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훌리건 (5)
먼저 사람들 목을 마구잡이로 뽑고 있는 저 무자비한 훌리건의 정신을 교란해서 더 이상 학살을 못 하도록 막는 게 장하나의 첫 역할이었다.
중요한 역할인 장하나가 기겁하며 말했다.
“서, 선배…… 저기 봐봐. 우리가 좀 늦게 왔나 봐.”
방어막만 쳐 주고 급하게 달려온 건데 상황은 망원경으로 관찰했을 때보다 심각했다.
훌리건 놈이 벌써 6명을 더 죽여 놓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지들이 괴롭혀 놓고 왜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금까지 사람 목을 뽑던 피투성이 손이 그 사람들에게 닿는 건 막아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힘껏 도약해도 20미터 앞에서 벌어지는 저 광경을 막을 수가 없을 것 같다.
50센티도 남지 않은 훌리건과 저 사람 사이에 끼어들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훌리건의 손이 애꿎은 희생양에게 도달하기 직전, 희미한 총소리와 함께 훌리건의 손이 터져 나갔다.
“으아아아악!!”
훌리건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그제야 컨테이너 위에서 자빠져 놀고 있던 5명의 훌리건이 이쪽을 주시했다.
한참 전부터 큰소리가 나면서 수십 명이 죽어 나갈 때는 시시덕거리며 놀다가 지금 뛰어 내려오다니 놈들의 수준이 짐작이 갔다.
내려온 놈들은 코앞으로 다가온 우리를 보며 뭐 하는 놈들이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저등급 에스퍼인 훌리건이 우리를 노리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제일 급한 건 저 미친놈들이 학살을 못 하도록 막는 것이다.
나는 재빨리 장하나에게 저놈들의 정신을 교란하라고 지시했다. 장하나가 이능력으로 저놈들이 사람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들었을 때, 생존자들을 피신시켜야 했다.
수십 명의 사람이 목이 뽑혀 죽은 장소답게 피가 흥건했으며 바닥에는 아직 수습되지 못한 시체가 굴러다녔다.
정말 악독하고 멍청한 놈들이다.
당장에 식량은 아끼겠지만 이렇게 마구잡이로 죽이고 난 다음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는 거지?
아무리 겨울이라 괴수의 활동이 줄었다지만 이렇게 피가 흥건해 냄새를 풍기면 괴수가 안 찾아올 리가 없다.
마음 같아선 조용을 붙여서 우리 거점으로 피신시키고 싶었지만, 훌리건 놈이 피를 잔뜩 흩뿌려 놔서 가는 도중에 괴수에게 습격받을 가능성이 컸다.
조용이 S급이라지만 아직 전투 훈련도 제대로 못 받은 어린애라서, 30명 정도 되는 인원을 온전히 지켜 내긴 힘들 것이다.
오히려 이곳에 있는 게 에스퍼 인원이 많아서 괴수가 습격하더라도 쉽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생존자들은 아지트의 바리케이드 내에서 최대한 훌리건이랑 떨어진 곳으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나는 조용에게 생존자들을 옆에서 보호하라고 명령한 다음, 훌리건에게 정신 교란을 건 장하나에게 저놈들이 사람들과 떨어지도록 유도할 것을 지시했다.
“그 정도야, 껌이지.”
그냥 애가 좀 삐딱할 뿐이지, 조용과 달리 자기 이능을 다루는 데 능숙한 장하나는 곧바로 그 일을 해냈다.
장하나가 놈들을 구석으로 밀어 놓을 동안, 나는 조용과 함께 살아남은 사람들을 안심시키며 한 곳으로 몰았다.
건물의 뒤편으로 사람들을 이동시킬 때쯤, 별안간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건물 안에서 나왔다.
이 훌리건 아지트의 우두머리 박건형이었다.
건물에서 뛰쳐나온 훌리건 박건형은 제정신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채로 잔뜩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 댔다.
혼자 잔뜩 화가 난 그는 삿대질을 하며 개의 자식들을 불렀는데 희한하게도 그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건 아무도 없는 허공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하면서 삿대질을 하는 박건형의 정열적인 목소리는 굉장히 우렁차다가도 어느 순간 끊어졌으며, 말의 속도마저 일정하지도 않았다.
정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그의 목소리는 향하는 대상도 없이 허공을 향해 울려 퍼졌다.
그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나는 박건형 눈앞에 바로 다가가 보았다.
낯선 사람인 내가 정면에 나타나도 박건형의 초점은 나에게 맞춰지지 않았다.
여전히 허공에다 화를 내는 박건형을 보고 있으니 기시감이 들었다.
‘분명 이런 거 어디서 봤는데 증상이 뭐였더라.’
붉게 충혈된 눈은 이능 과다 출력으로 인한 발작 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능 과다 출력 증상 중 환각과 환청을 겪는 일은 없었다.
‘그럼 저게 뭐였더라.’
한창 생각하고 있는데 박건형이 느닷없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주변에 불꽃이 튀더니, 내 발치에 있던 시체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저 훌리건 자식이 이능을 쓴 것이다.
나는 뜨거운 열기를 피해 조금 물러났다.
근처에 있는 장하나와 조용이 내 지시를 기다리는지, 나를 보고 있었다.
S급인 저 애들이 C급인 박건형을 제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능 과다 출력으로 죽어 가는 에스퍼를 아직 미성년자인 애들이 뒤처리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에스퍼가 겪을 수 있는 현상으로 죽어 가는 에스퍼를 보는 건, 굉장히 기분 나쁜 일이니까.
쾅! 쾅! 쾅!
나는 박건형이 만들어 내는 불길을 피하며 머리를 굴렸다.
이놈이 이능 과다 출력 발작 중이라면 이대로 이능을 낭비하다가 뇌가 터져 죽을 것이다.
‘애들이 없는 쪽으로 유인해서 박건형이 자멸하게 둘까?’
하지만 이능력이 방화라서 주변에 피해를 많이 줄 것 같기도 했다.
지금도 저놈의 5미터 이내가 불바다가 되었으니, 그냥 내가 빨리 박건형을 처리하는 게 제일 깔끔할 것 같다.
할 일을 정했으니 이제 행동하면 된다.
나는 박건형을 향해 돌진했다. 화상을 안 입으니까 뜨거운 것만 조금 참으면 불길 같은 건 무시할 수 있다.
불 따윈 무시하고 곧장 일직선으로 달려가, 박건형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저놈의 덜미를 붙잡았으니 애들이 안 보이는 곳으로 끌고 가서 처리하면 된다.
이 훌리건 놈이 사방팔방 불길을 일으킨 덕분에 시선도 분산되어 일도 수월해졌다.
그런데 지저분하고 시커먼 놈의 얼굴을 바로 지척에서 보니, 익숙한 무언가가 보였다.
멀리서 봤을 때는 이 까만 게 그을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
그놈의 입가에는 검은 가루가 묻어 있었다. 그 가루는 나도 아는 물건이다.
그리고 내가 가루를 존재를 눈치챘을 때, 무언가 내 왼뺨을 스쳐 갔다.
곧이어 박건형의 오른쪽 귀가 시뻘건 피와 함께 터져 나갔다.
“으아아악!!”
박건형은 귀를 붙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놈이 주변에 불을 질러 댄 통에 난장판이 되어서 이목이 흐려졌는데, 소리를 지르니 다들 이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젠장.”
최대한 기척 없이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박건형이 소릴 질러서 망했다.
나는 조용히 처리할 기회가 사라져서 마음이 급해졌다.
수십 명과 함께 뇌가 터져 죽는 에스퍼를 감상하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트라우마가 도질 것 같다.
‘어떡하지? 이왕 이렇게 된 거 불 속으로 끌고 가서 태워 버릴까?’
폭주로 죽는 것보단 타 죽는 게 주변에 피해가 적은 데다가, 방화가 이능인 에스퍼가 폭주하면서 스스로 타 죽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차피 비명을 질러도 위화감도 안 느껴질 거고, 타고 있는 시체가 많아서 뭐가 박건형인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겠지?’
그렇게 생각을 마치고 훌리건을 붙잡아 불 속으로 끌고 가는데, 뒤에서 누가 어깨를 붙잡았다.
뒤를 돌아보니 우진이가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나눠 준 텔레포트 패드를 썼구나. 근데 그거 비상시에 쓰라고 했는데 왜 지금 썼지?’
나는 지금 불바다 한가운데 있는데 말이다.
우진이의 돌발 행동에 당황하고 있는데 우진이가 내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옷에 불이 붙었는데 끄지도 않고 왜 오히려 불 쪽으로 다가가는 겁니까?”
우진이는 나에게 질문을 해 놓고선 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외투를 벗어 내 몸에 덮었다 떨어졌다 하는 식으로 옷을 펄럭였다.
내가 스스로 옷에 붙은 불을 끌 생각이 없으니 대신 꺼 주려는 것 같았다.
어차피 박건형을 불태우러 다시 들어가야 하니까 안 끈 건데 우진이는 세심하게도 내 걱정을 해 줬다.
그러고 보니 오늘 입은 옷 우진이가 골라 준 옷인데 이렇게 타 버려서 속이 좀 쓰리네.
우진이는 불을 끄는데 성공했는지, 외투를 고쳐 들고 탈탈 털어 냈다.
다시 코트를 걸쳐 입던 우진이는 내 옷이 타 버려서 안타까운지 그 자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 옷에 난 구멍을 보던 우진이가 말했다.
“……화상을 입지 않으셨네요.”
우진이는 내가 불 때문에 화상을 입을까 봐 걱정했나 보다. 역시 우진이는 외모만 그런 게 아니라 심성까지 천사 같은 게 맞다니까.
‘그나저나 우진이가 골라 준 옷이 시커멓게 그을리고 구멍이 숭숭 나고 난리가 났네.’
임무가 끝나면 버려야 할 판이다.
이래서 평소에는 유니폼을 입고 다녔던 건데.
유니폼은 협회에서 얼마든지 무상으로 제공해 주고 튼튼해서 입기 좋다. 훌리건 관찰 임무에서는 눈에 띌까 봐 못 입지만 말이다.
까맣게 타들어 가 버린 내 옷을 보며 씁쓸해하는 동안, 우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하나 씨가 붙잡고 있는 사람은 브리핑 때 나왔던 그 사람 맞죠? ‘박건형’인가 했던 그 우두머리 에스, 아니, 훌리건이요. 이제 어떻게 하는 겁니까?”
우진이는 경직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처음으로 임무 현장에 나와서 많이 긴장했나 보다.
우진이를 안심시켜 주고 싶지만, 그것보다도 내 손에 덜미를 붙잡힌 채로 주저앉아서 아직도 난리를 치는 박건형을 처리하는 게 더 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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