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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12)화 (12/394)

12화

  

게이트를 등지고 서 있던 천사연이 날 발견하고는 빙긋 웃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일주일 동안 잘 지냈나, 한이결?”

나는 입술을 비틀었다. 일주일 동안 잘 지냈냐고? 이딴 뻔뻔한 질문을 하는 천사연의 낯짝이 진심으로 꼴도 보기 싫었다.

민아린이 다녀간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설마, 설마 했더니 천사연 이 미친 새끼가 진짜로 날 감금한 것이다!

문을 열면 엄청난 덩치의 수행원이 나보고 나갈 수 없다고 막아서고, 뭐라도 부수면 대기 중이던 수행원들이 방으로 뛰쳐 들어오고, 창문은 무슨 짓을 해 놨는지 굳게 잠겨 열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감금이었다.

그 와중에 밥은 삼시 세끼 꼬박꼬박 줘서 더 가관이었다. 차라리 굶기고 내보내 달라고! 참다 참다 수행원을 붙잡고 이건 범죄라고 소리쳐 봤지만,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덕분에. 아주. 잘. 지냈습니다.”

억지로 끌어 올린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어금니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잘됐군.”

“…….”

진짜 딱 한 대만 때릴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속으로 온 세상 욕을 다 끌어모아 랩 하듯 읊고 있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김우진이 서 있었다.

“네가 여길 왜…….”

“뭐, 시발. 나도 원해서 온 거 아니거든.”

말투는 평소와 같았지만 머뭇거리며 주변 눈치를 보는 모습이 이상했다. 천사연은 나와 김우진을 번갈아 바라보며 웃었다.

“김우진도 게이트 클리어에 참여하겠다고 하더군.”

“잠깐만요. 참가 인원은 이미 다 선별한 것 아닙니까?”

갑자기 김우진이 여기에 왜 껴? 공격 능력이 있지도 않은 C급을 SS급 게이트에 데려간다니, 죽으라고 등 떠미는 거랑 뭐가 달라?

“한 명 정도야 추가해도 큰 문제 없다.”

“하지만 김우진은……!”

“물론 김우진이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는 건 나도 잘 알아.”

“그럼 왜 넣은 겁니까?”

“이유야 당연히 하나뿐이지.”

여유로운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깃들어 있었다. 천사연의 의도를 알아챈 나는 짜증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날 감시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그럴 거면 다른 직원을 붙이시죠? 왜 하필 김우진입니까?”

“내가 보기엔 김우진이 제격이라.”

김우진을 바라보며 천사연은 미소 지었지만, 눈은 놀라울 만큼 서늘했다.

“어디까지나 당사자가 동의한 사항이야. 30분 후면 게이트가 열리니,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늦었어.”

“하…….”

“마스터.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그럼 이따 보지.”

천사연은 깔끔하게 등을 돌리고 카메라가 잔뜩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천사연이 가까이 다가가자 카메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양의 플래시를 터뜨렸다.

“김우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온 거야.”

천사연이 멀어지자마자 나는 곧바로 김우진의 팔을 붙잡아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네가 무슨 상관이야?”

“날 감시하러 저승버스 올라탄다는데 상관을 안 해, 그럼? 아직 30분이나 남았으니까 눈치껏 몰래 도망이라도 가.”

“닥쳐. 아는 것도 없으면서 끼어들지 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아, 미치겠네…….”

울컥 치솟는 답답함과 분노에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정을 추스른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게이트 내부로 들어가는 게 장난인 줄 알아? 다른 게이트였다면 모르는데, 이번은 안 돼. 정말로 위험한…….”

“입 다물라고!”

녀석이 내게 잡힌 팔을 뿌리쳤다. 김우진이 얼굴을 짜증스럽게 구기며 말했다.

“네가 뭔데 도망이니 뭐니 하는 건데? 너처럼 능력 있는 놈이야 소속 없어도 살 만하니까 그렇게 쉽게 포기 운운하는 거겠지. 너랑 나랑 상황이 같은 줄 아냐?”

“아니, 나는.”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해서 길드에 자리 잡았는데. 그걸 다 포기하고 도망치라고? 이딴 게이트 하나 때문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

김우진이 가진 능력, ‘존재감 흐리기’는 SS랭크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쓸 만한 능력이지만…. 희소성이 있다거나 누구나 필요로 하는 능력은 아니었다. 심지어 저런 타입의 능력들은 범죄에 자주 악용되고는 해서, 사회 전반적인 시선도 별로 좋지 않았다.

“진정하고 내 말 들어. 이 게이트는…….”

“네가 이 지랄 안 해도 알아서 몸 사릴 테니까 신경 끄고 너나 잘해. 너 같은 새끼한테 이딴 소리 듣는 것도 좆같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김우진이 내가 붙잡기도 전에 몸을 돌렸다. 멀어지는 김우진의 뒷모습을 보며 붙잡을까 고민했지만 끝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일은 천사연이 벌여 놓고 왜 수습은 내가 해야 하는가. 이래서 제멋대로 사는 놈을 상사로 두면 아랫사람만 고생한다니까.

나는 그래도 나름 얼굴도 몇 번 본 사이니까 죽지 말라는 마음으로 말린 건데. 이렇게 되면 내가 정신 바짝 차리고 김우진을 신경 써 줄 수밖에 없다.

“김우진 저 멍청한 새끼가…….”

“네?”

한탄하듯 중얼거린 혼잣말에 대답이 돌아왔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자 눈을 동그랗게 뜬 민아린이 날 바라보고 서 있었다.

“민아린 씨.”

“일주일 만이네요, 이결 씨.”

민아린이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일주일 동안 별일 없었는지, 그녀는 여전히 밝고 활기차 보였다.

“무슨 일 있어요? 보니까 누구랑 싸우는 것 같던데.”

“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려던 마음을 고쳐먹고 민아린에게 물어봤다.

“혹시 게이트 난이도에 대해서 천… 아니, 마스터가 뭐라 말해 준 게 있던가요?”

“아뇨, 딱히……. 정확히 말해 준 부분은 없어요. 마스터가 직접 참가하는 거로도 모자라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을 보면 쉬운 난이도는 아닐 거라고 다들 지레짐작하고 있긴 하죠.”

“…크흠. 민아린 씨. 제가 지켜 드리겠다고 말한 거, 기억하시죠?”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어쩔 수 없다. 나는 민아린에게 슬쩍 다가서며 부드럽게 웃었다. 날 올려다보던 민아린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엇, 네. 기억하죠…….”

“사실, 제가 따로 구해야 할 하급 아이템이 있거든요. 대열 뒤쪽에서 천천히 이동하려는데… 이왕 그럴 거면 힐러팀 지켜 줄 겸 민아린 씨랑 같이 갈까 해서요. 어떠세요?”

“…….”

“……민아린 씨?”

눈꼬리를 살짝 내리고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달래듯이 말하는데, 민아린의 표정이 이상했다. 어딘가 멍한 표정으로 날 보던 민아린은 내가 재차 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야 좋죠. 그래 주신다면.”

“그래요?”

“네, 네. 게이트 내부는… 위험하고 무서우니까…….”

“네, 아무래도 그렇죠. 저도 안전하게 지켜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성공했다. 생각보다 쉽게 수긍하는 모습이 의아했지만, 어찌 됐든 귀한 힐러의 옆자리를 꿰찼으니 만족스러웠다.

‘민아린 옆에 붙어 있으면 김우진이 다치더라도 큰 문제는 없겠지.’

원치 않게 짊어지게 된 짐을 은근슬쩍 민아린에게 반절 넘겨 버린 상황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 양심 지키자고 멀쩡한 애를 다치게 둘 수는 없으니까.

“게이트 오픈까지 5분 남았습니다!”

맨 앞줄에서 게이트 입장을 준비하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사연은 어느새 인터뷰를 마치고 게이트 앞에 서 있었다.

살짝 타이트한 검은 목티에 어두운 붉은색 캐주얼 정장을 걸친 천사연의 손에는 옷차림과 어울리지 않는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말라붙은 핏자국이 적나라한 검신이 유독 눈에 띄었다.

“게이트 열립니다!”

천사연과 마찬가지로 각자 무기를 꺼내 든 길드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게이트를 바라봤다. 일자로 굳게 닫혀 있던 입구가 타원형으로 천천히 열리며 검푸른 빛으로 일렁였다. 천사연은 입구가 완벽하게 열리자마자 그 속으로 거리낌 없이 첫발을 내디뎠다.

‘김우진은 어디 갔지?’

나는 민아린과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가며 급히 주변을 살펴봤다. 나와 말싸움을 하고 어디를 간 건지, 게이트가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김우진은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내 충고대로 도망간 건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는데.

“어, 어떡하죠. 떨리네요.”

자신의 차례가 되자 민아린이 창백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그 반응이 이해가 갔다. 무엇이라도 삼켜 버릴 것처럼 빛나는 게이트는 마치 우주의 성운처럼 화려하면서도 기이했다. 본능적인 거부감과 함께 속이 울렁거렸지만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뻗었다. 마치 드라이아이스를 만지는 듯한 차가움이 손끝에서부터 느껴졌다.

“제가 먼저 들어가 볼 테니까 천천히 따라와요.”

잔뜩 굳은 민아린에게 보여 주려고 일부러 천천히 게이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팔, 다리, 상반신, 비로소 완벽하게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붉은색 흐릿한 하늘이었다. 나는 숨이 막혀 오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입과 코를 가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푹신한 모래와 앙상한 나뭇가지, 끝도 없는 평야. 펼쳐진 풍경은 마치 사막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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