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가이드 (17)
박해미랑 채수지는 왔던 것처럼 빠른 속도로 국장실을 나갔다.
김 국장이 딱히 위험한 게 아니면 나가라고 쫓아냈기 때문이다.
채수지는 안하무인인 연구소의 소장이지만 계급 깡패인 국장을 이길 수는 없었다.
국장실에서 두 사람이 나가자, 김 국장은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자면서 우리를 다시 앉혔다.
그렇지만 거창한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아니었다.
김 국장은 우진이에게 팀원으로 꾸리고 싶은 인물이 있냐고 물어봤고, 협회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우진이에게 그런 인물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한 명은 있었다.
“A급 이한새? 그놈은 안 된다.”
하지만 우진이가 아는 유일한 가이드는 영입할 수 없다고 김 국장이 못을 박았다.
“왜, 왜죠? 제가 팀장으로 지목되는데 한새는 왜 팀에 들어올 수도 없는 건가요? 한새도 운동 잘하고 머리 좋아요.”
당황한 우진이가 말까지 더듬으면서 왜 안 되는지를 물어봤다. 김 국장이 거절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나 보다.
하긴 우진이가 팀장으로 지목된 이유도 그냥 젊고 잘생겼다는 이유뿐인데, 비슷한 조건을 갖춘 이한새가 안 된다니 받아들이기 어렵긴 했다.
김 국장도 이를 인지했는지, 설명을 덧붙여 줬다.
“나도 너나 그놈이나 비슷하다는 거 알아. 나도 처음에는 이한새를 팀장으로 만들려고 했으니까.”
이건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럼 연구소에 아까운 인재를 뺏겼다면서 그렇게 욕했던 게 이한새 얘기였어요? 불과 몇 달 전 일이었잖아요.”
나는 김 국장이 자세한 내용도 안 들려주고 푸념만 늘어놓던 일이 떠올라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 당시에 김 국장의 재떨이와 대나무숲 노릇을 했던 걸 떠올리면 나도 꼭 알아야겠다.
이제 지난 일이라 그런지, 김 국장은 허심탄회하게 다 말했다.
“그래. 이한새 얘기 맞아. 그놈도 이제 여기 온 지 일 년이 넘어가지. 처음 봤을 때부터 눈에 띄어서 천천히 비밀리에 그놈의 커리큘럼을 손보고 있었어. 하지만 협회장이 그걸 눈치챈 모양이다.”
김 국장은 어린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그는 담배를 한 모금 들이켜고 나서야 말을 다시 이었다.
“연구소에 가이드가 모자라다는 핑계를 대면서 협회장이 직접 그놈을 연구소로 소속을 옮겨 버리더구나. 연구소로 소속을 옮긴 가이드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고 있지?”
연구소 소속 가이드는 연구소에서 거주하며 연구소의 허락 없이는 밖에도 못 나간다. 소속이 정해지는 순간부터 연구소의 비품처럼 취급되기 때문이다.
내가 전에 가르쳐 주기도 했고 이한새가 말해 주는 것도 있어서 우진이도 가이드가 연구소 소속이 되면 어떻게 지내는지 알 것이다.
어쩌면 이한새의 처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꺼내 주려고 팀원으로 삼고 싶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우진이는 착하니까.
담배를 한 모금 더 들이킨 김 국장이 우진이에게 말했다.
“네 친구가 연구소 소속이 된 건 유감이야. 파장 등급이 높아서 우리 쪽에서도 막을 명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저등급인 게 마음에 들어. 등급이 낮은 탓에 이리저리 휘둘릴 일이 적을 거다. 물론 등급이 낮으면 협회의 인식이 안 좋아서 처음에 고생깨나 하겠다만, 내가 권력이란 날개를 줄 테니 알아서 극복해 봐. 팀장이란 자리는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으니까.”
‘김 국장이 저렇게 상대방에게 호의적으로 굴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김 국장의 새로운 면모를 보고 조금 놀랐다. 나랑은 12년째 아니 이제 13년인가? 아무튼, 그 정도의 시간을 알고 지냈지만, 항상 괴팍한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우진이가 잘생겨서 그런 건가? 하긴 우진이는 스쳐 지나가는 사이일지라도 잘해 주고 싶을 정도로 미남이긴 하지.
나는 우진이의 얼굴을 감상하면서 김 국장이 친절하게 구는 이유를 추론했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세상이 진동했다.
쿠구궁-
약 2초간의 진동이 울리고 난 뒤, 국장실의 경호 인력과 비서가 다가왔다.
“국장님. 대형 괴수가 A 구역의 a 포인트에 출몰했습니다. 협회에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 사람들 덕분에 나는 확신했다.
‘아, 역시 괴수 때문에 생긴 진동이었구나.’
지진보단 괴수의 출연이 훨씬 잦으니까 그럴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늘 그랬듯이, 내 스마트워치도 열심히 울려 댔다.
오랜만의 대괴수 섬멸팀 출동이었다.
***
“하나 씨! 오랜만이에요~”
“안녕하세요, 유하 씨! 잘 지냈어요?”
한 달 넘게 출동이 없다가 오랜만에 모이니, 반가운 얼굴이 많았다. 특히, 천유하 씨는 마지막으로 봤던 게 땅굴에 매장됐다가 구출됐을 때라 그런지 더 반가웠다.
긴급 출동한 터라 브리핑을 듣지 못하고 왔기 때문에, 우리는 브리핑을 기다리며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누가 뒤에서 내 옷깃을 당겼다.
김 국장이 보내서 나랑 같이 온 우진이였다.
우진이가 향기로운 커피처럼 낮고 진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예요?”
그렇지만 어투와 표정에는 초조함이 묻어났다.
낯선 사람이 갑자기 나랑 인사를 나누니까 당황스러웠나 보다. 그럼 낯설지 않게 소개해 주면 되겠지?
“우진 씨, 이쪽은 우리 팀 가이드인 천유하 씨예요. 현장 전문 가이드는 아니지만 대괴수 섬멸팀이라 현장 경험은 풍부하니까 우진 씨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유하 씨, 여기는…….”
“저 알아요! 이번에 차출된 현장 전문 가이드 팀장님이죠? 비전 사진 봤어요. 사진도 멋지지만, 실물이 더 멋있으시네요!”
천유하 씨는 내가 소개하기도 전에 이미 우진이를 알고 있었다. 신년 회의 결과 방송의 파장이 어마어마하구나.
하지만 예의 있는 우진이는 천유하 씨에게 좋게 봐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고, 사인을 해 달라는 천유하 씨에게 사인까지 해 줬다.
‘우진이는 사인도 있구나.’
내심 감탄하고 있는데, 우진이는 천유하 씨가 멀어지자마자 나에게 바짝 붙었다.
“하나 씨랑 같은 팀 가이드면 그것도 하나요?”
“네? 뭐를요?”
우진이가 먼저 다가와 줘서 기뻤지만,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해서 당황했다.
‘뭐지? 뭘 하냐고 물어본 거지? 같은 팀 가이드들이라 같이 조난을 당하는 사이이긴 했는데 그걸 물어보는 건가?’
“어, 음. 그렇지만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에요. 아무래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까, 그냥 불의의 사고고…….”
“그럼 해, 했어요? 아까 그분이랑도?”
우진이가 점점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면서 당황했다.
역시 마음이 여린 우진이에게 조난을 당한 경험 같은 이야기는 하면 안 될 것 같다.
나는 우진이의 허리를 끌어안고 등줄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달래 주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전 여기 멀쩡하게 잘 있잖아요~ 앞으로도 우진 씨랑 같이 즐겁게 지낼 거예요~”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제가 아니라 같은 팀 가이드들이랑 함께하겠죠. 괜찮아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어쩔 수 없죠.”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진이는 나를 떼어 내고 먼저 성큼성큼 가 버렸다.
‘아는 사람도 없고 팀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가 버리면 어떡해, 우진아.’
나는 우진이가 괜한 시비에 걸려 곤란한 상황에 처할까 봐 곧바로 쫓아갔다.
우진이는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확실히 걸어가는 속도도 빨랐다.
하지만 쫓아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는 우진이를 부지런히 쫓아가서 우진이의 허리를 붙잡았다.
우진이가 나에게 장난을 치는 건 상관없지만 진짜로 삐져서 얼굴을 안 보려고 하는 건 싫었다.
나는 우진이의 기분을 풀어 주려고 필사적으로 맹세했다.
“알았어요! 만약의 상황도 안 생기게 노력할게요! 앞으로 절대로 조난되는 상황 안 만들 테니까, 기분 풀어요…….”
“네? 조난이요?”
그런데 우진이는 오히려 내 맹세에 화들짝 놀랐다.
‘왜 놀라는 거지? 조난되는 상황 얘기한 거 아니야?’
나는 멍청하게 우진이 얼굴만 빤히 쳐다봤다.
우진이는 또다시 봄을 알리는 분홍빛 꽃봉오리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진이가 조난 상황을 걱정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겠다.
그렇지만 우진이가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여전히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럼, 우진 씨는 뭘 물어보셨던 거예요? 천유하 씨랑은 전에 같이 조난됐으니 그 얘길 하는 줄 알았죠.”
우진이의 얼굴이 진달래처럼 붉게 물들었다.
우진이는 힘겹게 입술을 떼고 내게 말했다.
“저, 저는…… 그게…….”
우진이는 그 이후로 작고 빠르게 말을 이었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가까이 붙어 있는데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래도 아는 단어가 들린 것 같아서 우진이에게 물어봤다.
“가이딩이요? 가이딩이라고 얘기하신 거 맞아요?”
하지만 단어는 알아들어도 여전히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가이딩은 왜요? 우진 씨, 유하 씨한테 가이딩 배우고 싶어요? 우진 씨, 가이딩 잘하시잖아요. 나도 한번밖에 안 받아 봤지만 여기 가이드들한테 굳이 안 배우셔도 될 것 같아요.”
“아, 아니…… 그게 아니고…… 하나 씨가…… 여기 가이드들이랑…….”
우진이는 내 말을 곧바로 반박했지만, 이번에도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바람에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점점 더 우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우진이에게 물어봤다.
“그러니까, 제가 우리 팀 가이드들이랑 뭘 했냐고 물어본 거죠? 그게 조난 얘기는 아니라는 거고요.”
“왜, 왜 다 들었으면서 계속 모르는 척하는 거예요?! 하나 씨가 여기 가이드들이랑 가이딩해 봤냐고 물어본 거잖아요!”
우진이는 드디어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크게 외쳤다.
나도 그제야 우진이가 하려던 말을 이해했다.
그랬구나. 내가 팀원들에게 가이딩을 받아 봤는지 궁금했구나.
그러나 우진이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큰 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대괴수 섬멸팀의 팀원들도 같이 알게 되었다.
화사한 진달래꽃처럼 물든 우진이가 나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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