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가이드 (18)
“네? 전투 지원이요? 전 가이드라서요……. 아무래도 전투 지원은 좀 힘들죠……. 그렇지만 전투형 에스퍼 팀원들이 밖에서 지원해 주실 거니까요. 여기서 안전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다 해결될 거예요.”
강하나와 친분이 있어 보이는 가이드와 이야기를 해 봐도 김빠지는 대답뿐이었다.
차우진은 천유하라는 가이드에게 더 감정이 안 좋아졌다.
그렇게 강하나를 반겨 주더니,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나 하는데 어떻게 좋게 보이겠는가.
하지만 강하나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차우진도 마찬가지였다.
차우진은 무력감에 허덕이며 점점 멀어지는 거대한 지네 괴수를 보았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수십 명의 사람을 둘러봤다.
그들의 주변에는 복잡해 보이는 기계들과 다양한 총기류 같은 무기들도 잔뜩 쌓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차우진은 사람들만 설득하면 전투 중인 강하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괴수의 거대한 몸에 깔리거나 부딪힐 강하나를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차우진은 가만히 앉아서 괴수가 더 멀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 섰다.
남모르게 긴장을 풀기 위해 주먹을 한번 쥐었다 편 그는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지금 소수의 팀원이 괴수를 유인해 준 덕분에 괴수가 거주 구역에서 멀어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도와서 괴수를 퇴치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차우진은 가지고 있던 모든 용기와 침착함을 끌어 올려 사람들에게 의견을 펼쳤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글쎄요. 지금 괴수와 대치 중인 에스퍼들이 다 충분히 괴수를 처치하고도 남을 인력들이라서요. 굳이 자원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요?”
“에스퍼의 전투에 어쭙잖게 끼어들면 괜히 방해만 돼요. 전투 중인 에스퍼의 이능력만 낭비하기 십상이라고요.”
“저…… 차기 팀장님의 마음은 알겠지만 일단 저희의 전투 팀원들을 한번 믿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에 차우진은 기가 살짝 꺾였다.
그렇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괴수에게 상처 입은 강하나의 모습이 떠나질 않았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저들의 말을 수용하면 강하나가 크게 다칠 거라는 불안감이 그를 짓눌렀다.
차우진은 다시 한번 꿋꿋하게 사람들에게 의견을 냈다.
“전투 팀원들은 지금도 힘들게 괴수와 사투 중이며 큰 부상을 입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저 거대한 괴수가 사람을 해치는 일만은 최대한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차우진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더 크게 공감할 수 있도록 거대한 괴수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때였다.
콰광-
커다란 굉음과 함께 불꽃이 튀면서 괴수가 몸부림을 쳤다.
비록 먼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누군가 괴수의 얼굴에 폭발을 일으켰다는 건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뭐, 뭐지? 무슨 일이야? 쟤들한테 폭탄이 있었어?”
“곽태원 에스퍼가 같이 갔잖아. 사고만 치던 오세인보다 훨씬 낫지.”
함께 구경하던 이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차우진은 멍하게 폭발이 일어난 곳을 쳐다보았다.
더욱 격렬하게 몸부림을 치는 괴수와 저 불길 속에 강하나가 있을 것이다.
지난번의 상황과 너무 비슷해서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차우진은 안타까움에 멀리 있는 괴수를 향해 다시 손을 뻗었다.
콰광! 쾅! 퍼버벙-
그가 손을 뻗자, 더 화려한 폭발이 연달아 터지며 지옥도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경악에 찬 차우진은 무시무시한 상황에 말을 잃었다.
그러나 주변의 사람들은 그와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우와~ 차기 팀장님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불꽃이 빵빵 터지네요~ 신기하다! 하하하! 우연의 일치지만요~”
차우진은 저 광경을 보고도 밝게 농담을 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그는 화를 낼 요량으로 농담을 한 사람을 쳐다보며 괴수를 가리켰다.
“저 상황이 재밌…….”
콰앙-
농담처럼 차우진이 괴수를 가리키자마자 폭발이 일어났다.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어 허망하게 현장을 바라봤다.
옆에서 농담을 건네던 사람만 깔깔대면서 즐거워했다.
“야, 야. 너 봤어? 저 차기 팀장님이 삿대질만 하면 괴수가 빵빵 터져! 완전 웃겨!”
“에이, 딴 한번 그런 거 갖고 오버하지 마.”
“한번이 아니라니까? 차기 팀장님 한번 또 해 보세요!”
차우진은 자신을 보며 즐거워하는 저 사람을 보니 기분 나빴다.
자신은 심란한데 웃으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너무 얄미웠던 탓이다.
차우진은 저 사람의 말도 부정하면서 제 의견도 내세우기 위해 다시 한번 괴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저 상황을 보고도…….”
쾅! 퍼벙-
하지만 또다시 요란한 폭발음이 귓가를 때렸다.
“와, 진짜네?”
“와하하하핰! 아! 진짜 웃겨! 이쯤 되면 이능력인 거 아니에요?”
차우진은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괴수와 대치 중인 상황은 전혀 좋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수많은 폭발이 일어났음에도 괴수는 너무나 멀쩡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다시 한번 의견을 말했다.
“전투 중인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저렇게 연달아 폭발이 일어났어도 괴수에게 외상이 보이지 않아요. 움직임도 그대로입니다. 이렇게 전투원이 연달아 폭발을 일으킨다는 건 폭발이 아니면 공격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어요!”
“타당한 의견입니다.”
누군가 그의 의견에 맞장구를 치며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검은 안대를 한 중년 여자. 대괴수 섬멸팀의 팀장이었다.
“이렇게 요란하게 공격을 시도했음에도 확실히 괴수의 움직임에 불편함이 없군요. 안목이 좋으십니다. 기술팀은 현장 파악을 위해 드론을 띄우도록!”
차우진은 자신의 의견을 팀장이 긍정해 주는 상황이 약간 얼떨떨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누군가가, 그것도 이 팀의 팀장이 진지하게 받아들여 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회가 만들어졌으니 더욱 적극적으로 강하나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우진은 팀장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캠프에서 전투 팀을 위해 지원 사격을 하는 건 어떨까요? 무기가 충분하니 큰 피해는 주지 못해도 전투원이 다칠 상황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일단은 상황부터 파악하고 생각해 봅시다. 합이 안 맞아서 이쪽으로 괴수의 이목이 집중되면 의미가 없으니.”
팀장은 다시 차우진에게 심드렁한 상태로 되돌아갔다.
그렇지만 차우진은 기죽지 않았다.
자신의 의견이 팀장을 움직일 만큼 타당성이 있으니 상황이 맞으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팀장과 함께 드론으로 촬영된 현장을 보러 이동했다.
***
“정말이네요. 껍질이 단단해서 깨부수기 어려울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금 간 곳 하나 없이 말짱하네요. 그렇다고 다리를 많이 제거한 것도 아니고 말이죠.”
기술팀원이라는 사람이 화면을 보면서 해설하기 시작했다.
그는 반무테 안경을 치켜올리며 드론이 비추는 화면을 계속해서 설명했다.
“흠, 확실히 이대로 두면 저희 전투 팀이 좀 밀리겠어요. 미끼용으로 선출된 거라 세 명뿐이기도 하고. 곽태원 에스퍼의 화력으로 치명상을 못 입힌다면 그냥 생존하기에 급급한 상황이겠네요. 어디 보자, 우리 전투 팀원들은 어디에 있나~”
차우진은 기술팀원의 말을 들으면서 점점 희게 질렸다.
그가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이 현실이 됐다니. 그런 상상을 한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닐까 하는 비이성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점점 비관에 빠지고 있는 그에게 기술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찾았어요! 머리 쪽에서 대치 중입니다.”
차우진은 고개를 들어, 드론을 통해 비치는 화면을 보았다.
화면 속에는 수십 개의 눈이 달린 거대한 지네의 얼굴과 그를 피해서 폐건물에 매달린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도 전투 팀이 괴수에게 타격을 아예 못 준 것은 아니었다.
화면 속의 괴수는 독 엄니가 반토막이 났고 눈알이 터진 건지 지저분한 잔해를 흘리고 있는 눈구멍도 많았다.
그렇다고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슬아슬하게 폐건물에 매달린 사람들은 괴수의 공격을 힘겹게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명이 괴수에게 손을 뻗자, 괴수의 더듬이에 불길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불길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듯했다.
괴수는 그을린 자국 하나 없었으며 되레 불이 붙은 더듬이를 사람들에게 휘둘렀다.
사람들은 그를 피해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로프에 몸을 고정해서 매달려 있는 사람들은 곡예를 하듯 화려하게 몸을 움직였다.
다행히도 직접적인 공격에 당한 사람은 없었지만 피해는 있었다.
한 명의 로프에 불길이 붙은 것이다.
불이 붙은 로프가 끊어지고 사람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차우진은 경악에 찬 눈길로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좀 더 팀장을 빨리 설득했다면 저 사람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차우진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무력하게 화면을 보았다.
그 순간, 다른 로프에서 누군가 순식간에 하강하며 추락하던 사람을 받아 냈다.
때마침 드론이 그 사람을 확대했다.
화면에는 자신이 그토록 걱정하던 강하나의 얼굴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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