉, 윽!”

    목을 짓누르던 힘이 사라지고 벌린 입 안으로 공기가 한 움큼 들어왔다. 허겁지겁 숨을 들이켠 목이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발작적인 기침과 함께 눈물이 줄줄 흘렀다. 목에서 손을 거둔 천사연이 눈물로 젖은 내 얼굴을 붙잡았다.

    “예쁘네.”

    “헉, 흐으, 시발…….”

    욕설을 내뱉는 목소리가 잔뜩 갈라졌다. 천사연에게 깔린 몸이 본능적인 공포로 제어할 수 없을 만큼 떨렸다.

    “역시 죽이기에는 좀 아까운 것 같군.”

    그 한없이 가벼운 태도에 나는 숨을 헐떡이며 천사연을 노려봤다.

    “사실 네가 얼마나 달라졌건 관심 없어.”

    “…….”

    “하던 대로 내 명령만 잘 따르면 살려 줄게.”

    “미친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사람을 죽일 뻔해 놓고 명령을 따르라고? 지랄하네. 나는 천사연을 한껏 비웃었다.

    “예상했던 반응이네.”

    “이 손 놓고 당장 꺼져, 씹새끼야.”

    “그럼 이렇게 할까?”

    천사연의 긴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내게서 벗어나면 민아린과 김우진을 죽일 거야.”

    “뭐?”

    “이건 좀 끌리는 제안인가?”

    “……그 말은.”

    급히 천사연의 팔을 움켜잡으며 물었다.

    “둘 다 살아 있다는 거지? 다른 사람들도?”

    “지금으로써는.”

    “무슨 뜻이야.”

    “내가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 죽을 수도 있지.”

    태연자약한 그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볼품없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네 길드원이잖아! 너 하나 믿고 여기까지 따라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내 말을 들은 천사연은 별다른 반응 없이 조용히 날 바라봤다. 그 불편한 침묵에 안달 나는 것은 내 쪽이었다.

    “천사연!”

    “정말… 많이 변했네.”

    “…….”

    “네 말대로 모두를 살려 줄 테니, 내게 순순히 협조해.”

    “……거절하면?”

    “한 명도 빠짐없이 이곳에서 죽겠지. 네가 끼고도는 민아린과 김우진도 함께.”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김우진을 데려온 거였어? 되지도 않는 감시 운운하면서?”

    “글쎄. 난 철저한 편이라서.”

    천사연이 붉은 손자국이 짙게 남은 내 목을 손가락으로 쓸어 만지며 대답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설마 민아린까지…?”

    천사연이 보냈다며 나를 찾아왔던 민아린. 잘 부탁한다며 웃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쓰레기 새끼…….”

    잠깐이나마 그렇게 나쁜 녀석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후려치고 싶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주변 모든 것을 이용하는 비열한 놈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대체 뭘 기대한 걸까.

    “다른 것들은 죽여도 그 둘은 살려야지. 앞으로 널 묶어 둘 소중한 목줄이 될 텐데.”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뭐야. 이미 동생이 있는데 왜―”

    “동생?”

    천사연이 차갑게 비웃었다.

    “너 이미 알고 있잖아, 동생 죽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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