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46화 (46/81)

46. 훌리건 (10)

어쨌든 임무를 다녀온 성과가 있었다.

애들이 그나마 현실 감각이 생겨서 훈련 시간에 말을 좀 더 잘 듣게 됐다. 아주 약간이지만.

제일 큰 성과는 김 국장이 우진이의 활약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것이다.

어찌나 좋아하던지 다음 주에 또 갔다 오라고 순찰 임무를 직접 골라서 보내 줬다.

‘눈 밖에 나는 것보단 맘에 드는 게 낫지.’

비록 그 대가로 일이 제일 많이 늘어나는 건 나지만, 우진이를 위해서 이 정도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다음 주에 어제처럼 임무 나갈 거야. 이번엔 사격 확실하게 배워야 해. 빨리 저기 가서 연습해.”

난 아침부터 부지런히 설치한 사격장에 애들을 몰아넣었다.

다음 임무는 다운타운 경계 지대에서 순찰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거주하는 곳이라 외부의 위험 요소를 빠르고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멀리서 정확하게 사살할 수 있는 이능력이 있으면 편하지만, 그건 특정 에스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특정 인력을 순찰에만 쓰는 건 완전 인력 낭비다.

그런 이능이 여기에만 필요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 임무엔 총이 최고다.

총이 있으면 가이드나 일반인도 자기 몸 정도는 지킬 수 있는 물리력을 갖출 수 있다.

물론 비전투계 에스퍼에게도 훌륭한 무기다.

그 무기를 잘 다루는 우진이는 현장에서 좋아할 만한 인재지. 김 국장이 맘에 들어 할 만하다.

그리고 우진이는 지금 내 수업을 듣는 청소년 친구들의 마음에도 들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우진이한테 붙어서 사격 요령을 배우려고 하고 있다.

‘다들 우진이의 유능함을 알아줘서 기쁘긴 한데, 내 수업시간이야. 일단 내 말을 들어 봐. 왜 똑같은 말을 해도 내 말은 안 듣고 우진이 말만 듣는 거야?’

내가 아까 가르쳐 줄 때는 한 귀로 흘리고 우진이한테 다시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걸 보니 좀 기분이 그렇다.

‘우진이도 사격 연습해야 하는데 너네들 때문에 못 하잖아.’

설상가상으로 차우린까지 우진이한테 매달려 있다.

“야, 너네 그만들 해! 물어볼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나도 총 쏠 줄 알거든? 움직이는 과녁도 다 맞추거든? 우진이도 사격 연습해야 해. 그만 들러붙어. 차우린, 너도 오빠 바지 붙들고 있는 거 놓고.”

“싫어. 난 오빠랑 있을 거야.”

“선배보단 가이드님이 훨씬 믿을 만하잖아요.”

“맞아. 가운데도 못 맞히잖아요.”

“사격 연습해야 하는 건 가이드님이 아닌 것 같던데.”

“우진이가 연습할 필요도 없는 실력이라는 건 나도 동의하는데, 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내가 사격은 좀 못하지만, 이래 봬도 내가 업계 베테랑이야.”

내가 나의 가치를 열심히 설파하는 동안에도 애들은 우진이한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우진이의 안색이 이상하다? 원래도 하얀 우진이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어.

‘눈도 좀 풀려 있는 게 마치…… 곧 쓰러질 사람처럼 말이야. 몸도 기울어지고 있는데 이건…….’

진짜 쓰러지고 있잖아?!

“헉! 우진아!!!!!!”

나는 부리나케 뛰어 쓰러지는 우진이를 받아 냈다.

전속력으로 뛰어간 덕분에 우진이가 바닥에 쓰러지기 전에 붙잡을 수 있었다.

“우진아, 왜 그래? 괜찮아? 어디 아파?”

나는 우진이를 안고 다급하게 물어봤지만, 가련한 우진이는 내 질문에 대답도 못 하고 내 품에서 축 늘어졌다.

‘뭐야? 왜 이러지?’

나는 우진이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이마를 만져 봤다.

‘이마가 완전 불덩이잖아.’

나는 애들끼리 사격 연습이나 하라고 놔두고 우진이를 들쳐 업은 채, 의료 센터까지 뛰어갔다.

의료 센터로 가는 중에 화영이에게 연락을 넣었던 터라 얼마 안 기다리고 진찰을 받을 수 있었다.

이윽고 우진이 진찰을 끝낸 화영이가 입을 열었다.

“그냥 몸살이네. 수액 하나 놔줄게. 그런데 임무 어제 끝났다고 들었는데 이제 돌아온 거야?”

“아니? 어제 돌아왔고 오늘 연구 센터에서 훈련하고 있다가 우진이가 쓰러져서 왔어.”

“……그럼 연구 센터 의무실로 가지 여긴 왜 왔어? 거기도 수액 놔주는 건 할 수 있는데. 난 또 네가 급하게 연락하길래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지. 꼭 여기서 다급하게 부를 일은 아니었네.”

화영이는 조곤조곤하게 급한 일도 아닌데 왜 불렀냐고 나를 타박했다.

“그치만 우진이가 쓰러졌는데 전문적인 의료 센터도 아니고 의무실 같은 어중간한 곳으로 가는 건 좀 그렇잖아.”

“의무실에도 약품 많고 거기 직원도 의료인인데, 왜 별일도 아닌 걸로 맨날 바빠 죽을 것 같은 장소로 기어들어 와? 너 내가 만만해? 난 또 현장에서 크게 다친 걸로 여기까지 온 줄 알았잖아. 고작 과로로 인한 몸살 가지고 나를 오라 가라 하는 거냐고. 이런 거면 그냥 밑에서 접수하고 올라오란 말이야.”

“하지만…… 우진이가 정신을 못 차리잖아. 열도 펄펄 나고.”

“인간은 39도 정도로는 죽지 않아. 긴급한 상황 아니면 부르지 마.”

이화영은 나한테 한바탕 짜증을 내고는 우진이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래도 일 처리는 확실하게 해 주는 화영이라 안심하는 찰나,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가라면서 우리를 쫓아냈다.

아직 우진이가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매정하게도 군다.

***

수액 맞는 우진이를 놔두고 차우린과 나는 의료 센터 밖으로 나왔다.

애들 사격 연습이나 봐주려고 했는데, 손목에서 진동이 울렸다.

스마트워치를 확인해 보니, 김 국장이었다.

‘이 양반은 왜 맨날 날 불러내지 못해서 안달이지? 어제 임무 끝나자마자 왔으면 됐지. 왜 오늘 또 불러내냐고.’

심지어 지금은 ‘고위험군 에스퍼 특별 교육’ 시간이다.

“에휴… 국장급 인물들이 시키는 걸 거절해 봤자 이득 보는 게 없으니까 말 들어야지.”

난 차우린을 옆구리에 끼고 가이드 국장실로 향했다.

고위험군 에스퍼 애들한테는 사격 연습하다가 시간 되면 정리하고 가라는 메시지 넣어 놨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차우린이 왜 오빠만 두고 딴 데 가냐고 칭얼댔지만 난 꼬맹이를 적당히 들쳐 메고 국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

“저 수업 중이라 바쁜데 왜 불러냈어요?”

“왜 불렀긴, 할 말 있으니까 불렀지. 거기 앉아 봐.”

아침부터 정신없는데 불러내서 삐딱하게 인사했지만, 우리 김 국장은 서류를 보느라 우리 쪽은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우릴 맞이했다.

김 국장은 나에게 잔심부름을 많이 시키는 사람이지만 결국에는 가이드 국의 국장이다.

이렇게 불러내고 시키는 일들은 다 가이드 국과 관련된 일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나를 부른 이유는 뻔하다.

“우진이 때문에 부른 거죠? 그런데 우진이는 지금 아파서 못 오는데요.”

“그놈 때문에 부른 거 맞고. 나도 너희 상황 다 알아. 지금 불러낸 게 마침 이렇게 누구도 끼어들기 힘든 일과 시간에 혼자 있어서 아니냐.”

김 국장이 드디어 서류에서 눈을 떼고 우리를 봤다.

그러니까 이 아주머니가 지금 내가 수업시간이라 못 움직이는 걸 알지만, 우진이가 쓰러져서 내가 S급 애들이랑 떨어지고 의료 센터에서 쫓겨나서 잠깐 붕 떠 있게 된 걸 다 알고 있단 거지?

‘아니, 대체 뭐지? 가이드 국장이 아니라 내 스토커예요?’

김 국장의 정보력에 소름이 돋았다.

협회가 협회원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있을 거라 막연하게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겪어 보니까 진짜 징그럽다.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 국장은 자기 할 말만 꺼냈다.

“넌 일단 알아 두고 있어. 난 봄이 오기 전에 그놈을 현장팀 가이드 팀장으로 만들 거다. 네가 바짝 붙어서 잘 키워 놓고 있어. 교육 감독은 내가 할 거니까.”

김 국장은 항상 직구먼 던지는 그의 성미답게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가 말하는 ‘현장 전문 가이드 팀장’은 현재 공석인 자리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가이드 국장인 김하나가 키워 낸 ‘현장 전문 가이드’가 많았었다.

‘현장 전문 가이드’는 현장팀에 곁다리로 딸려 오는 가이드들이랑 차이가 있었다.

이들은 ‘현장 전문’이라는 말이 붙는 것처럼 임무 현장의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비록 가이드지만, 훌리건이나 괴수 처치 방법은 기본으로 익히고 현장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어 임무 계획 회의에 참가할 자격도 있다.

그중에서 제일 우수한 사람을 팀장으로 세웠는데 ‘현장 전문 가이드 팀장’은 현장을 지휘하는 그 현장팀의 팀장과 맞먹는 지위다.

그래서 3년 전에는 ‘현장 전문 가이드 팀장’이랑 에스퍼인 현장 팀장이랑 싸우는 모습도 많이 봤었는데.

‘이젠 한 명도 없으니까 아예 새로 키우려는 거겠지?’

“그런데 왜 우진이를 현장 전문 가이드 팀장으로 만들려는 거예요? 협회에 구조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그놈 말고는 적당한 게 없잖아. 서두르지 않으면 또 애먼 곳에 뺏긴다. 두 번이나 뺏길 순 없어.”

김 국장은 말을 끝냈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입을 다물었다.

아니 근데 잠깐만.

“몸도 다 안 나은 사람을 볶아 대는 이유는 알겠는데요. 그건 얘기 안 해 주셨잖아요. 왜 우진이를 팀장으로 만들려는 건지요.”

“적당히 젊어서 튼튼하고, 생존 능력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고, 인물이 훤칠해서 이목 끌기도 쉽잖냐. 화제성도 아주 좋겠지. 3년 만에 임명하는 가이드 팀장. 그런 자리에 잘생긴 놈이 등장하면 보기도 좋고.”

“젊고 잘생겨서 골랐다는 건 알겠는데, 생존 능력이요? 괴수한테 먹히는 거 내가 구해 줬는데?”

“갓난아기랑 저 난장판에서 7년을 살아남았으면 단순히 운만 좋은 게 아니라 나름의 특기가 있다는 거지. 어제 갔다 온 현장만 해도 너보다 감이 좋은 것 같던데? 사격도 잘한다니 기본기는 다 갖췄구먼.”

김 국장은 우진이가 사격을 잘한다는 걸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가 바뀔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가이드 국장이 D급 가이드 차우진을 긍정적으로 본다는데 잘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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