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13)화 (13/394)

13화

4. 게이트

“여긴…….”

뒤따라 들어온 민아린도 놀란 얼굴을 했다.

“마치 화성 같네요.”

기껏해야 사막 정도만 떠올렸던 나는 화성이라는 단어에 묘한 기분으로 민아린을 돌아봤다.

“화성이요?”

“네.”

민아린은 어딘가 신나 보이는 모습으로 내게 말했다.

“다큐멘터리 보면 나오는 화성 모습이 딱 이래요! 거기도 이렇게 붉은 모래가 가득하거든요.”

“오……. 네.”

“실제 화성이었으면 이산화탄소 때문에 숨도 못 쉬겠죠? 너무 신기하네요! 게이트 내부에 전자기기가 작동됐다면 사진이라도 찍었을 텐데. 아쉬워라.”

“…….”

게이트 입구를 보고 겁먹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민아린은 잔뜩 들떠서 여기저기 구경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모습이라 꽤 신선했다.

“그런 다큐멘터리를 자주 보시나 봐요.”

“네! 엄청 재밌어요. 가 보지 못한 미지의 행성이라니, 너무 흥미롭지 않나요? 그래서 어릴 적에는 꿈이 과학자였어요. 공부를 못해서 포기했지만.”

“그렇군요.”

“브리핑 시작합니다! 모여 주세요!”

이윽고 모든 길드원이 넘어왔는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민아린은 길드원이 모여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번 게이트 클리어 팀장을 맡게 된 박건호라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출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반적인 진행 설명하겠습니다.”

큰 바위에 올라선 남자가 길드원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박건호. 익숙한 이름이다.

소설에서 몇 번 등장했었던 사람이다. 능력도 꽤 쓸 만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

“박건호면 특수작전부 팀장 중 한 명이군요. 저도 실제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다지 분량이 많지 않았던 인물이기에 정보가 떠오르지 않아 이리저리 기억을 헤집어 보는데, 옆에 서 있던 민아린이 내게 속삭이듯 말을 걸어왔다.

“특수작전부요?”

“모르세요? 난이도 높은 게이트만 골라 들어가서 클리어한다는 그 파견 전문 부서요. 마스터가 마음에 드는 능력자들로 직접 차출했다는 소문이 한창 떠들썩했었는데. 그게 진짜인가 봐요. 이번 클리어도 참가한 걸 보면.”

“엄청나게 강한가 보네요. 능력이 뭐래요?”

“어, 뭐라더라. 구슬로 뭘 한다던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클리어를 진행하면서 저절로 알게 될 테니. 민아린과 잠깐의 대화를 끝으로 나는 박건호의 말에 집중했다.

“북쪽을 멀리 보시면 희미하게 건물이 보이는데, 저곳이 목적지입니다. 기존 게이트가 그렇듯 이동을 시작하고 20분 전후로 첫 번째 몬스터가 몰려들 텐데, 그때 등장하는 몬스터의 등급을 측정해서 게이트 내부 등급이 1차적으로 이뤄집니다.”

천사연이나 나는 이번 게이트가 등급 게이트, 심지어 SS급 게이트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다른 길드원들은 당연히 모른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천사연은 길드원들에게 정보를 알려 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소설에서는 별다른 피해 없이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무기를 얻었다고 나와 있으니 큰 걱정은 없지만…….

“게이트 내부 등급은 이후 몬스터 등급에 따라 계속 변동될 예정이니 모쪼록 클리어할 때까지 긴장을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게이트 내부에서 길을 잃으면 찾기 어려워지니 잘 따라와 주십시오. 그럼 지금부터 마스터와 제가 앞장서서 이동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설명을 끝낸 박건호가 바위에서 내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동이 시작됐다. 나는 민아린 주변에 배치된 다른 힐러들과 능력자를 살펴봤다.

‘이 정도 기운이면 다들 B급 정도인가. 쉽게 당하지는 않겠네.’

힐러팀을 지키기 위해 배치된 길드원인 만큼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닐 것이다. 그때, 낯선 얼굴들 사이로 어딘가 묘한 감각을 일으키는 남자 한 명이 보였다. 이 찝찝한 느낌이 뭘까 싶어서 한참 남자를 바라보던 나는 혹시나 해서 그의 뒷덜미를 홱 잡아챘다.

“시발, 뭐야!”

“얼씨구.”

본인도 금방 들킬 걸 예상했는지 말투를 숨기지도 않는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끼고 그를 노려봤다.

“기어코 따라 들어왔네.”

“…….”

“당장 능력 꺼.”

“말 안 해도 끌 거야!”

투덜거리는 말과 함께 낯선 남자는 사라지고 김우진의 얼굴이 드러났다. 이미 들어와 버렸으니 화를 내봤자 소용도 없고. 나는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안 보이길래 도망간 줄 알았는데, 능력까지 써 가면서 따라와? 그렇게 죽고 싶냐?”

“닥쳐. 멀쩡하게 걸어 나갈 테니까 두고 보라고.”

“아이고, 제발 그래 주라. 응?”

한심스럽게 쳐다보니 김우진이 분한 표정으로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노려보면 어쩔 건데.

“이결 씨. 이분은 누구예요?”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민아린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소개해 주려던 참이라 나는 냉큼 김우진을 잡아끌었다.

“얘는 김우진이라고, 보조 능력자예요. 야, 인사해. 민아린 씨. 무려 힐러님이야.”

네 목숨을 책임져 줄 아주 중요하신 분이라고. 강한 뜻을 담아 김우진을 바라보자 녀석이 입을 삐쭉이며 민아린에게 인사했다.

“김우진입니다.”

“민아린이라고 해요. 마스터 곁에서 일하시는 분 맞죠? 몇 번 마주친 기억이 나네요.”

“예.”

“첫 번째 몬스터 등장입니다!”

김우진과 민아린이 악수하는 모습을 한가롭게 구경하는데, 앞에서 박건호의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급히 김우진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헛짓하지 말고, 민아린 씨 옆에 잘 붙어 있어. 알겠냐?”

“아, 알았다고!”

배 째라는 마인드로 들어온 김우진도 막상 몬스터가 등장하니 겁은 나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뒤로 물러섰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시선을 멀리 던졌다. 붉은 모래를 짓밟으며 무언가가 몰려오고 있었다.

게이트 내부는 여러 차례 몬스터 습격이 이뤄진다. 적을 때는 3번, 많을 때는 20번도 넘으며, 습격 한 번에 얼마나 많은 양의 몬스터들이 달려드는지도 랜덤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몰려오는 패턴인데, 한 방향에서만 몰려오다가도 갑자기 모든 방향에서 쏟아져 나올 수도 있으니 항상 주변을 살펴봐야 했다.

그래서 힐러들이 위치한 뒷줄도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모래 먼지 너머로 점차 가까워지는 몬스터들을 주시했다.

키에에엑! 키에엑!

회색빛 거친 가죽을 뒤집어쓴 생물체가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쩌억 벌린 입에는 뾰족한 치아 수십 개가 박혀 있으며, 혓바닥이 길고 두꺼웠다. 머리 생김새는 마치 악어와 같았지만, 다리가 심하게 가늘고 많아 전체적인 모습은 거미에 가까웠다. 기괴한 붉은색으로 빛나는 다리 끝엔 아무래도 독이 묻어 있는 듯했다.

‘징그럽네.’

직접 게이트 내부로 들어와 몬스터를 마주한 것은 나도 처음이라, 어쩔 수 없이 긴장됐다. 앞으로 저런 징그러운 놈들을 계속 마주해야 할 텐데……. 신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컸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지 않은 놈들이다.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몬스터의 숫자는 총 넷. 나는 능력을 끌어 올리며 팔을 들었다.

콰드득!

“큭!”

가장 선두로 달려오는 몬스터의 다리 두 개를 날려 버리자마자, 몬스터가 붕 떠오르더니 내가 있던 위치에 정확히 몸을 날리며 다리를 휘둘렀다. 가까스로 공중으로 날아올라 공격을 피한 나는 목 끝까지 올라온 비명을 삼켜 냈다. 등줄기에 오싹하고 소름이 끼쳤다.

키에에엑!

내가 피한 것이 불만인지 몬스터가 다리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날 향해 위협적으로 입을 벌렸다. 불쾌한 장면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놈들은 하필 피도 파란색이다. 외계인이냐고.

다시 바람을 칼날처럼 만들어 몬스터에게로 날렸다. 처음과 달리 아예 여러 개를 만들어 날렸다. 몬스터는 재빠른 몸놀림으로 첫 번째 바람 칼날을 피했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고스란히 맞았다. 심장을 노린 바람 칼날에 왼팔과 함께 상체 반절이 뚝 잘려 나간 몬스터가 꾸르륵, 소리를 내며 그대로 모래 위에 쓰러졌다.

“후우…….”

다행히 지능도 낮고, 별다른 방어 특성도 없는 몬스터였다. 비슷한 방식으로 내게 달려드는 몬스터 두 마리를 해치웠다. 두 마리가 동시에 달려드는 바람에, 급하게 능력을 사용하느라 눈앞에서 터져 나오는 파란 피를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윽, 역겨워.’

최대한 고개를 옆으로 틀어서 옷이 젖는 것은 면했지만, 얼굴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왼쪽 얼굴에 잔뜩 묻은 파란 피를 대충 닦으며 뒤를 돌아봤다. 내가 놓친 한 마리는 힐러팀을 보호하던 다른 길드원이 무사히 잡았는지 몬스터 시체가 보였다.

“이결 씨!”

터덜터덜 돌아가자 김우진과 민아린이 기겁하며 내게 달려왔다. 민아린이 내게 소리쳤다.

“다, 다치셨어요?”

“아뇨……. 제 피는 파란색이 아닌데요.”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민아린이 아, 하며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건네받아 얼굴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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