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70화 (70/81)

70.

차우린이 괴수를 죽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에 새끼 괴수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을 맞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괴수가 태어나 버렸기에 이제 숨길 수 없다.

나는 날이 밝자마자 괴수를 들고 연구소에 갔다.

오늘이 주말인 덕분에 다른 일과에서 자유로워 다행이었다.

차우린도 자유로웠기 때문에 나를 따라왔고 우진이도 차우린 때문에 따라왔지만 말이다.

그래도 중요한 건 연구소에 괴수를 돌려주는 일이다.

구레나룻 연구소 직원들이라면 갓 태어난 구레나룻을 보고 차우린을 용서해 줄지도 모른다.

나는 희망을 품고 연구소의 문을 열었다.

“어? 강하나 에스퍼! 웬일이야? 우리 미르나래 상용화에 열정이라도 생겼어?”

그럴리가. 하지만 일단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차우린의 어린이집 가방에 넣어 놨던 괴수를 꺼내서 중요한 말만 꺼냈다.

“어제 내가 데려온 어린애가 괴수 알을 가방에 넣고 갔다가 부화시켰어. 그래서 다시 반납하러 왔어.”

“뭐? 사육장에 알이 있었어? 어머, 갓 태어난 미르나래를 보는 게 얼마 만이야……. 너무 귀엽다! 번식장에서 마지막으로 부화시킨 건 한 달 전이었거든.”

예상대로 이곳 연구원들은 비이성적이라 갓 태어난 새끼 괴수에 홀려서 차우린의 잘못을 묻어 주었다.

그렇지만 궁금하지 않은 정보도 너무 많이 제공해 주었다.

이곳의 괴수들은 연구소에서 번식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사육장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나는 건 처음 봤다든지, 새로 태어난 괴수의 색소가 돌연변이를 일으켰다는 쓰잘데기 없는 정보까지 말이다.

하지만 차우린은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빛냈다.

“그럼, 우리 삐삐는 특별하고 대단해?”

“삐삐가 누군데?”

“내가 데려온 강아지.”

얘는 괴수한테 언제 그런 귀여운 이름을 붙여 줬대?

그렇지만 연구원은 차우린이 괴수를 강아지로 부르든 삐삐라고 부르든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오로지 내 손바닥 위의 괴수만 쳐다봤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예쁠까? 자연 생식으로 태어난 것도 대견한데, 비늘마저 황금빛이던 기존의 미르나래랑 다르게 은빛이야. 눈도 파란색이고. 지금까지 갈색에서 황금, 초록색 눈은 관찰됐지만 파란색은 없었는데.”

나는 괴수를 보면서 점점 흥분하는 연구원이 부담스러웠다.

괴수가 내 손바닥 위에 있으니까 저 사람이 자꾸 나한테 다가오잖아. 손가락에 저 사람 콧김도 닿을 것 같고.

나는 괴수를 아예 연구원 손에 건네주기 위해 남는 손으로 괴수를 붙잡았다.

아니, 붙잡으려 했다. 저놈이 날 물지만 않았다면.

“아야, 이놈이 이제 사람을 무네? 내 손가락 놔, 인마.”

“어? 미르나래가…… 색이, 색이 변했어요! 세상에!”

“나도! 나도 보여 줘!”

내가 괴수에게 손가락을 물렸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차우린은 내 팔에 원숭이처럼 마구 매달리며 괴수를 보여 달라고 떼를 썼다.

“정말이지…… 이 버릇없는 괴수가 뭐가 달라졌다고 이렇게 호들갑이야. 어? 진짜 변했잖아?”

차우린이 매달리는 바람에 다시 본 괴수는 하얗던 비늘이 사육장에 있는 놈들처럼 누런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확실히 신기하긴 했다. 눈까지 갈색으로 바뀌었네. 내 손가락은 아직도 물고 있지만 말이야.

“하나 씨…… 손가락은 괜찮아요?”

오로지 천사 같은 우진이만 나를 걱정해 주었다.

“당연히 괜찮죠~ 걱정하지 마세요, 우진 씨. 이건 그냥 손 한번 가볍게 털면 떨어져요.”

나는 우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괴수가 물고 있는 손을 가볍게 털었다.

보잘것없는 몸뚱아리 크기의 괴수가 드디어 내 손가락을 놓치고 바닥을 향해 굴러떨어졌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괴수의 힘이 더 보잘것없었나 보다.

“안 돼! 삐삐!”

“꺄악! 우리 미르나래가!”

내 주변의 두 사람이 소리를 질러 대는 통에 귀가 따가웠다.

괴수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 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괴수를 받기 위해 손을 뻗으려 했으나, 그 방향에는 차우린이 있었다.

나는 방법을 바꿔 차우린이 직접 괴수를 받아 낼 수 있게 손을 붙들고 받쳐 줬다.

톡-

괴수가 가볍게 차우린의 손바닥 위로 착지했다.

-삐이이.

“와! 내가 잡았어! 오빠도 봤어? 삐삐야, 괜찮아?”

차우린은 괴수를 받아 낸 게 기쁜지 발을 구르며 한껏 상기된 얼굴로 사방에 자랑했다.

내가 차우린의 손을 잡아 주고 있지 않았으면 괴수가 한번 더 떨어졌을 것이다.

“여러분, 보세요! 미르나래의 색이 다시 바뀌었어요!”

오로지 괴수에게만 관심이 있는 연구원이 괴수를 보라며 소리쳤다.

정말 연구원의 말대로 색깔이 바뀌었다.

괴수는 갓 태어났을 때의 모습 그대로 하얀 비늘에 파란 눈으로 돌아왔다.

***

“진짜야? 농담 아니고?”

“진짜지? 내가 키워도 되는 거지?”

“그렇다니까. 나 미르나래 연구소 소장 채수지야. 소장의 권한이니까. 안심해도 된다니까.”

‘아니, 안심은 네가 한 말이 거짓말일 때나 할 수 있는 거지.’

나는 차마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한숨만 푹 내쉬었다.

저 연구소장인지 나발인지 하는 채수지가 내 방에서 괴수를 키우라고 하는데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정확히는 차우린이 괴수를 키웠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일곱 살인 애가 어떻게 키우겠어. 나랑 우진이가 다 떠맡는 거지.

내 속도 모르고 차우린은 괴수에게 젖병 주는 체험을 하느라 바빴다. 손바닥만 한 놈이 뭐 그리 많이 먹는지, 사람용 젖병만 한 걸 받아먹고 있었다.

“그런데 저거 파충류잖아. 파충류도 젖을 먹어?”

“정확히 젖은 아니고. 인공 고기를 갈아서 물에 탄 거야. 머릿수가 많아서 한 마리 한 마리 입에다가 고기를 찢어서 넣어 주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서.”

“그럼 그냥 고기면 아무거나 먹여도 되겠네?”

“그렇지. 괴수잖아.”

어차피 피할 수 없으니 괴수를 제대로 키워 보는 게 낫겠지.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채수지에게 괴수 사육법 강좌를 열심히 들었다. 먹이에 까다롭지 않고 화장실도 가릴 줄 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채수지의 말에 따르면 저놈들이 사실 송곳니가 있는 놈들이다 보니, 입질을 하는 성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차우린은 특별하니 괜찮을 거라는 애매한 조언까지 덧붙여 줬다.

나는 괴수랑 놀고 있는 차우린을 쳐다봤다.

확실히 괴수가 차우린에게 유독 순종적으로 굴기는 했다.

어린아이라서 쓰다듬는 손길이 괴수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상황이 많았는데, 하악질 한번 안 하고 납작 엎드려 있는 괴수의 모습이 희한하긴 했으니까 말이다.

특히 색이 변하는 건 정말 의미를 모르겠다.

채수지 때문에 실험을 해 본 결과, 저 괴수는 2가지 색으로 변한다.

첫 번째 색은 태어났을 때처럼 하얀 비늘에 파란 눈이고, 두 번째 색은 다른 괴수들과 똑같은 누런 비늘에 갈색 눈이다.

그리고 색이 변하는 데는 나름 조건이 있었다.

내가 머리를 만지면 누렇게 변하고 우진이나 채수지가 만지면 색이 변하지 않는다. 한번 누렇게 변하면 우진이나 채수지가 만져도 누런색을 유지한다.

그런데 차우린에게 접촉하면 다시 하얗게 돌아간다.

차우린이 머리를 만지지 않아도 괴수는 하얀색으로 되돌아갔다. 접촉하지 않고 근처에만 있어도 하얗게 되는 걸 보면 나보다는 차우린이 더 괴수에게 특별한 존재처럼 보였다.

차우린과 함께 있으면 내가 머리를 만져도 색이 변하지 않았으니까.

의미 불명의 비늘 염색이라 연구소에서 괴수를 데려가 집중적으로 연구해 줬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연구소장의 생각은 내 바람과 달랐다.

그는 차우린이 괴수와 항상 붙어 지내기를 바랐으니까.

“너무 낭만적이지 않아요? 인간을 위해 태어난 미르나래가 벌써 특별한 인간을 찾아서 유대를 맺다니……. 이건 앞으로도 미르나래가 현장에서도 크게 활약할 징조예요! 그러니까, 현장에서 저희 미르나래랑 함께 활동해 보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잘생긴 차기 팀장님?”

그리고 우진이한테까지 괴수를 활용하라며 꼬드기고 있었다.

“그런 걸 하려면 저 괴수가 뭘 할 수 있는지, 증명을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현장 일이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나는 우진이를 보호하기 위해 둘 사이에 끼어들어, 채수지를 막았다.

하지만 채수지는 소장급인 인물이라 그런지 결코 호락호락하게 물러나지 않았다.

“어머? 증명을 하려면 실험을 해야 하잖아. 우리 연구소가 아무리 시설이 훌륭하다고 해도 외부 필드같이 광활하지는 않다고. 우리 미르나래는 날개를 펴고 하늘을 누벼야 하는데 말이야. 그러니 현장에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당연히 협조를 먼저 받아야지. 안 그래요, 차기 팀장님? 물론 훈련은 충분히 받은 상태인 미르나래들을 내보낼 거예요. 괴수의 힘을 괴수의 힘으로 상대하기. 멋있지 않나요? 현장 가이드에게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채수지는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우진이한테로 눈을 돌려 수작을 부렸다.

오늘만큼은 우진이보다 키가 작은 게 분했다. 채수지가 볼 수 없도록 우진이를 완전히 가려 줘야 했는데.

어쩔 수 없다. 나는 전략을 바꿨다.

“그럼 우리 팀에 협조를 구해도 되잖아! 대괴수 섬멸팀! 여기보다 괴수를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곳이 어딨다고 자꾸 우진이한테 그래!”

“아~ 거기? 거긴 좀, 우리 미르나래 실험을 위해 내보내기는 너무 위험하잖아. 소중한 우리 미르나래가 다치면 어떡해?”

“…….”

정말 상상도 안 해 본 시점이다. 괴수가 그렇게 소중한가?

“그리고 강하나 에스퍼는 그 팀 팀장도 아니잖아. 자기한테 권한이 있기는 해?”

“…….”

이번 건 좀 너무하잖아. 그래도 나 나름 그 팀 에이슨데.

“그래서 저는 우리 차기 팀장님의 의견이 듣고 싶네요? 저희 미르나래와 같이 활동해 보는 건 어떠세요?”

채수지는 나에게 패배감을 잔뜩 안겨 주고 오로지 우진이에게만 매달렸다.

팀장이 아니라고 이렇게 무안을 줘도 되는 거야? 오늘따라 권력이 절실하게 가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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