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3)화 (3/394)
  • 3화

      

    “예? 한이결이요?”

    “그래.”

    천사연의 질문에 김우진은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갑자기 불려 와서 이런 질문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그러나 잘나신 마스터의 의중을 저 같은 일개 수행원이 파악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뒤통수를 긁적이던 김우진은 이내 대답했다.

    “별일 없었습니다. 마스터께서 부르시기 전까지는 평소처럼 방 안에만 있었습니다.”

    “흐음.”

    짙은 남색의 넥타이를 조여 매며 천사연은 또다시 물었다.

    “그 외에?”

    “네?”

    “그 외에 특이한 사항은 없었나?”

    “예, 음…….”

    김우진은 잠시 머뭇거렸다. 특이 사항이라. 자연스럽게 마주했던 한이결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껏 제 눈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멍청한 놈이었는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당당했고 자신감이 엿보였다. 항상 위축되어 있던 자세도 모델처럼 반듯해졌으며 말투나 억양, 성격까지 모든 게 달라졌다.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조금 이상하기는 했습니다. 울거나 하지도 않았고…… 뭐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만,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걸 구구절절 상사에게 고하기엔 어딘가 미묘했다. 최대한 에둘러 설명했지만 잘한 짓인지 모르겠다.

    “그렇군.”

    다행히 천사연은 정장 재킷을 걸치며 다른 말을 꺼냈다.

    “오늘 한이결이 외출할 거다.”

    “네.”

    “따라가. 그리고 이상한 점 있으면 보고해.”

    이어지는 명령에 김우진은 다소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천사연은 한이결에게 사람을 붙이지 않았다.

    한이결을 믿는다, 이런 류의 간지러운 이유는 당연히 아니었다. 약점을 틀어쥐고 있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천사연이 한이결의 하나 남은 혈육과 연관이 있다는 건 수행원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확실히…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달라졌지.’

    그랬던 한이결을 감시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김우진은 어제, 천사연의 방에서 나온 한이결이 웬일로 울지 않아 놀랐던 기억을 상기했다. 항상 발작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벌벌 떨며 울어 대곤 했었는데. 그 꼴을 안 보게 돼서 저야 좋았지만, 만약 한이결이 혈육을 버리고 다른 속셈을 계획 중이라면…….

    “하여간 짜증 나는 새끼.”

    김우진은 얼굴을 구기며 혀를 찼다. 얌전히 쥐 죽은 듯 살 것이지. 여럿 귀찮게 만든다.

    ***

    다음 날. 룸서비스까지 시켜 먹고 느긋하게 호텔을 나서는 한이결의 뒤를 쫓으며 김우진은 헛웃음을 지었다. 저 여유는 뭐야. 진짜 미치기라도 한 건가? 김우진은 자신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김우진의 능력은 ‘존재감 흐리기’다. 투명화가 가능한 상위 능력은 아니었지만, 남 뒤를 쫓기에는 오히려 투명화 능력보다 더욱 쓸 만했다.

    능력을 사용하면 인상이 흐릿해지며 존재감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김우진의 본래 생김새를 아는 사람이라도 능력을 사용 중일 때는 알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친다. 효과는 능력을 끌 때까지 지속되며, 계속 정신력을 소모해야 해서 쉽게 피로해진다는 점을 빼면 별다른 부담도 없다.

    챙겨 나온 모자를 눌러쓰고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한이결을 따라갔다. 유원지에 처음 온 유치원생처럼 여기저기 살펴보며 걷는 한이결의 등을 보며 김우진은 한숨을 쉬었다. 아마 한이결은 명령받은 대로 차수연을 납치하러 G7 구역 게이트로 향할 것이다. 여기서 거리가 꽤 있으니 아무래도 택시를 잡고…….

    “뭐야.”

    그때, 한이결이 대뜸 뛰기 시작했다. 설마 들킨 건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급히 따라 뛰기 시작한 김우진은 한이결이 도착한 장소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꺄아악!”

    “소방차가 못 들어오잖아! 차 빼요!”

    “뭐야? 진짜 불났나 봐!”

    그곳은 시꺼먼 연기가 솟구쳐 오르는 건물이었다. 불이 났다는 외침에 몰려든 구경꾼들 사이로 한이결이 보였다.

    ‘깜짝이야. 왜 뛰나 했더니. 고작 불난 건물 구경하려던 거였어?’

    곧바로 소방차와 소방대원이 도착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주변이 더욱 정신없어졌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목표물의 행동을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김우진은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한이결의 옆모습을 주시하다 슬쩍 뒤로 빠졌다. 아무래도 장소를 이동해서 지켜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

    그리고 지금.

    김우진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진짜 뭐 하는 거야, 저 새끼?”

    화재로 시끄러운 건물의 건너편. 4층짜리 상가 옥상에 서 있는 김우진은 현재 한이결을 핸드폰 동영상으로 촬영 중이었다.

    바람의 힘을 이용해서 공중에 떠오른 한이결은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이리저리 움직여서 불을 끄거나, 자신처럼 소방대원을 공중에 띄워 창문을 통해 건물 내부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한이결 덕분에 빠르게 불길이 잡히고 있었다. 건물에서 겨우 빠져나온 아이를 품에 안은 여자가 한이결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쯧.”

    머쓱한 웃음을 짓는 한이결의 표정까지 정확하게 찍은 김우진은 저장된 동영상을 천사연에게 보냈다. 전송을 완료하고 시간을 확인해 보니 1시 50분이었다. 차수연이 게이트로 빠져나오는 예상 시각은 3시. 지금이라도 부지런히 이동해야 제때 도착할 텐데, 저 상황 파악 못 하는 느려터진 새끼는 쓸데없는 데다 시간을 낭비…….

    “안녕.”

    “……?”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귀에 익은 음성에 뒤를 돌아보자마자 멱살이 잡혔다. 기겁하며 고개를 든 김우진은, 방금까지만 해도 건너편 건물에서 시시덕거리던 한이결을 마주했다.

    “뭐, 뭐야!”

    “구경 잘했어?”

    한이결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질문하며 살짝 웃었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시발, 뭐 하는 짓이야?”

    당황한 것도 잠시, 김우진은 금세 정신을 차리며 한이결의 손을 뿌리쳤다. 쫄 것 없다. 좀 놀라긴 했지만 그래 봤자 한이결이었다.

    “이봐,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다짜고짜 사람 멱살을 그렇게 잡으면…….”

    “많이 놀랐나 봐.”

    “뭐?”

    “얼마나 놀랐으면 능력이 풀렸어?”

    한이결이 여유롭게 말했다.

    “안 그래? 김우진.”

    “……!”

    오싹,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젠장! 멱살 잡혔을 때 너무 놀라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양이다. 급히 능력을 살피던 김우진의 안색은 이내 창백해졌다.

    “속았지?”

    능력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꺼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이결이 저를 보기 좋게 농락한 것이다. 그 한이결이.

    “이 새끼가!”

    “흐음.”

    분노해서 달려드는 김우진의 몸이 공중에 휙 떠올랐다. 한이결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그의 몸 상반신이 옥상 난간 너머로 걸쳐졌다.

    이대로 한이결이 능력을 없앤다면 자신은 손쓸 틈도 없이 건물 밖으로 떨어져 버릴 것이다. 상황을 깨달은 김우진이 필사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몸을 칭칭 둘러싼 바람은 살갗을 거칠게 긁고 지나갈 뿐이었다.

    “풀어, 이 개새끼야! 갑자기 나타나서 이게 무슨 지랄이야?”

    “몰래 훔쳐보고 있던 주제에 뻔뻔하긴.”

    김우진은 이 상황이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제 한마디에 벌벌 떨며 울기나 해 대던 한이결은 대체 어디의 누구였나. 눈앞에 있는 남자는 얼굴만 한이결일 뿐,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설마 그동안 할리우드 배우 뺨치는 연기실력으로 모두를 속이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정말 다른 누군가 한이결의 가죽을 뒤집어쓴 건가.

    무엇보다 자신은 이 상황을 냉정하기 짝이 없는 상사에게 뭐라 설명해야 하는가.

    “내 뒤 따라다니면서 뭐 했어?”

    “뭐?”

    “사실대로 말하면 풀어 줄게.”

    김우진은 잠시 고민했지만, 솔직하게 대답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애당초 일찍 들켜서 뭐 한 것도 없었다.

    “영상! 영상 찍었어!”

    “무슨 영상?”

    “네가 불 끄는 거! 이제 됐지? 시발, 능력 풀어!”

    김우진의 험악한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만 으쓱인 한이결은 우진에게 손을 뻗었다. 그의 살가죽은 있는 대로 공격하던 바람은 한이결 앞에서는 부드러운 순풍으로 변했다.

    태연하게 김우진의 품을 뒤적여 핸드폰을 가져간 한이결은 그걸 몇 번 두드리더니, 바닥으로 던지듯 버렸다.

    ‘시발, 남의 귀한 핸드폰을!’

    우진이 속으로 이를 갈든 말든 한이결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이미 보낸 영상은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여기까지야. 더는 따라와 봤자 볼 것도 없을 테니 돌아가.”

    우진의 몸이 안쪽으로 휙 끌려오며 자신의 핸드폰과 마찬가지로 옥상 바닥을 굴렀다.

    “이 미친…….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영상 보냈으니까 충분해. 차수연 납치는 계획대로 진행할 거니까 따라올 필요 없어.”

    “그게 가능하겠냐고!”

    “불가능할 건 뭐야? 한이결은 명령받은 대로 차수연을 납치했다고 보고하면 되잖아.”

    김우진이 왜 자신을 쫓아왔는지 다 알고 있다는 태도였다. 입만 열면 여동생만 찾아 대던 그 한이결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눈치가 빨랐다.

    “너…….”

    “정 싫으면 사실대로 말하든가. 들켜서 어쩔 수 없었다고. 난 상관없으니까.”

    물론 못 하겠지만. 그렇게 덧붙이며 한이결이 화사하게 웃었다. 김우진에게서 시선을 돌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한이결이 이어 말했다.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따라오지 말라는 건 권유가 아니라 강제야. 한 번만 더 개새끼처럼 졸졸 따라와 봐. 협박으로 안 끝낼 거니까.”

    그 말을 끝으로 한이결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옥상에 홀로 남겨진 김우진은 차마 그를 붙잡지 못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