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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10)화 (10/394)

10화

  

지도에 검색까지 하며 겨우 찾아간 레퀴엠 길드 건물 입구에는 낯익은 상대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 김우진. 나 마중 나온 거야? 감동인데?”

“시발. 안 닥쳐?”

휘적휘적 손을 흔들며 능청스럽게 웃자 김우진이 금방 흥분하며 욕설을 뱉어 냈다. 참 한결같아서 재밌는 놈이다.

“꼴 봐라. 면상하고는……. 쯧.”

“아, 이거?”

나는 지끈거리는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왜, 부러워? 똑같이 해 줘?”

“뭐? 미친…….”

비웃는 날 보며 김우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몸을 들썩였지만 끝내 내게 달려들지는 못했다. 다른 때 같으면 더 놀아 줬겠지만, 피곤해서 그런지 영 귀찮았다.

“됐고, 용건이 뭐야.”

“시발! 나도 명령만 아니었으면 너 같은 새끼 상종도 안 했어! 따라와!”

달려들진 못해도 그 성질은 못 죽이는구나. 버럭 소리를 지르고 씩씩거리며 걸어가는 김우진의 뒤를 따라 길드 건물로 들어섰다. 시간이 7시가 넘어갔음에도 내부에는 아직 일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최상층으로 향하는 전용 엘리베이터에 김우진과 올라타며 나는 나지막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안 했을 거라 믿어, 김우진.”

“닥쳐, 새끼야. 차수연 납치에 실패했으면 넌 오늘 끝장난 목숨이었어. 적당히 깝쳐.”

나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얘기했는데, 김우진이 아까보다 더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까칠하긴. 그래, 그게 네 매력인가 보구나.

띵-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수행원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들어가십시오.”

복도를 가로질러 크고 화려한 문 앞에 서자 대기 중이던 수행원이 직접 문을 열어 줬다. 김우진을 뒤로하고 들어선 대표실에는 천사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군.”

사람이 들어왔는데도 서류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아주 재수 없었다. 게다가 첫 인사가 ‘늦었군.’이라니. 어이가 없다. 누가 보면 지금까지 놀다 온 줄 알겠다.

“죄송합니다. 돌아오는 거리가 꽤 돼서 시간이 걸렸습니다.”

속으로는 투덜투덜 불만을 늘어놨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으니 번듯하게 대답했다.

“음?”

천사연이 그제야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마주한 검은 눈동자가 흥미로 반짝였다.

“타인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기운까지 완벽하게 카피하는 능력자가 등장했다는 정보는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벌벌 떨었다가, 뻔뻔하게 반말을 했다가… 이번에는 깍듯하게 행동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 줘야 할지 모르겠군.”

“…….”

그제야 처음 천사연을 마주했을 때가 아련히 떠올랐다.

-신경 꺼.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그때야 한이결이 되자마자 끌려간 터라 현실감도 없고 제정신도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적당히 눈치껏 존대 정도는 써 줄 걸 그랬다.

후회해 봤자 이미 엎지른 물. 나는 뭐라고 변명할까 하다가 그냥 평소처럼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인생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역시 윗사람한테 반말은 좀 아닌 것 같아서 다시 고쳤습니다. 지금은 마음에 드십니까?”

“하하, 윗사람?”

천사연이 세상에 다시없을 개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래. 말투 정도는 상관없으니 네가 알아서 하고.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다른 쪽인데.”

생각보다 쉽게 넘어가는 천사연의 모습이 의아했지만, 일단은 바뀐 화제에 적당히 대답했다.

“뭡니까?”

“그 여자한테 한 대 맞기라도 했나?”

나는 뒤늦게 손으로 볼을 가리며 입술을 혀로 핥았다. 입술이 찢어졌었는지 약한 피 맛이 혀끝에 감돌았다.

건물 입구에서 김우진에게 잡혀 곧바로 올라오느라 거울 볼 시간이 없었다. 천사연이 지적할 정도면 아무래도 꽤 심하게 부은 모양이다.

“홍염의 여제가 때린 거 아닙니다.”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로헌 길드의 하태헌에게 맞은 거죠. 애초에 그걸 노렸으면서 뭘 또 묻습니까?”

천사연이 두 눈을 가늘게 휘며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랬지……. 그래서 물어본 거야, 한이결.”

“…….”

“하태헌을 만났는데 그 정도 피해만 받았다는 게 놀라워서.”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말이었다.

“분명 걸레짝이 돼서 기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김우진을 내려보낸 거고.”

“…….”

“이건 정말 예상 못 했어. 아주 재밌군.”

나는 한숨을 삼켰다.

그 말대로 본래 한이결은 하태헌을 상대하다가 죽을 고비를 넘긴다.

이번 하태헌과의 만남은 나라고 한들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언제 어느 때나 예측 불허하므로 어떤 계획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완벽하지 않다. 실제로 하태헌을 믿었다가 한 방 먹지 않았나.

내가 그나마 이 정도로 멀쩡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차수연 덕분이다. 내가 한이결처럼 차수연에게 폭력을 사용했다면 하태헌은 거래고 나발이고 날 반 죽여 놨을 것이다.

‘천사연이 놓친 것은 하나뿐이다.’

한이결에게 빙의한 ‘나’.

내가 아니었다면 한이결은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구급차에 실려 가서 치료받고 있겠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차수연을 납치하라 명령한 천사연은 정말이지…….

‘짜증 나는 새끼.’

나는 소설을 읽을 때도 천사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등장 빈도수만 따지고 보자면 하태헌 다음으로 많았지만, 딱히 정이 가지 않았다.

“어쨌든 네가 힘써 준 덕분에 아주 좋은 기회를 얻어 냈어.”

상념으로 뒤죽박죽 엉킨 틈으로 천사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서둘러 쓸데없는 생각을 머리 저편으로 밀어 넣었다.

“대가를 말해.”

천사연이 펼쳐 둔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대가라. 그렇지 않아도 달라고 하려던 참이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번에 얻어 낸 게이트 클리어 작업에 직접 참여하실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게이트 내부에서 얻을 수 있는 하급 아이템 두 가지를 가져다주십시오.”

내 요구에 천사연이 굉장히 묘한 표정으로 긴 다리를 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무언가 생각하던 천사연이 이내 입을 열었다.

“하급 아이템 두 개……. 그게 대가라고.”

“예.”

“흐음.”

천사연이 이렇다 할 대답 없이 나를 응시했다. 불편한 침묵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뭐지?’

이런 분위기는 굉장히 안 좋았다. 불길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내가 방금, 무언가 실수했다.

어느 게 문제였지? 하급 아이템? 그게 왜.

‘……아니. 아이템이 문제일 리가. 아직 무슨 아이템인지 말도 안 했는데.’

메마른 침을 삼키며 천사연의 서늘한 눈을 계속해서 마주했다. 피할 수 없었다. 마치 달려들 준비를 마친 맹수를 앞에 둔 기분이었다.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풀었다가는 그대로 집어삼켜질 것만 같았다.

“그래. 그럼 이렇게 할까.”

나른한 목소리와 함께 테이블을 두드리던 소리가 뚝 멈췄다.

“함께 가는 거로 하지. 게이트 클리어.”

“……하지만, 저는.”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후. 시간에 맞춰 사람을 보낼 테니 그전까지는 23층에서 지내고.”

“…….”

나는 반박하려고 입을 벌렸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다시 다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에 잔뜩 떠다녔다. 나는 레퀴엠 길드 소속이 아닌데. 게이트 따위 가고 싶은 마음이 있을 리가. 이건 대가인데 왜 내가 직접 가냐, 이 사기꾼 자식아…….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뱉어 낼 수 없었다. 내가 멍하니 서 있자 천사연이 빙긋 웃었다.

“이제 나가 봐.”

“…….”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대표실 밖이었다. 김우진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대신 다른 수행원이 내게 다가왔다.

“따라오십시오.”

예에……. 영혼 없는 대답을 하며 수행원의 뒤를 따라갔다. 몸이 아까보다 더 축 처졌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는데 온종일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그런지 두통이 밀려왔다. 하태헌이고 천사연이고 하나같이 성격이 왜 저따위인지 모르겠다. 둘 다 길 가다 새똥이나 맞았으면 좋겠다.

“그럼 쉬십시오.”

천사연이 일주일간 지내라고 명령한 23층의 방은, 길드 건물 내부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시설이 괜찮았다. 나는 재빨리 옷부터 벗어 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커다란 거울로 확인한 몸은 비교적 멀쩡했지만, 얼굴을 맞을 때 바닥에 넘어지면서 생겼는지 오른쪽 골반과 무릎 부근에 시퍼런 멍이 올라와 있었다. 그 크기와 색이 심상치 않은 것이 꽤 오래갈 것 같았다.

“이야.”

왼쪽 볼도 확인한 나는 감탄했다. 앞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누군가에게 처맞은 얼굴이다. 피딱지가 앉은 입술 끝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씻을 때 좀 아프겠는데.

최대한 조심해서 씻은 나는 목욕가운을 걸치고 좀비처럼 휘적휘적 욕실을 빠져나와 곧장 침대로 다이빙했다. 종일 먹은 거라곤 점심 한 끼였지만 배가 고픈 것보다 졸린 게 우선이었다. 몸을 뒤집어 천장을 올려다보는 간단한 행동에도 온몸이 쑤셔 와 절로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고생했다, 나 자신…….’

차수연 납치하랴, 하태헌 꼬시랴, 천사연 속이랴, 그야말로 눈 돌아가게 다이나믹한 하루였다. 나는 몽롱해지는 정신을 느끼며 신에게 기도했다.

여기 난이도가 왜 이러나요. 조정 좀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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