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가이드 (3)
“왜 그래요, 우진 씨? 어디가 불편해요?”
갑자기 우진이가 소리를 질러서 나도 깜짝 놀랐다. 우진이 때문에 놀라서 손바닥의 담뱃재가 뜨겁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불씨가 덜 죽으면 화재가 나니까 난 손바닥을 비벼서 담뱃재의 불씨를 확실하게 죽였다.
그런데 우진이는 내 행동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우진이는 내 양손을 붙잡더니 확 당겼다.
“무슨 짓이에요?! 왜 담뱃불로 손바닥을……!”
우진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손바닥을 살폈다.
역시 우진이는 내 이능력이 뭔지 모르는 게 분명하다.
우진이는 탁자 위의 티슈를 뽑아, 내 손바닥에 덕지덕지 묻은 담뱃재를 털어 냈다.
그뿐만 아니라, 후후 바람을 불면서까지 손바닥에 화상이 없는지 살펴봐 줬다.
나는 금강불괴라서 화상 안 입는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나를 걱정해 주는 우진이가 좋았다. 우진이의 겨울 호수 같은 눈동자에 나를 향한 걱정이 담긴 걸 정면에서 마주 봤더니 어쩐지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우진이가 직접 날 붙잡고 만져 보고 걱정해 주다니…
‘이거 너무 좋다. 다음에 또 해 줬으면 좋겠다. 내 이능력이 뭔지 모르면 또 해 주겠지? 오늘도 내 이능력이 뭔지 안 가르쳐 줘야지.’
나는 우진이에게 담뱃불이 뜨거웠다며 엄살을 부렸다.
우진이는 안절부절못하면서 내 손바닥에 ‘후~’하고 바람을 불어줬다.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김 국장이 끼어들었다.
“염병 그만 떨고 자리에 앉아! 다치지도 않는 놈이 낯간지럽게 엄살은.”
김하나는 재떨이를 가져와 두 모금 빨던 담배를 비벼 껐다. 그러고는 소파의 등받이에 거만하게 기대앉았다.
“우리 차 가이드. 이번 임무는 어땠나? 직접 훌리건을 잡아 봤다지?”
“…….”
김 국장의 질문에 우진이는 바짝 굳었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우진이는 김 국장의 질문에 겨우 대답을 했다.
“……네. 잡은 건 아니고, 살기 위한 정당방위였죠.”
“뭐, 그랬지. 하지만 과정이 어땠든 네 손으로 처리한 공로는 인정이 될 거다. 처리 과정이 보기에 예쁘진 않았지만, 공은 공이니 겸손 떨지 않는 게 너한테도 이로울 거다. ‘훌리건 사냥’은 기 싸움을 잘해야 하거든.”
“사람을 대상으로 ‘사냥’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진이가 또렷한 목소리로 김 국장에게 말했다.
방금 전의 안절부절못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결연해 보이는 우진이의 모습은 동화 속에 그려지는 영웅이나 왕자의 모습 같았다.
그러나 김 국장은 그런 우진이를 비웃었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비웃은 김 국장이 딴지를 걸었다.
“그래, 인품은 좋구나. 인망이 있겠어. 차기 팀장으로 좋은 덕목이지. 그런데 말이다.”
김 국장은 표정을 싹 굳히더니, 마저 말을 이었다.
“사람은 사람다울 때 비로소 사람이라 불릴 수 있는 법이야. 껍데기가 비슷하다고 해서 전부 사람인 게 아니라는 거지. 넌 네가 만난 훌리건들이 정녕 사람이라 느껴졌나?”
그렇지만 우진이는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네. 그들은 사람입니다. 무자비한 살인자이더라도요.”
“…….”
김 국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우진이를 쳐다봤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곧 말을 이었다.
“그래. 네가 정론이다. 너 같은 놈도 한둘쯤은 있는 게 좋지.”
우진이를 압박하던 김 국장은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우진이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저 할망구 오늘따라 왜 저래?’
김 국장은 원래 이상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지만 오늘따라 미친 사람 같았다. 혼자서 사람 괴롭히다가 즐겁다는 듯이 깔깔대고 말이야. 진짜 이상해.
“내가 너를 팀장급으로 키우겠다고 생각 중인 건 알고 있지? 강하나 저놈이 너한테 불었을 거 아니야?”
혼자서 신나게 웃던 김 국장은 이젠 기밀사항을 입에 올렸다.
아니, 근데 왜 내가 기밀 사항을 우진이한테 불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진짜로 말하긴 했지만.
“……얼핏 듣긴 했습니다만, 자세한 건 잘 모릅니다.”
“하하하!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한 치의 예상을 안 벗어나는 놈이라니까.”
김 국장은 뭐가 그리 웃긴지, 아주 박장대소를 하며 내 볼을 꼬집었다.
‘아까부터 왜 저래? 미쳤나 봐, 진짜.’
직함 깡패인 국장인지라 나는 볼을 꼬집은 손을 차마 직접 떼어 내지 못하고 뒤로 몸을 쭉 뺐다.
내가 그러든가 말든가 김 국장은 우진이와 계속 대화를 했다.
“특정 인물한테는 맹목적인 녀석이니까 너한테 필요한 거 알아서 딱딱 갖다 바칠 거다. 넌 그냥 이 녀석이 주는 대로 잘 따라가면 돼. 아직은 자세한 건 말해 줄 수 없지만, 이놈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다 알게 될 거다.”
김 국장은 우진이를 보며 말하고 있으면서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그러다가 나를 보며 말했다.
“너 오후에는 일정 없지?”
“오후에는 차우린 데리러 가야죠. 다음날 수업 준비도 하고 개인 훈련도 하고.”
“그래, 오후 비었으니까 그때 내가 주는 일 좀 해라.”
오후 시간 알차게 잘 쓰고 있다는 대답을 했더니, 비었다며 일을 주는 김 국장의 행패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물론, 내가 경악하던 말던 김 국장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할 말 끝났으니 이젠 가 보라면서 우릴 쫓아낼 뿐이었다.
본부대로 나가기 위해 막 일어서는데 김 국장이 우진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가끔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게 네 스스로를 위해서 좋을 거다. 단단한 건 부러지기 쉽거든.”
우진이에게 기분나쁘게 속삭인 김 국장은 이제 정말 할 말이 모두 끝났는지, 가 보라고 손짓했다.
나는 드디어 ‘고위험군 에스퍼 특별 교육’을 하러 갈 수 있었다.
***
“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가이드님, 안녕하세요.”
“선배, 연구소에 벌써 우리 자료 다 보냈어요? 자꾸 나한테 질문하고 실험하고 난리 났잖아요! 왜 그랬어요!”
정신없는 아침을 보내고, 드디어 연구 센터-a동 172호실로 들어왔지만, 이곳도 정신없는 건 똑같았다.
‘아닌가? 파급력은 김 국장이 훨씬 세니까 김 국장이 이긴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냥 내게 주어진 일이나 했다.
‘그제 임무를 다녀왔기 때문에 애들이 임무에서 했던 활동을 평가하고 평소처럼 단련이나 시켜야지.’
장하나는 임무에서 이능의 새로운 활용법을 알게 된 걸로 연구원들에게 꽤나 시달린 모양이었다. 임무 얘기 나오니까 질색을 했다.
장하나가 질색을 해도 나는 꿋꿋하게 나의 일을 했다.
나는 애들에게 수색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는 방법과 팁을 전수해 주고 평소처럼 체력 훈련을 시켰다.
이제 애들은 어느 정도 혼자 하는 법을 익혔으니까 우진이를 중점으로 봐줘야 했다.
김 국장이 오늘 그렇게 불러낸 건 교육 빨리 시키라고 나를 압박하려는 의도도 있는 거니까 말이야.
그래도 우진이는 체력이 많이 늘어서 윗몸일으키기를 한 번에 20개씩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아직 김 국장이 요구하는 기준치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처음에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나는 우진이가 기특해서 계속 칭찬하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줬다.
우진이가 발그레한 얼굴로 민망해하는 귀여운 모습을 실컷 감상하고 있는데, 주변 공기가 이상했다.
고개를 돌리니, 애들이 하라는 훈련은 안 하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친 애들이 한마디씩 했다.
“어제 진도를 많이 빼셨나 봐요.”
“같이 산다더니, 완전 신혼이야~”
“저러다가 가족 한 명 더 생기는 거 아니야?”
“둘 다 남잔데?”
“입양하든가 알아서 하라 그래.”
내가 애들을 얕봤다. 한마디가 아니었다. 애는 이미 차우린이 있는데 뭘 또 들이라는 거냐고.
“그만 놀고 훈련이나 해라. 트랙으로 가서 오래달리기나 해.”
나는 새 쫓아내듯이 애들을 멀리 쫓아냈다. 우진이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이런 거 민망해한다고.
물론 쟤네들도 그걸 알기에 놀리러 온 거겠지만 말이다.
역시나 우진이는 잘 익은 자두처럼 얼굴이 새빨개졌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푹 숙이고 눈도 못 마주치지만, 귀까지 빨개진 게 엄청 귀여웠다.
‘히히히. 이런 건 나만 봐야지. 다른 사람이랑 공유할 생각 없어.’
나는 소리 내지 않고 웃으려고 노력하면서 우진이 어깨를 주물렀다.
“그냥 애들이 하는 말이잖아요. 짓궂어도 이해해 주세요, 우진 씨. 혼인 신고도 없는데 무슨 신혼이야~ 그렇죠? 그냥 잘 지내는 건데 말이에요.”
나는 적당히 위로해 주면서 어깨를 주무르는 손가락으로 우진이의 귓불을 살짝살짝 건드렸다. 우진이는 모깃소리처럼 작게 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어깨를 움츠렸다. 귀가 아까보다 더 빨갛게 물들었다.
우진이 진짜 너무 귀엽다. 살짝만 놀리고 만져도 빨개지는 거 너무 귀여워. 귀만 건들여도 저런 반응인데 다른 곳을 만져 보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여긴 애들도 있고 감시 카메라도 돌아가니까 참아야겠지?’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우진이의 훈련을 봐줬다.
***
훈련이 끝날 때 쯤 중앙 센터로부터 연락이 왔다.
1시에 중앙연구 센터의 이능 개량 연구소의 이동 능력부로 오라는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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