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가이드 (6)
채서영이 시키는 일은 유별나지 않았다.
그냥, 평범하게 괴수 사육소로 일하러 오면 하는 일이었다.
사육장 청소하게 괴수를 다른 장으로 옮기는 일이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괴수가 내게 달려드는 일은 정말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문제로 취급되지도 않는다.
크르르르릉!
그러니까 괴성을 지르며, 분홍빛 잇몸과 누렇고 까만 송곳니 수십 개와 함께 달려드는 저 괴수의 등장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침을 질질 흘리며 덤벼드는 괴수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마자 올려 차기로 괴수의 턱주가리를 걷어찼다.
내 발에 아래턱을 제대로 걷어차인 괴수는 고개를 천장을 향해 치켜올리더니 몸 전체가 살짝 떠올랐다.
괴수가 입에서 질질 흘리던 침이 수원지의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폭포수 같은 물줄기를 그리며 떨어졌다.
-치이익
강한 산성의 괴수 침이 바닥에 닿으며 주변을 녹였다.
그리고 뒤이어
쿵!
커다란 괴수의 몸이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괴수의 침이 바닥을 녹이는 냄새가 지독했다. 내 옷에 묻은 건 아니겠지?
나는 요리조리 몸을 돌려서 옷에 괴수의 타액이 묻었는지 살펴봤다.
다행스럽게도 옷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뒤에 있는 우진이를 돌아봤다.
코 앞에 있는 나한테도 안 묻었으니까, 한참 떨어진 우진이는 당연히 피해가 없을 거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우진이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내 뒤에서 2m 정도 떨어져 있었으니까.
지척에 있는 터라, 우진이의 잘생긴 얼굴이 잘 보이는 건 좋았다.
우진이의 표정이 경악에 차 있는 건 좀 그랬지만.
‘그런데 우진이가 왜 그런 표정이지? 혹시 괴수 침이 튄 건가?’
어디 다치기라도 한 건지 물어보려던 차에, 우진이가 먼저 말을 했다.
“힘이…… 굉장하시네요…….”
“그야, 저는 신체 강화 이능 B급이잖아요~ 헤헤.”
나는 우진이의 감탄에 웃음이 절로 났다. 우진이의 표정이 얼떨떨해 보이긴 했지만, 원래 사람은 가끔씩 얼굴 근육이 부자연스러울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감탄하면서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저기요! 사육장 청소하려고 괴수 옮겨 달라고 한 건데, 괴수를 쓰러뜨리기만 하면 어떡해요? 옆의 장으로 마저 옮겨 주세요.”
“아, 예~ 할게요, 합니다~”
‘우진이랑 한마디 나눴을 뿐인데 되게 뭐라 하네.’
나는 구시렁대면서 괴수의 뒷다리를 잡고 질질 끌었다. 사육장에서 같이 지내던 두 마리는 공격성을 보이지 않고, 순순히 내 손에 끌려가는 놈을 따라왔다.
나는 무사히 괴수 3마리를 죄다 몰아넣고 사육장의 문을 잠갔다. 사육소 청소는 여기 직원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새로운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내 옆에 있어야 할 우진이가 보이지 않았다.
‘우진이는 어디 간 거지?’
우진이를 찾으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더니, 아까 나한테 짜증 내던 놈이 다시 짜증을 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세요, 가이드님! 그렇게 살살 문대면 그 얼룩이 닦입니까? 힘 좀 팍팍 써 보세요. 허리에 힘 뽝! 주고! 키는 멀대 같은 분이 대걸레에 매달리면 어떡합니까? 대걸레에 힘을 주고 밀어야죠!”
귀 따가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구박을 받으며 밀대로 걸레질을 하는 우진이가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어이가 없어진 나는 당장 그쪽으로 뛰어가서 우진이 손에 있던 밀대를 뺏었다.
“뭐 하는 거예요?! 가이드가 청소 대리 인력도 아닌데 왜 이런 거 시켜요? 그것도 계속 구박만 하면서 말이야. 가이드가 무슨 신데렐라예요? 너는 계모고?”
“그럼 D급 가이드에게 뭔 일을 시켜요? 괴수를 옮길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괴수를 제압할 힘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방금까지만 해도 멀뚱히 서 있기만 했잖아요. 여기 놀러 온 거도 아닌데 일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신데렐라는 무슨, 하는 거 보면 완전 놀부네.”
우진이한테 놀부라니!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해?!
“아, 일할 거거든요?! 그런데 청소 인력으로 온 거 아니잖아요, 괴수 관리 도우러 온 거지! 이거 사육소 연구원의 권력 남용이에요. 중앙에 항의 넣을 거야!”
“예, 넣을 거면 넣으십쇼. 근데 아무것도 안 하고 멀뚱히 있을 거면 나가세요. 방해됩니다.”
“괴수 제압 같이 할 거예요! 그러니까 사육장 청소는 그쪽이 하라고요.”
나는 우진이한테 뺏은 대걸레를 저 싸가지 없는 연구원에게 떠넘겼다.
그리고 우진이의 손을 잡고 사육장을 빠져나왔다.
***
사육장 외벽으로 나온 나는 우진이의 손을 놔주었다. 우진이에게 줄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육장 외벽에 있는 사각형 모양의 틈을 주먹으로 살짝 쳤다.
-끼익
사각형 모양의 뚜껑이 열리면서 안에 들어 있는 호신용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다 뭐예요?”
“이건 원래 우리 같은 괴수 제압 인력이 사용하라고 사육장마다 배치된 호신용품이에요. 전 딱히 필요가 없어서 잘 안 쓰기 때문에 안 꺼냈는데, 우진 씨는 사용하는 게 좋겠어요.”
나는 보관함 뚜껑을 활짝 젖혔다. 보관함 내부에는 딱 4개의 삼단봉만 들어 있었다. 협회는 어지간한 무력 문제는 죄다 에스퍼한테 넘겨서 그런 건지, 은근히 내부에서는 무기를 못 쓰게 한다.
나는 가장 새것처럼 보이는 삼단봉을 꺼내서 우진이에게 건넸다.
우진이는 어정쩡하게 나에게서 삼단봉을 건네받았다.
‘하하… 우진아, 네가 지금 가슴팍으로 향하게 놓은 쪽은 삼단봉의 머리야. 그 상태로 휘두르면 그대로 삼단봉에 맞아.’
아무래도 우진이는 삼단봉을 써 본 적이 없는 듯했다. 저대로 두면 괴수보다 먼저 우진이가 삼단봉에 제압당할 것이다.
다음 사육장으로 이동하기 전에 우진이에게 사용법을 알려 줘야겠다.
나는 보관함에서 삼단봉 하나를 꺼내 우진이에게 보여 줬다.
“우진 씨, 이건 ‘삼단봉’이라고 불리는 무기예요. 이쪽, 살짝 튀어나온 부분이 머리고요. 여길 바깥으로 향하게 해서 휘두르면, 이렇게 봉이 삼단 형태로 길어져요.”
내 시범을 본 우진이는 드디어 올바른 방향으로 삼단봉을 쥐었다.
그리고 나를 따라 절도 있게 삼단봉을 휘두르는 모습이 정말, 아주, 진짜 멋있었다.
그냥 한번 휘두르는 모습도 완벽한 우진이가 삼단봉을 100% 활용하지 못하면 안 되겠지? 나는 에가협의 특제 삼단봉의 기능을 우진이한테 가르쳐 주기로 마음먹었다.
연구소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거니까, 우진이도 알아 두는 게 좋을 것이다.
“우와~ 우진 씨 너무 멋있어요! 이제 삼단봉에 있는 전기 충격기 기능까지 쓸 수 있으면 완벽하겠네요. 전류 작동 버튼은 손잡이 윗부분에 있으니까 그걸 누르면 돼요. 네, 맞아요. 거기. 꾹~ 누르면 돼요.”
우진이가 제대로 버튼을 눌렀고, 나는 한 발짝 멀리 떨어졌다.
파지직─
삼단봉에 전류가 흐르며 스파크가 튀었다.
역시 우진이는 한번 말해 주면 찰떡같이 잘 알아듣는다. 난 우진이에게 박수를 쳐 주며 칭찬했다.
“와~ 잘했어요. 이제 그걸 다루는 방법을 알려 드릴게요.”
나는 내가 들고 있던 삼단봉의 전압 버튼을 눌렀다. 내 삼단봉도 우진이 것과 마찬가지로 스파크가 튀었다.
“사육소의 삼단봉은 여기서 기르는 괴수를 제압하는데 주로 써요. 그래서 괴수를 한방에 해치울 정도의 전압은 아니지만, 기절시킬 정도로 1000 볼트는 흐르거든요. 이렇게 전원을 켜면 전류가 흐르는 게 반짝반짝하고 잘 보이죠?”
나는 전류가 흘러서 반짝이는 삼단봉을 흔들며 우진이에게 물었다.
우진이는 약간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나는 착한 학생인 우진이에게 마저 설명을 해 주었다.
“여기 괴수들이 삼단봉으로 맞아 본 경험이 많아요. 이렇게 삼단봉에 전류가 흐르는 걸 보면 가까이 안 올 거예요. 그런데 저희 일이 괴수를 제압하는 거다 보니, 이게 방해가 될 때가 많거든요. 괴수한테 가서 이걸로 때려야 하는데 괴수가 가까이 안 오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쓰는 기술이 있어요.”
나는 우진이 눈앞에서 삼단봉의 전기를 껐다.
“괴수가 방심하고 다가오도록 이렇게 버튼을 끄는 거예요. 괴수들이 연구원들이랑 붙어살아서 그런가 영악하거든요. 전기 꺼진 삼단봉은 안 무서워해요. 그렇게 방심시켜서 다가오면 이렇게!”
나는 삼단봉의 전기를 키면서 빠르게 삼단봉을 휘둘렀다.
“괴수 몰래 감전시켜서 제압하면 돼요. 안 보는 사이에 빨리 후려치는 게 핵심이죠. 그런데 사육장에서 오래된 괴수는 아예 삼단봉 근처에 안 오거든요. 그래서 아예 삼단봉을 접어서 숨기고 다니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빠르게 후려치기는 좀 어렵게 되지만요.”
나는 삼단봉을 접었다가 전기를 켜면서 휘두르는 것도 보여 줬다.
이건 초보자가 하기엔 좀 힘든 동작이다.
실상 따지면 단순하지만, 괴수 제압은 한순간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요령이 필요한 손동작이 생기면 성공하기 어렵다.
실제로 이 방법을 시도하다가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
나랑 있는 동안에는 우진이가 다칠 일은 없겠지만, 잠깐 떨어지는 순간에 또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모르는 거잖아.
난 저번처럼 우진이가 또 다치는 건 보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나는 우진이에게 실전 연습을 시키기로 했다.
“삼단봉을 접었다가 한 번에 펴서 공격하는 건 지금 여기서 연습을 살짝 하고 갈게요. 한번 해 볼래요?”
“이, 이렇게요?”
우진이는 내가 설명해 준대로 삼단봉을 접었다가 전압 버튼을 누르며 휘둘렀다.
“……!!”
한 번에 성공했다. 역시 나의 우진이다.
나는 우진이의 멋진 모습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박수갈채를 쳤다.
“우와~! 맞아요! 그렇게요! 그대로 다섯 번만 휘둘러 보고 실전 감각용으로 저한테 한번 휘둘러 보세요.”
“……네? 이걸, 하나 씨한테요?”
마음 착한 우진이는 나한테 휘둘러 보라는 말에 크게 당황했다.
그렇지만 우진이도 이런 현장 감각을 많이 익혀 보는 게 좋으니까 나는 우진이를 독려했다.
“네, 그걸로 타격감을 느껴 봐야 실전에서 당황을 덜하죠. 여기 목덜미 쪽으로 내리치면 좋아요. 그쪽이 효과가 좋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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