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42화 (42/81)

42. 훌리건 (6)

나는 박건형이 폭주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해, 그를 빨리 처리하려고 했다.

특히 박건형 같은 에스퍼는 방화가 이능이라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 손아귀에 붙잡혀 놓고서도 이능을 쓰면서 발버둥 치고 있으니 폭주가 심해지면 얼마나 난리가 나겠어.

그나마 다행인 건 이놈은 시야가 닿는 곳만 발화가 가능한 놈이라 제압이 쉽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랑 우진이의 반대 방향으로 머리만 돌려놓고 있으면 피해가 안 오니까 다행이지.

나는 박건형의 대가리를 안전한 방향으로 꺾어 놓은 채, 훌리건은 협회의 절차에 따라 처리할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폭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금 즉결 처분하려 했다는 말은 안 했지만.

그런데 우진이 덕분에 머리가 약간 식으니, 박건형의 입가에 묻은 가루가 다시 생각났다.

가루의 존재를 상기하니,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박건형은 폭주 징조를 보인 게 아니었다. 그놈의 입가에 묻은 검은 가루가 그 사실을 뒷받침했다.

저 가루는 ‘코코 가루’라는 환각제다. 협회 밖의 현장에서 일하는 팀원들 사이에도 많이 쓰이는 물건으로, 다른 환각제들과 똑같이 중추 신경을 흥분시키거나 억제해서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감각이 실제인 것처럼 느끼게 해 준다.

그런 물건을 입이든 코든 아무 데나 흡입했다면, 얼굴에 시커먼 가루를 묻히고 눈이 벌게져서는 허공에다 삿대질을 하던 박건형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환각제의 효능이라서 박건형의 처리에 문제가 생겼다. 박건형이 폭주할 예정이 아니라서, 현장에서 처리해 버릴 구실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에가협은 문명사회를 보장하는 척하기 때문에 구실이 부족한 살인과 폭력은 용납하지 않는다.

구실은 협회 시설 쪽에서는 감시가 많아서 붙이기 어렵지만, 이렇게 외부로 나오면 만들기 쉬워지기는 한다. 만드는 게 귀찮아서 그렇지.

폭주의 위험을 핑계로 처리하는 것이 제일 편하긴 한데, 아지트에서 코코 가루를 섭취한 걸 보면 아지트 내부에서 코코 가루가 한 무더기 나올 것이다.

그걸 본 협회는 박건형의 증세가 폭주가 아니고 환각제의 작용으로 인한 것이라는 걸 파악할 것이고, 나는 과잉 진압으로 징계를 받겠지.

“크아악!!”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중에도 나에게 제압당한 훌리건은 이능을 써 대면서 발광했다.

덕분에 사방의 불길이 더 거세져서 연기가 풀풀 날리고 있었으며, 이대로 두면 연기 때문에 질식할 수도 있었다.

별것도 아닌 훌리건 때문에 우진이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만들 수는 없다.

나는 훌리건의 뒷목을 붙잡고 있는 왼손에 힘을 주었다.

훌리건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일단 숨통을 끊어 놓고 과잉 대응이 아니라는 구실을 지어내면 될 것이다.

너무 힘을 세게 줘서 목숨뿐만이 아니라 목까지 끊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가지를 끊어 버리면 비주얼이 너무 잔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오게 되고, 협회는 내가 과잉 대응을 했다는 판결을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비명과 욕설을 내뱉던 훌리건은 내가 아직 직접적으로 기도를 막은 것도 아닌데, 가래가 끓는 듯한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바로 내 옆에 있는 우진이가 그 소리를 못 들었을 리가 없었고, 우진이는 소리를 내는 훌리건에 관심을 보였다.

‘우진이에게 목이 졸려 죽는 사람 같은 흉한 걸 보여 줄 수는 없잖아.’

나는 손에 쥐고 있는 훌리건을 우진이가 보지 못하도록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많은 우진이는 오히려 훌리건을 보기 위해 한 발짝 다가왔다.

훌리건의 터져 나간 오른쪽 귀에서 흘러내리는 뜨끈한 피가 내 손을 타고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피와 그을림으로 엉망진창인 훌리건과 내 차림새를 내려다보고, 비록 불바다 속에 같이 있지만 텔레포트해서 왔기 때문에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의 우진이를 보았다.

세상을 구하러 온 듯한 영웅 같은 우진이를 보니, 이런 흉한 꼴로 옆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나는 우진이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몸을 돌려 마구 달렸다.

우진이가 당황하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우진이한테 이런 흉한 걸 보여 주면 안된다는 머릿속의 외침을 따라 뒤돌아보지 않았다.

쿠구궁!

그러나 몇 걸음 뛰지도 않았는데, 별안간 땅이 흔들리더니 사위가 어두워졌다.

나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곧바로 깨달았다.

너무 어두워서 보이는 건 별로 없었지만 축축한 습기, 역한 악취 그리고 옆구리에 느껴지는 통각으로 내가 괴수의 이빨에 끼인 상태라는 걸 알게 됐다.

‘아마도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빨에 끼이는 걸로 끝나지 않고 두 동강이 났겠지?’

나는 금강불괴의 이능 덕분에 괴수 이빨에 썰릴 일이 없으니까 이런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내 이능은 단순하게 괴수의 이빨에 토막 나는 것만 막아 주지 않고, 괴수의 입 안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괴수의 침에 들어 있는 산성도 막아 주기 때문에 괴수한테 소화될 일도 없다.

비록 머리카락 같은 큐티클은 단백질 타는 냄새와 함께 녹아내리지만, 이미 몸의 절반가량이 액체가 되어 괴수의 목구멍 안으로 흘러내린 박건형처럼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뼈까지 흐물흐물하게 녹아 버린 박건형의 손을 던져 버리고 주변 지형을 더듬었다.

이빨이 아닌 잇몸 같은 살점은 이능력 출력이 높지 않더라도 충분히 파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구잡이로 팔을 휘두른 끝에, 나는 왼쪽으로 최대한 팔을 뻗으면 뜨끈하며 단단한 살점이 잡힌다는 걸 알아냈다.

이 살점이 괴수의 턱관절 근육이길 바라며, 살점을 잡아 뜯었다.

단단한 고깃덩어리가 근육의 결을 따라 찢겨 나오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괴수의 뜨거운 체액이 분출되면서 내 팔과 얼굴에 새롭게 뿌려졌다.

“윽….”

굉장히 찝찝했지만, 괴수가 크게 진동하면서 별안간 주위가 환해지는 통에 그걸 곱씹을 틈이 없었다.

바깥의 상쾌한 공기가 환한 빛과 함께 유입되면서 내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무릎부터 허리까지가 괴수의 이빨 사이에 끼어 있었으며, 상반신이 괴수의 목구멍을 향해 있는 상태였다.

어쩐지 냄새가 너무 심하더라니.

괴수는 비명만 한번 내지르고 곧바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다시 어둡고 습하고 밀폐된 공간이 되어 버렸지만, 상황 파악은 이미 끝나서 아쉬울 건 없었다.

나는 빛이 들어왔을 때, 봐 놨던 괴수의 잇몸을 향해 팔을 뻗었다.

괴수의 이빨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 뜨겁고 축축하면서도 단단한 살점이 손에 잡혔다.

나는 그걸 인정사정없이 마구잡이로 잡아 뜯었다.

잇몸을 쥐어뜯기는 고통에 괴수가 몸부림을 치는지, 내 몸도 공간과 함께 마구잡이로 흔들렸지만 나는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괴수의 이빨이 빠질 만큼 충분히 살점을 뜯어냈는지 왼쪽에서 나를 압박하던 이빨이 헐거워졌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 괴수의 이빨에서 탈출했다.

괴수의 이빨 틈에서 빠져나왔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미친 듯이 흔들리는 괴수의 입 속에서 내벽을 붙잡아 가면서 괴수의 입 밖을 내다보았다.

입 밖으론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가, 훌리건의 아지트가 보였다가, 땅바닥이 보였다.

괴수가 아주 다방면으로 몸부림을 치는 중인 게 분명한 풍경이었다.

이대로 그냥 나가면 괴수의 몸부림에 나도 같이 휩쓸릴 게 분명하다.

‘그나마 안전한 방법으로 괴수 입 안을 탈출할 수는 없을까?’

나는 방법을 고민해 보기 위해 괴수의 입꼬리를 단단히 붙잡고 입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맑고 청명한 하늘과 아래에는 미니어처처럼 작아 보이는 훌리건 아지트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거대한 벽이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진 것만 같은 괴수의 몸체가 보였다. 몸체는 그 어떤 것도 달려 있지 않고 매끈하기만 했다.

어쩐지 난리를 치는 중에도 입을 직접 건드리지 않더라니, 손발이 없는 개체였나 보다.

아무튼, 지금은 괴수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모양이니 나로서는 처치하기가 수월했다.

‘내 이능력과 중력을 같이 쓰면 되니까 품이 덜 들고 좋지, 뭐.’

괴수 피부를 집라인처럼 쓰면 나름 안전하게 착륙하지 않겠어? 안전장치는 내 손뿐이지만 말이다.

뭘 할지 정했으면 실천하면 된다.

나는 높은 곳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양손으로 괴수의 입꼬리를 살짝 찢었다. 그리고 찢어진 상처 속으로 손가락들을 최대한 깊숙하게 집어넣고 괴수의 겉껍질과 함께 단단하게 붙잡았다.

그러고는 바닥을 향해 뛰어내렸다.

***

내가 괴수의 입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하고 나니, 우리 팀이 처리할 일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나를 씹어 먹으려고 한 괴수는 입 지름만 5미터가 되는 거대한 놈이었으며 갑자기 땅속에서 튀어나왔다고 한다.

괴수는 기습으로 나와 함께 우두머리 훌리건인 박건형을 입 속에 집어넣는 것은 성공했지만 어금니 쪽에 끼었던 내가 입을 길게 찢어 버리는 바람에 금방 죽어 버렸다.

그런데 이 괴수가 내게 입이 찢겨 죽을 때, 몸부림을 치면서 다른 훌리건들을 뭉개 버렸단다.

덕분에 우리 팀이 할 일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원래 우리의 일은 훌리건을 견제하며 동태를 파악하는 일이었으니까 이렇게 다 죽어 버리면 일이 없지.

“선배! 우리가 진짜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지 알아요? 조용이 가이드님을 들쳐 메고 열라 뛰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우리도 같이 괴물한테 깔려 죽을 뻔했다고요.”

“아…”

“선배가 입을 찢어 놔서 괴물 침도 다 튀고 말이야.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아요? 그러니까 괴물을 죽일 때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 피해 안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니까요. 선배, 내 말 듣고 있어요?”

장하나가 괴수 입 밖으로 나온 날 바로 쫓아와서 미주알고주알 다 얘기해 주는 덕에 나는 별 어려움 없이 곧바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우리 장 후배가 상황을 빨리 알려 주는 건 참 고맙지만, 조금 늦게 알려 줬으면 더 고마웠을 텐데.

나는 장하나의 수다를 들으며 냄새나는 거적때기로 몸을 닦아 냈다. 거적때기는 내 몸에 묻은 괴수의 체액을 흡수하면서 부식됐기 때문에 다 닦아 내려면 꽤 많은 양이 필요했다.

괴수의 체액을 얼추 닦아 낸 나는 남은 거적때기를 몸에 둘렀다.

내 몸은 금강불괴의 이능이 있어서 무사했지만, 옷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몸을 가릴 것이 따로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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