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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15)화 (15/394)

15화

  

확실히 레스트 구간이라 그런지 팀 분위기에 이전까지는 없던 활기가 감돌았다. 새파란 물이 흐르는 강가 근처에 자리 잡고 휴식을 취하는 길드원들은 마치 여행이라도 온 듯 즐거워 보였다.

“이결 씨! 저쪽에서 카레를 만든대요. 같이 가서 먹어요!”

“카레요? 여기서요?”

“네. 물이 있으니까요. 그동안 먹는 게 부실했잖아요. 이 기회에 챙겨 먹어요!”

……이 정도로 본격적으로 즐길 줄이야. 당장이라도 끌고 갈 기세인 민아린에게 한 걸음 떨어지며 말했다.

“좋죠. 먼저 가세요. 전 김우진 찾아서 같이 갈게요.”

“알겠어요. 늦으면 먹을 거 없으니까 빨리 와요!”

민아린의 말이 사실인 듯, 맛있는 냄새가 여기까지 풍겨 왔다. 나흘 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게 된 민아린은 한껏 신나며 내게 꼭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걱정 마요. 곧 갈게요.”

안 갈 거지만.

웃으며 민아린을 보내고 정신없는 분위기를 틈타 숲 안쪽으로 들어섰다. 강가와 다르게 커다란 나무들이 가득한 숲 안쪽은 공기가 묵직하고 습했다.

‘일단 위에서 찾아보는 게 낫겠다.’

성인 남성 허벅지만 한 뿌리가 얼기설기 튀어나온 아래보다는 날아다니면서 찾는 편이 훨씬 빠를 것이다. 나는 능력으로 몸을 띄우며 얻어야 하는 아이템을 떠올렸다.

첫 번째, 레스트 구간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곤충 ‘사파이어 꼬리나비’의 나비 날개.

사파이어 보석과 비슷한 색을 가져서 사파이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나비는 파란색과 보라색이 아름답게 뒤섞인 날개를 가지고 있다. 별다른 특이 사항 없이 예쁘기만 해서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곤충이었다.

두 번째, 숲 형태의 게이트 혹은 레스트 구간에서만 자라나는 ‘큰뿔푸르스름나무’의 뿔 형태 나뭇가지.

이 나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문양이 나무껍질 전체에 새겨져 있다. 숲으로 이루어진 게이트나 레스트 구간에서만 자라나는 나무인데, 내가 필요한 것은 A급 이상 게이트에서 얻어 낸 뿔가지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번에 얻어야 했다.

둘 다 쉽게 발견할 만큼 수가 많은 것은 아니라서 한참 찾아다녀야 할 것이다. 나는 높은 곳에 있는 굵은 나뭇가지에 걸터앉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찌르륵, 찌륵.

무성한 나뭇잎 틈새로 환한 빛이 쪼개져 들어와 우림 내부를 밝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하게 생긴 새가 날아다니고, 바닥에는 무언가가 기어 다니는 듯 흙이 꿈틀거렸다.

이곳은 내가 찾아야 하는 나비처럼 게이트 밖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생물체가 살아 숨 쉬고 있다. 게이트가 생겨나고 레스트 구간이 알려지자 다양한 생물학자들이 관심을 드러냈지만, 능력자로 각성한 몇을 제외하고는 진입할 수 없는 곳이다 보니 지금은 많이 수그러든 상태다.

‘게다가 능력자로 각성한 생물학자들도 레스트 구간보다는 몬스터에 더 집중했고.’

이렇게 보고 있으면 TV에 나오는 열대우림과 별반 다른 게 없다. 몬스터만 없으면 이렇게 평화로운데.

과연 게이트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째서 전 세계 곳곳에 나타났으며, 흉포한 몬스터를 뱉어 내는 걸까.

그걸 알아내기 위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게이트가 등장한 지 5년 만에 길드가 세워지고 구역이 나누어졌으며, 10년 차에 몬스터와 아이템을 연구하는 시설이 설립되고, 15년 차에 세계는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는 게이트의 존재 이유를 알지 못했다.

‘……궁금한 건 맞지만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지.’

결국 이곳은 누군가가 만든 창작물일 뿐이다.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내면 그만인.

나는 앉았던 나뭇가지를 밟고 올라서 다시 한번 위로 날아올랐다. 위치가 확실하지 않은 나비보다 뿔가지를 먼저 찾아야겠다.

뿔가지는 대부분 큰뿔푸르스름나무 꼭대기에 돋아난다. 아예 하늘 높이 날아오르자 발밑으로 레스트 구간의 넓은 숲이 펼쳐졌다.

내가 들어온 ‘어비스’가 소설이 아니었다면 좀 더 수월하게 찾을 수 있었을 텐데. 활자로 된 설명만 읽은 터라 발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아, 이런.”

한 시간을 넘게 레스트 구간을 날아다니며 겨우 발견해 낸 뿔가지는 안타깝게도 문양이 새겨지지 않은 일반 뿔가지였다. 성인 남성 주먹만 한 크기의 평범한 뿔가지를 손에 들었다 놨다 하며 한숨을 쉬었다.

“생각보다 더 어렵네.”

평범한 뿔가지를 버리며 아예 레스트 구간 입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차라리 입구부터 천천히 훑어보는 게 나을 것 같다. 하늘은 어느새 붉은색으로 가득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나비는 날개 표면에 형광물질이 발라져 있어 밤이 와도 괜찮았지만 뿔가지는 아니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속도를 더 높였다.

뿔가지를 찾느라 여기저기 헤맸더니 입구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많이 소비됐다. 겨우 도착했을 때는 해가 이미 지고 어둠이 조금 내려앉은 상태였다. 다행히 그토록 찾아다녔던 기이한 문양이 빼곡하게 새겨진 커다란 나무가 시야에 들어왔다.

“찾았다.”

거의 3시간 가까이 날아다녀 겨우 얻어 낸 뿔가지였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형적인 무늬로 가득한 뿔 형태의 나뭇가지를 뽑아냈다. 허리에 차고 있던 가죽가방에 잘 챙겨 넣은 후,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사파이어 꼬리나비는 식물 근처에서 서식하니 직접 걸어 다니면서 찾는 게 빠를 것이다.

굵은 나무뿌리를 훌쩍 뛰어넘으며 시야를 가리는 큰 이파리를 밀어냈다. 실제 열대 우림에서는 사람에게 위험한 동식물이 가득하다던데, 여기는 어떨지 모르겠다. 밤이 되니까 눈앞이 어두워서 좀 불안하네.

***

“어딨는 거야, 대체…….”

그렇게 한참을 걸어 다녔다. A급 능력자인 한이결의 몸은 일반인보다야 강했지만 몇 시간 동안 우림을 헤매고 다니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산소 밀도가 높고 습해서 몸이 빨리 지쳤다.

‘아이고, 죽겠다.’

적당한 높이의 나뭇가지로 올라가 앉으며 고민했다. 뿔가지는 얻었으니 나비 날개는 포기하고 돌아갈까. 진지하게 갈등했지만 나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포기하면 나비 날개를 얻으러 다른 게이트를 들어가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없거니와 무소속인 내가 게이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야 했다.

차라리 돌아가는 게 좀 늦어지더라도 쉬었다 찾아야겠다는 결정을 내리며 나무줄기에 등을 기대는데, 건너편 수풀 틈새로 파란빛이 보였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는데, 바람에 수풀이 흔들거릴 때마다 파란빛이 계속해서 반짝였다.

“사파이어 꼬리나비?”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켜 빛이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빽빽한 수풀을 치워 내니 그곳에는 여러 마리의 사파이어 꼬리나비가 예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미친. 인간승리.’

4시간 만에 발견한 나비였다. 주먹을 불끈 쥐며 마음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실제로 소리를 질렀다간 나비가 놀라서 도망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했다.

일단 발견하고 나서는 쉬웠다. 능력으로 나비를 가까이 끌고 와 날개만 툭 떼어 내면 끝이었다. 많이는 필요 없으니 두 마리만 날개를 제거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나비 날개 4장을 가방에 잘 챙겨 넣었다.

미안하다. 가져간 날개는 내가 잘 쓸게.

원하는 아이템을 모두 얻었으니 돌아갈 일만 남았다. 가뿐한 마음으로 강을 따라 날았다. 떠난 지 대략 7시간쯤 되었으니 팀은 슬슬 레스트 구간 끝 부근에 다다랐을 것이다. 별일 없을 거라 예상하며 팀을 찾아 느긋하게 날아가던 나는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폭발음에 눈을 깜빡였다.

“이건 박건호의 능력인 것 같은데.”

쿠웅! 다시 한번 폭발음이 들려오며 땅이 살짝 흔들렸다. 뒷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는 불길함에 나는 속도를 좀 더 높였다. 아무래도 팀은 이미 레스트 구간을 벗어났으며, 곧바로 몬스터를 마주한 것 같다.

파사삭! 파삭!

앞으로 빠르게 날아가는 몸에 나뭇잎이 마구잡이로 부딪혔지만 멈추지 않았다. 내 생각보다 팀 이동속도가 훨씬 빨랐다. 레스트 구간이라도 밤에는 이동을 멈출 거라고 예상했는데.

“……막아!”

“……십시오!”

쿠웅! 쾅!

키에엑!

다급한 외침, 폭발음, 몬스터의 울음소리. 멀어서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한 번에 들이닥쳤다. 마침내 레스트 구간을 빠져나온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미간을 찌푸렸다.

“피해!”

“등급 측정 완료! S급입니다!”

크아악!

흙빛 몸통을 가진 몬스터 수십 마리가 초록색 산성 용액을 뱉어 내며 팀원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사각 형태의 단단한 하관과 빽빽하게 들어찬 이빨은 위험하게 번뜩이고, 눈 위를 덮은 껍질은 뒤쪽으로 길고 거대하게 돋아나 있었다. 두 팔은 사마귀처럼 꺾인 모양새에 끝이 낫처럼 뾰족하며 하체는 뱀처럼 생겨 모래 위에서도 빠르게 움직였다.

“김우진!”

몬스터가 김우진을 향해 날카로운 팔을 휘둘렀다. 김우진은 몸을 급히 오른쪽으로 틀어 가까스로 공격은 피했지만, 코앞까지 다가온 몬스터에게서 도망치지 못했다. 산성 용액으로 잔뜩 젖은 이빨로 김우진을 물어뜯으려는 몬스터를 본 나는 급히 손을 움직였다.

“크윽!”

김우진의 몸이 휙 떠올라 내 쪽으로 날아왔다. 그 몸을 받아 낸 나는 녀석의 허리를 붙잡고 몬스터를 피해 날아올랐다. 갑자기 눈앞에서 김우진이 사라지자 몬스터가 유리창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길게 냈다.

“……한이결?”

“정신 똑바로 차려.”

새파랗게 질린 채 식은땀을 흘리던 김우진이 날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성을 잃지 않도록 짐짓 싸늘하게 말한 나는 민아린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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