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훌리건 (18)
차우진은 머리에 느껴지는 강한 충격 때문에 깨어났다.
“윽…….”
그는 신음을 뱉으며 머리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그의 뜻대로 올라가지 않았다.
양손이 등 뒤로 결박되어 있었던 것이다.
몸을 자유로이 운신하지 못하니, 부딪힌 머리가 더 아프게 느껴졌다.
차우진은 통증에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이리저리 몸부림을 쳤지만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여전히 자루 속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차우진은 통증을 이겨 내고 살며시 눈을 다시 떴다.
포대자루의 얼기설기하고 거친 천을 통해 빛이 들어와, 자루 안에 구겨져 있는 자신의 처참한 꼴이 드러났다.
차우진은 자루 밖으로 삐져나온 발목 때문에 벌어진 틈새를 살폈다.
한 뼘도 안 되는 그 틈으로 밝은 빛의 푸른 하늘이 보였다.
훌리건들이 지하도를 빠져나온 것이다.
“이새끼 진짜 겁나게 무겁네! 내가 끌고 올라왔으니까 이젠 네가 들어. 안에서 발작을 하고 지랄이야. 존나게 무거운 게.”
훌리건 한 명이 욕설을 내뱉으며 자루를 걷어찼다.
차우진은 지금 머리가 자루의 제일 바닥에 있는 상태였다. 훌리건의 발길질은 그대로 차우진의 가슴께를 맞췄다.
“으읍!”
차우진은 고통에 몸을 뒤틀었다. 바닥에 모가 난 돌멩이가 많았는지, 딱딱하고 뾰족한 것들이 차우진의 몸을 그대로 찔렀다.
“나 이제 능력 써야 해. 한번 박고 가야겠으니까, 내려놔 봐.”
성질을 내던 훌리건이 자루를 거칠게 떨어뜨렸다. 자루 안에 들어 있던 차우진은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
훌리건의 태도를 보니, 아까도 바닥의 돌멩이에 머리를 부딪친 것 같았다.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닌지라, 차우진은 훌리건이 자루를 손에서 놓자마자 그대로 모로 엎어졌다.
“여기서 할 건 아니지?”
“미쳤냐? 프라이버시가 있지. 여긴 너무 트였으니까 저기 구석 가서 하자.”
그들은 이제 자루가 아닌 차우진의 발목을 잡고 질질 끌고 갔다.
차우진은 이제 그들에게 반항할 기운마저 없었다.
그들에게 맞거나 부딪힌 곳도 아프고 장시간 불편하게 묶인 덕에 온몸이 다 고통스러웠다. 더 이상 발버둥 칠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
그저, 이 고통과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차우진은 그들의 손길에 대한 반항도 포기한 채로, 그저 끌려갔다.
단지, 끌려다니는 동안에 길바닥의 돌멩이에 최대한 부딪히기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
“하 씨, 급한 상황에 이게 뭐냐고!”
나는 GPS 추적 권한을 다시 받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왔다.
통신은 아무래도 지하보다는 지상이 잘 터진다면서 곽승태가 날 내보냈기 때문이다.
‘이럴 시간에 그 지하도를 조금이라도 더 뒤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시간 낭비람?’
그렇지만 약 3km2의 면적을 발로 뛰면서 찾을 수는 없다는 곽승태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최대한 빨리 허락을 받기 위해 나는 신청이 완료됐다는 문구가 뜨자마자 중앙으로 전화를 걸었다. 제일 빨리 중앙의 허가를 받아 내려면 전화해서 다급함을 강조하는 게 좋다.
나는 신호음이 들리자마자 다시 지하도로 뛰어내렸다.
통화 음색이 깔끔할 필요도 없고 조금이라도 우진이의 행적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색하느라 정신없는 상황을 중앙에서 보면 허락받는 게 더 쉽다.
지하도에 널브러진 잔해를 들쳐 보는데 스마트워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중앙 센터 관리국입니다. 신원을 말씀해 주세요.
오, 연결됐다! 난 음성 통화를 영상으로 돌렸다.
“네, B9103960 강하나 에스퍼입니다.”
- B9103960 강하나 에스퍼, 신원 확인이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영상으로 돌리면 신원 확인이 금방 끝나서 좋다. 음성 통화로 하면 목소리 분석한다고 시간이 더 걸린다.
이제 본론을 꺼낼 시간이다.
“저번에 신청했던 D급 차우진 가이드의 GPS 추적 권한이 필요합니다. 지금 실종상태거든요.”
-대상에 관한 GPS 추적 권한을 이미 한번 받으셨기 때문에 6개월 간 권한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엥?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 지금 훌리건에게 납치됐을 거라고요! 긴급 상황인데? 권한 한 번만 주면 금방 찾을 텐데?”
-대상에 관한 GPS 추적 권한을 이미 한번 받으셨기 때문에 6개월 간 권한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야, 이거 중앙 센터 직원 아니고 AI 홀로그램이지? 빨리 담당자 튀어나와라! 진짜 급하다고!”
-대상에 관한 GPS 추적 권한을 이미 한번 받으셨기 때문에 6개월 간 권한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중앙 센터의 상담원들은 여러분의 소중한 안내원이자, 같은 협회원이랍니다. 비속어는 삼가 주세요.
“담당자 나오라고. 지금 6개월 간 추적 불가 이딴 소리 할 때야? 우진이가 위험하다니까?”
-중앙 센터의 상담원들은 여러분의 소중한 안내원이자, 같은 협회원이랍니다. 비속어는 삼가 주세요.
“욕 안 했어. 담당자 바꿔.”
-중앙 센터의 상담원들은 여러분의 소중한 안내원이자, 같은 협회원이랍니다. 비속어는 삼가 주세요.
아오! 진짜 다들 하나같이 도움이 안 되네!
***
차우진은 어디선가 들리는 쩝쩝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이번에 그는 자루에 담겨 구겨진 상태가 아니라,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붙인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여전히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고 팔다리는 결박되어 있었다.
차우진은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딘가 건물 안으로 들어온 건지, 사방이 어두웠다. 그렇지만 눈앞의 사물이 분간이 안될 정도는 아니었다.
시선을 위로 돌려보니 천장에 매달린 전구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선 훌리건들이 무언가를 허겁지겁 퍼먹고 있었다.
눈이 풀려서 그런 건지 훌리건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차우진은 눈에 힘을 줘서 흐릿한 초점을 애써 맞췄다. 선명해진 시야로 훌리건들의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이 보였다.
통조림이었다.
차우진 본인도 강하나에게 구출되기 전에 귀한 식량으로 여긴 물건이다.
물론 이제는 향신료에 절여져서 밀폐된 용기에 담긴 식량은 쳐다보지도 않지만, 그때는 저걸 구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가장 안전한 식량이었으니까.
그래서 차우진도 한 캔이라도 더 모으려고 아등바등하게 살 때가 있었다. 안전한 식량이 있어야 어린 동생이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통조림의 출처가 여기였구나.’
차우진은 주변을 둘러보며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주변은 통조림을 비롯한 각종 식량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물이나 음료수 박스들이 즐비했으며 심지어 과자까지 있었다. 차우진은 이런 비품들을 보며 자신이 있는 장소를 유추했다.
이곳은 다운타운의 마켓 창고일 것이다.
차우진은 강하나와 거닐었던 다운타운의 거리를 떠올렸다. 최근의 그 거리는 각종 색색의 전구들과 초록색과 빨간색의 리본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연말의 행사를 기념하는 화려한 장식. 이런 세상이 되기 전에는 매년 볼 수 있던 세상의 파편이다. 폐허만 남았던 세상에 아직도 크리스마스를 챙기는 문화가 남아 있을 줄은 몰랐던 차우진은 화려한 거리의 모습에 감동했었다.
태어나서 그런 광경을 처음 본 동생 또한 얼마나 좋아했던가.
폐허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만 살아온 그 애가 예전과 같은 문명을 누리게 된 것.
그것만으로도 차우진은 여기에서 생을 마감할 수 없었다.
태어나서 아무것도 누려보지 못한 동생의 버팀목이 되어 줘야 했다.
차우진은 자꾸만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살아남을 것을 다짐했다.
***
“여기도 없어요!”
“저도 완전 허탕인데요.”
“그럼 딴 데 돌아 봐! 가게 창고만 뒤지면 되는 거잖아!”
나는 결국 GPS 추적 권한을 받지 못했다. 아까 전에 중앙 센터 직원이랑 통화했던 내용을 상기하면 치가 떨린다.
-예~중앙 센터 관리국입니다. 무슨 일이세요?
“긴급 상황이니까, GPS 추적 권한 좀 허가해 주세요!”
-기간 만료라 6개월 뒤에 허가 받을 수 있다고 설명 못 들으셨나요?
“지금 저희 팀원이 훌리건한테 납치됐다니까요? 사람 목숨이 걸렸다고요!”
-강하나 에스퍼. 체내 GPS는 협회 내 기밀이에요. 이렇게 임무 도중에 이런 식으로 연락하시면 안 되는 거라고요. 원래 일개 팀장들은 허가도 안 해 줘요. 그런데 그 팀은 임시 팀이고 임시 팀장이신 거잖아요. 이러면 안 되죠.
“그, 그치만 저번엔 허가 받았잖아요.”
-그때는 가이드국에서 승인이 떨어져서 가능했던 거고요. 아무튼, 이러시면 안 됩니다.
뚝-
관리국은 이러고 통화를 끊어 버렸다.
“아니, 그러고 끊어 버리면 우진이는 어쩌냐고!”
화가 나지만 우선 진정해야 한다. 나는 베테랑 에스퍼다. 내 전문은 아니지만 숨어든 훌리건의 목적지는 얼마든지 유추할 수 있다.
훌리건들이 다운타운에 숨어드는 이유는 생필품 때문이다. 그것도 특히, 식량.
그렇다고 그들은 식당에 숨어들어서 음식을 털어가지는 않는다. 식당 음식은 보존이 어렵잖아.
그놈들이 주로 노리는 건 보존이 잘되는 통조림이다. 유통기한도 길고 용기도 튼튼해서 많이들 훔쳐 간다고 했다.
그런 걸 구할 수 있는 장소는 슈퍼마켓 아니겠어? 분명 놈들은 다운타운의 슈퍼마켓에 숨어들어 물건을 훔쳐 갈 것이다.
스마트워치로 다운타운의 지도를 켜서 슈퍼마켓을 검색했다.
검색결과를 보니 다운타운의 슈퍼마켓은 총 142개였다.
***
우리는 여기서 관제소-D랑 가까운 곳을 우선 살펴보고 있다.
우리 반 애들 세 명과 곽승태, 그리고 나까지 해서 다섯 명이 인근의 슈퍼마켓을 모두 뒤져 보고 있었다.
“선배, 진짜 이 근처에 있는 거 맞아요? 여기 돌아다니는 사람이 몇 명인데 모를 수가 있어?”
“맞아. 사람들 사이 뛰어다니는 거 눈치 보인다고요. 부딪히면 다들 짜증 내고.”
“이미 밖으로 빠져나간 거 아니야?”
애들은 언제나 그랬듯, 일만 시켰다 하면 불평불만이었다.
“야! 지금 우리 팀의 가이드가 사라졌는데 그런 말이 나와? 한 군데라도 더 돌아보라고!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말이야. 장하나, 너는 이능 써서 탐색해 봐. 빨리 해!”
평소라면 어느 정도 봐줄 테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애들을 들들 볶으면서 성질을 부렸다. 얘넨 각자 돌아다니면서 찾으랬더니 틈만 나면 나한테 몰려와서 징징대고 난리야.
“할 말 있으면 무전을 써!”
괜히 한번 중간 결과를 보고할 겸, 날 찾아온 조용은 내가 짜증을 내자 뒤돌아서 도망쳤다.
그런데 급히 도망치느라 주위를 못 살폈나 보다.
“아이고, 학생! 이게 무슨 짓이야?! 오늘 장사하려고 내놓은 물건을 망가뜨리면 어떡해!”
조용이 야외가판대 밑에 놓은 상자를 발로 차버린 것이다.
신체 강화 S급에게 걷어차인 것답게 상자의 몰골은 처참했다.
“아유, 증말! 이거 어떡할거야? 어? 이거 어떡할 거냐고? 어제부터 밤새워 준비한 건데…….”
바빠죽겠는데 조용이 사고 친 거까지 수습해야 한다.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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