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훌리건 (7)
눈치 없는 장하나가 계속 따라오니까 최대한 빨리 가리려고 몸도 대충 닦았다.
대충 몸과 얼굴에 더럽고 냄새나는 거적때기를 둘둘 말고 났더니,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나는 이제야 고개를 들어 직접 주위를 둘러봤다.
내 앞에는 겁먹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따로 심문은 안 했지만, 저 사람들이 누군지는 알겠다. 저 사람들은 이 훌리건 아지트의 가이드들일 것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괴수 때문에 절반쯤 부서진 아지트 건물이니까, 내 추측이 맞을 거다.
일반인들인 생산 인력은 바깥에서 텐트를 치게 하고 학살하던 중이었으니까, 나름 안전하게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훌리건의 가이드들이겠지.
갑자기 괴물이 건물을 부숴 버리고, 내가 들이닥쳐서 거적때기들을 다 가져가 버리니까 다들 겁먹은 모양이다.
뭐, 내가 남의 살림살이를 축내긴 했는데, 다들 협회로 가서 더 좋고 깨끗한 걸로 제공받을 거잖아. 미안하진 않았다.
상황 파악을 모두 끝낸 나는 장하나의 스마트워치로 인명 구조팀과 괴수 잔해 처리반을 불렀다.
***
인명 구조팀 소속인 김상혁은 다행스럽게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우린이를 맡겨 놨는데 이번 건은 쉬겠지. 이게 급한 임무도 아니고 그 팀에서도 김상혁이 쉰다고 눈치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흘러내리려는 거적때기의 매무새를 가다듬고 일하러 오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지금 몰골이 말이 아니라서 나는 우진이를 피해 거리를 두고 있다.
빨리 이 사람들에게 인수인계를 넘기고 사람의 꼴을 갖추러 가고 싶었다.
‘이 사람들은 텔레포트 이능력자들을 달고 편하게 왔으면서 왜 이리 꾸물댈까?’
나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복귀할 상황이 되길 기다렸다.
갑자기 늘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우진이가 나를 찾는 듯한 모습도 보였지만, 우진이가 나를 찾아 내는 것보다 내가 우진이의 위치를 파악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우진이를 요리조리 잘 피해서 사람들 틈에 숨어 있었다.
나도 일도 다 끝나 가는 마당에 우진이랑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괴수 체액에 찌들고 난 직후는 좀 보이고 싶지 않단 말이야.
지금도 나를 찾는 우진이를 피해 사람들 사이로 피신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덥석 잡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김상혁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 강또, 오늘도 제일 냄새나고 더러운 모습으로 있구나.”
이 새끼는 왜 또 여기 있고 난리지.
“뭐야, 김상혁. 너 왜 여기 있어? 차우린은 어쩌고?”
“우리 꼬마 친구는 나랑 같이 왔지. 애를 어떻게 혼자 두냐. 어차피 괴수도 죽었고 훌리건도 죽었다는데 위험한 것도 없고.”
“다른 괴수가 난입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들었냐? 이거 완전 미친놈 아냐? 현장에 돌발 상황 많은 거 모르는 것도 아닌 놈이 뭐 하는 짓이야! 애랑 같이 왔다면서 걘 어디 갔어?”
“사람들이 이렇게 바글바글한데 어떤 간 큰 괴수가 오겠냐. 우리 꼬마 친구라면 여기 있지, 내 옆에. 어라? 없네?”
김상혁이 헛소리를 하는 동안, 그 뒤편에서 우진이를 찾아 달려가는 차우린이 보였다.
정말 여러 방면으로 되는 일이 없다.
우진이는 지금 기분이 매우 안 좋아 보였다.
이게 다 김상혁 때문이다.
애를 안전한 곳에서 보호하라고 맡기고 왔더니, 방금까지 훌리건들과 괴수와 혈투가 벌어진 현장으로 데리고 왔다.
‘아침에 눈물의 이별을 하고 왔는데, 이런 위험한 곳으로 데려왔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겠어. 나도 이해가 가는데 말이야.’
우진이한테 안긴 차우린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아저씨랑 노는 거 재미없어. 과자도 못 먹게 해.”
“우린아, 그건 아니지. 아저씨랑 노는 게 재미없을 수는 있어. 어? 그건 인정. 그렇지만 아저씨가 과자는 먹게 해 줬잖아.”
“나가서, 흑. 나가서 먹으라고 했잖아……. 나가서 먹으라고, 흑. 그래서 나가서 먹었어…….”
차우린은 훌쩍이면서 말을 마치고는 크게 울었다.
듣자 하니, 김상혁이 차우린에게 과자 먹을 거면 밖에서 먹으라고 말하면서 애를 현관문 밖에 혼자 뒀고, 애가 과자를 다 먹어야만 안에 들여 줬나 보다.
‘음, 김상혁이 생긴 거랑 다르게 깔끔을 떨긴 하지.’
김상혁은 방 안에서는 액체밖에 안 마시고 청소도 하루에 두 번씩 한다.
‘차우린도 과자 가루를 많이 흘리긴 하지.’
김상혁이 밖에서 과자를 먹게 한 이유도 나름대로 이해는 갔다.
그렇지만 차우린은 김상혁의 처사가 서러웠던 모양인지 엄청 울었다.
우진이는 대성통곡하는 차우린을 가만히 안고 달래기만 했다.
김상혁을 쳐다보는 우진이의 눈빛에는 김상혁에게 할 말이 많은 것이 보였지만, 우진이는 김상혁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차우린만 달랬다.
그러던 우진이가 한숨을 내쉬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일단 자리를 옮기죠.”
우진이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애 울음소리를 듣고 기웃대는 게 신경 쓰였는지, 사람이 없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옮긴 우진이는 김상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본인 특유의 낮은 목소리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동생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불편하셨을 텐데 다신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
돌려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지만 그 순간만큼은 우진이가 우리한테 욕을 하고 있다는 걸 단박에 깨달았다.
어린애도 제대로 못 보는 상종 못할 새끼를 이렇게 우아하게 말하다니, 솔직히 좀 멋있었다.
***
김상혁은 보통의 신체 강화 이능력자들이 그렇듯이 키가 꽤 큰 편이었다.
무려 188센티나 되니까 마주 볼 수 있는 눈높이를 가진 사람이 적은 편이다.
그리고 우진이는 김상혁과 눈높이가 비슷한 사람 중의 한 명이지.
김상혁은 압도적으로 잘생긴 미남이 정면에서 화를 내자, 당황한 눈치였다.
그래서인지 김상혁은 평소랑은 다르게 우진이에게 쩔쩔맸다.
“아, 그게…… 저, 우진 씨, 미안합니다. 제가 애한테 야박하게 굴려던 건 아니고요~”
상혁이가 구질구질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우진이는 김상혁에게서 등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김상혁은 애를 안고 어르고만 있는 우진이에게 붙어서 똥 마려운 개처럼 굴었다.
그런 모습의 김상혁을 놀려 먹으면 딱 좋은 상황인데, 어쩐지 김상혁을 놀려야겠다는 생각보단 저놈을 우진이한테서 떼어 놔야 한다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이유는 별거 없고, 그냥 우진이한테 김상혁이 들러붙는 게 기분이 나빴다.
저 사이에 끼어서 김상혁을 치워 버리는 건 일도 아닌데 몰골이 이래서 끼어들기가 그랬다.
아무래도 괴수 체액 냄새랑 썩어 가는 거적때기 냄새를 풍기면서 우진이한테 가까이 가는 건 좀 그렇잖아. 이래서 우진이를 피해 다니고 있었는데.
이런 이유로 나는 김상혁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진이도 여섯 살짜리 애를 안고 그 이상 걸어 다니는 건 좀 힘에 부쳤는지, 더 이상 김상혁에게서 멀어지지 못하고 차우린을 내려놨다.
김상혁은 그 틈에 우진이의 관심을 돌리려고 하는지 나에게 다가와서 어깨동무를 했다.
그런 김상혁의 행동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일단 김상혁이 자발적으로 우진이한테서 떨어졌기 때문에, 나는 놈이 하는 짓을 내버려 뒀다.
“하지만 우진 씨, 한번 생각해 주십쇼. 아기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이게 다 저희 에스퍼들이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다가 생긴 일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김상혁은 내가 나름 봐주고 있는 중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달갑지 않은 신체 접촉을 하고 또다시 우진이를 향해 헛소리를 내뱉었다.
“우진 씨도 현장 나와서 다 보셨겠지만 양해해 줘야 돼요~ 우리가 얼마나 힘들어요. 훌리건이나 괴수나 다 상대하러 다니느라 말이에요~ 섬세함, 그런 거 우리한테 기대하면 안 됩니다~ 다들 험하게 살아서 그런 거 없어요. 보십쇼, 괴수 때문에 우리 지부 엘리트 에스퍼가 이런 꼴이 난 거.”
김상혁은 헛소리를 하면서 내가 얼굴에 감고 있던 거적때기를 벗겨 버렸다.
그 때문에 순간적으로 내 민얼굴이 드러났다.
‘김상혁, 이런 거지 같은 새끼가.’
내가 얼굴을 가린 건 다 이유가 있다.
내 이능력은 신체가 세상의 모든 물리적 충격으로 손상되지 않는 능력, 일명 금강불괴지만 예외로 이능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 같은 각질층은 이능력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발을 하거나 손톱을 다듬거나 하는 행위가 가능하지만 불편한 점이 있다.
오늘처럼 지독한 산성인 괴수의 체액을 뒤집어쓴 날이면 다 녹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 얼굴은 머리털과 눈썹이 하나도 없는 매우 흉한 모습이라는 거지.
평소 같으면 남들이 보든 말든 신경도 안 썼겠지만, 우진이한테는 이런 흉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김상혁이 벗겨 낸 거적때기를 재빨리 뒤집어썼다.
하지만 거적때기가 벗겨졌던 찰나의 순간, 내 눈에는 우진이와 차우린의 눈이 부릅떠지는 게 보였다.
반응을 보니 둘 다 내 민얼굴을 보고 말았군.
그렇다고 이 꼴을 계속 보여 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거적때기로 얼굴을 가리고, 내 옆에 붙어 있던 김상혁을 패대기치며, 그 자리를 도망쳐 나왔다.
내가 원래 이런 상황이 되면 보복은 바로 하는 스타일이지만, 우진이한테 흉한 걸 안 보여 주는 게 더 중요하니까 나중으로 미루겠어.
‘운 좋은 줄 알아라, 김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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