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훌리건 (4)
조용이 관찰 중이던 훌리건이 무슨 일을 저질렀나 보다.
나는 곧바로 망원경을 들고 조용이 보던 방향을 살펴보았다.
“…!!”
바닥을 구르는 사람의 머리와 피투성이가 된 주변이 보였다.
이곳의 훌리건들은 단두형(斷頭刑)을 일삼는 듯했다. 우리에게는 더없이 좋은 그림이다.
난 저 모습도 곧바로 스마트워치의 카메라에 담았다.
훌리건에 대한 교육 시간에 표본으로 써도 될 만큼 훌륭한 사진이다.
내가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데 팀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애들은 약간 겁을 먹은 건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훌리건이 어떻게 사는지 충분히 가르쳐 줬다고 생각했는데 맨눈으로 보니 충격이 컸나 보다.
한 이틀 정도 훌리건을 관찰하면서 느긋하게 자료 수집을 하려 했는데 계획을 수정해야겠다.
오늘 안에 최대한 자료를 잔뜩 수집해서 해가 지기 전에 복귀해야겠다.
나름 각성하기 전까지 밖에 있던 애들이라 이런 일엔 익숙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사람 목이 잘리는 장면을 이렇게 무서워할 줄은 몰랐네.
연구소에서 곱게 지내며, 포획된 괴수만 상대하다 보니 바깥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몰랐나 보다.
애들을 달래 주며 몇 시간만 참으면 복귀할 테니 자료수집에 집중하라고 일러줬다.
수집된 자료량에 따라 돌아갈 시간이 더 앞당겨진다고 하니, 애들은 곧바로 제자리로 돌아가일을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하는 애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내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우진이가 나를 붙잡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
우진이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
우진이는 그냥 쉬게 해 줄까? 저 훌리건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가혹행위의 수위가 높아서 자료의 질이 높았다.
그러니 우진이가 쉬어서 자료의 수가 좀 적어도 협회는 임무 결과에 만족할 것이다.
내가 우진이에게 많이 힘들면 쉬고 있어도 좋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우진이가 나에게 말했다.
“그냥 이렇게 지켜보고 다시 돌아간다는 건가요?”
우리의 임무는 훌리건을 관찰하는 거라고 이번 주 내내 설명해 줬는데 그것도 잊을 만큼 단두형이 우진이에게 충격적이었나 보다.
마음이 여린 우진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자리를 안내해 주는데 우진이가 다시 내게 말했다.
“사람이, 사람이 저렇게 죽어 가잖아요!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몇몇 사람의 비위에 따라 목숨이 좌지우지되고 있는데, 그걸 그냥 보기만 하고 가는 거예요?!”
우진이가 패닉이 온 것 같다.
나는 우진이를 달래 주기 위해 천천히 등을 쓸어 주며 대답했다.
“저희는 동향을 살피기 위해 소규모로 조직된 팀이라, 당장에 저 사람들을 구출하기는 힘들어요. 저번에 설명 드렸지만 잠입하는 임무와 진압하는 임무가 따로 있었잖아요? 그 임무를 위해 구성된 전문적인 팀이 저 사람들을 구출해 줄 거예요. 지금 우리가 하는 것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활동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우리는 저 사람들을 구출해 줄 팀이 빨리 필요하다는 증거를 수집하는 거예요. 우리가 자료를 많이 가져가면 저 사람들을 구출할 팀이 더 전문성을 갖추기 쉬우니까, 우리 일도 저 사람들을 위한 중요한 작업이에요. 저 사람들은 금방 구출될 거니까 여기서 잠시 쉬고 있어요. 알았죠?”
우진이를 달래면서 깔아 놓은 침낭 위에 우진이를 앉혔다. 우진이는 약간 진정이 됐는지 내 손길을 받으며 바닥으로 시선을 두었다.
우진이의 속눈썹이 지친 날개를 쉬게 하려고 온 우아한 검은 나비처럼 내려앉았다.
너무 이르게 피어나 찬바람에 떨리는 가녀린 설유화처럼 안쓰러워 보이는 우진이를 조심스럽게 달래고 있는데 훌리건을 관찰하던 애들이 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각자 떨어져서 다양한 방향에서 아지트를 관찰하라고 했는데, 얘넨 왜 셋이 붙어서 망원경을 번갈아 둘러보며 쑥덕거리는 걸까.
따로 관찰할 수 있도록 망원경은 한 명당 한 개씩 줬는데 말이다.
애들이 뭘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가갔더니, 애들이 반색하며 나에게 빨리 훌리건이 하는 걸 보라고 재촉했다.
나는 목에 걸고 있던 망원경을 들어 올려 훌리건의 동태를 살펴보았다.
확실히 애들이 기겁할 만한 상황이긴 했다.
훌리건들을 그동안 사람을 더 죽여서 10개 정도 되는 사람의 머리가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얘네는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사람을 이렇게 막 죽이는 건지 모르겠네.’
백 명 정도 모여 산다더니 전체의 10분의 1을 갑자기 막 죽여 버린다.
그동안 쌓인 훌리건의 데이터에 따라 추론해 보면, 저들은 겨울 식량이 충분하지 않아서 머릿수를 줄이는 중일 것이다.
아무튼, 애들한테는 좀 충격적인 장면이긴 했겠다.
나는 애들에게 저 상황을 녹화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애들은 당황한 와중에도 영상 자료를 착실히 수집했다.
이 정도의 질 높은 자료면 지금 당장 복귀해도 될 것 같다.
특히 저 아지트의 생산 인력들이 위급한 상황이라, 되도록 빨리 자료를 전달하는 게 좋아 보였다.
나는 모은 자료를 협회에 전송하고 팀원들에게 짐을 꾸릴 것을 명령했다.
그런데 우진이가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망원경으로 상황을 보고 말았다.
잔인한 현장 상황을 봐 버린 우진이가 들고 있던 망원경을 떨어뜨렸다.
우진이는 새하얗게 질린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
“…….”
심약한 우진이가 이런 상황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출발하려 한 건데 한발 늦고 말았다.
기껏 안정시켜 놨던 우진이는 다시 패닉 상태가 되었다.
나는 몸을 덜덜 떠는 가여운 우진이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아까처럼 달래 주면서 구석에서 쉬게 해 주면 우진이는 다시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우진이 옆으로 다가가는 데 성공한 나는 무슨 말을 할지 신중하게 생각했다.
말을 걸려고 하는 순간, 우진이가 나를 돌아봤다.
의외로 우진이의 눈빛은 또렷하고 진중했다. 겁에 질려 패닉이 온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잘생긴 얼굴을 마주하자,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우진이는 나를 붙잡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당장 저 사람들을 구해야 해요.”
박력 있는 우진이는 멋있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쉽게 들어주기 힘든 요구였다.
“저 사람들이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긴 하지만 우리가 당장 도우러 가긴 힘들어요. 우진 씨도 알다시피 지금 우리는 염탐을 하러 온 소규모 팀이라 저 많은 인원을 구출하는 건 조금 힘들…….”
“지금 구해야 해요. 지금이 아니면 저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겁니다.”
우진이가 내 말을 끊으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느새 우진이는 내 어깨를 양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덕분에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우진이의 얼굴은 어두운 밤을 환하게 비추는 달빛처럼 청명했고, 그 아름다운 얼굴이 만들어 내는 표정은 결연했다.
‘거룩한 사명을 띠고 인간계에 내려온 천사가 따로 없는 우진이를 일개 인간인 내가 어떻게 뿌리치겠어.’
나는 우진이의 요청대로 박건형의 아지트에서 학살되는 사람들을 구하기로 했다.
우진이는 내가 곧바로 출발했으면 좋겠다는 내색을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일단 이곳을 거점으로 우리의 짐과 팀원 일부를 두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겨울이라 활동이 적어졌다고 해도 괴수가 습격할 수도 있으니까 최소한의 방어벽은 필요하다.
나는 가방에서 자기장 방어막 토큰을 꺼냈다.
주먹만 한 동전 형태인 이 장비는 두 개 이상을 늘어놓아 선을 만들면 그 선 위로 한 면의 자기장 벽을 만들어 낸다.
벽의 외부에서는 자기장 방어막의 역치를 넘는 충격을 주지 않는 이상, 깨뜨릴 수 없다. 반면에 벽의 안쪽에서는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
토큰을 이동시켜서 방어막의 위치가 크기를 조절할 수도 있고, 직접 들어 올려서 이불 들추듯이 틈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물론 이것도 훌리건 관찰 임무에 사용하기엔 매우 거창한 물건이라, 협회에서 보급해 준 것이 아니다. 내가 사비를 들여 구매 후 가져온 것이다.
내가 적당한 곳에 토큰을 배치하며 방어벽을 준비하는 동안 우진이는 어느새 가방에서 라이플을 꺼내 지지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저 라이플은 우진이의 전용 호신용품으로 사 준 것인데, 무거워서 우진이가 직접 들진 못하고 내 가방에 넣어서 가지고 온 물건이었다.
우진이가 라이플 다루는 법을 언제 익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준기까지 꺼내 확인하는 모습이 전문가 같고 엄청 멋있었다.
아직 팀원 배치 구성을 얘기해 주지도 않았는데 본인의 역할을 알고 있다니 우진이는 천재가 틀림없다.
사실, 우진이를 사격수로 쓸 생각은 없었지만 일을 도와주려는 마음씨가 갸륵했다.
나는 우진이와 함소영에게 토큰 사용법을 알려 주고 우진이의 성화에 떠밀려 박건형의 아지트로 출발했다.
훌리건의 아지트로 향하는 사람은 나랑 조용, 장하나로 총 세 사람이었다.
우리 세 명은 나름대로 별 탈 없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꾸린 최적의 조합이다.
조용은 유일하게 나와 같은 이능을 가진 에스퍼다.
S급인 조용은 이능력만 따지면 내 상위호환이기 때문에 연구진의 기대를 많이 받고 있다.
조용의 쓸모는 아직 결정 나지 않았지만, 얘도 나처럼 부상을 입지 않아서 마음 놓고 전투원으로 쓰기 좋았다.
함소영도 신체 강화 S급인 에스퍼지만 금강불괴는 아니라서 다칠 수가 있으니 우진이 옆에 두고 왔다.
마지막으로 장하나는 여기서 제일 중요한 구성원이다.
장하나는 한국에서 유일한 정신계 S급 에스퍼이며 이능력이 3가지 이상인 다중 이능력자다.
장하나의 이능력은 쉽게 나누면 3종류인데 마인드 리딩(정신 읽기), 폴리모프, 기억 공유로 나눌 수 있다. 마인드 리딩은 말 그대로 속마음을 읽는 것이고 기억 공유는 감찰팀장인 오주혁의 이능력과 같은 것이다.
대상의 기억을 읽어 내며 그걸 타인에게 공유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장하나의 마지막 이능인 폴리모프는 정식명칭은 아니고 이능으로 이끌어 낸 결과물 때문에 편의상으로 퉁치는 이름이다. 장하나의 폴리모프로 보이는 이능력은 사실 두 가지의 이능력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다.
장하나가 가진 이능력의 정식명칭은 환영 투사와 신체화이다.
제대로 설명하기엔 좀 복잡한데, 쉽게 설명하자면 환영 투사는 상대방이 헛것을 보고 듣고 느끼도록 하는 이능력이고 신체화는 대상의 감각 교란을 몸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꼬리가 생겼다는 감각을 주고 실제로 꼬리가 돋아나게 만드는 이능력인 것이다.
정말 무시무시한 이능력이 따로 없다. 우진이를 고양이로 만들었던 것도 그 이능이라고 했었지.
아무튼, 장하나는 직접적인 전투는 못 하지만 우리 세 명 중에서 가장 큰 역할을 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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