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훌리건 (15)
우리 반 청소년들은 깔깔대서 즐거워했다.
그 애들은 내가 곤란하면 일단 즐거워하는 애들이니까 그건 그러려니 해.
하지만 곽승태의 말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시원하게 깎은 머리는 어디 가고, 왜 그런 깍쟁이 같은 모습을 하신 거죠? 항상 사나이답게 입던 옷은 어디 가고 왜 그런 어린아이 같은 옷을 입으십니까? 정말 강하나 에스퍼님 본인이 맞으신가요?”
“생체정보 아까 다 확인했잖아요…… 그만 좀 물어보세요.”
자꾸 나를 의심하잖아. 강하나 맞냐고.
관제소 들어오려면 생체 정보 다 스캔해야 하고 스캔한 정보로 중앙에서 내려온 신원 정보랑 비교를 해야 된다. 근데 왜 저러는 거냐고. 확인할 거 다 하셨잖아요.
“선배, 그냥 머리를 다시 밀어요. 그럼 다 해결되잖아.”
“아냐, 웃통도 까야 해, 남자답게.”
그것만 하면 저 의심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금 30분 정도 시달렸더니, 애들 말대로 옷 벗고 머리 밀어서 끝내고 싶어졌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곽승태가 또 입을 열었다.
“옷은 이게 인형 탈도 아니고 뭘 곰 인형 그려진 걸 입고 다닙니까? 평소에 그 남자답게 입은 그 러닝셔츠는 어디 가고.”
그거 검은 나시는 신축성이 좋아서 지금도 안에 입고 있긴 한데요…… 그거 보여 주면 그만하시나요? 그냥 옷 벗고 민소매 보여 주면 끝내 주는 건가?
곽승태의 입을 다물게 할 수만 그깟 탈의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우진이가 골라 준 후드티의 밑단을 잡았다.
이것만 벗어 버리고 끝내자. 그럼 저 아저씨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어. 그래도 안 다물어지면 물리적으로 닫아 버릴 것이다.
결심을 한 나는 옷을 벗기 위해 밑단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어디서 한기가 느껴졌다.
‘뭐지? 지금이 겨울이라 춥긴 한데, 그 추위랑 다른 느낌이야.’
시선을 살짝 올려보니 우진이의 싸늘한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
냉랭한 표정의 우진이는 정말 잘생겼구나. 원래 우진이는 좀 차가워 보이는 스타일이라 저런 싸늘한 표정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저 표정으로 화보 찍어도 될 텐데.
어쨌든 옷 벗지 말라는 무언의 명령에, 난 올리려던 후드 밑단을 내려놨다.
‘남들이 뭐라 하는 게 대순가. 우진이의 맘에 드는 게 중요하지.’
***
소장이 귀찮게 굴어도 임무지에 왔으니 일은 해야 한다.
브리핑도 할 만큼 했으니 우리는 철조망에서 한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망을 봤다.
시멘트 가루가 휘날리는 철조망 너머에는 무너진 건물 잔해 말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보통 이게 정상이다. 뭐가 있으면 확인하는 게 지금의 일이긴 하다만, 그게 비정상의 상태니까 일이 되는 거지.
한 시간 정도 하염없이 철조망 밖만 내다봤더니 진짜 지루했다.
‘이래서 여기가 6시간마다 교대로 돌아가나 싶네. 용역으로 오는 사람들이 지루한 곳에 오래 있어 봤자 딴짓밖에 안 하지.’
차라리 짧게 자주 갈아 치우는 편이 낫긴하다.
우리 팀은 12시에 와서 18시에 돌아가니까, 해가 아직도 중천인 지금은 끝날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다.
나는 지루함에 그대로 쪼그려 앉아, 품 안에 든 장총으로 바닥이나 긁었다.
김 국장은 우진이의 실적을 원한다면서 왜 이런 임무를 이런 시간에 잡아 준거지? 순찰 임무는 보통 멍때리면서 밖만 내다보다가 오는 임무잖아.
게다가 시간도 점심에서 저녁 무렵까지의 오후 시간이다. 이런 대낮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기겠냐고.
정작 우진이는 차우린의 어린이집 시간이랑 엇나가지 않는다고 좋아했지만 말이다.
‘에휴, 차우린보다 본인이 더 급한 상황인데 그것도 모르고. 나 없으면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그래, 우진아.’
심심하니까 별 생각이 다 든다. 이래서 이런 지루한 임무는 별로 내 취향이 아닌데. 차라리 이 시간에 훈련이나 하고 싶다.
하릴없이 야외에서 죽치고 있었더니, 겨울철 찬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갔다. 뒷머리털이 목을 간질였다.
평소에 헤어스타일이 달라진 걸 크게 의식하고 살진 않지만 길어진 머리카락이 목을 간질이는 건 귀찮다. 마음 같아선 잘라버리고 싶은데 우진이가 지금 스타일을 좋아하니까 그냥 참아야지.
지금은 이 지루한 시간들이나 견뎌야 한다.
앞으로 이 철조망과 저 건너편을 4시간만 더 보면 된다.
그런데 철조망이 좀 아까랑 다른 것처럼 보이지 않나? 고압 전류 흐르는 거 티 내면서 살짝살짝 빛이 흘러 다녔는데 말이야. 지금은 안 그런 것 같은데?
‘한번 만져 볼까?’
철조망으로 손을 뻗는데 관제소에서 받은 무전기에서 소리가 났다.
-관제 D, 관제 D는 들으라. 좀벌 2 발생. 좀벌 2 발생.
헐, 관제 D면 우리? ‘좀벌 2’라면 외부에서 침입했다는 뜻인데? 우리 경계망 뚫렸어?
‘지루하다고 투덜댔더니, 바로 사고가 터지네.’
나는 무전을 듣자마자 우리 팀원을 전부 관제소로 불러 모았다.
외부순찰은 기존 순찰팀인 관제 D조가 하면 되고, 우리는 침입자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상황 파악부터 파악해야 하므로 나는 소장에게 질문했다.
“지금 정확히 어떤 상황이죠? 침입자는 파악된 건가요? 침입 경로는? 3으로 번질 가능성은?”
“그게…… 아직 침입자에 대해서는 저희가 잘 모릅니다. 저희 구역의 철조망 전력 전원이 나가서 본부에 연락을 넣었을 뿐이에요.”
“어쩐지 철조망이 이상한 것 같더라니…… 전원이 어떻게 나갔는데요? 외부인 소행인 건 확실해요?”
“전선이 무식하게 다 뽑혀 있으니 외부인의 소행이죠. 여기 사람이 전원을 그렇게 내릴 리가 있습니까? 감전 위험도 큰데. 그리고 외부에서 오는 좀도둑이 좀 많아야죠. 이번에도 도둑질하려는 훌리건인 게 뻔합니다.”
“좀도둑질하러 오는 훌리건이요?”
훌리건이 다운타운에서 도둑질을 한다는 얘긴 유명하긴 해. 나도 들어 본 적이 있다.
세상이 망한 지가 벌써 7년인데 식량이나 그런 걸 어디서 구하겠어. 괴수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말이야.
결국 오래 살아남으려면 꾸준한 공급처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공급처가 에가협밖에 없지.
물론 훌리건들이 에가협에 숨어들어 와서 도둑질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걔들도 협회를 직접 노리지는 않는다.
협회의 도움으로 식량을 유통하는 일반인을 노리지.
왜 이렇게 세세하게 알고 있냐면, 이렇게 도둑질을 하러 와서 잡힌 훌리건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깟 훌리건 잡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그래서 내가 순찰 중일 때 털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이게 말이 되냐고요. 벌건 대낮에 S급 3명에 내가 팀장으로 있는 팀인데 좀도둑이 들다니.
물론 탐지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데다, 팀원들의 현장 경험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팀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번 임무는 실상, 우진이 실적 쌓으러 온 거라서 이런 사건이 있어서는 안 된다.
‘빨리 숨어든 쥐새끼를 잡아내야 해. 탐지 능력이 있는 에스퍼 여기 아무도 없나?’
머리를 기르니 머리털을 쥐어뜯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네.
“……!!”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고민하는데, 번뜩 무언가가 떠올랐다.
잠깐, 탐지 능력? 탐지 전문가는 아니지만 비슷한 걸 할 수 있는 애가 있긴 해.
정신계 이능력은 대부분 잘만 활용하면 탐지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니까.
나는 장하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장하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무려 S급 정신계가 있으니 이럴 때 써먹어야지.’
장하나의 이능력의 본질은 정신 교란이다. 정신을 교란하려면 상대의 정신을 읽어 내는 게 기본 바탕이고, 정신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게 기본 옵션이지.
정신체를 파악한다는 건 사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누군가의 생각을 듣거나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남다른 목적을 가진 누군가를 찾을 때 유용한 이능력이지.
나는 장하나에게 다가가 양어깨를 붙잡았다.
“장하나. 당장 근처에 이상한 생각하는 사람 찾아봐.”
“예에? 선배가 제일 이상한 것 같은데요?”
“바깥에서 숨어든 좀도둑 찾아내라고. 오늘 안에 퇴근하고 싶으면. 오늘 여기 숨어든 좀도둑 못 찾아내면 여기 있는 사람들 아무도 퇴근할 수 없어.”
이번 임무는 김 국장이 다이렉트로 꽂아 준 임무다. 흡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기회라고.
그런데 여기서 실적은커녕, 사고만 일어난다?
김 국장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중앙이랑 연구소까지 압박하며 넣어 준 임무인데 말이야.
김 국장이 사활을 걸어 만들었던 ‘현장 전문 가이드 팀’을 다시 꾸리려고 만든 기횐데, 이걸 날리면 우리 팀 전원을 연구소에 팔아 버리려 할지도 모른다. 연구소에 팔리면 죽을 때까지 연구소 밖을 못 벗어나는 경우도 많다고. 난 그런 생활 또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침입자를 반드시 잡아내야 한다.
“알겠어, 장하나? 이렇게 연구 센터 밖에서 임무도 하면서 돌아다니고 싶으면 빨리 찾아내.”
“아니, 다른 사람들은 뭐 하고 왜 나한테만 그래요? 마인드 리딩 흔한 이능력 아냐? 여기 정신계 에스퍼 없어요?”
“흠, 제가 그쪽 방면 이능력이긴 합니다만.”
장하나와 나는 동시에 소리가 나는 옆쪽을 돌아봤다.
곽승태가 수줍게 손까지 들면서 말하고 있었다.
“그럼 왜 지금까지 좀도둑도 못 잡고 있었어요? 소장 자리 앉을 정도면 좀벌 2 정도는 막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그게…… 으흠! 아니, 제 이능력이 사람 찾는데도 활용할 수 있을지는 몰랐죠.”
허…, 자기 이능력 활용 범위도 모르면서 소장 자리 차지하고 있단 말을 하면서, 뭘 헛기침까지 하면서 근엄한 척을 해요.
마인드 리딩이 이능력인데 침입자가 들어오게 내버려 두고 대단하다 진짜.
“그럼 지금 당장 활용이란 걸 해 보세요. 불특정 다수의 사념 읽어 보는 거 정도는 할 줄 알죠?”
“제가 그런 건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오늘 처음으로 해 보면 되겠네요. 빨리 찾아와요. 일반인 구역으로 들어가기 전에. 거기까지 침투했으면 수색 범위 더 넓어지는 거 알죠?”
나는 장하나와 곽승태를 다그치며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조용이랑 함소영을 불렀다.
“너희도 나랑 해야 할 일이 있어. 우린 침입자들이 경계구역을 벗어났는지 확인해야 해.”
“그걸 어떻게 해요?”
“침입자가 경계구역에서 거주 구역으로 들어간 흔적을 찾는 거지. 여기가 배리어 안쪽이라 등록 안 된 에스퍼가 이능력으로 날아다니면 바로 중앙에서 알거든. 조용한 거 보니까 공중에 뜨는 놈들은 아니고, 기척을 숨기면서 걸어다닐 텐데. 아무리 애써도 이 주변은 흙바닥이라서 다 티가 나. 경계 지역이랑 거주 구역 사이에 덤불이나 나무들 잔뜩 심어 놓은 거도 그런 이유가 크고.”
“오~ 그렇구나. 그냥 철조망 가리려고 심은 줄 알았는데.”
“그런 기능도 있긴 해. 그러니까 너희도 빨리 나가서 찾아.”
나는 애들의 등을 떠밀며 관제소 밖으로 쫓아냈다.
“재깍재깍 움직여서 빨리 수습해.”
생각해 보니 6시에 일 끝내고 차우린 데리러 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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