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훌리건 (12)
이제 할 일은 정해졌다.
다음 주에 있는 임무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다같이 인정할 만한 우진이의 활약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일단 우진이의 훈련에 모든 걸 쏟기로 했다. 할 줄 아는 게 많아야 활약을 할 테니까.
이왕이면 지금 당장 시작하고 싶은데.
상황이 따라 주지 않았다.
어제 아침부터 열이 나던 우진이가 아직도 아프기 때문이다.
‘벌써 2번이나 수업 펑크 났는데 어떡하지?’
이틀 연속 쉬었더니 연구 센터랑 중앙 센터에서 아주 나를 쪼고 난리가 났다. 심지어 가이드 국에서도 연락이 온다.
아니, 내가 쉬고 싶어서 쉬는 것도 아닌데 다들 너무한 거 아니냐고요. 연구 센터랑 중앙 센터는 그렇다 치는데, 가이드 국은 왜 그러냐고요. 가이드인 우진이가 아픈데 왜 그러는 거야. 다들 성질만 급해 가지고.
나는 우리 ‘고위험군 에스퍼’ 애들에게 오늘 안에 훈련하는 영상을 찍어 보내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오늘 수업을 수습했다.
이런 식으로 자료를 남기면 연구진 놈들이랑 중앙은 만족하겠지.
노트북이랑 스마트워치로 적당히 상황을 정리한 나는 우진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이마에 해열 패치를 붙인 우진이는 힘없이 죽을 떠먹고 있었다.
‘고작 이틀 사이에 얼굴이 반쪽이 된 거 봐. 어제오늘 수업을 강행했으면 우진이는 죽었을 거라고.’
나는 안쓰러운 모습의 우진이에게 손을 뻗었다.
땀에 젖어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고 손바닥으로 우진이의 체온을 쟀다. 우진이는 아직도 컨디션이 안 좋은지 내 손길이 바짝 몸을 굳혔다.
나는 우진이 몸을 풀어 주기 위해 목이랑 어깨를 주물러 줬다.
“많이 힘들어요? 식탁 말고 침대로 갈래요? 옮겨 줄까요?”
“아, 아니……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손 좀…….”
우진이는 밥을 먹다 말고 어깨랑 목을 움츠렸다.
‘왜 그러지? 간지러운가?’
나는 우진이가 해 달라는 대로 손을 치웠다. 우진이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옆에서 가만히 우진이가 밥 먹는 걸 보다가 말을 꺼냈다.
“그런데요. 우진 씨도 알고 있지만 우리가 이번 주말에 또 임무가 있잖아요.”
“아, 네…….”
“대답 안 하셔도 되니까 그냥 편하게 드세요. 음… 이번 임무가 가이드 국장님이 잡아 준 임무거든요.”
꿀꺽
우진이가 입 속에 든 걸 삼키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래서 우진 씨가 팀장 재목이라는 걸 증명할 성과가 필요해요. 그러니까, 가능하면…… 바로 교육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급한 사항이라 당당하게 말을 꺼냈지만 차마 밥 다 먹으면 바로 교육을 시작하자는 말까지 당당하게 꺼낼 수는 없었다.
‘병색이 완연한 우진이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뻔뻔하게 할 수 있겠냐고.’
원래도 하얀 피부인데 창백하게 질리기까지 해서 금방이라도 깨져 버릴 것만 같은 우진이한테.
할 수만 있다면 김 국장을 설득해서 임무를 취소해 버리고 싶다.
지금 실적이 중요해?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하지.
그냥 임무 취소할까? 김 국장은 내가 한번 잘 달래 보면 되지 않을까?
별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데 우진이가 말을 걸었다.
“그럼 이따가 훈련장에 가는 건가요?”
“어, 그럼 좋긴 하지만…… 그런데 우진 씨가 몸 상태가 안 좋으니까 그냥 여기서 이론이나 해요. 사실 팀장 하려면 알아 둬야 하는 게 많거든요. 제가 자료 하나하나 보여 주면서 설명해 줄게요.”
기분 탓인가? 어째 우진이 얼굴이 더 하얗게 질린 것 같다.
***
“그러니까 우리가 이번에 갈 임무는 전투 유형 중에서 어떤 유형이라고 했죠? 제가 아까 얘기해 줬잖아요. 대답해 보세요, 우진 씨.”
“그, 그게…… 게릴라, 방어 전투…… 유형이요…….”
“음~ 게릴라 전투는 훌리건의 입장이고. 우리는 일반인을 보호하는 게 목적이에요. 그것도 구역을 지키는 게 목적이죠.”
“구역을 지켜요?”
“네, 분류하자면 진영 방어 유형이에요. 다운타운 외곽의 일반인 거주 구역도 협회가 보호하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항상 순찰하는 사람이 있어요. 담당 인원들이 번갈아 가면서 지키고 있죠. 그렇지만 거기서 추가 인원을 임무를 통해 상시로 모집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 추가 인원으로 가는 거죠.”
“아아……”
“그래서 그쪽 담당 사람들을 알아 두면 좋은데, 여기 명단을 가져왔어요. 한번 보세요. 맨 위가 팀장이고 밑에는 쭉 팀원이에요. 팀원들은 가나다순이 아니고 분류 번호 순으로 정리되어 있으니까 그것도 기억해 두면 좋아요. 분류 번호 앞에 있는 알파벳은 등급이에요. 알기 쉽죠?”
단기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때려 박기 위해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우진이는 어버버거리면서도 내 설명을 따라가려고 애써 주었다. 곤혹스러워 보이는 표정이 귀여우면서도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다.
팀장급 사람들은 일반 에스퍼나 가이드들보다 많은 정보를 알아야 하는데 우진이는 우리 반 청소년 애들보다 아는 게 없다.
이왕이면 단둘이 있는 이 시간에 팀장급에게 필수적인 정보를 다 전해 주는 게 좋다.
연구 센터에 짱박혀 있는 애들이 이런 정보 알아서 뭐 하겠어. 걔들은 훈련받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란데.
비록 수업은 하지 않았지만, 나의 일은 수업할 때보다 줄어들지 않았다.
우진이를 가르쳐 주고 나면 애들 훈련 영상 확인해야 하고, 그걸로 보고서도 써야 하고, 내일 수업 계획안도 짜고 이제 임무용 장비 대여 품목 리스트도 준비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할 일을 정리하던 나는 우진이를 슬쩍 돌아봤다.
떨어져서 혼자 놀던 차우린이 우진이 품에 매달려서 심심하다고 칭얼거리고 있었다.
차우린의 몸무게 정도는 거뜬하게 버티는 걸 보니 내일은 수업 데려가도 되겠다.
이런 흐뭇한 생각을 하는 중에 우진이가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런데요, 하나 씨.”
“네? 왜 그러세요? 뭐가 어렵나요?”
“아니, 그게 아니고…… 유치원 같은 시설은 없나 해서요. 애가 맨날 방치되다시피 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요.”
‘아, 그런가? 딱히 생각을 안 해 본 문제였는데.’
나는 우진이에게 새끼 원숭이처럼 매달린 차우린을 봤다. 그냥 길 안 잃어버리게 옆에 두기만 하면 안 되는 거였나? 끼니 꼬박꼬박 챙겨 주고 화장실 처리만 해 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우진이 품에 얼굴을 파묻던 차우린이 웅얼거렸다.
“아니야. 나 유치원 안 가도 돼. 오빠랑 있을 거야.”
“유치원 가면 친구도 만나고 재밌는 거 많을 거야. 너 지금도 심심하잖아.”
우진이 말을 들은 차우린이 고개를 내저으며 우진이한테 더 찰싹 달라붙었다.
‘본인은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것 같은데 꼭 보내야겠니, 우진아?’
***
다짜고짜 다운타운 내려가서 수소문을 했더니, 놀랍게도 어린이집이라는 게 존재했다.
“진짜 한국인의 교육열은 대단하네. 폐허나 다름없는 세상에도 교육 기관을 만드는구나. 괴수도 꺾지 못하는 교육열이라니.”
나는 속으로 감탄을 거듭하며 <희망의 어린이집>이라는 간판을 단 건물 앞에 섰다.
무려 건물 하나를 다 어린이집으로 쓰다니. 요즘 세상에 애들이 뭐 얼마나 있다고. 게다가 간판도 어린이집 이름에 조사까지 붙이고 아주 자신감이 넘쳤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차임벨이 울렸다.
현관에는 신발장이 벽면마다 붙어 있었고 은근히 신발이 많이 들어 있었다.
벨이 울려서인지, 아무도 없던 현관에 머리털과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환하게 웃는 남자의 인상은 좋아 보였지만 뭐 하는 사람인지 짐작이 안 갔다. 자연주의 심리 치료라면서 야외에서 향 피우고 명상할 것 같은데, 왜 어린이집에 있지?
“안녕하세요. 혹시 얘도 여기 다닐 수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차우린, 나와서 인사해.”
우진이가 정체 모를 털이 덥수룩한 남자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우진이 허리춤을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던 차우린도 똥 씹은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 이름이 우린이야? 몇 살이니?”
“어…… 여섯 살.”
정체모를 남자는 우린이를 보더니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더니 애한테 들어와서 구경하라고 말하며 우리를 안으로 이끌었다.
남자의 이름은 ‘선우현’이라고 하고, 여기 원장이라고 했다. ‘선우’가 성이고 ‘현’이 이름이란다.
우리보다 조금 앞서 걷는 선우현은 이것저것 열심히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 설명을 그나마 간결하게 줄이면 이렇다.
여긴 갓난아기부터 청소년까지 다양한 애들이 있다고 했다. 이 동네의 유일한 교육 기관이라 어쩔 수 없단다. 보통 애들 가르치는 건 교사가 다 해 주지만 밥 먹이거나 기저귀 갈고 하는 건 일손이 모자라서 청소년들을 알바생처럼 쓴다고 했다.
애들은 총 56명이고 3살 미만 애들만 20명이란다. 교사는 원장까지 합쳐서 고작 5명이라는데, 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수업 중이라 지금은 만나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6살짜리가 이곳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우진이는 차우린과 동갑인 애가 있다는 얘길 듣고 표정이 밝아졌다.
“우린아, 너 여기 다니면 친구도 만날 수 있대. 너 맨날 언니 오빠나 어른들은 안 놀아 준다고 그랬잖아. 이제 친구랑 같이 놀면 되겠다.”
“친구가 뭔데?”
“너랑 나이도 비슷하고 같이 놀아 줄 사람. 그동안 또래 친구를 한 번도 못 만났는데, 잘됐다. 그치?”
차우린은 뭐가 뭔지도 잘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우진이는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기뻐했다.
‘잘 모르겠지만 우진이가 좋아하니 그러려니 해야지.’
우리는 내일 아침부터 차우린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스쿨버스 같은 건 당연히 없으니까 애를 등하원 시킬 때는 직접 데리고 오고 데리러 가고 해야 한단다.
‘음, 일이 더 늘어났네.’
***
우리는 이왕 나온 김에 차우린의 장난감이나 학용품을 사고 냄비 같은 부엌 용품을 좀 샀다. 매번 김상혁 거 빌리고 반납하기 귀찮으니까 냄비 정도는 내 것을 사 놓는 게 낫겠어.
볼일을 다 마친 우리는 돌아가기 위해 차에 탔다.
그런데 조수석에 앉은 우진이가 안절부절못했다.
‘뭐지? 몸 상태가 또 안 좋아졌나?’
“이제 내일부터 우린이 매번 태워다 주셔야 하게 됐네요…… 미안해서 어쩌죠.”
딱히 불만을 품지는 않았지만, 마음씨가 비단결 같은 우진이는 그 점이 신경 쓰였나 보다.
“아, 괜찮아요~ 그냥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다니면 되죠. 거리가 먼 것도 아니고.”
“그,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면허라도 따 놨으면 좋았을 텐데…….”
“면허요? 무슨 면허요?”
내 대답을 들은 우진이가 살짝 얼이 빠진 표정으로 나를 봤다. 근데 그런 얼굴도 잘생겼네.
“……운전면허죠.”
“에이, 운전하는데 뭐 그런 거까지 필요해요. 그냥 액셀이랑 브레이크 밟을 줄 알고 핸들 잡을 줄 알면 된 거지. 신호등도 없는데요, 뭘. 우진 씨 운전하고 싶어요? 제가 가르쳐 줄까요?”
“…….”
우진이는 내 말에 대답도 없이 창 위에 있는 손잡이를 꾹 잡았다.
‘왜 그러는 거야? 나 운전 되게 잘하는데. 진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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