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52화 (52/81)

52. 훌리건 (16)

나는 경계구역의 바닥과 덤불들을 샅샅이 훑었다.

부자연스럽게 꺾인 가지나 발자국이 있는지 살펴보고 주변 사람들의 낌새도 조금씩 살펴봤다.

‘훌리건이 직원인척 변장할 수도 있잖아.’

사실 그편이 숨어들기 제일 좋은 방식이기도 하고 말이야. 뭐든 확실한 게 좋다.

그런데 아까부터 뭔가를 잊은 느낌인데, 그냥 기분 탓인가?

***

“이렇게까지 해야 해? 전엔 이런 적 한 번도 없잖아.”

“조용히 하기나 해. 들키고 싶은 거 아니면.”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두 사람의 인영이 두리번거렸다. 밀폐된 공기는 텁텁하고, 건조한 겨울철임에도 불구하고 불쾌한 습기를 머금었다.

두 사람은 실낱같은 문 틈새로 바깥의 상황을 확인했다.

밖은 두 사람을 찾느라 돌아다니는 에스퍼들이 넘쳐났다. 전에도 에스퍼들이 수색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하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그나마 두 사람에게 다행인 건 그들이 이 상황을 마주하기 전에 경계할 만한 일이 미리 발생했다는 점이다.

“으읍-”

두 사람의 밑에 깔린 남자가 꿈틀거렸다.

상체 쪽에 앉은 사람이 남자의 뒤통수를 눌러 안면을 바닥에 처박았다.

두껍게 쌓인 먼지와 바깥에서 들어온 흙 등으로 더러운 바닥에 얼굴이 처박힌 남자, 차우진은 반항을 멈추고 잠잠해졌다.

차우진이 이런 꼴이 된 경위를 밝히려면 30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

30분 전의 차우진은 순찰 중인 경계구역을 잠시 벗어나, 관제소-D에 있었다. 반항심이라든가 그런 이유로 온 건 아니고, 그저 화장실을 갔다 온 것뿐이었다.

그가 관제소 내부의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관제소의 내부에는 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 아무도 없는 곳일 텐데, 차우진의 귀에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무언가 부딪히는 것처럼 퉁퉁거리는 소리가.

‘어디서 나는 소리지?’

차우진은 본능적으로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그동안의 생존 경험상 작은 이변이 있으면 무시하기보다는 예민하게 대처하는 편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는 소리가 제일 크게 들리는 방향을 찾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이윽고 그는 구석 벽에 있는 분전함 커버에서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차우진은 허벅지에 찼던 권총을 꺼내 들었다.

보통 분전함에는 누전차단기가 들어 있겠지만 안에서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무엇이 들어 있을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그가 경험한 바로는, 정체불명의 소리가 나는 문 너머에는 괴수가 꼭 있었다. 이번에도 괴수가 숨어들었을지도 몰랐다.

차우진은 벽에 바짝 붙어서 벌어질 문틈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그리고 분전함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차우진이 조심스럽게 열은 그 안에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고압 전류가 흘렀을 게 분명한 굵직한 전선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공중에서 흐물거리며 공중으로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처음보는 괴상한 광경에, 차우진은 분전함 문을 다시 닫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분전함의 문을 닫아 버리려던 차에 유난히 덜그럭 거리는 무언가가 전선 사이에서 불쑥 솟아났다.

“……!”

녹이 슬은 커다란 대못이었다.

대못은 꿈틀대던 전선들 사이에서 유유히 솟아올랐다. 대못이 한 뼘쯤 되는 높이까지 올라가자, 미끼통의 살아 있는 지렁이처럼 움직이던 전선들이 뚝 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나 전선들의 움직임이 멎어도 대못은 두둥실 떠올랐다.

차우진의 눈높이까지 떠오른 대못은 관제소 밖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차우진은 귀신에 홀린 듯이 그것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대못은 관제소 건물의 뒤편의 철조망 너머로 날아갔다.

그리고 날아가던 대못을 누군가 손으로 잡았다.

허름하고 지저분한 행색의 남자였다. 그의 옆에는 그와 똑같이 남루한 몰골인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다. 같이 있던 남자가 불만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젠 익숙할 만도 한데 맨날 그런 거 꼭 날려서 가늠해 봐야 해? 누가 보면 어쩌려고?”

“물건 날려서 위치 확인 안 하면 전선이 어딨는지 파악을 못 하겠는데 어쩌라고. 너야말로 투명화 왜 풀어. 누가 보면 어쩌려고?”

녹슨 못을 손에 쥔 남자가 퉁명스럽게 맞받아쳤다.

불만을 토로하던 남자는 자세를 고쳐세우더니, 정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말하면 풀리니까 그렇지. 다시 하면 될 거 아냐. 어차피 아무도 없는…… 어?”

그리고 철조망 건너편에서 그들 앞에 서 있던 차우진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차우진은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그들에게 겨눴다.

저들이 누군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훌리건이라 불리는 에스퍼들인 것이다.

차우진은 불과 일주일 전에 임무에서 봤던 훌리건들이 떠올랐다.

비록 조준경 너머로 봤을 뿐이지만, 거리낌 없이 막무가내로 사람을 죽이던 모습은 괴물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저 괴물들이 사람들을 해치게 놔둘 수 없다.

결심이 선 차우진은 눈앞의 훌리건들을 향해 조준했다. 아니, 조준하려 했으나 머릿속이 혼란했다.

저들이 괴물과 똑같이 사람을 해친다고 알고는 있지만, 그들의 외형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딜, 맞춰야 하지?’

저번 임무에서 차우진은 분명 훌리건을 향해 총을 쐈지만, 그들을 죽일 각오는 없었다.

훌리건을 조준해 사격을 해도, 팔다리를 맞추거나 손가락이나 귀를 맞춘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직접 죽이지는 못해도 차우진은 그들이 괴물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마구잡이로 찢어 죽이는 이를 어떻게 같은 인간이라 느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들을 직접 죽이겠다고 마음먹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살인자도 결국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저들을 죽이면 자신도 살인자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차우진은 눈앞의 저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차라리 그때처럼 누군가 저들을 대신 해치워 줬으면…….’

차우진은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권총을 세게 쥐었다. 지금 이 순간 혼자인 것이 두려웠다. 저들에게 해를 입을 수 있는 지금 상황이, 저들의 목숨을 직접 빼앗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두려움에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머릿속은 대신 훌리건을 해치워 줄 사람의 존재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강하나의 얼굴을 떠올리던 차우진은 뒤통수에서 둔탁한 통증을 느끼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그리고 현재, 차우진은 팔다리가 묶인 채, 저 훌리건들의 발아래에 깔려 있다.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뿐인데, 훌리건들은 차우진의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재갈을 물고 있었음에도 매캐한 먼지덩어리들이 호흡기로 들어왔다.

차우진이 숨을 쉬기 위해 기침을 하자, 훌리건이 더 세게 머리를 눌렀다.

“조용히 좀 해.”

“그냥 투명화해서 빨리 지나가자. 얘는 여기 버려.”

“우리 잡으려고 다섯 명이 죽치고 있는데 저길 어떻게 지나가. 흙 위에 발자국은 그대로 남는데.”

“그럼 여기 계속 있냐? 정신계가 우리 찾는다며. 빨리 안 나가면 발각되는 거 시간문제야.”

차우진을 깔고 앉은 두 남자는 소곤거리면서 다퉜다.

차우진은 자신의 기침 소리보다 저 둘이 싸우는 소리가 훨씬 큰 것 같아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싸우는 두 남자와 별개로, 차우진은 전신을 짓누르는 성인 남자 두 명의 몸무게와 먼지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었다.

숨이 막혀 또다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의식이 희미해지는 중에, 훌리건이 차우진의 머리채를 잡아 올려 고개를 뒤로 꺾었다.

“두고 가면 안 된다니까? 이거 가이드라고. 가이딩해서 능력 강화하면 돼.”

징그러운 놈들은 꼭 가이드인 걸 알아보던데, 이번에도 그런 것 같았다.

“가이딩해서 강화하는 거 운빨이라 그러지 않았어?”

“내가 해 봤는데 잘 박으면 다 강화되더라고. 시간없으니까 빨리 잘해 보자고 형씨.”

머리채를 붙잡은 놈은 반대쪽 손으로 차우진의 뺨을 두드렸다.

불쾌한 감각에 소름이 돋았다.

에스퍼라 불리는 이 역겨운 놈들은 항상 하는 짓이 똑같았다.

낯설지 않은 절망감이 전신을 타고 내렸다. 바지를 벗기는 손길에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공포감으로 몸을 떨었다.

차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간절히 강하나를 찾았다.

***

“쌤. 뭐 해요?”

“훌리건 찾으라면서 쌤은 왜 멍때려요.”

나는 투덜거리는 애들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봤다.

“아니, 뭔가 쎄한 감각이 느껴져서.”

“쎄한 건 이번 임무 실적에 대한 선배의 집착이고요.”

수색하느라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던 장하나가 풀숲에서 걸어 나오며 빈정댔다.

“제가요, 여기 관제소-D 구역인가 뭔가 하는 곳은 다 돌아다녔거든요. 이상한 사념 못 찾았어요. 그런데 뭔가 노이즈 낀 것 같은 게 들렸다가 사라지긴 하더라고요.”

“뭐야, 찾은 거잖아. 왜 사라질 때까지 말을 안 했어.”

“처음엔 그냥 짜증만 내는 사념이었다고요! 막 오늘 일진 망했네 이러는 거. 그런데 갑자기 잘 안 들리더니 사라졌어요.”

“그러니까 일진 망했다고 투덜댈 때 보고했어야 할 거 아니야. 딱 들어도 수상한 걸 모르냐고.”

“선배가 잠벌인지 말벌인지 불러 대면서 들쑤실 때부터 그런 사념 수십 개 나왔거든요?”

장하나는 스스로의 무능함을 깨닫지 못하고 끝도 없이 불만을 늘어놓았다. S급인 스스로가 자기 능력의 활용 범위도 모르고 있으면서 처음 해 본 걸 어떻게 잘하냐는 소리만 반복했다.

장하나는 그렇게 투덜거려놓고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근본적인 핑곗거리를 찾았다.

“그러고 보면 이게 다 가이드님만 좋자고 하는 짓이잖아. 그쵸? 가이드님 실적 쌓자고 온 거 다 안다고요. 연구 센터에서 얼마나 투덜거리던데. 물론 사념으로 들은 거지만. 아무튼 가이드님이 제일 열심히 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가이드님은 어디 갔대? 설마 땡땡이?”

장하나는 자기가 수색을 열심히 다니는 동안, 우진이가 코빼기도 안 보였다고 난리였다.

우진이는 일반인이나 다를 바 없는데, 왜 우진이를 부려 먹으려고 그래. 하여간 심보가 고약하기는.

그런데 나도 우진이를 못 보긴 했다. 분명 순찰 자리 배치하고 그 자리 지키는 건 봤었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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