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가이드 (10)
요새 바빠서 우진이의 스마트워치를 아직 재발급 못 한 게 다행이었다. 지금 있었으면 우진이를 아는 사람 모두가 전화를 걸고 난리였을 테니까.
‘우진이는 협회에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괜찮으려나?’
아무튼, 신년 회의 결과 때문에 지금은 많이 곤란한 상황이었다.
하늘에 대문짝만하게 수놓아진 우진이의 잘생긴 얼굴 때문에 주변의 모든 사람이 우리를 쳐다봤기 때문이다.
“저 사람…… 차기 팀장?”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강하나의 남자 아니야?”
“와…… 존나 잘생겼다. 팀장 외모로 뽑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우리 근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우진이의 얼굴도 굳기 시작했다.
이 사태를 빨리 해결해야 했다.
나는 우진이를 등 뒤로 숨기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뭐야?! 왜 다들 이쪽으로 오고 그래? 가던 길 가!”
그렇지만 모여드는 놈들은 물러날 기색이 없었다.
“우리도 차기 팀장이랑 말 좀 섞어 보자.”
“넌 뭔데? 네가 강하나라도 돼?”
내가 강하나 맞거든?! 여기서까지 신원으로 실랑이해야 해?
주변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고 소리를 지른 거였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소리를 듣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게 아닌데…….’
하늘에 띄워놓은 우진이의 얼굴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계속 우진이를 둘러싸며 모여들었다.
나는 우진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뒤를 슬쩍 돌아봤다.
그러나 내 바로 뒤에 있는 건 우진이의 목젖이었다.
‘맞다. 우진이가 나보다 키가 훨씬 크지.’
나는 고개를 돌려 위를 봤다.
그렇게 우진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와, 어떻게 이렇게까지 잘생겼지? 코앞에서 올려다봐도 우진이는 굴욕 각도라는 게 없었다. 이쯤 되면 사람이 아니고 신의 조각상 같은 게 아닐까? 차우진이라는 조각상을 빚고 그걸 자랑하기 위해 세상을 만든 거지.
내가 이렇게 틈새를 타서 감상하는 동안, 신의 조각상이 내게 말을 걸었다.
“우리, 여기서 빨리 벗어나죠…….”
거의 속삭이듯이 말을 한 우진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어쩐지 굴욕 각도가 아닌 게,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랬구나.
생각해보니, 우진이는 나보다 키가 훨씬 더 커서 뒤로 숨겨 봤자 얼굴이 그대로 노출됐다.
우진이가 내 어깨에 하얗고 크고 아름다운 손을 올렸다.
내 어깨를 쥐는 우진이의 손이 잘게 떨렸다.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우진이는 지금 이 상황을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나는 몸을 돌려 우진이를 끌어안았다.
우진이도 얌전히 나에게 안겼다.
나는 그대로 우진이를 들쳐 메고 다리 근육에 힘을 주어 뛰어올랐다.
B급 신체 강화 이능력이 발휘된 덕분에 우리를 둘러싸던 사람들이 손바닥만 하게 보일 정도로 멀어졌다.
우리는 이 방법으로 삽시간에 내 방으로 돌아갔다.
***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우진이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아는 사람이란 것이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을 때부터 저주파 안마기처럼 울려 대던 내 스마트워치는 더 이상 화면이 켜지지 않았다. 배터리가 다 된 모양이다.
그래도 오늘의 공식 일정은 다 끝났으니 괜찮을 것이다.
나는 스마트워치를 무선 충전기 거치대에 올려 두고 차우린을 데리고 왔다.
우진이가 밖에 나가길 부담스러워해서 혼자 다녀왔다.
“왜 오빠는 안 왔어?”
내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차우린이 물었다.
“오빠 오늘 또 아파? 왜 안 왔어? 오빠 집에 없어?”
오늘도 오빠 없다고 울까 봐 과자 사 들고 데리러 갔더니, 이젠 다 먹은 모양이다.
차에선 과자 먹느라, 어린이집에서 뭐 했냐는 물음엔 대꾸도 제대로 안 하더니.
“아니야. 오늘은 오빠 방에 있어. 이제 유명해져서 너 데리러 가기 힘들어져서 그래.”
“‘유명해’가 뭐야?”
차우린은 다 먹은 과자 봉지를 쥐고 흔들면서 쪼르르 달려와, 내 손을 붙잡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우진이랑 꼭 닮은 우린이는 역시 귀엽다.
차우린과 재잘재잘 떠들면서 방으로 돌아가는데 내 방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또 김상혁이다.
“오, 하나! 왔구나!”
김상혁은 손을 흔들면서 열렬하게 나를 반겼다.
“뭐야, 왜 왔어?”
“왜 왔긴~ 오늘 좋은 일 있잖아! 이런 날을 그냥 넘길 수 있어? 방 안에 우진 씨 있지? 빨리 문 열어!”
옆방 사는 놈이라 그런지, 이런 이슈만 생기면 맨날 직접 오더라.
나는 문을 열고 김상혁과 차우린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오늘따라 현관에 신발이 더 많아 보였다.
“야, 왜 이렇게 늦게 와?”
“강하나, 방 많이 꾸몄더라. 네가 직접 꾸민 거 아니지?”
“하나 씨~ 또 만나네요! 방이 아기자기하고 귀여워요.”
분명 우진이 한 명만 들어와 있던 방인데, 3명이 더 있었다.
“박해미! 조승환! 너넨 왜 맨날 노크도 없이 바로 들어와!”
해미와 승환이가 이한새를 옆에 달고 내 방에 있었다.
텔레포트 이능력자 진짜 짜증 나. 얘들은 남의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는다. 맨날 이능 써서 막 들어와. 오늘은 군식구도 달고 와서 더 짜증 나.
나는 다시 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한새에게 물었다.
“그런데 한새 씨는 에스퍼 숙소에 들어와도 괜찮으신 거예요? 연구소 소속 가이드라 함부로 연구소 벗어나면 안 된다고 들었는데.”
“내 옆에 붙어 있으면 괜찮아. 연구소에서 허락받았어.”
“오늘은 우리 해미 덕분에 이렇게 나왔어요~ 해미의 이능으로 연구소 건물에서 숙소 건물로 바로 옮겨 다니고 하니까 괜찮다고 허락해 주더라고요~ 오늘 우진이가 공식적인 유명 인사가 된 날인데 축하해 줘야죠.”
박해미……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다니.
승환이도 겸사겸사 같이 놀러 왔다고 한다.
김상혁에 박해미에 조승환에 이한새까지 성인 4명이 원룸 안으로 들어오니 굉장히 비좁았다.
축하주니 뭐니, 술까지 잔뜩 사 들고 와서 더 좁았다.
김상혁 이놈은 어제 그렇게 퍼마시고 또 마시고 싶나.
“자, 다들 앉으세요! 이 김상혁이 여러분을 위한 특제 안주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자리 잡고 술상 준비들 해.”
이렇게 원룸에 일곱 명이 모여 앉아, 술판을 벌이게 되었다.
***
성인 6명과 어린이 1명이 모여 앉은 술상은 정신없었다.
내 식탁은 4인용이라 구석으로 치워두고 쪼끄만 탁자에 일곱 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더 정신 사나운 것 같기도 했다.
그 와중에 나는 차우린에게 과자를 너무 많이 줬다면서 우진이에게 혼났고, 김상혁은 날 혼내는 우진이를 거들면서 깝죽거렸다.
우진이만 없었어도 김상혁 턱주가리를 한 대 쳤을 텐데.
그래도 이 모임의 분위기는 좋았다.
우리는 모두 경력이 10년이 넘는 에스퍼들인지라, ‘현장 전문 가이드’의 부활을 반겼다. 확실히 현장 전문 가이드가 존재할 때 현장팀의 생존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정작, 당사자인 우진이는 얼떨떨해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우진이는 멋쩍어하는 얼굴도 귀엽다. 나는 헤실헤실 웃으며 분위기를 즐겼다. 술 취한 기분을 즐기지 못하니, 술자리의 분위기라도 최대한 즐겨야 한다.
나의 금강불괴의 이능력, 주어진 신체의 정상 반응을 위해 물리적 충격을 무시하는 이능력은 독소도 흡수하지 못하도록 막아 준다.
그래서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할 수가 없다.
한 번도 술에 취했다는 감각을 느껴 본 적이 없어도 아쉽진 않지만 늘 뒤처리 담당이 되는 건 귀찮긴 하다.
분위기가 얼큰하게 달아오를 무렵, 조승환이 말했다.
“이제 술만 마시는 거도 지겨우니까 게임이라도 같이 하자. 내가 할리갈리 가져왔어.”
“이열~ 조승환이! 센스 있는데?”
“게임 나도 할래!”
승환이가 카드랑 탁상용 벨을 꺼내자, 김상혁과 차우린이 격하게 반겼다.
하긴 우린이는 어른들이 떠들기만 하는 자리에서 많이 심심했을 거다. 다 같이 즐길 거리가 있으면 좋지.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할리갈리가 뭔데?”
난 저게 무슨 게임인지 모른다.
“엥? 하나, 너 할리갈리 안 해 봤어?”
김상혁이 멍청이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왜 그렇게 봐? 모를 수도 있지.
재수 없는 김상혁과 상반되게도 우진이가 천사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가르쳐 줄게요, 하나 씨. 별로 안 어려워요.”
“맞아 맞아~ 되게 간단한 게임이에요.”
하지만 이한새가 금붕어 똥처럼 따라붙는 건 거슬렸다.
‘얘는 왜 계속 우진이 옆에 꼭 붙어 있고 난리람?’
이한새 때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데, 박해미가 끼어들었다.
“됐어. 그냥 가르쳐 주지 말고 하라고 해. 쟤가 규칙 알면 게임 재미없어.”
“그건 그래. 그냥 넌 적당히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거 보면서 따라 해.”
박해미에 이어서 조승환까지 가세했다. 그리고 김상혁도 빠지지 않았다.
“맞아 맞아! 강하나가 제대로 끼어들면 생태계 교란종이라고! 넌 그냥 핸디캡 껴안고 해. 매너 있게.”
아니, 그런데 친구라는 게 뭐 이런 애들만 있지? 얘네 사실 대련 대회에서도 내가 지는 쪽에 돈 걸고 있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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