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50화 (50/81)

50. 훌리건 (14)

“탄환 개수 맞는지 확인해 봤어? 조끼랑 하네스 사이즈 다 맞는 거지?”

“네네~ 다 셌고 다 입었잖아요.”

“각자 짐 확실하게 챙겼으면 차에 타.”

“예~”

애들은 성의 없이 대답하면서 차에 올라탔다.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무 당일이다.

오늘의 임무지는 일반인 거주 구역이라, S급 청소년 애들은 기대를 꽤 하던 눈치였다. 에가협 내부도 맘대로 못 다니는 애들인데 기대할 만도 하지.

훈련 강도가 세져서 애들의 민심이 나빠질 때마다 일반인 거주 구역에 가는 걸로 잠재웠다.

‘딱히 허락은 안 받았지만, 복귀 전에 애들 데리고 다운타운 좀 갔다 와도 되겠지? 임무 나갔던 사람들 다 하는데 괜찮겠지. 얘들이 거기서 이능력 쓸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나는 최종적으로 짐을 점검하며 차 트렁크를 닫았다.

애들도 다 차 안에 들어갔고, 우진이도 조수석에 앉았으니 출발해도 되겠다.

차는 에가협에서 대여한 지프차라서 말만 한 청소년 3명이 뒷좌석에 몰아 타도 여유가 있었다.

“쌤! 저 여기 너무 좁아요.”

단지, 190센티에 달하는 조용에게만 좁았을 뿐이다.

“조금만 옆으로 가. 나 진짜 좁아터진다고.”

“좌석 나눠진 선 안 보여? 딱 1인분만 해라. 밀지 말라고.”

“좁아도 네가 참아. 정 불편하면 어깨 탈부착하든가. 누가 그렇게 쓸데없이 덩치 키우래?”

우진이가 저 아비규환 속에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홀로 여유롭게 조수석에 앉은 우진이는 혼자서 딴 세상에 빠져 있었다.

오늘은 차우린이 처음으로 혼자 어린이집에 간 날이라, 그쪽이 신경 쓰이나 보다.

그래도 어린이집 둘째 날엔 때린 애한테 사과도 하고 나름 잘 지내던 것 같은데 말이야.

내가 보기엔 우린이는 첫날만 우진이한테 혼났지, 그날 이후론 즐거워 보였다.

내가 차우린은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 위로를 건네도, 우진이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저런 사소한 걸로도 신경이 쓰이게 되는 게 양육자의 마음인 건가?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나는 우진이를 이해하기로 했다.

“선배. 선배는 집 언제 구해요? B급 정도면 밖에 나가서 살림 차릴 수 있지 않아요?”

그런데 갑자기 뒷좌석의 장하나가 이상한 말을 꺼냈다.

“다들 협회 안에서 짝 찾으면 밖에 나가 살잖아요. 애까지 있으면 협회가 집 공짜로 준다던데? 선배는 조건도 맞으니까 밖에 나가 사는 거 충분하지 않아요?”

“우와, 쌤 집 구하면 우리도 집들이 불러 줘야 돼요!”

진짜 뭐지? 살림? 공짜 집? 집들이?

“뭔 소리야, 너네들? 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을 해 봐.”

“선배, 이왕 살림 차렸으면 협회 지원받아서 편하게 하란 거죠. 건너 듣기론 B급 숙소는 원룸이라면서요. 거기서 세 사람이 어떻게 지내요?”

“헐, 진짜? 쌤 원룸에서 살아요? 우린 개인 숙소마다 방 3개 있는데.”

“…….”

A급 숙소는 방이 하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얘기는 처음 들어 보네? S급은 방 3개짜리 숙소를 쓰는구나. 왠지 좀 부럽고 그러네. 협회 놈들 내가 해 준 게 얼만데 등급 갖고 이렇게 차별을 해?

아니다. 쟤들은 숙소 아니면 자유롭게 못 다니니까. 아마 숙소에 카메라도 붙어 있을 텐데, 뭘. 난 쟤네 안 부러워.

나는 옹졸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런데 지원받으려면 먼저 혼인 신고 넣어야 하는 거 아냐?”

“이미 해서 같이 사는 거 아니야? 쌤 혼인 신고 했어요?”

“…….”

아니, 되찾지 못했다. 혼인 신고? 내가? 우진이랑?

‘한 번도 생각 안 해 봤는데, 혼인 신고. 근데 상대가 우진이라…… 음…… 괜찮, 은데? 우진이랑 혼인 신고…… 혼인 신고라…….’

나는 옆에 있는 우진이를 슬쩍 곁눈질했다.

우진이도 애들 얘기에 당황했는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일단 우진이 굳어 있는 거부터 풀어 줘야지.

“그냥 애들이 하는 말이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우진 씨. 우린 가이드 국에서 승인받아서 그런 거 없어도 괜찮아요.”

“예? 그, 그런 거……?”

“구출된 일반인들 보면 집 얻으려고 일단 혼인 신고하고 애 하나 입양해서 지내는 경우가 많긴 한데, 그건 지낼 곳이 없어서 그러는 거니까요. 우리는 그냥 내 숙소에서 지내도 된다고 허락받아서 그런 신고 절차 없어도 괜찮아요.”

“선배는 하고 싶잖아요, 혼인 신고.”

‘아 진짜, 장하나 조용히 해라.’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말을 참았다. 애들이 깐죽거리는 것에 발끈하면 나만 손해야. 그리고 우진이도 애들 때문에 얼마나 민망하겠어? 굳이 쟤네 장난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이건 우진이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렇지, 우진아?

그런데 내 눈앞의 우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봐, 우진아?’

평소에 그윽하던 우진이의 눈매가 동그래져서는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평소랑 다른데 좀 귀엽다. 우진이의 얼굴에 방심하고 있던 사이에 우진이가 장난을 쳤다.

“저랑 혼인 신고하고 싶어요?”

‘으앗, 귀엽게 보다가 왜 갑자기 눈웃음 짓고 그래!’

운전 중이고 뭐고, 사진 찍고 싶다. 귀엽게 날 바라보다가 눈웃음 짓는 거 영상으로 찍어서 천년만년 돌려 보고 싶었다.

“선배, 뭐 해요? 가이드님이 혼인 신고 하고 싶냐잖아요.”

“이열~ 대답해 줘요~”

“대. 답. 해! 대. 답. 해!”

뒷좌석은 ‘대답해’의 음절에 맞춰서 박수까지 치고 아주 난리가 났다.

마침 때에 알맞게 커브 길이 나왔다. 나는 액셀을 세게 밟으며 핸들을 꺾었다.

끼이이이이익!

“악! 뭐냐고!”

“운전을 뭐 이따위로 해요!”

안전벨트도 매지 않은 뒷좌석 애들이 관성에 따라 한쪽으로 쏠렸다.

좁다고 아우성치던 애들이 한 방향으로 압축됐더니 뒷좌석에 여유가 생겼다.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났다.

그러니까 차에 타면 안전벨트를 매야지, 얘들아. 운전대는 내가 잡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렴.

***

우리의 임무지는 다운타운 외곽, 그것도 거주지의 맨 끝인 경계선이다.

다운타운은 협회에 구조된 일반인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끔 있는데, 사실 여기는 에가협에서 계획적으로 만든 거주 구역이다.

물론 상권까진 계획하진 않았지만, 구조된 일반인들이 모여 살라고 협회에서 내어 준 땅이라는 거다.

에가협은 전투능력이 약한 일반인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내어 준 땅의 가장자리에 철조망을 높게 쳐서 고압 전류까지 흐르게 만들어 놨다.

그리고 순찰팀을 파견해 철조망을 관리하고 외부 상황을 감독하도록 시켰다.

그렇게 해 놓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전투 가능한 협회원들을 꾸준히 용역으로 보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가 그 전투 용역이다.

철조망 관리는 원래 순찰팀 소속인 사람들이 할 거니까, 우리의 일이 아니다.

이번 임무에서 우리의 업무는 철조망의 바깥 상황을 감시하는 일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밖에서 철조망 안으로 안 넘어오게 하는 것이다. 그게 괴수든 뭐든 간에 말이다.

“그런데 철조망에 고압 전류가 흐른다면서요. 그게 뚫고 넘어가는 게 가능해요?”

내 설명을 듣던 함소영이 질문을 했다. 내 학생이 질문을 하는데 대답해 줘야지.

“응, 그럼. 그 정도 충격을 버틸 수 있는 괴수가 들이박거나 전선 끊고 철조망 넘어서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

“으, 그럼 오늘 또 괴수 잡아요?”

“지금은 동면기인 괴수가 많아서 아마 괴수는 안 잡을 거야.”

“저번 임무에서도 그런 얘기해 놓고 대빵 큰 거로 잡았잖아요.”

그래서 ‘아마’라고 했잖아. ‘아마’, ‘아마도’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얘넨 뭐 하나 ‘네, 알겠습니다’하고 넘어가는 적이 없어. 그리고 요즘 같은 세상에 괴수 잡는 게 뭘 대수라고 구시렁대. 괴수 잡기 싫으면 임무도, 수업도 하지 말고 연구소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입이 근질거렸지만, 눈앞에 우진이가 있어서 참았다.

‘적어도 우진이 앞에서는 멋지고 품위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애들한테 발끈하면 사람이 없어 보이니까 말이야.’

나는 어른스럽게 웃으며 철없는 애들을 타일렀다.

“여긴 에가협이 세운 안전지대잖아. 바깥이랑은 다르지. 철조망 사이에 설치한 관제소만 20개가 넘는다고. 상공이랑 지하에 배리어도 설치되어 있어. 동면기 아니어도 원래 괴수가 잘 안 들어와.”

“그렇죠. 여기 경계구역이 저 바깥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죠. 그래서 비전투원이 제일 많은 현장팀이 이 경계구역 순찰팀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애들에게 임무 브리핑하고 있는데, 순찰팀 직원이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근무할 관제소-D의 소장 곽승태입니다. 하하하. 이렇게 전도유망한 분들과 함께 일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너스레를 떨며 반겨 주는 이 후덕한 아저씨는 경계구역 순찰팀의 소장이다.

경계구역 순찰팀은 현장팀 중에 제일 규모가 크다. 넓은 구역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인원이 많고, 항상 빈 구역을 만들면 안 되기 때문에 교대인원까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찰팀은 보통 26개의 조로 찢어져서 활동한다.

거주 구역을 둘러싼 철조망 사이에는 26개의 관제소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설치되어 있다. 26개로 찢어진 조들은 관제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그 팀의 우두머리는 소장이라는 감투를 쓰게 된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곽승태 씨가 그 소장 중의 한 사람이다.

소장이라고 해 봤자, 순찰팀 팀장에게 정보를 전해 주는 중간 관리자지만.

“어휴~ 우리 에가협의 미래를 빛내줄 S급 소년들이라니. 제가 여러분을 지금 아니면 또 언제 만나 보겠습니까? 하하. 또 강하나 에스퍼님까지 오셨다니, D 관제소의 영광입니다.”

곽승태 씨는 소장자리 때문에 관제소를 벗어나기 힘들다면서 우리를 마구 추켜세웠다.

좀 민망하긴 한데,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대련대회 1등 할 때 아니면 이런 소리 잘 듣지도 못하는데 말이야. 뭐든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한다. 그것이 처음 보는 아저씨의 아부라도 말이다.

“B급인데도 불구하고 A급과 S급을 맨몸으로 이기는 건 정말 대단한 거죠. 심지어 그 대괴수 섬멸팀의 팀원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원래 그 팀은 B급은 잘 받아 주지도 않는다죠? 그런데 그런 곳에서도 홀로 거대한 괴수를 쓰러뜨리고 말입니다. 아주 대단하죠!”

‘크으, 내가 진짜 이런 침 튀기는 아부를 살면서 몇 번이나 들어보겠어.’

살짝 손가락이 오그라들기는 하는데, 기분만은 끝내 줬다. 이따가 사인이라도 해 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설렘과 기대로 살짝 가슴이 뛰었다. 서윤택은 맨날 하급 에스퍼들이나 일반인 만나면 사인해 주던데, 나도 이제 그런 거 해 보나? 우진이 앞에서 체면도 살고 말이야.

“정말 강하나 에스퍼님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화장실이라도 가셨나요? 분명 오늘 오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저 여기 있는데요?”

“……네? 아니 무슨 그런 농담을 다하고 그러십니까? 강하나 에스퍼가 머리 밀고 다니는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다고.”

아니, 저 맞는데요……. 왜 제가 항상 머리를 밀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 업적을 그렇게 칭송하더니 정작 내 이목구비는 못 알아보고 말이야. 나 갑자기 서러워지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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