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81화 (81/81)

81. 변화 (4)

나는 우진이의 눈치를 슬쩍 봤다.

우진이의 표정이 너무 안 좋은데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안절부절못하는 동안에도, 우진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차우린을 바라봤다.

일곱살배기 어린애는 괴수와 함께 연구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얘 이름이 ‘삐삐’야? 귀엽다. 잘 지었네~”

“우와, 비늘이 이렇게까지 탈색되는군요! 눈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만 보면 마치 알비노 개체 같네요.”

“삐삐가 후~하면 눈도 내려요!”

“아, 보고서에 있던 그 능력 말이지! 그건 어떻게 봐? 지금 보여 줄 수 있어?”

차우린은 연구원들과 화기애애하게 괴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괴수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기쁜지 날지도 못하는 날개를 연신 퍼덕이며 폴짝폴짝 뛰었다.

-삑! 삑!

저쪽 사람들이라도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다.

저 사람들마저 분위기가 안 좋았다면 우진이가 더 심각해졌을 테니까 말이다.

우진이는 차우린의 발랄한 모습에 약간이나마 마음을 놓은 것처럼 보였다.

얼어붙은 겨울 호수 같은 눈동자가 따스한 햇볕에 녹아내리는 것처럼 긴장이 풀렸다.

나는 이때다 싶어, 연구소 탕비실에서 훔쳐 온 드립 커피를 내밀었다.

“지금은 저희가 할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이거라도 마시면서 잠시 쉬어요. 여기까지 우린이 업고 오느라 힘들었잖아요.”

다행히도 우진이는 내가 주는 커피를 받아 줬다.

“고마워요. 우린이가 지금은 컨디션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네요.”

차우린은 의료 센터 밖으로 나올 때부터 상태가 좋았지만, 난 굳이 우진이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한 장의 화보 같은 우진이의 모습을 눈에 담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저 벽에 기대서 커피를 홀짝이는 것뿐인데도 우진이는 신이 빚어 놓은 조각상 같았다.

갓 내린 눈처럼 깨끗한 피부에 칠흑 같은 밤하늘처럼 머리카락, 우뚝한 콧대와 단정한 눈매에 검은 나비 같은 속눈썹, 그리고 장미 꽃잎 같은 입술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그런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게 모인 작은 얼굴에 길쭉하고 단단한 몸은 황금 비율을 이루어서 더욱더 신이 자랑하는 완벽한 피조물의 형상이 되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한 곳에 뭉쳐 놓은 듯한 우진이는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름다움에도 근심이 깃들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던 우진이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동생한테 더 친절하게 대해 줄 걸 그랬어요. 내가 아무리 힘든 상황이었어도 전 얘보단 나았는데 말이죠…….”

우진이가 하는 말이지만 동의할 수 없었다

“우진 씨는 이미 동생한테 잘해 주고 있잖아요. 세상에 어떤 사람을 데려와도 우진 씨보다는 못할걸요? 우진 씨의 아버지도 그만큼은 못 할 거예요. 우진 씨는 아빠보다 나은 오빠라고요.”

내 열변을 듣던 우진이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귀엽게 웃던 우진이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니에요. 아버지는 살아계셨으면 우린이에게 정말 잘해 주셨을 거예요. 굉장히 자상한 분이셨거든요. 아버지보다 덩치가 커진 지 한참 된 저한테도 궂은일을 시키기 싫어하셨죠.”

우진이는 곱고 길쭉한 손가락으로 커피를 마시던 컵을 매만졌다.

살아 움직이는 조각상 같은 모습이지만 지금은 우진이의 외형에만 정신을 팔 수 없었다.

우진이가 이렇게까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듣기 위해 숨을 죽였다.

우진이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정말 다정한 아버지셨는데, 동생이 태어나기 직전에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도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셨죠. 두 분 다 동생을 만났다면 잘해 주셨을 거예요. 저한테 해 주셨던 것처럼.”

나는 아련한 이야기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우진이가 부모님이랑 꽤 오랫동안 같이 지낸 거 같아서 놀랍기도 했다.

‘하긴 동생이 생기려면 부모님이 계셨겠구나. 내가 부모랑 지내본 적이 없어서 생각도 못 해 봤네. 이래서 김 국장이 사람을 다양하게 만나라고 잔소리를 한 걸까?’

줄곧 혼자 지내는 사람들만 봤더니, 부모는 어른이 되기 전에 소멸하는 건 줄 알았다. 그, 자연 다큐멘터리처럼 다들 성체가 되면 홀로서기 하는 건 줄 알았지.

나의 편협함을 반성하며 우진이의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그래서 동생이 가여워요. 부모님이라면 분명 더 능숙하게 애를 잘 돌봐주셨을 텐데 말이죠. 두 분이라면 분명, 저처럼 애한테 화풀이하지도 않았겠죠.”

아무리 우진이의 말이어도 이렇게 자학하는 말은 인정할 수 없었다.

“아뇨. 우진 씨는 우린이에게 충분히 넘치도록 잘해 주고 있어요. 이런 징그러운 세상에서 우진 씨는 차고 넘치게 헌신적이라고요. 미숙한 점이 있었을 수도 있겠죠. 부모님과 비교한다면. 하지만 지금 우린이 곁에 있는 사람은 우진 씨잖아요. 없는 사람들과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어차피 없잖아요. 중요한 건 지금 당장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이죠.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로 하는 가정은 어차피 상상일 뿐이잖아요. 그런 상상보다는 현실이 중요하죠.”

아무렇게나 설교를 늘어놓던 나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우진이가 말간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 같은 얼굴에 어쩐지 민망해졌다.

나도 참 우진이한테 별소리를 다한다.

“아무튼, 우진 씨는 우린이에게 매우 훌륭한 보호자라는 거죠. 그 누구도 대체 못 할 그런 존재. 그런 거죠. 이미 우린이에게 매우 잘해 주고 계시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잘해 주니까 우린이도 오빠를 그렇게 좋아하는 거잖아요.”

어찌 됐든 우진이한테 내 의도가 잘 전해지면 좋겠다.

내 말을 들은 우진이가 나를 향해 빙긋 웃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기분이 많이 나아졌어요.”

우진이는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우진이의 손길이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우진이의 허리를 껴안았다.

아니, 안을 뻔했다.

차우린이 우진이를 부르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우진이는 차우린의 쉬 마렵다는 말에 바로 가 버렸다.

나는 뻘쭘하게 내밀었던 손을 바로 치웠다.

***

“반응하는 개체가 삐삐밖에 없어서 아쉽네요. 개인적으론 모든 미르나래가 반응해 주길 바랐지만 말이에요.”

연구원이 굉장히 끔찍한 가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차우린이 저기 있는 모든 괴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면 연구의 피실험자로 전락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자유롭게 다니는 건 꿈도 못 꾸고 연구소의 재산으로 관리되는 데다, 협회 내에서 미묘한 정치 싸움에 휘말리게 될 텐데 그게 지금 아쉬워하면서 할 말이야?

난 굉장히 못마땅했지만, 굳이 내색하진 않았다.

어쨌든 차우린은 연구원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비록 삐삐 한 마리밖에 반응하지 않았지만 놀라워요. 다른 미르나래들과 확실히 다르잖아요? 입으로 냉기를 내뿜는다니 말이에요. 마치 자연계 에스퍼 같잖아요.”

“맞아! 어쩌면 일반인과 에스퍼 같은 차이점일 수도 있겠다! 뇌파 검사 한번 해 보죠!”

뭐야? 끝난 거 아니었어? 연구원 놈들은 차우린을 붙들고 괴수들과 하루 종일 실험을 하더니, 이젠 검사를 해 보자며 에스퍼 파장용 뇌파 검사 기구를 들고 왔다.

졸지에 괴상한 장치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게 된 차우린이 울먹이며 우리를 쳐다봤다.

“오빠…… 나 무서워…….”

하지만 그런 차우린을 다독이는 건 장치를 붙여 대는 연구원이었다.

“괜찮아. 금방 끝나. 삐삐랑 뇌파 검사 한 번만 하고 끝낼게.”

애가 싫어한다고 해도 안 할 생각이 없는 연구원들은 차우린과 괴수를 데리고 어두컴컴한 검사실로 가 버렸다.

깜깜한 곳에서 이상한 기계음을 듣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린애한테는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검사 자체는 그냥 기다리면 끝나기 때문에 별거 없다.

그러나 우진이는 이런 파장 검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차우린만큼이나 놀란 것 같았다.

우진이는 곧바로 연구원들에게 다가가 지금 하는 검사에 대해 물었다.

싸가지 없는 연구원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이거요? 이능력 파장 검사잖아요. 가이드 팀장님이 이런 것도 모르시면 어떻게 해요. 그냥 에스퍼의 특수 뇌파 검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끝납니다.”

연구원은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동안에도 모니터 화면만 쳐다봤다.

우진이와 나도 모니터와 통유리창을 번갈아 봤다.

내가 비록 연구원은 아니지만, 연구소에서 파장 검사는 수십 번을 했다.

저 화면 속의 곡선들이 무슨 뜻인지 대강 알 것 같았다.

저 그래프를 보면서 연구원들은 늘 이상이 없다고 했었다. 차우린도 분명 그럴 것이다.

“결과가 나왔고요. 파장이 좀 특이하네요. 이능력 개화하려는 거 같기도 하고요. 정작 개화하는 건 애가 아니라 미르나래 같지만.”

“네? 개화? 차우린이 에스퍼라는 말이에요?”

나는 뜻밖의 이야기에 당황했다.

그리고 나보다 더 놀란 건 우진이었다.

“그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린이가 에스퍼라고요?”

우진이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내 어깨를 붙잡고 마구 흔들었다.

나는 우진이를 뿌리칠 수 없어서 그냥 흔드는 대로 흔들렸다.

“아, 뭐.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고요. 괴수를 조련하는 이능력도 있던가? 아직 자세한 건 안 나왔으니까 그냥 가만히 기다려 보세요. 여기 에가협이잖아요. 에스퍼 개화 한두 번 봅니까?”

연구원은 우진이와 내가 귀찮다는 듯이 짜증을 냈다.

상당히 재수 없었지만 중요한 건 차우린의 검사 결과였다.

우진이와 나는 얌전히 통유리 안의 차우린을 바라보며 검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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