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훌리건 (17)
생각해 보면 우진이가 안 보인지 꽤 되었다.
확실히 좀벌 2 경보 무전을 받은 이후로는 보지 못했어. 어디 간 거지? 관제소로 모이라는 무전은 분명 받았을 텐데.
“그러고 보니, 왜 안 온 거지?”
“뭐가요?”
“우진이 말이야. 무전을 받았으면 안 올 리가 없는데.”
“그 가이드님 원래 좀 제멋대로잖아요. 오기 싫었나 보죠.”
장하나가 우진이에 대해 빈정댔다.
“우진이가 독선적인 면이 있긴 해도 막무가내는 아니야. 뭐가 중요한지, 뭐를 꼭 지켜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고. 우진이가 너네 같은 줄 알아?”
그리고 우진이는 현장 전문 가이드가 되려고 훈련받고 있다. 좀벌 2가 외부 침입자가 왔다는 의미인 걸 안다고. 얼마나 열심히 외웠는데.
우진이가 비협조적으로 나올 리는 없다. 한 달가량 지켜봤지만, 막무가내로 나오는 타입은 아니다. 아마도 올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예를 들어 무전을 받지 못한 상황이라든가.
‘그런데 여기서 그럴 상황이 일어날 수 있나?’
갑자기 등골이 섬뜩했다.
우진이의 실종, 훌리건의 사념이 사라지던 것, 가이드인 우진이. 이 파편들이 모여서 불길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얘들아, 무전 켜 봐. 우진이 무전기 찾아봐야겠어.”
나는 사람들과 함께 다급하게 우진이를 찾아 나섰다.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게다가 저번에도 비슷한 거 있었잖아. 갑자기 사라져서 찾고 보니까…….
“여기, 무전기 찾았어요!”
함소영이 관제소 뒤편에서 무전기를 찾았다며 소리쳤다.
“우진이는?”
“무전기만 있는데요…….”
시무룩하게 있는 함소영의 발치에는 부서지다 만 무전기와 잘게 다져진 스마트워치, 그리고 주먹만 한 짱돌이 굴러다녔다.
'이 짱돌, 피가 말라붙어 있잖아?’
막연한 예감에 확신이 생겼다. 훌리건한테 습격받아서 납치된 게 분명하다. 나는 스마트워치로 우진이 GPS 위치를 확인했다.
“뭐예요? GPS 추적? 가이드님 시계 갖고 있어요? 우리도 없는데, 그거.”
“우진이도 지금 스마트워치 없어. 저기 가루 수준으로 빻아져서 무전기랑 뒹굴고 있잖아.”
바빠죽겠는데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이 자꾸 말을 걸었다.
“그럼 뭐로 찾는 거예요? 가이드도 에스퍼처럼 고유한 개인 파장이 있나?”
“있겠지! 매칭률인지 그거 다 에스퍼랑 가이드의 개인 파장이 공명해서 나오는 거 아냐?”
“아, 그러네? 그럼 연구소가 우리 찾아내는 것처럼 등록된 파장으로 찾는 거구나.”
귀찮아서 대꾸를 안 했더니, 장하나랑 함소영이 알아서 북 치고 장구 치며 추측을 했다.
나름 그럴싸한 추측이지만 틀렸다.
에스퍼와 가이드 개개인마다 고유한 파장이 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 파장에 맞춰 얼마나 공명하느냐가 매칭률을 결정짓는다.
대부분 모르고 있는 이야기지만, 연구 센터에서 사는 애들이다 보니까 이런 종류의 지식은 쉽게 접하나 보다. 하긴 나도 연구 센터에서 알게 된 거니까.
그렇지만 이 파장으로 위치를 파악한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S급쯤 된다면 모를까, 그 밑의 급수들은 멀리서 추적할 수 있을 만큼 파장이 크지 않다. 고유파장으로 에스퍼와 가이드를 잡아낼 수 있다면 이미 이 땅의 모든 에스퍼와 가이드는 에가협이 잡아들였을 것이다.
그래서 위치 추적을 하는 것에는 GPS만 한 게 없다.
위성으로 바로 찍어 내는 신호가 파장 측정기 들고 발로 뛰는 것보다는 편하지.
대부분의 협회원들은 몸 속에 GPS 칩이 박혀 있어서 여차하면 바로 찾아낼 수 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나름 기밀이라 쟤들한텐 말을 안 하는 게 좋다. 저렇게 오해하고 있으면 나야 편하고 좋긴 하다.
물론 기밀인 만큼, 국장급이 아니면 허가 절차를 밟고 추적해야 한다. 추적한 보고서도 따로 써서 내야 한다.
‘하지만 난 전에 허가는 받아 놨고 지금은 긴급 상황이니까 써도 돼.’
신호를 다 잡아냈는지, 스마트워치가 삑삑대며 알림음을 냈다.
나는 곧장 GPS로 우진이의 위치를 찾아냈다.
***
차우진은 팔다리가 묶인 채로 짐짝처럼 자루에 실려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아, 진짜 더럽게 무겁네! 이거 버리고 가자니까? 이게 뭔 개고생이야. 들고 가야 할 짐도 많은데.”
“염력 쓰라고. 쟤 덕에 힘도 넘칠 거면서 왜 엄살이야. 능력 써.”
“30kg 넘는 거 들면 들킨다고. 같이 잡혀가고 싶냐? 이 새끼 때문에 빠른 길로도 못 가고 멀리 돌아가잖아.”
“어차피 오늘은 쟤 없어도 돌아가야 하는 날이야. 지상으로 갔으면 잡혀.”
훌리건들은 끝도 없이 서로 싸웠다.
지하도로 이동 중이기 때문에 훌리건들이 다투는 소리가 크게 울려 머리가 아팠다.
자루에 담겨 끌려가느라, 불편한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중인데 바닥의 마찰 충격까지 더해져 허리가 말도 못하게 아팠다. 물론 이 아픔엔 강제로 했던 3단계 가이딩의 여파도 있을 것이다.
관제소 창고에 숨어 있던 이들은 가이딩을 이용하여, 이능을 일시적으로 강화했다.
훌리건들은 가이딩이 끝나자마자 차우진의 머리에 커다란 자루를 씌워 그를 구겨 넣었다.
하지만 차우진의 키가 큰 탓에 발목 부근이 자루 밖으로 삐져나왔다. 훌리건들은 자루를 단단히 여밀 수 없다고 욕을 했지만, 단단하게 여밀 수 없는 덕분에 살짝 벌어진 틈으로 밖의 상황을 대충이나마 볼 수 있었다.
차우진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포대 자루에 구겨 넣어진 차우진은 개구멍에 살짝 몸이 끼이기도 했지만, 훌리건의 거친 손길에 무사히 빠져나왔다.
물론 그들은 손뿐만이 아니라 입도 거칠었다.
개구멍에서 차우진을 빼내는 동안, 훌리건들은 쉬지 않고 욕을 퍼부었다.
차우진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누군가 자신을 찾아 주길 바랐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투명해지는 이능을 사용했다지만, 비좁은 개구멍으로 성인 남자 3명이 빠져나갔는데 아무도 눈치를 못 채다니. 순찰팀이 무능한 건지, 이들이 능수능란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차우진은 포대 자루의 틈새로 푸른 하늘이 시커먼 시멘트 잔해로 바뀌는 걸 보았다.
곧이어 훌리건들의 목소리가 동굴에서 말하는 것처럼 울리기 시작하자, 지하도를 사용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차우진 본인도 에가협에 들어오기 전, 지하도를 이용한 적이 많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훌리건의 목소리에 에코까지 더해지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소음 때문인지, 아까 머리를 맞아서 이런 건지 모르겠다.
울퉁불퉁한 바닥에 쓸리는 것과 불편한 자세, 가이딩의 여파로 온몸이 욱신거렸다. 재갈을 물고 자루 속에 있었더니 숨쉬기가 힘든 것 같기도 했다.
차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분명 여기가 맞을 텐데. 왜 없지?”
나는 애들을 이끌고 우진이의 GPS 신호가 잡히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시멘트 잔해들이 나뒹구는 공터일 뿐이다.
‘그렇다면…….’
훌리건들이 GPS가 심어진 부위를 떼어 내서 잔해 사이에 버렸나?
나는 주변의 시멘트 덩어리들을 들어 엎을 생각으로 시멘트에 끼어 있는 철근을 붙잡았다.
건물의 잔해인 건지, 철근이 잔뜩 있는 커다란 덩어리였지만 들어 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본래 1호선이 지나가는 구간이었죠. 지하도로 들어간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를 따라온 곽승태가 말했다. 소장이면서 관제소를 막 벗어나도 되는 건가?
“……1호선이 뭔데요?”
“지하철 말하는 거잖아요. 선배, 가끔 보면 아는 게 없다니까.”
“그럼 지하철이라고 말하면 되잖아. 왜 1호선이라고 말해?”
난 또 1호선이라길래, 에가협 실험실이 여기까지 뻗어 나온 줄 알았잖아.
아무튼, 곽승태 씨는 소장답게 이 부근에 대해 잘 아는 것 같다.
“그럼 이 밑에 공간이 있다는 얘기죠?”
“그렇습니다. 괴수 때문에 무너진 곳이 많고 가끔 괴수가 둥지를 틀기 때문에 저희가 종종 살펴보고 있죠. 훌리건이 숨어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만.”
‘괴수도 들어오는데 훌리건도 당연히 들어갈 수 있겠죠. 이 아저씨 너무 무능력한 거 아니야?’
지리에 대한 지식으로 잠시나마 믿음직해 보였던 곽승태가 다시 한심해 보였다.
그렇지만 못 미더운 곽승태도 지하도로 가는 입구는 알고 있었다. 몰랐으면 그냥 여기 지반 무너뜨려서 진입하려 했는데 잘됐지, 뭐야.
지하도는 말 그대로 지하인지라, 무지하게 어두웠다.
괴수 체액이 흘러나와 굳은 건지 형광물질들이 사방에 깔려 은은하게 빛났고, 천장에 구멍 난 곳들로 밝은 빛이 새어들었다. 그 빛들 덕분에 간신히 내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지하도는 옛날에 지하철이 다녔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철도로 추정되는 것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무너진 시멘트 잔해들과 괴수 사체로 보이는 것들도 곳곳에 널려 있었다.
‘이런 곳에 우진이가 있는 건가?’
나는 GPS 추적 화면을 다시 켜보았다. 표식은 아까 전과 같은 위치라고 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 자리에 와 있는데 없잖아. 저 잔해들을 다 들춰 봤는데 없어. 지하라서 그런가? 렉 걸린 건가?’
나는 스마트워치 화면을 터치해서 새로고침을 눌렀다.
새로고침을 한 스마트워치의 화면 한가운데 안내문이 나타났다.
[접근허용 권한이 끝났습니다.]
GPS 추적 권한 기간이 만료됐단다. 이런 거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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