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가이드 (16)
오늘은 분명히 주말이지만 김 국장은 오늘도 어김없이 우진이를 호출했다. 원래 주말이든 한밤중이든 자기 내키는 대로 불러 대는 양반이니,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그리고 채수지 소장이 우진이한테 연구 협력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김 국장이 미리 알고 있는 것도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김 국장은 항상 우리 입으로 말하기 전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으니까.
김 국장의 맞은편에 앉은 우진이는 초조해 보였다.
채수지의 요청을 맘대로 거절했는데, 김 국장이 왜 그랬냐고 물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지만 우진이는 말을 멋있게 잘하는 사람이니까, 김 국장에게도 잘 말하겠지.
나는 우진이가 힘을 낼 수 있게 옆에서 손을 잡아 줬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살짝 놀란 우진이가 나를 보더니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이른 봄에 올라오는 목련 꽃봉오리처럼 한없이 순수해 보이면서 어쩐지 수줍어 보이는 그 미소를 보자, 굉장히 단 음식을 먹었을 때처럼 혈당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나도 답례로 마주 웃어 주려고 했는데, 김 국장이 방해했다.
“그러니까! 내가 왜 제안을 거절했는지 물어봤잖아, 이것들아. 연애질을 하지 말고 대답을 해.”
김 국장이 서류 폴더로 탁자를 탁탁 치면서 짜증을 냈다.
까칠한 김 국장의 태도에 우진이가 겁먹을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우진이는 그런 기색 없이 의연했다.
우진이가 차분하게 김 국장의 말에 대답했다.
“아무리 개량된 괴수라고 해도 아직은 괴수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팀원이 구성되지도 않은 데다 팀이 꾸려져도 당장은 서로에 대한 신뢰도 없을 텐데, 또 다른 스트레스 요소를 더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와, 역시 우진이는 생각이 뚜렷하게 다 있고 계획적이었다. 그리고 말도 조리 있게 잘해!
나는 우진이의 멋진 의견에 박수를 치고 싶었지만 김 국장이 날 노려보고 있어서 참았다.
나를 노려보던 김 국장은 다시 우진이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 차 팀장의 의견은 일리가 있어. 팀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한 선택이라니. 팀장으로서 아주 훌륭한 판단이야. 그런데 말이야. 팀장의 역할은 오롯이 팀을 통솔하는 일만이 아니라, 윗선과의 원활한 소통도 있거든. 자네는 내가 이런 말을 꺼내는 게 무슨 이유에서 그렇다고 생각하나?”
“……괴수 연구를 팀에서 도와줘야 하는 건가요? ”
“흠, 의도가 왜곡됐군. 우리는 괴수 연구를 돕는 게 아니야.”
김 국장이 팔짱을 끼며 우진이의 말에 반박했지만 표정은 꽤 부드러웠다. 김 국장은 우진이가 꽤 마음에 드나 보다.
비록, 우진이에게 괴팍하게 굴고 있지만 말이다.
“현장 가이드 팀은 누구보다 눈에 띄어야 해. 그리고 최첨단 기술은 모조리 섭렵하며 현장 가이드 팀의 위주로 돌아가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괴수든, 이능력 장비든 뭐든 첨단 기술은 이 팀을 거쳐 가야 한다는 뜻이지. 협회 내에서 늘 최상의 가치를 지니고 유지해야 해.”
김 국장은 현장 전문 가이드팀이 에가협 내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탄탄하게 잡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은 듯했다.
연구원들이 안정성을 최대한 검증해서 만든 장비만 고르고 골라 받던 예전 현장 전문 가이드팀을 꾸릴 때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그때는 오로지 실력만 갖춘 좀 재수 없는 엘리트팀이었는데.
하긴, 현장 전문 가이드팀이 단순히 실력에만 의지하지 않고 협회 내에서 확고한 권력이 있었더라면 그때 그 사건 같은 일을 안 겪었을 것이다.
2년? 아니 이젠 3년 전인가? 현장 전문 가이드를 다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 임무 말이다.
현장에 에스퍼들이 있는데 굳이 현장 가이드가 필요하냐는 논란이 없었어도 김 국장은 그 사건을 막았을 텐데 말이야. 스스로가 제일 비통했겠지.
아무튼 김 국장은 이번만큼은 현장 전문 가이드가 그런 논란에 휘말리지 못하도록 단단한 권력을 쥐여 줄 생각인 듯싶었다.
“차 팀장. 반드시 기억해. 우리가 연구소의 요청을 받아 줘도 연구소의 실험에 휘둘리겠다는 의미는 아니야. 우린 시대의 흐름을 가장 먼저 받아보는 것뿐이다. 선구자로서 앞장서서 나아가라.”
뭔가 김 국장이 말을 덧붙일 때마다 구차해지는 느낌이지만 당장 우진이가 곤란해지는 건 아니니까 괜찮겠지?
김 국장이 열심히 설파하든 말든 일곱 살 어린이는 새끼 괴수를 가지고 노느라 바빴다.
차우린은 탁자 위에 괴수를 올려 두고 열심히 조몰락거렸다.
차우린의 손길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괴수가 마침내 울음소리를 토해 냈다.
-삐이이이
휘슬보다 작은 소리였지만 김 국장의 주의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그래. 이게 그 괴수의 샘플이라 했지.”
김 국장이 손바닥만 한 괴수한테 손을 뻗었다.
하지만 괴수는 김 국장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대뜸 하악질을 시작했다.
-캬아아악
김 국장이 괴수를 보더니 인상을 쓰며 손을 물렸다.
차우린을 제일 좋아하는 이 괴수는 성격도 차우린을 닮았는지, 멀어져 가는 김 국장의 손을 보면서 끝까지 하악질을 했다.
“분명 인간 친화적으로 개량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까지 사육장에 매번 나갔을 때는 공격성을 보인 놈은 한 마리도 없었어요. 저놈만 유독 저러더라고요.”
나는 나처럼 차우린의 괴수에게 거부당한 김 국장에게 성심껏 대답했다.
“새끼라서 그런 건지, 돌연변이라 그런 건지 답은 나왔대냐?”
“소장 말로는 아직은 정확하게 모르지만 개체 차이 같다고 하더라고요.”
“흠, 그렇단 말이지.”
김 국장은 묘한 표정으로 차우린과 괴수를 번갈아 봤다.
그런 김 국장이 불편했는지 차우린이 말했다.
“아줌마 왜 그래요? 삐삐는 착해요. 그리고 우리 오빠도 착해.”
-삐! 삐잇!
괴수가 차우린을 따라서 짖어댔다. 차우린은 그런 괴수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는지 쓰다듬으면서 예뻐했다. 괴수가 못된 짓을 하는데 이뻐하다니. 차우린 때문에 저 괴수가 더 버릇이 나빠질 거 같다.
그러나 괴수는 버릇만 나빠지는 게 아니라, 상태도 나빠졌다.
차우린의 손가락에 머리를 비비던 괴수는 갑자기 기침을 토하기 시작했다.
“삐삐야! 왜 그래? 아프지 마, 죽으면 안 돼!”
차우린의 외침과 괴수의 기침 소리가 국장실을 가득 채웠다.
차우린만 괴수 걱정을 한 건 아니다. 나랑 김 국장도 괴수가 갑자기 죽는 걸 바라지 않는다.
괴수가 가이드 국장실에서 죽어 버리면 연구소가 가이드국을 좋게 볼일도 없고 나랑 우진이도 평판이 깎일 것이다.
괴수에게 무언의 응원을 보내고 있지만 괴수의 기침은 더욱 격렬해졌다.
기침 소리는 점점 커지고 짧아지더니 괴수가 마침내 무언가를 뱉어 냈다.
톡.
새끼손톱보다 작은 투명한 덩어리가 괴수의 입 밖으로 떨어졌다.
신기해서 멍하니 괴수가 토해 낸 덩어리를 쳐다보는데 김 국장이 내 머리를 때리며 말했다.
“당장 뭔지 알아봐.”
‘그냥 말로 하면 될 걸, 꼭 한번 때리더라.’
나는 속으로 투덜대고 김 국장의 요청에 따라 괴수가 토한 걸 손가락으로 건드려 봤다.
“어라? 이거 차가워요. 대체 이게 뭐지?”
나는 손가락으로 작고 투명한 덩어리를 톡톡 건드렸다. 덩어리는 말랑하지 않고 딱딱했으며 만질 때마다 투명한 액체가 묻어났다. 처음에는 괴수의 타액인가 했으나, 몇 번 건드리니 내 손가락 체온에 녹아 버린 듯 액체만 남았다.
차가운데 체온에 녹는 걸 보면 아마도 저 덩어리의 정체는 얼음이지 않을까?
***
채수지 소장은 연락을 받자마자 곧바로 가이드 국장실로 나타났다.
박해미의 이능력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30초도 안 걸려서 왔다.
박해미와 함께 국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채수지는 인사도 없이 곧바로 괴수의 토사물을 찾았다.
“이건가요? 미르나래의 분비물이?”
“얘 이름은 삐삐예요.”
채수지는 차우린을 무시하고 괴수의 토사물을 면봉으로 찍어 보고 차우린의 손가락에 매달려 있는 괴수도 살펴봤다.
금방 관찰을 끝내고 분석까지 끝낸 채수지가 말했다.
“이건…… 그냥 물이네요? 미르나래의 타액이 섞이긴 했지만 확실해요.”
“처음에 토한 게 얼음이란 말이에요?”
“그런 거겠죠? 얼음을 내뿜는 미르나래라니! 세상에 이게 웬일이야!”
채수지는 발까지 구르며 기뻐했다.
그 정도로 기뻐하는 사람은 채수지뿐이었다. 아니 기쁜 사람이 채수지뿐이었다고 해야 할까?
우리는 그냥 채수지 혼자서 방방 뛰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런 채수지에게 우진이가 질문을 했다.
“괴수가 특별한 능력까지 생겼는데, 괴수를 돌볼 때 주의 사항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역시 우진이는 머리가 좋다. 생각지도 못한 중요하고 꼭 필요한 질문을 하다니.
하지만 채수지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음~ 글쎄요. 아직 데이터가 부족해서 주의 사항까지 만들 정보가 있을까 싶네요. 아직 미르나래가 능력 사용이 미숙하니까 목이 안 막히도록 관리해야 할 듯싶고.”
“아니요. 아무래도 어린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니 괴수의 능력 탓에 위험할까 봐서……”
“아, 그런 이유였군요. 하지만 베테랑 에스퍼랑 함께 지내시니 괜찮지 않을까요? 그렇죠, 강하나 에스퍼?”
채수지의 말에 시선이 모두 나에게로 쏠렸다.
채수지가 너무 재수 없어서 안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데 우진이의 눈빛이 간절했다.
내가 우진이의 기대를 배반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요~ 저만 믿으세요, 우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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