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69화 (69/81)

69. 가이드 (14)

어떡하지? 올해 들어서 제일 큰 위기가 닥쳤다.

하필이면 연구소 실험 대상을 훔쳐 오다니. 이건 굉장히 큰 문제다.

에가협은 옛날부터 연구소에 많은 투자를 해 온 조직이기 때문이다.

에스퍼 가이드 협회라는 조직이 연구를 위해 설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에가협의 탄생 이야기가 아니다.

괴수의 알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지.

괴수의 알을 훔쳐 온 어린이는 세상모르고 잠들었다.

이제 막 일곱 살이 된 어린애에게 책임을 물으며 몰아세워 봤자 답이 나오는 문제도 아니니, 차우린은 평소 생활 패턴대로 재웠다.

이 꼬맹이의 보호자인 우진이와 나는 잠들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떡하죠? 그냥 지금이라도 사육장으로 가져다 놓을까요?”

“연구원들도 밤잠은 자기 때문에 지금은 잠겨 있을 거예요. 이미 개량에 성공한 개체라서 늦게까지 관찰하는 사람도 없을 거고요.”

연구소에 잠입해서 알을 놓고 올까 하는 생각도 불쑥 들었지만 금방 포기했다.

수많은 보안 프로그램을 뚫는 것도 꽤나 어려운 일일뿐더러, 발각되면 훨씬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연구소에 침입하다가 운 나쁘게 현장에서 걸리면 즉결 폐기 처분이다.

나는 심란한 마음으로 매끈한 괴수의 알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연구소 밖으로 나간 지 한참 됐는데 관련된 연락이 없다는 건, 연구소에서는 알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상황일 수도 있어.’

그렇다. 이건 가능성 있다.

그러니까 지금은……!

“알을 없애 버리면 되겠다!”

나는 해결책을 찾아낸 게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큰 소리로 외쳤다.

깜짝 놀란 우진이가 곧바로 내 입을 막았다.

‘아, 맞다. 차우린이 이제 잠들었지.’

착한 우진이는 내 경솔함을 꾸짖지도 않고 그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없애 버리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보통 연구소에서 실험 대상이 사라지면 곧바로 난리가 나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퇴근한 지도 한참이 됐는데 아무 일도 없잖아요. 연구소는 알의 존재를 모르는 게 분명해요.”

우진이는 내 얘기를 듣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깜짝 놀라는 모습마저 잘생기고 귀엽다.

내가 잠깐 넋 놓고 있는 사이에 우진이가 내게 물었다.

“그럼, 알을 깨 버리면 되는 건가요?”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핵심을 찌르는 똑똑한 우진이 덕분에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알을 없애 버리기 위해 커다란 냄비를 꺼내 왔다.

무정란이면 좋겠다. 그럼 음식물 쓰레기인 척하고 버리기 쉬울 텐데. 하지만 알 속에서 만들어지다 만 괴수가 나와도 잘게 썰어 놓으면 음식물 쓰레기로 둔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전부 다 알을 깨 보면 알게 될 일이다.

냄비 모서리에 알을 박아 넣으려던 참이었다.

“오빠…… 뭐 해?”

“힉…!”

차우린이 자다 말고 일어나서 말을 걸었다.

알을 없애 버리려는 현장을 들키면 난리가 날 테니, 들고 있던 알을 재빨리 냄비 속으로 넣었다.

차우린은 연신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하면서도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졸리면 다시 자면 될 텐데 말이야.

‘그런데 차우린은 지금 비몽사몽인 상태니까 내가 하려는 일이 뭔지 모르지 않을까?’

나는 졸려서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차우린을 힐끗 보고는 다시 냄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 하나 깨부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맨손이면 충분하잖아.

그대로 알에 주먹을 내리치려는 순간이었다.

“안 돼!”

꾸벅꾸벅 졸던 차우린이 별안간 소리를 질렀다.

뭐야, 쟤가 왜 저러지?

나는 깜짝 놀라서 하던 걸 그대로 멈추고 차우린을 돌아봤다.

옆에 있던 우진이도 깜짝 놀라서 차우린을 살펴보았다.

“우린아, 왜 그래? 악몽 꿨어?”

우진이가 다정하게 끌어안으며 달래 줘도 차우린은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내 거 죽이지 마! 살려 달라고 하잖아!”

키가 작아서 안 보일 줄 알았는데, 내가 알을 깨뜨리려고 하는 걸 알았나 보다.

그래도 저걸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

차우린도 이게 괴수 알이라는 걸 알아 두는 게 나을 것이다.

나는 차우린에게 냄비 안을 보여 주며 말했다.

“우린아, 이게 뭐로 보여?”

“내 거. 내 보물. 오늘 멍멍이가 나한테 준 거야.”

“그 보물은 ‘괴수의 알’이야. 오늘 우리가 만난 멍멍이는 괴수고.”

“알이 뭐야?”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해? 알은 새끼가 태어나는 공 같은 거야. 네 보물에서는 괴수가 태어날 거야. 우린이도 괴수 싫지? 괴수 알이랑 마지막 인사해.”

“…….”

나는 우린이가 알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게끔 냄비를 밑으로 내려 줬다.

차우린은 졸려서 그런 건지 멍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알에게 작별 인사를 하듯이 한번 쓰다듬은 차우린은 곧바로 돌변해서 나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안 돼! 죽이지 마! 내 건데 왜 하나 오빠 맘대로 해!”

“아야! 아파. 애초에 네가 안 가져왔으면 내가 죽일 일도 없었잖아.”

“아무튼 안 돼!”

차우린은 나를 때리다가 질린 건지 지친 건지, 나를 팽개치고 냅다 알을 끌어안았다.

“이건 내 거야!”

으지직─

잠깐만. 그런데 뭐 으깨지는 소리 나지 않았어? 나더러 깨뜨리지 말라고 하고선 차우린이 직접 깨뜨린 거야?

-삐이이─

“?!”

나는 갑자기 차우린의 품 안에서 들린 이상한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괴수가 알에서 부화한 것이 틀림없다.

사육장에서 본 저 괴수는 분명 육식이었다.

여차하면 차우린을 공격할 수 있으니 빨리 떼어 내야 한다.

“차우린, 그거 안 죽일게. 놓고 오빠한테 와.”

나는 차우린의 고사리 같은 손을 살며시 떼고 품에 안았다.

차우린은 알에서 나온 진액으로 손이며 옷이며 죄다 축축했다.

“야, 이게 다 뭐야. 너 다시 씻어야겠다. 잠옷도 새거 입어야겠네.”

“저기 봐 봐. 쪼끄만 강아지가 있어.”

차우린은 오로지 갓 태어난 괴수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하긴 씻기고 입히는 건 우리가 해 주니까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구나.

나는 차우린의 성화에 못 이겨 괴수에게 시선을 주었다.

확실히 갓 태어난 놈이라 사육장에서 봤던 놈들보다 훨씬 작았다. 사육장에서 봤던 놈들은 적어도 내 무릎 높이는 왔었는데 저놈은 내 손바닥만 했으니까.

그래봤자 도마뱀이지만 차우린의 눈에는 저놈이 귀여워 보이는 듯했다.

“오빠, 저거 봐! 강아지야!”

-삐이이─

차우린은 아직 진액도 안 마른 괴수가 마음에 드는지 덥석 붙잡고 만지작거렸다.

차우린 덕분에 갓 태어난 저놈이 스트레스로 죽으면 그게 딱 우리가 바라던 바다.

나는 마음속으로 차우린을 응원하며 뒷정리나 했다. 가능하면 저 괴수도 죽어서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면 좋을 텐데.

하지만 우진이는 나와 생각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목을 그렇게 잡으면 얘가 아파해, 우린아. 손바닥으로 발을 받쳐 줘야지. 옳지. 그렇게.”

다정한 우진이는 차우린이 괴수를 죽이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차우린의 정서 교육에는 좋겠지만 우리에겐 괴수가 죽는 편이 훨씬 나았다.

일단 괴수를 제거하기 위해서 차우린을 먼저 재우는 게 낫겠다.

“우린아,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씻고 자자. 괴수랑은 이제 안녕해.”

차우린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유도하는 순간에 줄곧 눈을 감고 있던 괴수가 별안간 눈을 떴다.

새파란 안광을 띠며 날 쳐다보는 게 어쩐지 건방졌다. 째려보는 거야, 뭐야?

그저 해맑은 차우린은 괴수의 건방진 눈초리는 신경도 안 쓰며 좋아했다.

“오빠, 오빠, 이거 봐! 얘 눈 떴어! 나처럼 눈이 파란색이야!”

차우린은 겨우 괴수의 눈알을 보게 된 것 가지고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확실히 차우린과 눈동자 색이 비슷하긴 했다. 아니, 사육장에 있던 놈들과 전체적으로 색이 다르긴 했다. 그동안 봐 왔던 놈들은 누런색이었는데 저놈은 하얬으니까. 그냥 새끼라서 색소 침착이 덜된 거 아니야?

나는 놈에게 다가가 생김새를 요리조리 살펴봤다. 내 손에 죽을 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정도는 제대로 볼 수도 있는 거니까.

-키이이. 캬아아악!

관심을 가져줬더니 이 건방진 괴수는 나에게 하악질을 했다.

“허, 다들 봤어? 우진 씨, 봤어요? 저놈이 나한테 이를 드러냈어! 공격성이 너무 심해서 안 되겠다. 역시 이놈은 폐기 처분해야 해.”

이와중에도 궁금한 건 못 참는 차우린이 질문했다.

“폐기 처분이 뭐야?”

“이제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뜻이야. 괴수랑 충분히 놀았으니, 이제 안녕하고 씻고 자.”

굉장히 친절하게 단어의 뜻과 상황을 알려 줬지만 차우린은 도리어 짜증을 내면서 나를 때렸다.

“아니야! 폐기 처분 안 해! 너나 폐기 처분해!”

“아니,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해? 나 진짜 상처받을 거 같거든?”

차우린의 말을 들은 우진이도 얼굴을 굳히고 차우린에게 말했다.

“차우린. 너보다 나이 많은 사람한테 ‘너’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했잖아. 여기서 네가 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어.”

우진이가 엄하게 차우린을 혼냈지만 뭔가 요점이 어긋난 느낌이다.

‘우진아, 그게 더 중요한 거야? 차우린이 나더러 폐기 처분되라고 했잖아.’

우진이는 잘못한 게 없지만,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억울한 건 차우린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흑, 흑, 으아앙! 아니야~! 나 잘못 안 했어~”

차우린은 야밤에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차우린의 울음소리에 맞춰 새끼 괴수까지 울어 대서 평소보다 훨씬 시끄러웠다.

옆방에서 조용히 하라며 벽까지 두들기고 아주 난장판이다.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통곡의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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