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56화 (56/81)

56. 가이드 (1)

우진이가 갇혀 있던 창고는 우리가 있던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하긴, 가까웠으니 훌리건 놈이 우릴 구경하러 나왔던 거겠지.’

훌리건의 생체 정보를 확인한 결과, 이놈들이 에가협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정신계 C급과 특수계 D급으로 순찰팀에서 근무하던 놈들이었다고 한다.

순찰팀은 경계 구역을 주로 순찰하는 팀이지만 다운타운 내부도 순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알고 나니 곽승태가 왜 그렇게 다운타운의 일반인들에게 인망이 두터웠는지 약간 이해가 갔다. 아주 약간이지만.

그 훌리건들은 순찰팀 출신이었던 만큼 경계 구역의 지리와 다운타운 내부의 지리에 빠삭했던 모양이다.

어쩐지 힘도 모자란 놈들이 이동 시간이 꽤 빠르더라.

그래도 놈들을 잡았으니, 목적은 달성했다.

‘그런데 목적을 달성했다고 일이 해결됐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들것에 실려 가는 우진이를 멍하니 보며 생각에 잠겼다.

임무에서는 목적을 달성하면 항상 만사 해결이었다.

사람이 실종되어도, 불구가 되어도, 사망했어도 임무의 목적을 달성하면 협회는 일단 공치사를 한다. 그 과정 안에서 일어난 시시비비는 사소한 개인의 사정일 뿐.

그렇다. 이건 개인의 사정일 뿐이다.

임무의 과정 중에 훌리건에게 납치되고 상해를 입는 건 그저 개인의 불운일 뿐인 것이다.

탁-

우진이를 실은 구급차가 문을 닫았다.

“아.”

난 나도 모르게 구급차에 손을 뻗었다. 그쪽으로 막 발을 뻗으려는 차에, 누가 내 어깨를 잡았다.

“선배. 저쪽에서 소장님이 찾아요.”

“……어, 그래. 갈게.”

장하나의 말에 정신이 들었다.

나는 지금 팀장이다. 임시 팀이지만, 현장에서 마무리를 직접 짓고 가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우진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힘겹게 발걸음을 떼, 곽승태에게 향했다.

최대한 빨리 우진이에게 가려면 여기 일을 빨리 끝내야 한다.

“…….”

나는 그 사실을 상기하며 남은 일을 처리하러 갔다.

***

일을 모두 끝내니, 오후 7시 반이었다.

내가 훌리건의 목을 쳐낸 게 4시쯤이었는데, 잡스러워 보이는 마무리 작업을 하느라 무려 2시간이 넘게 걸렸다.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린 건 다운타운의 일반인들의 민심을 달래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군중의 앞에서 훌리건 목을 따 버렸더니, 뒷일이 매우 소란스러웠다.

훌리건이 먼저 총을 빼 들었음에도, 일반인들은 협회가 야만적이니, 과잉 진압이니 뭐니 등 실컷 떠들어 댔다.

그러나 창고에서 피투성이인 우진이가 발견되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훌리건에게 약탈을 당했던 사람들이라, 훌리건에게 납치됐던 피해자가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된 걸 보니 충격이 더 큰 것 같았다.

우리는 이를 이용해, 훌리건에 대한 반감을 사람들에게 부추겼다.

협회가 훌리건을 사냥하는 장면보다는 훌리건에게 당한 피해자의 모습을 사람들의 뇌리에 남겨야 했다.

다운타운의 주민들은 최대한 협회에 대한 반감이 적은 게 여러모로 좋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뇌리에 피해자의 모습을 새기는 일은 정신계 이능력자인 장하나와 곽승태가 해 주었다.

장하나는 곽승태에게 요령을 배워 군중들의 머릿속에 피해자의 모습을 심었다.

D급인 곽승태는 이능력의 출력이 약해, 다수의 사람들에게 능력을 쓰기 힘들었다.

하지만, S급인 장하나는 다수에게 이능력을 쓰는 것이 간단한 덕분에 일이 빨리 끝났다. 가끔 보면 등급이 깡패이긴 하다.

어쨌든 2시간 반 정도밖에 안 걸려서 다행이다.

심하게 다친 우진이의 모습을 계속 곱씹는 건 나에게도 너무 괴로운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보고서야 뭐 좀 천천히 써도 되니까 애들이랑 빨리 해산하고 우진이를 보러 가야 겠다.

‘그런데 뭔가를 또 잊은 느낌인데, 뭐지?’

음…….

“아, 맞다! 차우린!”

***

불현듯, 차우린을 떠올린 나는 물품 정리를 나머지 사람들에게 맡기고 차우린을 맡겨 놓은 어린이집을 향해 뛰어갔다.

내가 ‘희망의 어린이집’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참 전에 해가 져서 사방이 매우 어두운 상태였다.

하긴 지금이 12월 말 겨울인데, 해가 빨리 지는 게 당연하지.

나는 어린이집의 인터폰을 누르고 차우린을 찾았다.

차우린은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과 손을 잡고 어린이집 현관으로 나왔다.

“왜 늦게 왔어…… 흑, 왜 오빠 안 왔어…… 흑.”

‘아니, 얘는 왜 또 울고 그래.’

“우, 울지 마! 우진이는 지금 바로 보러 갈 거야. ‘안녕히 계세요’나 해.”

나는 차우린을 옆구리에 끼고 아마 선생님일 거라 추정되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뛰어갔다.

예상대로 차우린은 금방 빽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하아…….”

차에 탄 차우린은 불만이 엄청 많았다.

차우린의 제일 큰 불만은 다른 사람들은 다 집에 가는데 왜 자기를 데리러 오지 않았냐였고, 두 번째 불만은 우진이가 아니라 내가 데리러 왔다는 거였다.

‘나도 맨날 데리러 올 때 같이 있었는데 좀 너무하네.’

차우린에게 이런 사실을 말해 주고 싶었지만 차우린은 불만을 더 늘어놓았다.

애들이 자기보다 집에 먼저 가면서 저를 약 올렸단다. 그리고 같이 있던 선생님은 재미가 없었으며, 혼자 노느라 너무 심심했다고 한다.

“그래, 그랬구나.”

나는 차우린의 불만을 그냥 들어 줬다.

얘도 오빠가 많이 다친 거 보면 속상해할 텐데, 일단 다른 불만은 풀고 가야지.

나는 빌려온 협회 차를 반납하고 차우린과 의료 센터로 향했다.

***

의료 센터에 도착하니, 우진이는 회복실에서 자고 있었다.

복구 이능으로 다 치료받았는지, 막 구조되던 처참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뽀송뽀송한 모습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차우린은 우진이에게 달려들었다.

“오빠, 나 왔어. 일어나!”

“야, 병실에서 소리 지르면 안 돼.”

나는 침대에 기어오르는 차우린을 붙잡았다.

성질 나쁜 꼬맹이는 왜 자신을 방해하냐며 나를 마구 때려 댔다.

“네가 못 봐서 모르겠지만 우진이가 아까 엄청 심하게 다쳤거든?! 매달리지 말고 눈으로만 봐.”

“싫어!”

차우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누군가 병실에 들어왔다. 이화영이었다.

“저기요. 병실에서 조용히 좀 해 주세요. 저 애는 환자분 가족이거든요? 가능하면 내버려 두시고…… 어, 강하나? 세상에…… 머리가 무슨 일이야?”

“뭔데? 이화영, 방금 너 날 못 알아본 거야?”

나는 화영이의 반응에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 친구도 못 알아봐?”

“너 머리 어떻게 된 거야? 베이비 펌인가, 그거야?”

“펌은 무슨 펌이야. 왜 다들 나만 보면 펌 했냐고 물어봐. 그냥 기른 거야.”

“너무 귀엽다! 진작에 좀 기르지.”

병실에서 조용히 하라고 말하러 온 이화영이 제일 시끄러웠다.

회복실에 누워 있는 환자가 우진이뿐이라서 참 다행이다. 다른 환자가 있었으면 컴플레인 걸었을 것이다.

의료국 직원인 화영이가 왔으니, 난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외상뿐이라서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을 텐데, 왜 전체적으로 복구 이능 치료를 한 거야?”

협회원이면 이능력을 이용한 신체 회복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모든 협회원에게 이능을 사용한 치료를 해 주지 않는다.

협회원이 5천 명이 넘는데 그 사람들 모두에게 이능 치료를 하다가는 치유 이능이 있는 에스퍼 모두 폭주로 뇌가 터져 죽을 것이다.

그래서 부상의 심각성에 따라 차등적으로 이능 치료를 해 준다.

우진이가 다친 모습은 가련하고 안타깝고 가슴 아팠지만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절단된 것도 아닌 자상이랑 타박상, 열상 정도는 심각한 부상이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우진이가 머리를 다쳤었는데 설마 그것 때문인가? 막 피 철철 나서 머리에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는데 심각했던 거야?”

“아니야. 가벼운 뇌진탕만 있고 심각한 건 없었어.”

“휴~ 다행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원랜 이렇게까지 안 해 주는데 네 은사님 때문이지, 뭐. 그래도 뇌진탕은 이능 치료 안 했으니까 며칠 푹 쉬게 둬. 그건 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안 했어. 겉은 멀쩡하니까, 괜찮아~”

“…….”

이왕 이능 치료 해 줄 거면 다 치료해 주지. 의료 센터 사람들도 참 각박하다.

그래도 몇 시간 전의 피투성이였던 모습에 비하면 훨씬 낫긴 하다.

나는 한 떨기의 순수한 백합처럼 하얗고 아름다운 우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우진이의 얼굴은 아까 전의 참혹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세기의 예술 작품처럼 섬세하고 완벽했다.

나도 모르게 우진이의 흑단같이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피딱지가 말라붙어 있던 모습을 떠올리자, 가슴이 시큰거렸다.

짝-

“아야. 왜 때려?”

차우린이 우진이를 쓰다듬던 내 손을 때렸다.

“어…… 그냥.”

뭐냐고, 진짜.

“잘 때렸어. 나도 좀 보기 싫었거든.”

“그럼, 너네가 눈을 돌리던가.”

나는 우진이가 코앞에서 쌕쌕거리며 자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항의하진 못하고 작게 투덜댔다.

이화영은 분명히 내 투덜거림을 들었을 거면서 깔끔하게 무시했다.

“시간이 늦었으니까 병실을 나가든가 해. 애도 재워야 할 거 아냐. 아니면 우린이 여기서 잘래?”

“여기 싫어. 오빠랑 집에 갈래.”

“너 집 없는데.”

차우린 말을 정정해 줬더니, 이화영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때렸다. 사실인데, 왜 그래.

아무튼, 차우린이 원하는 대로 우진이를 퇴원시키기로 했다.

안정을 취하는 건 숙소에서 해도 되니까.

나는 우진이를 등에 업고 차우린의 손을 잡은 채로 내 방으로 돌아갔다.

차우린의 걸음 속도에 맞춰가야 했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가야 했다.

“하나 오빠, 저기 봐봐. 저게 뭐야?”

호기심 많은 어린이가 삿대질을 하면서 질문했다.

“저거? 나무잖아.”

“아니, 그거 말고!”

다혈질인 어린이는 원하는 답변이 안 나오자, 신경질을 냈다.

“전구 장식 말하는 거야? 반짝반짝한 거?”

“전구 장식? 그럼 저건 뭐야?”

차우린이 이번엔 중앙 광장에 있는 커다란 고깔 장식을 가리켰다. 각종 색깔과 모양의 전구가 잔뜩 달려 있어서 어린애의 이목을 끌 만했다.

“저건 크리스마스트리.”

협회에서는 매년 연말에 저 거대한 장식물을 세운다.

되게 의미없어 보이는데, 사람을 꼭 부려 먹어서 저걸 기어코 세운단 말이지.

“이쁘다.”

그렇지만 어린이의 마음에는 드는 모양이다.

그래, 너라도 마음에 들면 됐지.

***

나는 방에 돌아오자마자, 우진이를 침대에 눕히고 차우린을 씻겨서 소파에 재웠다.

우진이가 깨끗하긴 한데, 안 씻기는 것도 좀 뭐 해서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깨끗한 수건으로 우진이의 얼굴과 손발을 닦아 줬다.

커튼을 안쳤더니, 마침 창밖에서 달빛이 쏟아져 우진이를 비췄다.

우진이의 하얀 피부가 창백한 달빛을 받으니, 예술가가 빚어 놓은 조각상 같았다.

대리석처럼 새하얀 우진이의 손은 온기가 없어 보였다.

문득, 낮에 봤던 피투성이의 우진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조심스레 우진이의 손을 잡았다.

다행히도 우진이의 손에서는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내친김에 우진이의 맥박도 잡아 보았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뛰고 있었다.

어쩐지 안심이 되어, 우진이의 손을 내 볼에 갖다 댔다.

우진이의 손목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달달한 살냄새가 났다.

우진이는 조각상이 아니고 살아 있는 인간이다. 새삼스럽게 그 사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새하얀 달빛 속에서 미약한 온기가 느껴지는 우진이의 손을 붙들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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