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변화
오늘도 하루의 시작은 비슷하다.
나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조깅을 나갔다 오니까 말이다.
늘 그랬듯이 조깅 후에 샤워를 하고 우진이를 깨웠다.
새벽녘에 잠을 설치는 것 같더니, 오늘은 한참을 깨워야 겨우 일어났다.
오빠와 같이 겨우 일어난 차우린이 오늘도 칭얼거렸다.
“오빠, 나 머리 아파…….”
오늘의 칭얼거림은 저번보다 심각한 주제였다.
그래서인지 자리에서 일어났어도 반쯤 졸고 있던 우진이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아파? 어디, 어디가? 여기야? 아니면 여기? 열이 조금 있는 거 같긴 한데…….”
우진이는 재빠르게 차우린에게 다가가 이마를 짚어 주고 머리를 이곳저곳 만져 보면서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차우린은 몸 상태가 정말 별로인 모양인지, 우진이의 정성 어린 관심에도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나, 여기…… 머리 아파…… 흑, 으아앙! 아파, 여기 아파!”
결국, 차우린은 아침 댓바람부터 울음보가 터졌다.
새끼 괴수도 차우린을 따라서 울어 대기 시작한 덕분에 훨씬 더 시끄러워졌다.
시끄러운 거랑 별개로, 어린애가 아프다고 우는 걸 보니 안쓰럽긴 했다.
우진이는 어린 동생이 그러는 모습을 보니 거의 넋을 잃었다.
차우린을 품에 안고 다독이던 우진이가 내게 말했다.
“사, 상비약 있나요? 타이레놀이라든가, 해열제 같은…… 얘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우진이는 차우린 때문에 심하게 당황했다. 넋이 나가 중얼거리는 말을 들어 보니, 그동안은 애가 잔병치레 하나 없이 건강했다고 한다.
어린애가 바깥의 험난한 생활을 하면서 그럴 수도 있구나. 차우린 얘 완전 효녀였네.
지금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무튼 애한테 진통제나 해열제를 먹여야 할 것 같은데, 문제가 있었다.
내 방에는 상비약이 없다.
‘그렇지만 난 이능력 때문에 약 기운이 안 듣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았다고. 술에도 안 취하는데 약빨이 돌겠어? 어차피 질병도 안 걸리는데 말이야.’
나는 지레 찔려서 속으로 투덜댔다.
게다가 원래 혼자 지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갑자기 병이 나고 탈이 난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뭐, 우진이가 아팠을 때는…… 원래 좀 연약하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때도 곧장 들쳐 업고 의료 센터에 데려갔으니까 말이다.
사람이 아프면 일단 의료 시설에 가야지.
나는 우진이를 진정시키면서 차우린을 의료 센터에 데려갔다.
***
“음, 별 이상이 없는데.”
이화영이 검사 결과지를 보면서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상이 없다니? 애가 자지러지게 울었는데 어떻게 이상이 없어? 결과지 잘못된 거 아니야?”
“지금까지 검사한 바로는 그렇다니까. 못 미더우면 검사 한 번 더 할래?”
검사를 또 한다는 소리에 우진이 얼굴이 사색이 됐다.
우진이는 나를 보면서 간절한 표정으로 열심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까지 차우린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각종 검사를 하고 겨우 받은 검사 결과였다.
아픈 애를 달래면서 검사 준비를 시키느라 좀 힘든 검사 과정을 겪긴 했다.
또 하라고 하면 못할 건 없긴 한데, 우진이는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우진이의 의사를 존중했다.
“아냐, 됐어. 그럼 애한테 준 약은 뭔데?”
“그냥 진통제 한 알 먹였고 지금 놓고 있는 건 포도당. 애가 많이 지친 거 같아서.”
-삐이이…….
차우린이 검사받는 동안 잠시 치워 두려고 주머니에 넣어 놨던 괴수가 하필이면 지금 울었다. 화영이는 인간 외의 동물을 다 싫어하는데 큰일이다.
“뭐야, 시계 알림 진동에서 알림음으로 바꿨어?”
“어? 어어, 그냥 좀, 일상에 변화를 주려고. 하하하…….”
다행스럽게도 화영이는 주머니에 괴수를 넣어놨다는 생각을 못 한 거 같았다. 이대로 은근슬쩍 넘어가면 되겠다.
“흐음. 너 되게 수상한데? 딱 뭐 숨기는 표정이나 짓고 있고 말이지.”
“아, 아니야~! 내가 숨기긴 뭘 숨긴다고 그래.”
예리한 이화영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나는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괴수의 주둥이를 막았다. 괴수 울음소리만 안 나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애한테 이상이 없는데 왜 아직도 아파하는 거죠? 안 아프다고 할 때까지 진통제를 먹여야 하나요?”
마침 우진이가 타이밍 좋게 화영이한테 말을 걸었다.
“아, 그게 단순히 피곤해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일단 지금 푹 쉬게 두면…….”
이화영은 우진이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 주기 위해 나한테서 멀어졌다.
‘휴~ 큰일 날 뻔했다.’
의료 센터에 괴수를 데려온 걸 들키면 일차적으로 의료국에 신고를 넣을 것이고 의료국에서는 내가 왜 괴수를 들고 다니는지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연구소에 책임을 물을 것이고 가이드국과의 협력 이야기까지 알게 되면 최종 불똥은 우진이에게 튀겠지.
이화영에게는 절대로 들키면 안 된다.
화영이는 애를 하루 입원시키고 경과를 볼 건지 그냥 데려갈 건지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남기고 호출이 왔다며 가버렸다.
나는 우진이의 눈치를 살폈다.
우진이는 하염없이 잠든 차우린을 쳐다봤다.
어린애가 아침부터 아프다고 엉엉 울다가 지쳐 약 기운으로 잠든 모습이 애처롭긴 했다.
그렇지만 그게 우진이 잘못은 아니잖아. 차우린을 걱정하느라 핼쑥해진 우진이도 안쓰러웠다.
우진이는 링거를 맞고 있는 조그만 손등과 하도 울어서 짓무른 눈가를 우울하게 보았다.
겨울 호수 같은 청아한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은 걸 보니 나까지 슬퍼지려 했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우진이와 함께 차우린을 돌봐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일정이 있다.
나는 우진이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우진 씨, 이제 저희 가야 해요. 우린이가 많이 아파서 같이 있어 주고 싶긴 하지만 대외적으로 중요한 일이라서 꼭 가야 해요. 빨리 끝내고 우린이 링거 다 맞을 때쯤 데리러 오자고요.”
“……네. ……가죠.”
우진이는 힘없이 대답하고 나와 함께 병실을 나섰다.
나는 주머니 속의 괴수가 괜히 얄미워서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지금 우진이와 나는 이놈 때문에 연구소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
-삐이이-
-뺙뺙!
괴수 놈은 연구원들의 손길이 기분 좋은 듯이 쉬지 않고 울어 댔다.
하지만 괴수와 달리 연구원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흐음~ 자연 생식인 거로만 특별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죠?”
“색부터가 다르다고 들었는데, 평균적인 비늘색인데요? 눈동자도 그렇고요.”
“새끼 미르나래는 언제나 귀엽긴 한데, 그래도 이건…… 황금 같은 주말을 반납하고 출근해야 할 만큼은 아닌 거 같아요, 소장님.”
연구원들의 불만은 기어이 채수지 소장에게로 향했다.
물론 채수지가 그 불만의 화살을 온전히 받아 낼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우리에게 화살을 돌렸다.
“분명 같이 있던 어린이가 이 미르나래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고 증명했는데, 왜 데려오지 않았죠?”
“아까 말했잖아요. 애가 오늘 많이 아프다니까요.”
“그럼 미르나래의 모습을 유지시켜서라도 왔어야죠. 머리를 만지면 색이 변한다는 거 알면서 왜 그랬어요, 강하나 에스퍼? 저희 연구소 직원들의 황금 같은 일요일을 오로지 일에 대한 열정으로 반납한 건데, 의미가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내가 오늘 만나자고 한 것도 아닌데 억울하다.
나도 황금 같은 휴일을 너희한테 쓰고 있거든요? 오늘 쉬는 날인데 애 병간호도 못 해 주고 만나러 와 줬더니,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우진이는 차우린을 두고 와서 마음이 많이 안 좋은지 말이 없었다.
나는 얘들을 빨리 떨쳐 낼 생각으로 말을 꺼냈다.
“그럼 오늘은 이만 해산해서 휴일을 보내고 일하는 날인 내일 만납시다. 그때는 꼭 색깔 바꿔서 올게요.”
“그건 아니죠! 자연 생식으로 태어난 이 미르나래가 인위적으로 날짜 맞춰서 태어난 미르나래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샅샅이 알아내야 하지 않겠어요? 오히려 외관이 평범해진 지금이 더 측정하기 적합하다고요.”
“맞습니다! 이왕 만나게 된 이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죠!”
이 연구소 사람들은 너무 의욕이 넘쳐서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애가 아프다니까? 이럴 때는 빨리 보내 주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이런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에가협의 연구원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말 본격적으로 괴수를 파헤치기 위해 시간을 투자했다. 이럴 거면 주말 출근시켰다고 왜 불평을 한 건지 모르겠다.
***
연구소 놈들에게 풀려나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이 너무 오래 걸렸다.
연구소 밖으로 나온 우진이는 마음이 급했는지 나를 뒤로하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조금 섭섭하네.’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우진이는 달리기도 빨랐다.
그렇다고 신체 강화 이능력자인 내가 따라잡지 못할 리는 없다.
나는 우진이랑 같이 의료 센터를 향해 뛰어갔다.
벌컥-
마음이 조급했는지, 우진이가 병실 문을 거칠게 열었다.
그 모습이 터프해서 멋있긴 한데, 아무래도 다인실 병실에서 하기에 좀 찔리는 구석은 있었다. 환자가 차우린밖에 없어서 다행이었다.
“오빠!”
어느새 잠에서 깬 차우린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우진이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우진이에게 폭 안기는 모습이 강아지 같았다.
우진이는 차우린을 세게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너 이제 괜찮아? 머리는 어때? 아직도 아파?”
“나 이제 하나도 안 아파. 이것 봐. 언니가 나한테 주스 줬다.”
차우린은 정말 괜찮아졌는지 평소처럼 우진이에게 재잘재잘 말을 했다.
우진이가 얼마나 많이 걱정했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처럼 활기찬 모습이었다.
‘뭐, 그래도 건강하면 된 거겠지.’
나는 차우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우린아, 이제 아프지 마. 너희 오빠가 걱정했잖아. 물론 나도 걱정하고.”
“나 이제 안 아파.”
“그래. 앞으로도 아프지 마.”
“나 안 아파. 나 안 아플 거니까 버리면 안 돼. 알겠지?”
“엥? 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너 아프면 버린다고 했어? 아니잖아.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래?”
-삐이이
“삐삐! 보고 싶었어!”
차우린은 내 질문을 무시하고 주머니 속에서 탈출한 괴수와의 재회를 즐겼다.
섭섭함은 오로지 내 몫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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