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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0)화 (20/394)

20화

  

나와 박건호는 서쪽과 북쪽을 오가며 몬스터를 향해 쇠구슬을 열심히 뿌렸다. 거대한 몸을 뒤흔들며 고통스러워하던 몬스터들은 폭발을 피하고자 조금씩 모래에 몸을 파묻더니, 이윽고 대부분의 몬스터가 모래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이런.”

몬스터가 기어들어 간 모래가 움직임에 따라 불룩거리며 솟구쳤다.

“이건 예상도 못 했네요.”

“괜히 S급이 아니군. 일이 복잡하게 됐어.”

박건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모래 속으로 들어간 몬스터들은 아까보다는 속도가 느려졌지만, 꾸준히 팀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가뜩이나 전투로 인해 정신없는 그들에게 모래 속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까지 더해지면…….

나는 남은 쇠구슬을 박건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차라리 돌아가죠. 가서 상황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모래 속으로 숨어 들어간 몬스터 위치도 짚어 주는 게 낫겠어요.”

박건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방향을 틀어 팀원들에게 향했다. 시야를 흐리게 만드는 모래바람 너머로 한창 전투 중인 팀원들이 보였다. 다행히 잘 버티고 있는지 대열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잔뜩 쌓여 있는 몬스터 시체 너머로 남쪽 몬스터와 동쪽 몬스터가 끊임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키아아아악! 끼이이!

혈화 능력으로 붉게 타오르는 검에 동쪽 몬스터 몸이 반으로 잘렸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동작으로 몬스터를 베어 내는 천사연의 주변은 온통 뜨거운 불길로 가득했다. 그에게 달려들었던 몬스터는 가까이 가 보지도 못하고 불에 타 재로 변했다.

천사연에게 다가가자 눈을 뜨고 있기도 어려울 만큼 강한 열기가 느껴졌다. 능력을 사용하느라 지친 몸에 식은땀이 맺혔다.

“마스터.”

끼이이이, 끼익! 끼아아악!

불이 옮겨붙은 수많은 몬스터가 몸을 뒤틀며 요란하게 비명을 질러 댔다. 그 속에 서 있는 천사연이 내 부름에 검을 내리고 고개를 돌렸다. 박건호를 땅에 내려 준 나는 천사연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잘 끝내고 왔나?”

“그…….”

뭐라고 설명할지 잠시 고민했다. 기세 좋게 나섰던 것치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남쪽과 동쪽은 상황이 좋지 않아 자주 들리지 못했고, 서쪽과 북쪽은 반절 정도 처리했지만, 나머지는 모래 속으로 몸을 숨겨 놓쳤습니다.”

“모래 속이라. 발아래서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겠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 생각보다 팀이 더 잘 버티고 있었지만, 아직 남아 있는 몬스터는 많았다. 남쪽과 동쪽에서 너무 쉽게 물러섰던 것은 아닐까. 위험하더라도 더 공격해 볼 걸 그랬나.

어쩔 수 없이 후회가 들었다. 몬스터와 엉켜서 무기를 휘두르고 능력을 쓰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길드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까이 와, 한이결.”

지금이라도 박건호에게 다시 가 보자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내게 천사연이 말했다. 나는 아래로 내렸던 시선을 들어 올려 그를 바라봤다.

가까이 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타오르던 불이 어느새 줄어든 상태였다. 숨쉬기 부담스럽도록 뜨겁던 주변 공기도 괜찮아졌다. 나는 천천히 천사연에게로 걸어갔다.

다가오는 나를 웃으며 바라보던 천사연은 곧이어 입고 있던 붉은색 정장 재킷을 벗어서 내 머리 위로 푹 씌웠다.

“……뭡니까?”

생각도 못 했던 행동에 내가 어이없어서 물어보자, 천사연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뭐긴. 나머지 처리하러 가야지.”

그러고는 나를 훌쩍 들어 올렸다. 갑자기 붕 뜬 몸에 놀라서 그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자, 잠깐……!”

천사연 아래팔에 엉덩이가 닿고, 허벅지는 손으로 감싸졌다. 고개를 위로 들어야만 볼 수 있었던 천사연의 얼굴이 엄청나게 가까워졌다. 나는 기겁하며 천사연의 어깨를 붙잡고 팔을 쭉 펴서 상체를 뒤로 물렸다.

“미쳤, 무슨 이딴 자세를……!”

“얌전히 있어.”

불길이 줄어들자 득달같이 달려드는 몬스터를 베어 내며 천사연이 허벅지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마음 같아서는 동화 속 공주님처럼 안아 주고 싶지만, 검을 휘둘러야 하니…. 어쩔 수 없군.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이게 무슨 개소리야?

“차라리 등에 업히겠습니다!”

“몬스터가 뒤에서 공격해 오면 어쩌려고? 나 대신 맞아 주려는 건가? 대단한 방패 납셨군.”

“그건…….”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해 입술만 우물거리자 천사연이 눈을 휘며 화사하게 웃었다.

“그 재킷, A급 화염 저항 아이템이니까 잘 걸치고 있어. 견디기 어려울 테니까.”

“…….”

참자. 지금은 수치스러워할 때가 아니다.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잖아.

‘무념무상, 무념무상…… 시발.’

천사연에게만 들릴 정도로 욕을 중얼거리며 팔에 힘을 빼고 상체를 그에게 기댔다. 내가 몸에 힘을 빼자 천사연이 불 화력을 다시 높이며 입을 열었다.

“박건호 팀장은 본래 위치로 돌아가 전투에 참여하도록. 서쪽과 북쪽에서 몬스터가 나타나면 바로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등 뒤로 웃음기 어린 박건호의 대답이 들려왔다. 구경하고 있었냐고……. 나는 수치심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자, 그럼.”

천사연이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우리 잘난 이결이 실력을 좀 볼까.”

“……그 소름 끼치는 호칭은 또 뭡니까?”

나는 진저리를 치며 능력을 사용했다. 가벼운 바람이 날 안고 있는 천사연의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천사연은 곧바로 앞으로 몸을 날리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끼에에엑! 키아악!

검의 궤적에 따라 뜨거운 불길이 움직이며 불티와 재가 마구잡이로 흩날렸다. 창백한 낯의 길드원을 공격하려던 몬스터 다섯 마리가 천사연의 공격 한 번에 순식간에 불에 타올라 재로 변했다.

탁,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천사연의 움직임에 맞춰 바람의 강도를 좀 더 높였다. 떨어지는 속도가 느려진 틈에 천사연이 동쪽 몬스터를 순식간에 처리하기 시작했다.

몸에 불이 붙어 몸부림치는 몬스터들을 보며 몸을 감싼 재킷을 힘주어 잡았다. 천사연의 능력은 강한 만큼 A급인 내게는 너무나도 위험했다.

머리 위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를 몸을 살짝 틀어 가볍게 피한 천사연이 검을 위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내리그었다. 검에 베인 몬스터와 그 옆에 있던 몬스터까지 모조리 불에 타올랐다.

S급인 박건호마저도 상대하기 힘든 몬스터들이 검 한번 휘두를 때마다 비명과 함께 죽어 나갔다. 그 격의 차이가 피부로 와 닿았다.

월등한 신체 능력에 내 힘이 합쳐지니 천사연은 거침없이 전장을 휩쓸었다. 신나게 검을 휘두르며 몬스터들을 썰어 대던 천사연이 드물게 즐거워하며 말했다.

“쓸 만한데.”

천사연이 나를 좀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좀 더 날뛰어 볼까. 한이결.”

“무슨…… 윽!”

나는 한층 더 강해진 열기에 신음을 흘렸다. 검을 감싼 불길이 더욱 붉어지고, 질척한 무언가가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바람으로 내 불을 감싸.”

몸을 태울 것처럼 일렁이는 불을 향해 능력을 사용했다. 빠져나가는 기운이 두 배가 되자 머리에 둔한 통증이 밀려왔다.

“내가 휘두르는 타이밍에 맞춰서 불이 더 멀리 퍼질 수 있도록 능력을 움직여.”

“잠깐만요. 지금도 따라가기 힘든데 어떻게…….”

“할 수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천사연이 다시 움직였다. 자신을 향해 검은 입을 벌리며 달려드는 남쪽 몬스터의 공격을 허리를 숙여 피하며 검을 횡으로 강하게 휘둘렀다. 거대한 몸집에 달라붙은 불은 금방 살을 타고 온몸으로 번져 갔다. 질긴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피가 터져 나와 옷을 적셨다.

나는 천사연의 모든 움직임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가 내딛는 걸음, 상체의 방향, 검 끝의 목표. 그 모든 것을 바람으로 감싸며 더 빠르고 정확하게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도록 바람을 움직였다.

“허억, 헉…….”

능력을 물처럼 쓰자 점점 숨이 막혀 오며 호흡이 불안정해졌다. 쿡쿡 바늘로 쑤시듯 아프던 머리에 이제는 망치로 얻어맞는 것처럼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나는 이를 악물며 천사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아까부터 쉬지 못한 몸이 휴식을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천사연의 등 뒤로 수많은 몬스터의 시체와 재가 보였다. 살아 있는 몬스터의 숫자가 눈에 띌 만큼 확 줄어 있었다.

쿠구구궁!

이제 좀 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온 땅이 진동했다. 진동의 원인을 알고 있는 박건호가 제일 먼저 외쳤다.

“서쪽, 북쪽 지원!”

모래 속으로 숨어 오던 몬스터가 도착한 것이다. 수많은 다리를 움직이며 모래 속에서 기어 나온 몬스터들이 곧바로 이쪽을 향해 몰려왔다. 얼추 정리된 남쪽과 동쪽 담당 길드원들이 급히 이동했다.

“징그러워…….”

또다시 마주한 북쪽 몬스터를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아프고 힘든데 거대한 벌레나 상대해야 한다니.

“눈 감고 있어.”

천사연이 웃으며 말했다. 속 편한 소리 하네.

“보면서 해야 타이밍을 맞추는데…….”

큰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었다. 존댓말을 써 줄 여유도 없었다. 식은땀이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눈을 깜빡였다.

“눈 감고 아무렇게나 해. 내가 맞추면 되니까.”

천사연이 다리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몬스터를 여유롭게 베어 냈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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