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55화 (55/81)

55. 훌리건 (19)

나는 다운타운 주민의 심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죄송합니다. 애들이 아직 이런 곳이 낯설어서요. 협회에서 최대한 배상해 드리겠습니다. 숨어든 훌리건을 잡다가 생긴 일이니, 용서해 주세요.”

“협회에서 배상을 제대로 해 주긴 해요? 뭔 보호해 준다 뭐다 하면서 돈은 잔뜩 뜯어 가고 말이야. 내가 말이죠, 협회에서 날 구해 준 건 참 고맙게 생각해요. 그런데, 어? 구해 줬으니 빚이 생겼다고 막 사람을 부려 먹고 말이야. 내가 저기 협회에서 건물 청소를 바로 작년까지 했어. 빚 갚으려고. 그나마 이제 내가 내 가게 차려서 벌어먹고 사는데, 협회가 이래도 되는 겁니까? 예?!”

“아, 아니…… 그래서 제가 죄송하다고, 배상해 드린다니까요.”

“죄송하다고 다 넘어가면, 어? 옛날에 경찰이 왜 있었겠어?”

가게 주인은 배상해 주겠다고 해도 나한테 화를 내기 바빴다.

아니, 배상해 준다는데 왜 말로 때우려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거야? 진짜 억울하네.

구체적인 피해 금액 측정해야 하는데, 지금 화만 내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거라고요.

구경꾼까지 바글바글 모여들고 있어서 더 짜증 났다.

사람들 사이에서 협회에 진 빚 때문에 고생했던 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군중의 반응에 더 의기양양해진 가게 주인은 나를 더 몰아붙였다.

“협회가 그런 건 고쳐야 돼. 왜 사람을 빚쟁이로 만들어? 나 예전 세상에선 빚 한번 안 져 본 사람이야. 그런 선량한 사람들을 다 빚쟁이로 만들고. 그러면 사람이 억울해, 안 억울해? 어떻게 생각해요, 협회 양반?”

그런 얘길 왜 나한테 하는 거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한시라도 빨리 우진이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시간만 뺏기고 말이야.’

다운타운에서 일반인들에게 행패를 부리면 이유를 불문하고 냉장고행이다. 내가 냉장고 들어가면 우진이는 누가 찾고 누가 돌봐줘.

어쩔 수 없이 우진이를 생각하며 꾹꾹 참았다.

그때, 곽승태가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아니, 이게 다 무슨 일들입니까?”

“어머나, 곽 소장님! 여긴 어쩐 일이에요?”

뭐지, 이 갑작스러운 태도의 변화는?

다운타운 주민들은 곽승태의 등장에 술렁거렸다.

그런데 그 분위기는 배타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묘하게 숭배하는 느낌이랄까? 확실히 곽승태를 반기고 있었다.

“아이구, 우리 소장님 오실 줄 알았으면 남은 빵이라도 더 챙겨올 걸 그랬네. 바쁘실 텐데 어쩐 일로 오셨어요?”

“저희야, 늘 여러분을 위해 이 동네를 순찰하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아유, 그럼요. 우리 곽 소장님 덕분에 늘 동네가 평안하죠~”

아 진짜 뭐냐고. 친목 다지지 말고 볼일 끝냅시다. 바쁘다고요. 나는 화기애애한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오늘 피해 금액은 여기 곽 소장님께 말씀드리시면 됩니다. 같은 협회 사람이거든요. 배상문제는 그쪽으로 해결하세요. 그럼, 저는 이만.”

나는 곽승태에게 일을 떠넘기고 재빨리 빠져나가려 했다.

“아니, 어딜 가?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소장님 얘기 좀 들어보세요. 글쎄, 이놈이 우리 가게 물건을 아주 뭉개 버리고 말이에요.”

아니, 상자를 뭉갠 건 제가 아닌데요?

가게 주인은 나에게 협회 욕을 쏟아 내다가 머릿속이 꼬여 버렸는지, 헛소리를 늘어놨다.

하, 진짜. 일반인이라 그냥 쥐어박고 튈 수도 없고.

혼신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이 상황을 참고 있는데, 장하나가 끼어들었다.

“선배! 찾았어! 저기 훌리건이야!”

나는 장하나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장하나가 가리킨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잠시 얼이 빠져 장하나를 쳐다봤다.

“아니, 저기 있어요! 봐봐.”

장하나가 이능을 쓰는 건지, 에스퍼의 파장이 일순 강하게 느껴졌다.

장하나의 손끝이 가리킨 방향의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더니, 지저분한 모습의 남자가 나타났다.

“아니, 이게 뭐야? 어, 어떻게?”

더러운 꼴의 훌리건은 자기의 모습이 드러나자, 매우 당황했다.

“이, 이 더러운 것들! 오지 마! 다 죽여 버린다!”

제일 더러운 꼴인 놈이 총구를 겨누며 소리쳤다.

총을 겨눴으니, 이건 명백한 살해 협박 행위다. 사람도 바글거리니 증인도 많고, 딱 좋다.

나는 장하나의 어깨를 잡고 내 뒤쪽으로 끌어당기며, 훌리건을 향해 달려갔다.

저쪽이 먼저 우리의 목숨을 위협했으니, 내가 하는 건 정당방위다.

난 손날을 들어 저놈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

내 이능력으로 발휘된 힘, 속도, 절대 꺾이지 않는 손날의 강도, 그리고 폭이 1cm 남짓인 손날의 면적으로 훌리건의 목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

“씨발, 뭐야. 왜 안 와?”

홀로 남은 훌리건이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차우진은 살며시 고개를 들어, 훌리건이 하는 짓을 살폈다. 그는 창고 문 뒤에 숨어서 바깥을 경계하고 있었다.

훌리건들은 갑자기 창고 바깥이 시끄러워져 신경이 날카로웠다.

차우진의 옆에서 통조림을 퍼먹던 그들은 바깥의 소란에 신경질적으로 먹던 걸 내려놓았다.

차우진을 납치한 2인조는 투명화 이능과 염력의 이능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많은 다운타운의 거리에서 몸을 숨기고, 창고에 잘도 숨어들었다.

그렇지만 사람이 너무 많으면 몸을 숨기기 힘들어지는 것 같았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두리번거리던 훌리건들은 바깥을 살펴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투명화 이능력이 있는 훌리건은 바깥의 상황을 살펴보러 나갔다.

그런데 그가 나가고 오히려 바깥이 더 소란스러워졌다.

그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창고 안에서는 바깥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훌리건은 뭔가 잘못된 상황이라고 생각했는지, 창고 문에 바짝 붙어서 밖을 살펴보고 있었다.

훌리건은 방금 전까지 통조림을 따먹던 나이프를 양손으로 꽉 쥐고 바깥을 노려봤다.

차우진은 그가 쥐고 있는 나이프를 쳐다봤다.

훌리건들은 둘 다 개인 나이프가 있었다. 그들은 그 나이프로 통조림을 따고 나이프를 수저처럼 이용했었다.

아까 밖으로 나간 훌리건은 분명 먹던 통조림과 수저를 내려놓고 차우진의 권총을 가지고 나갔다.

차우진은 기억을 상기하며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훌리건이 놓고 간 수저 대용 나이프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남아 있는 훌리건은 바깥에 신경 쓰느라, 차우진에게 관심이 없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차우진은 조심스럽게 어깨를 뒤틀었다. 그래도 훌리건이 이쪽을 보고 있지 않자, 조금 더 대담하게 허리를 굽혔다.

그는 애벌레가 기어가듯 몸을 굽혔다 펴면서 앞으로 이동했다.

세 발자국 남짓한 거리였지만, 상당히 멀게 느껴졌다.

겨우 목적지까지 도달한 차우진은 손가락을 열심히 뻗어 힘겹게 목표물을 더듬었다.

나이프의 칼날이 차우진의 손가락을 파고들었다.

목표물에 도달했다. 그걸 깨달은 차우진은 좀 더 과감하게 손가락을 뻗었다.

나이프에 묻은 음식물들이 손톱 밑으로 들어오며, 나이프의 날이 차우진의 손에 새로운 상처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우진은 나이프를 붙잡는데 성공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에 쥔 나이프 날을 손목 부근에 대었다.

그렇지만 차우진의 손을 날카롭게 베어 낸 칼날은 손목을 결박한 끈을 단숨에 끊어 버릴 정도로 날카롭지 않았다.

차우진은 손목의 결박을 끊기 위해 나이프를 움직였다.

열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훌리건이 자신이 하는 일을 알아차릴까 봐 두려웠다.

손목이 베이는 것도 개의치 않고, 과감하게 톱을 켜듯이 나이프를 움직였다.

그리고 결국 결박을 끊어 내는데 성공했다.

챙그랑-

“뭐, 뭐야?! 너 이 새끼, 왜 거기 있어?”

차우진은 끈을 끊어냄과 동시에 나이프를 놓치고 말았다.

얇은 쇳덩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 훌리건이 바로 반응했다.

훌리건은 차우진에게 다가오며 씨근덕거렸다.

“이 개같은 새끼.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재수 없게 우리 앞에만 안 나타났어도 일이 꼬일 리가 없었어. 창놈 새끼가 쓸데없이 사람 힘들게만 하고 말이야.”

차우진은 칼을 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훌리건을 보며 공포에 질렸다.

훌리건의 눈빛은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저런 눈빛을 너무 잘 알았다. 지난 7년 간,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저 눈빛을 보았다.

저 눈빛을 한 사람들은 꼭 그에게 해코지를 했다.

훌리건은 손에 쥐고 있는 칼을 점점 차우진을 향해 기울였다.

차우진은 아직,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았다.

그가 돌봐야 하는 어린 동생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영원히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사람이 많은 번화가, 죽은 줄 알았던 친구, 그리고 그를 사랑해 주는 사람,

강하나의 얼굴이 차례대로 스쳐 지나갔다.

차우진은 떨어뜨렸던 나이프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빠른 속도로 일어나, 앞을 향해 팔을 뻗었다.

“으윽…!”

그의 눈앞에는 가슴에 칼을 맞은 남자가 서 있었다.

눈앞의 남자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다 시선을 내려 자신의 가슴을 보았다.

가슴을 확인한 남자는 다시 고개를 들어 차우진을 보았다.

“이 새… 커헉!”

“…….”

무언가를 말하려던 남자의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차우진은 귀가 먹먹해지며 경고를 알리는 기계음과도 같은 이명을 들었다.

이명과 함께 적막이 지나가자, 희미한 캐롤 소리가 들려왔다.

차우진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였구나.’

그는 그 생각을 끝으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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