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가이드 (7)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예술가가 조각해 놓은 천사처럼 생긴 우진이는 마음씨도 천사처럼 너무 고왔다.
너무 고와서 나를 상대로 삼단봉을 휘두르지 못했다.
내가 삼단봉을 내 목덜미에 휘두르라고 목을 내밀었지만, 우진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전 사람한테 이런 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하나 씨도 이러지 마세요.”
“어…… 그래도, 조금이라도 감각을 익혀 보는 편이 좋을 텐데요? 저 튼튼해서 괜찮아요. 이게 고압 전류도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요.”
“사람은 220 볼트에 감전돼도 죽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건, 1000 볼트라면서요?! 이런 걸 어떻게 사람 목에다 휘두릅니까? 이런 일 시키지 마세요!”
나는 고압 전류에 지져도 안 죽는데……. 하지만 우진이가 걱정해 주는 게 싫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진이가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을 그대로 따랐다.
나는 내 삼단봉을 다시 보관함에 넣고 우진이에게 갔다.
“우진 씨 말이 맞아요. 사람한테 이런 걸 휘두르면 안 되죠~ 이런 무기는 말 안 듣는 괴수한테나 휘두르자고요.”
나는 우진이의 말에 맞장구치며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갑자기 달라붙어서 불편해할까?’
살짝 걱정이 든 나는 우진이의 눈치를 살폈다.
우진이는 살짝 얼굴이 빨개진 채로 나를 외면했다.
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보니, 괜찮은 모양이다.
나는 더 과감하게 우진한테 팔짱을 꼈다.
“!!”
우진이는 몸을 굳혔지만, 팔짱을 뿌리치지 않았다.
우진이는 아예 내가 없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굴은 방향으로 가렸지만, 귀 끝이 새빨개진 건 숨겨지지 않았다. 정말 귀엽다.
멋지고 잘생기고 예쁘고 귀여운 우진이랑 팔짱을 끼고 걸어가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헤헤헷.”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나도 모르게 우진이의 팔을 더 꼭 끌어안았다.
우진이의 귀가 더 빨갛게 물들었다. 마치 하얀 장미꽃잎에 빨간 물감을 칠해 놓은 모습 같다. 어쩜 우진이는 귀도 잘생겼을까?
우리는 사이좋게 팔짱을 낀 채로 다음 사육장으로 이동했다.
***
“……그래서 여러분은 이 통을 들고 괴수한테 가서 추이를 봐주시면 됩니다. 저기요, 듣고 있으신 거죠?”
설명을 하던 연구원이 우진이를 콕 집어서 말했다.
나도 우진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진이는 아직도 살짝 발그레한 얼굴로 멍하게 서 있었다.
나는 그런 우진이가 걱정돼서 우진이의 손을 잡았다.
그랬더니 우진이가 화들짝 놀랐다.
“아, 네…… 드, 듣고 있습니다.”
“우진 씨, 괜찮아요?”
나는 우진이가 열이 있는 건 아닌지, 이마를 짚어 봤다.
그러자, 우진이가 또다시 놀라서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가 발을 헛디뎠다. 은근 허술한 것도 귀엽다니까.
내가 우진이를 잡아 주고 다친 데는 없는지 봐주고 있었는데 연구원이 헛기침을 하며 이목을 끌었다.
“크흠, 거기 두 분. 사이가 좋은 건 알겠으니까, 그쯤 하시고요. 맡은 일은 잘 부탁드립니다.”
연구원은 몸을 돌려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우진이랑 내 몫의 괴수 먹이통을 들고 연구원을 따라갔다.
내 뒤를 따라오는 우진이를 슬쩍 봤더니 역시 얼굴이 또 빨개져 있었다.
***
이번에 우리가 할 일은 괴수의 공격성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이번 괴수는 처음에 봤던 놈들이랑 조금 다르다.
나름대로 협회에서는 괴수를 길들이는 방법을 연구 중인데, 이 괴수들이 바로 그 연구의 대상이다.
이놈들은 연구소의 기술력으로 개량된 괴수지만, 괴수라서 먹이 배급은 기계를 통해서 했었다.
그러나 연구소는 이번에 연구의 성과가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알아보겠다고 하면서 ‘사람이 직접 먹이를 배급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실험해 보겠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나와 우진이는 괴수의 먹이통을 들고 괴수 사육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단둘이서 말이다.
[여러분, 출입문 근처에 서성거리지 마시고 조금 더 깊숙이 안으로 들어가 주세요.]
사육장 벽에 달린 스피커에서 연구원 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연구원의 목소리를 들은 우진이는 굳은 표정으로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사육장의 안쪽에서도 연구원의 목소리를 듣고 반응을 보였다.
-끼기기기기기
사육 중인 괴수의 울음소리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옹기종기 모여 있는 듯한 그림자들 모습으로 번쩍이는 안광들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우진이가 안색을 굳히며 바짝 긴장했다.
안쓰러운 모습에 우진이 등을 토닥여 줄랬는데, 괴수들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
연구소의 개량은 정말 대단했다.
밖이었다면 사람의 살점을 물어뜯었을 녀석들이 가축처럼 얌전히 던져 주는 먹이나 받아먹었다.
인공 고기 간 걸 한 삽 가득 퍼서 바닥에 뿌려 주니, 괴수들이 끽끽 대면서 모여들었다.
먹이에 미쳐서 열심히 바닥을 쪼아 대는 저런 모습을 보면 괴수가 아니라 닭처럼 보이기도 했다.
기껏해야 무릎 높이밖에 안 오고, 꼬리랑 주둥이도 기다란 게 실루엣이 비슷하다. 발 모양도 그렇고 날개까지 달렸으니까 멀리서 보면 장닭이랑 헷갈릴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이놈들은 조류보단 파충류에 가까워 보이지만 말이다.
나는 잡생각을 하며 괴수 먹이를 한 삽 더 떠서 뿌렸다. 안 주면 이놈들이 끽끽 대면서 귀따갑게 굴기 때문에 놈들이 원하는 대로 뿌려 주는 게 이로운 것 같았다.
비록, 시끄럽게 울어 대긴 하지만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건지, 먹이를 달라고 달려들지는 않았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히익?! 오지 마! 저리 가!”
옆에서는 우진이의 가련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옆을 돌아봤다.
내 앞에서는 얌전히 울기만 하던 놈들이 우진이에게는 뛰어들고 난리가 났다.
내 무릎까지 밖에 안 되는 크기의 놈들이 뛰어오르니, 우진이의 얼굴 높이까지 왔다.
얼굴 근처까지 뛰어오르는 괴수라니 충분히 위협적이다. 우진이가 겁먹을 만해.
나는 우진이를 도와주기 위해 다가갔다.
그러자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우진이 앞에서는 뛰고 부딪히고 난리를 피웠던 괴수들이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순식간에 얌전해진 것이다.
‘뭐지? 이놈들 왜 갑자기 날 봐? 경계하는 기색인 건 아닌데.’
목표를 바꿔서 나에게 한 번에 달려들려는 건가 경계했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놈들은 바닥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대가리를 비볐다. 하는 짓을 보니 공격할 생각은 당연히 없고 물러나겠다는 행동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괴수들이 자발적으로 물러나 준다면 환영할 일이다.
나는 우진이 몫의 먹이 배급까지 모두 끝내고 사육장을 나왔다.
***
“어떠셨나요? 저희 ‘미르나래’를 만나 보신 소감이?”
“너무 귀엽고 순하지 않나요? 저희도 직접 교감하고 싶은데 아직 허가가 안 나와서요. 아까 한 번 만져 보셨죠? 어땠어요?”
사육장 전용의 관제실로 왔더니, 연구원들이 모여서 질문을 쏟아 냈다. 저기요, 아직 먹이통도 안 치웠어요.
하지만 연구원들의 관심은 내 편의가 아니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이 연구하는 괴수한테만 관심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 안위에 지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빨리 쫓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이들이 원하는 바를 빨리 이루어 주고 쫓아내기 위해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미르나래’가 뭔데요?”
연구원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아무래도 질문을 잘못한 것 같다.
“방금 만나고 오셨잖아요! 우리의 ‘미르나래’! 우리 한국지부가 자체적으로 만들어 낸 인간 친화적 괴수요!”
“에가협 ‘한. 국. 지. 부’가 자체적으로 만들었다는 게 특히 중요하죠! 본부의 지원 없이, 다른 지부의 도움이나 간섭 없이 저희끼리 해낸 거라고요! 오로지 이곳에만 있는 아이들인 거예요~”
“진짜 다른 지부의 간섭을 안 받는다는 게 얼마나 편안한데요. 그만큼 한국지부 스스로가 다 감당해야 하는 건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죠!”
연구원들은 신이 나서 이것저것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역시 질문을 잘못 던졌다.
다들 에가협 한국지부가 자체적으로 괴수를 개량했다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듯했지만, 난 한국지부에서 자체적으로 개량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감흥이 없었다.
5년 전에 다른 지부와의 연락이 다 끊겼는데 어떻게 지원을 받을 것이고 간섭을 받겠는가.
내 개인적인 생각과는 상관없이 연구원들의 수다는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저희가 생각을 한 거죠. 일단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소형 괴수를 쓰는 게 낫다. 가능한 외형도 인간에게 친숙한 모습으로 하자. 그렇게 만들어진 거죠, 저 외모가! 자그마한데도 위엄 있지 않습니까? 설화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용’ 같잖아요!”
“기동력을 위해서 날개까지 달았죠. 옛날의 보라매처럼 길들이면 현장팀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죠~ 에가협 한국지부의 꿈과 희망이 될 ‘날개 달린 용’! 그래서 이름도 ‘미르나래’라고 지은 거죠~ 정말 뜻깊지 않습니까?”
“아주 한국적이고 멋지죠~”
연구원들은 자기들끼리 신명 나게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즐거워했다.
‘당신들이 한국적이라면서 이름 지은 미르나래는 날개 달리고 뒷다리가 튼튼한 갈라파고스 도마뱀이던데, 대체 어디가 한국적이라는 거야? 딱 봐도 서양스러워. 걔들은.’
그리고 연구원들은 대체 얼마나 지나야 나랑 우진이가 한마디도 안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까?
나는 아직도 손에 괴수 먹이통을 들고 있다. 그나마 내가 우진이 것까지 들고 있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진작에 우진이 팔이 떨어졌을 것이다.
“…….”
연구원 놈들의 수다는 끝날 줄을 몰랐다.
언제 끼어들어서 끊을까 하고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우진이가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이만 가 봐도 될까요? 동생을 데리러 갈 시간이 다 되어서요.”
아, 맞다. 차우린 데리러 가야 했지. 깜빡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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