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가이드 (21)
이번 임무에서도 우진이에 대한 평가가 매우 좋았다.
사실 대괴수 섬멸팀은 가이드에 배타적인 편이라, 김 국장이 우진이를 데려가라고 했을 때는 걱정스러웠는데 다행이었다.
게다가 우진이가 괴수의 숨통을 끊었다니, 전혀 상상도 못 해 본 엄청난 성과였다.
역시 우진이는 생긴 것만 영웅다운 게 아니라, 진정한 영웅의 현신이다. 여기에 전투형 에스퍼가 몇 명인데 그 에스퍼들의 이능력 하나 없이 총알 세 개로 거대괴수를 잡다니! 이게 영웅이 아니면 뭐가 영웅이겠어?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우진이를 바라봤다.
우진이는 다소 민망해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힐끔거렸다.
대괴수 섬멸팀 사람들이 주변에서 끊임없이 추켜세워 주고 있어서 우진이가 부담스러울 만도 했다. 사람들이 적당히라는 걸 모른다. 우진이가 등급 낮은 가이드라고 그렇게 무시하더니, 이제야 우진이의 유능함을 알아보면서 말이다.
나는 항상 우진이가 잘생기고 착하고 능력까지 갖춘 훌륭한 인재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아줬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이렇게 바글바글하게 모여서 괴롭히는 걸 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우진이가 불편해하잖아. 다들 좀 떨어져!’
나는 우진이를 향해 모여드는 사람들을 은근하게 째려봤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기술팀원인 김지원이 우진이에게 찝쩍거렸다.
"어쩜 그렇게 사격을 잘하세요? 저희 팀이 아무래도 최전선에서 일하는 인력들이라 연구소의 무기들은 빵빵하게 지원받는데 총기류는 잘 안 써서 한 소리 들었거든요. 덕분에 보고서 쓸 거리가 생겼어요. 그래서 말인데 자주 오셔서 총기류 실전 사용 사례를 많이 만들어 주시면 어떨까요? 이번에 사용하신 라이플이랑 마탄이 다 신식인데 실전에 사용된 적은 없었거든요. 이왕이면 후기도 말씀해 주시면 좋고요.”
김지원은 우진이에게 녹음기까지 들이밀며 바짝 붙었다.
나는 우진이를 가려 주면서 김지원을 막기 위해 끼어들었다. 하는 김에 녹음기도 뺏어서 말했다.
"예. 이번에 사용한 신장비에 대한 보고서는 서면으로 올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나는 녹음기를 다시 김지원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보고서는 늦어도 내일까진 줄게요. 이제 가요, 우진 씨~”
나는 김지원을 처리하고 우진이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렇지만 적극적으로 들러붙는 사람은 김지원뿐만이 아니었다.
"사격은 협회 들어오기 전에 배우신 거예요? 군대를 갔다 오신 건가?”
"저랑 페어하는 건 어때요? 저 등급 별로 안 가려요.”
"현장 전문 가이드 그거 하지 말고 그냥 여기 들어오는 건 어때요? 신생팀 관리하는 거 진짜 피곤해요. 지옥이야, 신생 쪽은.”
김지원이 완전 밀착해서 들러붙는 걸 봐서 그런가, 이젠 우진이에게 반경 5cm 간격도 안 되게 거머리들이 붙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게 곧 우진이한테 손까지 닿을 것만 같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나는 우진이 허리를 꼭 끌어안으면서 거머리들을 막았다.
그리고 우진이를 올려다보며 말을 걸었다.
“우진 씨, 오늘 갑자기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정신없었죠? 고생했으니까 이만 돌아갈까요?”
우진이는 내 얼굴을 보고 있느라 주변을 살펴보지 못했다. 나는 이 틈을 이용해 우진이를 끌어안은 채로 사람들에게 멀어져 팀장님이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나는 팀장님한테 큰소리로 인사하면서 퇴근했다.
“저흰 이만 가 볼게요! 보고서는 내일 올리겠습니다!”
***
우진이와 나는 다시 가이드 국장실로 돌아왔다.
여길 오늘 안에 또 오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차우린을 여기에 맡겨 두고 왔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도 마음 같아서는 차우린을 이런 곳에 두고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에 급한 출동 건이라서 애를 맡길 곳이 없었다.
국장실 안으로 들어가니 김 국장이 우릴 반갑게 맞았다.
아니, 실은 우진이한테만 관심이 있는 거 같았지만 말이다.
김 국장이 우진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좋아. 아주 잘했어! 첫 단추부터 순조롭군. 협회 내에서 가장 유능한 팀에서 인상적인 실력을 보였으니, 지원은 얻기 쉽겠어.”
오늘은 우진이가 여러모로 사람을 많이 상대해서 피곤할 것 같았다.
게다가 차우린까지 우진이 다리에 엉겨 붙으며 칭얼댔다.
“오빠, 왜 이제 왔어? 나 배고파.”
-삐이이
거기에 괴수까지 합세해서 시끄럽게 굴었다.
나는 차우린을 안아 들어서 우진이 다리에서 떼어 냈다. 물론 차우린이 내려 달라고 짜증을 내고 차우린 머리 위에 붙어 있는 괴수 놈도 빽빽대며 시끄러웠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우린을 달랬다.
“오늘은 너희 오빠가 엄청 크고 무서운 괴수를 잡느라고 조금 늦었어. 아까 창문으로 커다란 지네 있는 거 너도 봤지?”
“오빠가 그걸 어떻게 잡아? 거짓말 아니야?”
“에이~ 아니야~ 너희 오빠가 멋지게 총으로 빵! 해서 잡았다니까. 멋지지, 그치? 그래서 오늘 오빠 피곤할 테니까 나랑 있자. 알겠지?”
“우웅…….”
그래도 말귀가 잘 통하는 차우린은 순순히 내 품에 안겼다.
우리는 김 국장이 우진이를 놓아줄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이제 완전히 어두워진 창밖으로 하얀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
차우진은 지금 겪는 상황들이 몹시 얼떨떨했다.
그는 분명 강하나가 아닌 이곳, 에가협의 사람들은 자신을 투명 인간을 보듯이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 왔던 것을 똑똑히 기억했다.
차우진은 지금 그에게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있는 김 국장이란 사람마저 처음에는 제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의 호의가 마냥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어 낸 성과라며 순수하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가이드 국장이 내세운 정치용 장기짝이 되었을 때부터 이루어진 변화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등급이 낮은 가이드라고 무시하던 사람들이 야속하긴 했다.
자신이 괴수와 싸우고 있는 강하나를 도와주자는 의견을 냈을 때는 건성으로 듣던 사람들이, 팀장이라고 불리는 에스퍼의 이야기에 곧바로 반응하던 모습은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씁쓸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차우진은 생각을 달리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늘에 사진이 뜬 그날부터 사람들은 그를 차기 팀장이라고 부르며 우대하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무시만 당하는 가이드가 아닌 것이다.
자신의 상황을 골똘히 생각하던 차우진에게 김 국장이 말을 걸었다.
“이 자식이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딴생각하는 거 봐라. 왜? 널 대하는 태도가 손바닥 뒤집듯이 바뀐 게 마음에 안 들어?”
“아, 아닙니다. 그냥, 조금 혼란스러워서요.”
차우진은 김 국장의 예리한 눈썰미에 지레 찔려서 살짝 말을 더듬었다.
김 국장은 그런 그가 못마땅한지 위아래로 그를 훑어봤다.
그 눈길에 소름이 돋는 차우진에게 김 국장이 말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저등급 가이드는 원래 협회 내에서 존중받는 위치는 아니니까 말이야. 그래도 쭉 무시당하는 것보단 지금이 훨씬 편하지 않나? D급 가이드 차우진보단 차기 팀장 차우진이 살기 편하지?”
험상궂은 표정이었던 김 국장은 어쩐지 웃는 낯으로 바뀌어서 그에게 질문했다.
이미 그 부분에 대하여 생각했던 차우진은 곧바로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런 권력을 주신 국장님께는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강하나랑 붙어살더니 싹싹해졌네. 아주 보기 좋아. 지금처럼만 합시다, 우리 차 팀장.”
“그럼 이제 가 봐도 되죠?”
김 국장과 차우진은 갑자기 끼어든 강하나를 돌아봤다.
“애가 너무 피곤해하는 거 같아서요. 아까부터 배고프다고 칭얼대는데 여긴 애한테 먹일 간식거리도 없잖아요. 이제 저희 가 볼게요. 그래도 되죠?”
차우진은 강하나가 원래 격의 없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저돌적인 사람이었는지는 몰라서 약간 놀랐다.
김 국장이 언짢아할까 봐 내심 두려웠지만 다행히도 김 국장은 기분 나쁜 기색이 아니었다.
김 국장은 오히려 웃으면서 차우린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아가. 배 많이 고프냐?”
강하나 품에 안겨 있는 차우린은 대답도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김 국장은 강하나에게 다가가 차우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아가가 제일 고생이 많았네. 놀아 주는 사람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우리 아가 뭐 먹고 싶니?”
“감자튀김.”
“오냐, 아줌마가 감자튀김 사 주마.”
김 국장은 차우린을 쓰다듬고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너흰 이만 퇴근들 해. 다들 고생 많았다. 강하나랑 차 팀장은 나를 따라오고.”
“으, 회식 싫은데, 그냥 보너스로 주면 안 돼요?”
“아기 배고프다잖아. 어차피 식당 갈 거 내가 사 주는 거 먹어.”
“그럼 저 비싼 거 시켜요?”
“네가 언젠 저렴한 거 먹었다고.”
강하나는 김 국장과 티격태격하고는 차우진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한 팔로 차우린을 안고 있던 그는 남는 팔로 차우진에게 팔짱을 꼈다.
워낙 가까이 붙어서 강하나의 부드러운 곱슬머리가 그의 뺨에 닿았다.
강하나는 크고 동그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늘 고생 많았어요. 우진 씨는 언제나 잘할 거예요. 우진 씨의 활약으로 까칠한 저희 팀 사람들이 뿅 하고 반했잖아요. 그래도 우진 씨를 제일 좋아하는 건 저니까 한눈팔면 안 돼요.”
“나도 우리 오빠 좋아해.”
“너랑 나는 종류가 달라서 괜찮아.”
“종류가 뭔데?”
차우진은 제 곁에서 조잘거리는 강하나와 차우린을 바라봤다.
언제나 자신을 바라보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 속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들이 있는 한, 앞으로도 뭐든지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차우진은 강하나의 손을 잡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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