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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7)화 (7/394)

7화

  

하태헌은 새벽에 눈을 뜬 이후부터 지금까지, 기분이 굉장히 저조했다.

“왜 그래? 엄청 피곤해 보이는데.”

하태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자 옆에 서 있던 이주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괜찮습니다.”

하태헌은 고개를 저었지만 이주하는 기어코 한마디 더 얹었다.

“무리하지 말고 힘들면 말해. 그런 게이트보다 네가 더 중요하니까.”

“정말로 괜찮습니다.”

이주하와 하태헌은 현재 신규 게이트 소속을 정하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길드 관리 본부로 막 도착한 참이었다. 하태헌은 자꾸만 힘이 들어가는 미간을 피며 이주하와 나란히 중앙홀로 들어섰다.

“그나저나 네가 욕심 부를 때도 다 있네. 이번 게이트가 그렇게 중요해?”

“확실한 건 아닙니다. 그저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흠. 나는 잘 모르겠지만…… 태헌이 너는 SS랭크니까.”

웬만한 능력자보다 감이 좋은 SS랭크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게이트일 확률이 높았다. 운이 좋으면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등급 게이트일 가능성도 있다.

“웬만하면 우리 길드로 배정되겠지만, 네가 참석해야 확실… 아.”

앞을 보고 걸어가며 말하던 이주하가 어색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 반응에 하태헌도 고개를 들고 맞은편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오랜만이군요, 이주하 마스터.”

“……천사연 마스터.”

레퀴엠 길드의 마스터, 천사연. 그가 이주하와 하태헌을 향해 걸어왔다.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드러난 선명한 눈동자가 하태헌을 향했다. 얇은 쌍꺼풀이 진 유려한 눈매, 날카로운 콧날과 턱선. 검은 머리카락과 대비되는 새하얀 피부는 그의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웠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예민함이 느껴졌다.

“그쪽도 오랜만이야.”

천사연이 하태헌에게 아는 체하며 손을 내밀었다. 고운 얼굴과 다르게 크고 단단한 그 손을 마주 잡으며 하태헌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오랜만입니다.”

찌릿, 마주 잡은 손에서 기운과 기운이 부딪혔다. 가까운 거리에 서 있던 이주하는 악수 틈바구니에서 요동치는 기운을 느끼고 불안한 얼굴을 했다.

“흐음.”

천사연이 웃음기 어린 숨을 내쉬며 눈꼬리를 휘었다. SS랭크 두 명이 홀 중앙에서 악수하는 장면은 여러모로 시선을 끌었다. 주변에 구경꾼이 몰려들자 하태헌이 먼저 손을 놓았다.

“회의에 참석하려고 온 건가요? 천사연 마스터.”

“물론.”

이주하가 손을 놓는 타이밍에 급히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잔뜩 불편한 티를 내는 이주하에 비해 천사연은 그저 여유로웠다.

“이상하네요. 당신은 게이트에 별 관심 없지 않았나요?”

“이런. 그건 오해인데. 어느 길드나 게이트는 욕심나지 않겠습니까?”

하태헌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이 기분은.’

천사연의 저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은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오늘따라 더 신경 쓰였다. 자꾸만 앞으로 튀어 나가려는 팔에 힘을 주며 하태헌은 침착하려고 애썼다.

“저야말로 궁금하군요. 로헌 길드가 이번 게이트를 상당히 원하던데…… 누구 의견일지. 적어도 제가 보기엔 이주하 마스터는 아닌 것 같은데.”

“…글쎄요. 그게 레퀴엠 길드와 무슨 상관이죠?”

“무슨 상관이라…….”

이주하의 날카로운 대꾸에 천사연이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 모든 행동이 피식자를 내려다보는 나른한 포식자를 닮아 있었다. 시선을 받지 않은 하태헌마저도 무심코 주먹을 쥐었으니, 그보다 등급이 낮은 이주하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는 것은 당연했다.

“상관없는 건 맞는데.”

“…….”

“저도 순순히 넘겨주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그게 무슨 말…….”

그 순간이었다. 하태헌의 정장 재킷에 들어가 있는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침묵이 내려앉은 세 사람 사이로 우웅, 진동음이 울렸다. 천사연이 하태헌에게 웃으며 물었다.

“안 받아?”

“…….”

하태헌은 침착하게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액정에 뜬 이름은 차수연이었다.

‘차수연이라면… 제이나 길드 소속 능력자였던가.’

하태헌 본인이 위험에 빠진 차수연을 구해 주기도 했고, 그 뒤로 한 번 더 마주쳤으니 아예 모르는 상대는 아니다.

‘그런데 왜…….’

어째서인지 전화를 건 상대가 차수연이 아닌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하태헌이 고민 끝에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하태헌입니다.”

[여, 여보세요?]

잔뜩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핸드폰을 귀에 댄 채로, 하태헌은 천사연과 눈을 마주쳤다.

천사연의 미소가 짙어졌다.

***

통화를 끝낸 하태헌은 이주하에게 차 열쇠를 받아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대로 차에 올라탄 하태헌은 거칠게 운전하며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더스카이 레스토랑 아시죠? 그 레스토랑을 지나쳐서 오다 보면 폐건물이 하나 있을 겁니다. 거기로 오세요. 시간은… 넉넉하게 50분 드리죠. 늦으면 얄짤 없습니다?

“쯧.”

납치범의 말을 떠올린 하태헌은 시간을 확인하며 혀를 찼다. 이제야 천사연의 의문스러운 태도가 이해됐다.

아무래도 천사연은 이번 게이트가 굉장히 탐난 모양이다. 그도 하태헌과 마찬가지로 SS랭크이니 이번 게이트를 보고 무언가를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하태헌은 서늘하게 웃었다.

‘이런 치졸한 짓을 벌이다니.’

게이트를 신경 쓰느라 천사연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했다. 차수연을 납치한 범인도 그와 연관이 깊을 것이다.

천사연이 깔아 놓은 판에 이용당하는 상황이 무척이나 불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기분 안 좋다고 차수연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차수연을 구하러 가야겠다는 말에 선뜻 차 열쇠를 건네주며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등을 떠민 이주하에게도 무척 미안했다.

레스토랑을 지나치자 듣던 대로 폐건물이 나타났다. 차에서 내린 하태헌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회의는 진작에 시작했을 시간이다. 자신이 참석하지 못했으니 아마 게이트는 미리 준비를 마쳐 둔 천사연에게로 넘어갈 것이다.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온 짜증은 자연스럽게 납치범에게로 향했다.

하태헌은 목을 조이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잡아당기며 폐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구두와 단단한 시멘트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폐건물에 울려 퍼졌다.

“태, 태헌 씨.”

폐건물 중앙, 넓은 공간에 들어서자 손이 묶인 상태로 바닥에 앉아 있는 차수연이 하태헌을 불렀다.

“차수연 씨.”

“정말 오셨군요.”

하태헌은 빠르게 차수연을 훑어봤다. 뒤로 묶인 손과 목에 처음 보는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행히 별 이상은 없었다. 다치거나 지쳐 보이지도 않았다.

차수연은 A랭크 능력자다. 심지어 웬만한 능력자는 가까이 가지도 못할 만큼 화력이 강한 불을 다루는 정상급 능력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녀가 무기력하게 묶여 있다는 건……. 하태헌은 목걸이에 시선을 줬다. 아무래도 저 목걸이는 셔터 아이템인 듯하다.

목걸이만 풀어 줘도 차수연은 도망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하태헌이 한 발짝 움직인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훤히 뚫린 천장에서 훌쩍 내려온 남자가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기척을 읽어 내지 못했다……. 최소 A랭크 능력자군.’

하태헌은 반응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봤다.

“1분 남겨 두고 도착했네요. 역시 대단하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남자가 씨익 웃었다. 얇고 가느다란 갈색 머리카락은 바람에 살랑이고, 긴 속눈썹 안에 박힌 갈색 눈동자는 반짝이며 빛났다. 곱상한 얼굴과 조화로운 이목구비는 화려하기보다는 청초한 분위기를 풍겼다.

통화할 때 들었던 목소리와 남자의 목소리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하태헌은 천천히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애당초 여기까지 왔으니, 순순히 차수연만 데리고 돌아갈 생각 따위는 없었다.

“봐서 아시겠지만, 차수연 씨는… 엇, 잠시만요.”

“…….”

하태헌 주변으로 새까만 무언가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가 가진 두 가지 능력 중 하나였다. 먼지를 끌어모아 원하는 물질로 변환시키는 능력.

새까만 먼지는 하태헌 손아귀에 몰려들어 이내 형태를 갖추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검은색의 장검을 손에 쥐자마자 하태헌은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콰앙!

“이런 미친!”

방금까지 남자가 서 있던 자리는 하태헌의 검에 폭탄이 터진 듯이 부서졌다. 가까스로 검을 피한 남자는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소리쳤다.

“잠깐, 성질 엄청 급하네. 대화 좀 하자고요!”

“시끄럽군.”

하태헌은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하며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콰앙, 벽이 갈라지고 퀘퀘한 시멘트 가루가 잔뜩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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