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가이드 (4)
중앙연구 센터는 내가 맨날 수업을 하는 연구 센터-a동의 또 다른 이름이다.
중앙연구 센터는 건물이 독특하게 생겨서 3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가장 안쪽이면서 밀폐된 공간인 가이드 거주 구역, 그 옆에는 최첨단 실험 장비 시설과 S급 에스퍼들의 전용 시설이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여러 연구소들이 밀집되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건물이지만 구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각각 다르다.
평소에 내가 수업하러 가는 곳인 172호는 S급 에스퍼 전용 시설 근처의 단련실 중 하나다. 가이드 거주 구역의 입구도 가까운 편이다.
그러나 지금 가는 연구소 밀집 구역은 같은 건물이지만 입구가 정반대에 있다.
중앙연구 센터의 연구소는 기밀을 위해서 외부랑 단절하는 곳도 많기 때문에,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곳에 출입구를 설치한다고 한다.
그래 봤자, 그놈의 기밀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만 말이다.
12년 차 베테랑 에스퍼인 나 같은 사람들 말이야.
가령, 여기 이능 개량 연구소의 저 A급 가이드는 연구소의 기밀인력이라 밖으로 나갈 수 없다거나 하는 사실 말이다.
연구소는 만인에게 다 악독하게 굴지만, 가이드를 심하게 뺑뺑이 돌린다.
연구소 전담 가이드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연구소 전담 가이드는 적을 수밖에 없다. 연구소의 가이드 대우가 형편없어서 가이드 국장이 최소한의 인원만 배치했기 때문이다.
가이드 국장은 연구소를 전담하는 가이드 인력을 두고 싶지 않아 했다. 그는 연구소의 업무도 일반 임무처럼 중앙에서 자유롭게 고를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연구소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연구소는 구석구석 기밀 연구 대상 에스퍼가 있는데 자유 의지를 가진 가이드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그 사실을 발설하면 어쩌냐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늘어놓으면서, 연구소 전담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우겼다.
그리고 협회는 그 우격다짐을 중요한 의견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연구소 전담 가이드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가이드 국장은 정말 최소한의 인력만 두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가이드 국장은 나름대로 최대한 가이드들을 지키기 위해 한 결정이었을 테지만, 연구소 전담 가이드들은 일손이 없어 더 힘들게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안타까운 생활에도 이동 이능력 연구소의 A급 가이드는 굉장히 밝아 보였다.
“우진~! 오랜만이야~ 왜 연락 안 했어? 아, 시계가 파손됐었구나. 괜찮아, 괜찮아. 지금 얘기 많이 나누면 되지~”
우진이의 옛친구라던 이한새 가이드는 참 사람이 명랑하고 잘 들러붙었다.
별로 달갑진 않지만, 우진이 친구라니까 내가 참아야지. 우진이도 친구를 만나서 즐거워 보이고.
‘우진이를 즐겁게 해 준다면 좋은 사람이지.’
나는 이한새 가이드를 긍정적으로 보려고 열심히 자기 세뇌를 걸었다.
“그런데 우진이 너 어떻게 혼자 왔어? 여기 아무나 못 들어오는 곳인데?”
“저번처럼 하나 씨 따라서 왔지. 오늘 일이 있대서.”
“강하나 에스퍼? 어디? 너 그냥 이쁘장하게 생긴 애랑 왔잖아?”
‘안 되겠어. 난 역시 저 사람 별로야.’
자기 세뇌에 실패한 나는 불퉁한 목소리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우진 씨는 이쁘장한 강하나 에스퍼랑 같이 왔는데요?”
“헉, 그랬군요~ 이미지가 확 달라져서 못 알아봤네요. 미안합니다. 머리 기른 거 잘 어울리시네요~”
이한새는 무지 능글능글하게 내 말을 받아쳤다.
‘나도 어디 가선 능구렁이 소리 많이 들어 본 사람인데, 얘랑은 기 싸움도 안 되네.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지?’
내가 벙쪄서 멍하니 있는 사이에, 우진이가 귀엽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한새는 별로지만 우진이가 머리 쓰다듬는 건 언제나 환영할 일이니까, 나는 우진이의 손길에 가만히 머리를 맡겼다.
“한새 오빠~ 쟤들은 누구야~?”
등 뒤에서 아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오빠도 미남이시네요? 오빠가 그 한새 오빠 친구? 그럼 요 복슬이는 누구야?”
이한새만큼이나 능청스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나랑 우진이에게 찝쩍거렸다.
관심이 귀찮았던 나는 이 상황을 빨리 끝내기 위해, 우진이만 바라보고 있던 고개를 돌려서 얼굴을 보여 줬다.
“어…… 뭔가 익숙한데…… 세상에! 너 강하나야? 와우~ 대박~!”
“내가 스타일 바꾼 지가 언젠데. 소식이 느리네, 임선이.”
“우리가 영상 통화 자주 했으면 내가 알았지~ 연락 좀 자주 해~ 머리는 베이비 펌 한 거야? 잘 어울린다!”
임선이도 내 지인들의 의례 절차인 베이비 펌 얘길 꺼냈다.
“대체 그게 뭔데, 사람들이 나만 보면 그거 했냐고 물어봐? 내 머리가 아기가 하는 스타일이라는 거야? 난 미용실 한 번도 안 가 봤는데.”
“와, 그거 자연 곱슬이야? 세상에! 너무 예쁘다. 진작 기르지 그랬어~”
임선이는 내 질문을 무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 냈다. 늘 보던 모습이라 익숙했다. 얘는 원래 그런 애였지.
그런 임선이와 비슷한 성향인 이한새까지 합세해서 남의 말은 안 듣고 말만 쏟아 내는 모임이 완성됐다.
나는 이능력 때문에 살면서 단 한 번도 피를 흘려 본 적이 없는데, 지금만큼은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았다.
한창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에 구세주가 등장했다.
“임선이, 이한새. 근무 시간에는 일을 하랬다. 작작 놀아라.”
싸가지 없는 말투의 구세주는 박해미였다.
“해미~ 강하나 머리 봤어? 얘 강하나야!”
“어쩌라고. 관심 없어.”
저 싸가지 봐. 역시 사회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박해미다운 대답이다.
그렇지만 임선이는 저 싸가지에도 기죽지 않았다.
“친구가 저렇게 이미지 변신을 하면 관심 좀 줘야지~ 우리 해미는 참 쌀쌀맞다니까? 소중한 친구는 소중하게 대해 줘~ 안 그러면 다 도망간다?”
임선이는 오히려 박해미에게 찰싹 붙어서 열심히 치댔다. 저런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지만, 진짜 비위가 강한 애다.
저러면 박해미가 싫어한다는 걸 알아서 더 그러는 거겠지만.
그러나 박해미도 임선이만큼이나 만만치 않은 상대다.
박해미는 얼굴 하나 안 바뀌고 임선이를 떨어뜨렸다.
임선이가 넘어지던가 말던가는 박해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임선이에게 시선도 안 주던 박해미는 나와 우진이를 보면서 말했다.
“너네는 나를 따라와.”
***
박해미는 우진이와 나를 끌고 연구실의 바깥으로 이동했다.
뒤에서 임선이가 박해미에게 애들을 때리면 안 된다고 외쳤지만, 박해미는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앞만 보고 우리를 이끌었다.
박해미는 이동 이능 연구소의 휴게실로 추정되는 장소로 우리를 데려왔다.
문을 거칠게 닫은 박해미는 낮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가이드 국장이 연구소에서 너희한테 일을 시키라고 하더라.”
“아, 그거. 우리도 오늘 아침에 알았어. 다짜고짜 불러내더니 시키는 일 좀 하래.”
“내가 너랑 친하니까 가이드 국장이 일부러 우리 연구소에 너흴 맡겼다는 거, 나도 알아.”
박해미도 대화보다는 그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이렇게까지 남의 말 안 듣는 사람끼리 모여 있는데 여기 제대로 돌아가긴 할까?’
내가 딴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박해미가 마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우리 연구소는 너네한테 시킬 일이 딱히 없어. 너희의 손이 필요 없는데 억지로 맡았거든. 사실 가이드 국장도 연구소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킬 생각은 없겠지. 그저, 연구소에 대해 알아 오라는 게 목적일 거야. 이쪽 사정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우리가 잉여 인력이라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박해미는 갑자기 우진이를 쳐다봤다.
원래부터 사나워 보이는 얼굴인 박해미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정면으로 쳐다보니, 우진이도 깜짝 놀랐다.
“저희는 가이드 국장의 뜻에 따르기로 했어요. 그쪽이 얼마나 대단한 인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아, 네. 감사합니다…….”
안 해도 됐을 것 같은데, 박해미의 기세에 눌린 우진이는 얼떨결에 감사의 인사를 했다.
박해미는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연구소들 견학이나 하라는 말을 하러 왔어. 앞으로 연구 센터 돌면서 연구소 모자란 손 땜빵이나 해 주면 돼. 가끔 이런 알바했잖아? 이젠 매일 하면 돼.”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야? 연구소 잡일을 매일? 하라고? 연구소 탈출하려고 대괴수 섬멸팀을 들어간 내가?
“싫어. 내가 왜 연구소 잡일을 해야 해? 진짜 아주 뽕을 뽑아먹으려고 하네. 그렇게 주먹구구식이면 정산은 어떻게 해 주는 건데?”
“아, 맞다. 정산 쪽은 아직 생각 안 해 봤네. 그래도 평소에 하던 대로 계산해서 주겠지. 아님, 네가 따로 요구해. 많이 해 봐서 시세 다 알잖아.”
“여차하면 돈 떼먹히겠네. 그냥 난 안 할래. 김 국장에게 전해 줘. 어차피 내가 여기 있을 필요도 없고 난 에스퍼국 사람이라 강제성도 없어.”
나는 손사래를 치며 내 의견을 밝혔다.
박해미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가이드 국장이 너한테 이 말을 전하랬어.”
“뭔데?”
“네가 이 일을 하고 말고는 네 자유지만 차우진 가이드는 가이드국 직속 명령이니까 해야 한다고 말이야.”
“…….”
진짜 김 국장의 영악함은 알아줘야 한다. 우진이를 연구소에서 혼자 일하게 둔다고? 차라리 토끼가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게 더 생존 확률이 높을 것이다.
나는 박해미에게 힘겹게 말했다.
“……나도 같이 일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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