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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5)화 (5/394)

5화

2. 속으셨습니다

“흐흠. 태헌 씨는… 어때 보이던가요?”

“네?”

차를 출발시키자마자 차수연이 내게 질문했다.

어때 보이냐니? 만나 본 적 없어서 모르겠는데. 섣불리 긍정하지 않고 눈치만 살피자 차수연이 덧붙여 말했다.

“얼마 전에 중국에 있는 게이트를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아픈 곳은 없나 해서.”

“아아.”

……그런 일도 있었나? 하태헌은 소설 초반부터 후반까지 해외로 굉장히 자주 나가는 터라, 세세한 일정은 나도 정확히 기억 못 한다. 자주 나가는 이유는 로헌 길드 마스터가 해외 일정 때마다 하태헌을 데려가기 때문이다…… 물론 길드 마스터는 남성향 소설 등장인물인 만큼 당연히 여성이다.

나는 싱긋 웃었다.

“그럼요. 몸 건강히 다녀오셨어요. 하태헌 선배님 정도의 능력이면 다치기도 힘들잖아요.”

“그건 그렇죠. 듣자 하니 로헌 길드 마스터와 함께 갔었다던데.”

“아?”

나는 그제야 질문 속에 숨겨진 뜻을 알아챘다.

“으음, 제가 보기에… 하태헌 선배님은 마스터를 그저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던데요. 무슨 뜻인지 아시죠?”

“그래요?”

“네. 솔직히 직장 상사와 사적인 감정을 나누기는 조금… 쉬운 건 아니잖아요? 나쁘다는 건 아니긴 한데. 무엇보다 하태헌 선배님 성격이면 연애할 사람을 쉽게 고를 것 같지가 않네요.”

“그쪽이 보기에도 그런가요?”

“워낙에 진중하시니까요.”

내 말에 차수연이 볼을 살짝 붉히며 미소 지었다. 표정이 아까보다 훨씬 밝았다. 아무래도 차수연은 하태헌이 로헌 마스터와 함께 중국으로 떠난 것이 어지간히 신경 쓰인 모양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이토록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가 아무리 일 때문이라지만 다른 여자와 외국을 갔다는데. 내 말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차수연이 주먹을 꽉 주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각오를 하는 걸까.

차가 교외로 빠져나와 한적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도 차수연이 괜한 의심을 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건 굉장히 쉬웠다. 차수연은 하태헌과 관련된 거라면 눈을 반짝이며 내 얘기에 귀 기울였다.

그렇게 차에 탄 지 1시간 정도가 됐을 때, 드디어 차수연도 불안해졌는지 창밖을 살폈다. 나는 난감한 척 어색하게 웃었다.

“최근 방송을 타고 유명해진 레스토랑인데 거리가 좀 있네요. 죄송해요. 지루하시죠?”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래도 곧 도착해요. 한 10분 정도 남았네요.”

차수연이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고 해도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풀어낸 하태헌의 다양한 정보들과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로 레스토랑이 찍혀 있었으니까. 내 예상대로 차수연은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런 추궁도 하지 않았다.

차는 멈추지 않고 달려 어느새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음성이 들리는 내비게이션을 보란 듯 끄며 차수연에게 말했다.

“잠시만요. 주차장이 건물 뒤편에 있다는데, 일단 거기에 주차할게요.”

나는 주차장을 찾는 척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차를 계속해서 몰았다. 레스토랑을 지나치고 진짜 ‘목적지’를 50m 정도 남겼을 때, 차를 멈춰 세웠다.

“도착했어요. 내리세요.”

“예?”

내가 망설임 없이 차에서 내리자 차수연도 따라 내렸다.

“여긴 주차하는 곳이 아닌 것 같은데…….”

차수연이 눈동자를 굴리며 중얼거렸다. 맞는 말이다. 주위에는 나무나 풀만 잔뜩 있을 뿐, 도무지 레스토랑의 주차장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며 능력을 사용했다. 손가락을 까딱이자, 차수연의 몸이 허공에 10m 정도 떠올랐다.

차수연이 ‘헉’ 소리와 함께 당황한 얼굴로 날 내려다봤다.

“갑자기 무슨 짓이죠? 당장 내려 줘요!”

“죄송합니다. 사실 제가 당신을 납치하라는 명령을 받아서요.”

“뭐? 납치?”

차수연이 어이없는 말투로 되물었다. 그럴 만도 하지. 아마 살면서 이런 납치는 처음 당해 볼 것이다.

“욕하셔도 됩니다. 근데 이왕이면 저보다는 명령한 놈을 욕했으면 좋겠네요.”

“……장난 그만하고 당장 내리세요.”

“그건 안 됩니다. 그래도 제 계획은 차수연 씨 당신에게도 꽤 괜찮을 텐데. 들어 보실래요?”

“내리라고!”

“안 된다고.”

차수연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단단히 분노한 그 시선을 나는 조용히 마주했다.

“나는 경고했어.”

차수연이 팔을 크게 휘두르자 불꽃이 화르륵 피어올랐다. 나는 나무에 불이 옮겨붙지 않도록 재빨리 불꽃을 바람에 휘감아 흙바닥으로 내던졌다.

“좀 진정하시죠. 이곳에서 불은 위험해요.”

“닥쳐! 그쪽이야말로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지만, 난 절대 순순히 잡혀갈 생각 없어. 알았으면 당장…….”

“무슨 말씀이신지. 전 차수연 씨를 잡아갈 생각이 없는데요.”

“뭐?”

차수연에게서 몇 번 더 불이 날아왔지만, 아까처럼 모두 흙바닥에 던져 버렸다. 다행히 차수연이 진심으로 쏟아붓는 공격이 아닌 터라 불은 금방 꺼졌다.

“헛소리하지 마. 분명히 당신 입으로 날 납치하려고…….”

“납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했지, 진짜로 납치한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 이건 납치보다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초대라고 할까요?”

“뭐라는 거야, 미친 새끼야!”

뻔뻔하게 말하자 차수연이 내게 욕을 했다. 그런 말도 할 줄 아니? 이건 또 새로운 매력이네.

“농담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저도 험한 거 하기 싫거든요. 제가 보기보다 마음이 여려서요. 이왕이면 좋게 좋게 가자 이거죠.”

“납치가 아니라면 당장 능력부터 없애.”

“그건 좀…… 공격할 것 같아서 무서워요. 마음이 여리다니까요?”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이자 차수연이 짜증스러운 얼굴을 했다. 너무하네. 하태헌 얘기할 때랑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살짝 상처였다.

“일단 여기까지 왔는데 제안이라도 들어 보시죠. 협조만 해 주신다면 2시간 내로 끝낼 수 있습니다.”

“……내가 그쪽을 어떻게 믿고?”

“제가 혼자서 당신을 상대하는 이 상황 자체를 믿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차수연 씨가 진심으로 공격한다면 제가 이기기 힘들다는 거, 차수연 씨도 아시잖아요.”

“…….”

이 말은 반쯤 거짓이었다. 한이결의 능력은 결코 차수연보다 부족하지 않았지만, 경험 면에서 따지고 본다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차수연과 전력으로 부딪힌다면 아마 둘 다 크게 다칠 것이다.

“제안을 들으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능력은 풀어 드릴게요.”

내 말에 차수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역시 이 정도로는 쉽게 넘어오지 않는구나.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제안 들어 보는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

“제안을 듣고, 그때도 별로다 싶으시면 저도 더 붙잡지 않겠습니다. 대신 도와주신다면 감사 의미로 아이템을 하나 드리도록 하죠. 어떻습니까?”

“…하, 알겠어. 알겠다고. 들어 볼 테니까 능력 당장 풀어.”

고개를 끄덕이는 차수연에게서 바람을 없앴다. 가뿐한 몸놀림으로 착지한 차수연은 어딘가 찜찜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렇게 보지 마세요. 진짜 별거 아니니까.”

“별거 아닌데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거야?”

“제가 좀 평화주의자라서.”

차수연처럼 유명한 사람을 폭력이나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납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가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계획대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차수연의 협조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됐고, 제안이 뭔지 말해.”

“그러죠.”

나는 어디서부터 설명해 줄까 잠시 고민하다가, 가장 중점적인 내용부터 말했다.

“저는 하태헌을 이쪽으로 유인할 겁니다.”

“뭐?”

차수연이 경악했다. 차를 타고 오는 내내 하태헌의 이름을 듣고 짓던 행복한 표정과는 비교도 안 되게 험악했다. 이게 아닌가.

“너 설마 태헌 씨가 목적이었던 거야? 태헌 씨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아니, 아니.”

“그런 거라면 난 협조 절대 못 해! 차라리 여기서 널 제압하고……!”

“그런 게 아니라니까. 오해입니다.”

본론부터 꺼낸다는 게 너무 본론이었나 보다. 나는 부정의 뜻으로 손을 휘휘 저으며 한숨 쉬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태헌이 ‘그곳’으로 못 가게 하려는 게 제 목적입니다.”

“제대로 설명해.”

“오늘 5시에 관리 본부에서 게이트 관련 회의 있는 거 아시죠?”

“새로 생긴 게이트 배정 회의 말하는 거야?”

“네. 제 예상대로라면 새로 생긴 게이트는 로헌 길드 소속으로 넘어갈 겁니다. 게이트 클리어 팀은 당연히 하태헌을 대표로 구성될 테니, 하태헌도 그 회의에 참석해야겠죠.”

“……설마 당신.”

“네. 저는 하태헌이 그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이쪽으로 부를 겁니다. 그게 목적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천사연의 목적이다. 그는 이번에 새로 생긴 게이트를 탐내고 있고, 로헌 길드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한이결과 하태헌을 동시에 이용한 것이다.

게이트야 어느 길드가 가져가던 관심 없던 천사연이 이번 게이트만큼은 욕심내는 이유가 있다.

‘세계 최초 SS랭크 무기. 이번 게이트에서 나왔었지.’

보통 게이트는 다양한 등급의 몬스터가 등장하며, 그 몬스터의 등급을 토대로 곧 게이트 등급이 매겨지지만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는 게이트는 다르다.

사망 시 능력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나 무기 재료를 뱉어 내는 몬스터는 ‘보스’ 몬스터라고 불리며, 보스 몬스터의 등급에 따라 게이트 등급이 달라진다. B급 몬스터 여럿과 S급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는 게이트라면, S급 게이트로 정해지는 것이다.

또한, 보스 몬스터의 등급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아이템 등급도 정해지는데, 등급이 높을수록 무기도 재질이나 공격력이 대폭 상승한다.

지금까지 한국에 등장한 보스 게이트 최대 등급은 S급이었다. A급 게이트는 5번, S급 게이트는 단 2번.

그런데 이번에 세계 최초로 SS급 게이트가 등장한 것이다.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는 게이트는 밖에서 구별이 불가하므로 직접 들어가 봐야 한다. 그러나 천사연은 이번 신규 게이트가 SS급 게이트라는 것을 알고 있고, SS급 무기를 손에 넣기 위해 게이트 소유권을 반드시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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