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훌리건 (3)
우리가 하는 임무는 훌리건 박건형의 생활을 관찰하는 것이다.
재작년에 이능력이 개화해서 에스퍼가 된 박건형은 자연계 C급 에스퍼이며, 시선을 모아 집중하면 불을 지를 수 있는 이능력을 가졌다.
박건형이 개화했을 때 에가협의 레이더망에 걸려서 개화하자마자 협회원이 됐지만, 박건형은 겨우 1년 만에 도망을 가서 훌리건이 됐다.
물론 박건형이 도망갈 수 있었던 건 협회가 낮은 등급의 박건형을 대충 관리했기 때문이다.
에가협은 C급 이하의 저등급의 이능을 공들여서 연구하지 않는다.
고등급의 같은 이능력을 연구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협회가 저등급 에스퍼가 도망가든 말든 손 놓고 방치한다는 건 아니다.
협회는 알고 있다. 문명이 사라지고 괴수가 득실거리는 세계에 맨몸으로 떨어진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생존하는지를 말이다.
특히, 이능력이라는 힘을 가진 에스퍼들이 어떤 방식을 선택하는지, 어떤 평판을 받게 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보고 느끼도록 가끔씩 의도하지 않은 척을 하며 에스퍼가 밖으로 나가도록 놔두는 것이다.
박건형 같은 에스퍼는 그런 이유로 협회 밖에서 훌리건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협회가 시키는 일을 하기 위해 박건형의 아지트로 향했다.
그 훌리건의 아지트는 협회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훌리건들은 의외로 협회 근처에 아지트를 만드는 일이 흔하다.
협회 근처의 괴수는 거의 소탕되어서 안전한 편이고 훌리건은 협회의 물자를 강탈하며 생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훌리건도 협회의 움직임을 나름 주시하니 아지트 근처에서 사람의 흔적을 남기는 건 훌리건의 경계심만 높인다.
그런 이유로 우리 팀은 박건형의 아지트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물론 이런 내 결정을 팀원들이 좋아해 주진 않았다.
“아, 진짜. 이렇게 추운 날에 이게 뭔 개고생이야~ 출동할 때 타고 가라고 자동차며 헬기며 많은데 왜 우린 걸어가야 해요.”
“맞아. 이게 뭐예요. 첫 출동이라 좀 멋있는 거 기대했는데 그런 거 하나도 없어.”
나의 깊은 뜻을 모르는 청소년들이 자기들끼리 떠들며 투덜댔다.
보통 출동할 때는 탈 것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애들이 불만을 가질 만도 하다.
애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나는 불평을 들어 줬다.
물론 귀로 듣기만 할 뿐, 내가 정한 대로 할 거지만.
내가 앞장서서 묵묵히 걷기만 하자, 애들은 불만을 토로하는 것에서 노선을 바꾸기 시작했다.
요지는 힘드니까 쉬었다 가자는 얘기였다.
“선배~ 우리 언제까지 걸어야 해요? 잠깐 쉬었다 가면 안 돼요? 가이드님도 엄청 힘들어 보이는데~ 표정 무지 안 좋다고요.”
이런 식으로 우진이를 들먹였다.
우진이가 기분이 안 좋은 건 나도 잘 안다.
우진이는 출발하기 전부터 안 좋았다.
방을 나서면서 우린이를 김상혁에게 맡기고 올 때, 우린이가 엄청 울고 떼쓰고 난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장 임무에 어린애를 데려갈 수 없으니까 우진이는 떼쓰는 동생을 단호하게 끊어 내고 왔다.
쟤들은 그런 사정을 모르니까 우진이를 팔아서 쉬고 싶어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애들 말대로 우진이가 체력적으로 힘에 부쳐 보이긴 했다.
이쯤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게 좋겠다.
아직 임무 시작도 안 했는데 우진이가 벌써 쓰러지면 안 되잖아.
나는 곧바로 우진이가 쉴 수 있게 적당히 외풍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내 쉼터를 준비하기로 했다.
마침 바로 옆에 건물의 잔해가 꽤 있었다.
상가였는지 주택이었는지 다 부서져서 모르겠지만 지붕과 벽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건물이 보이니, 저기서 잠시 쉬었다 가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죽은 담쟁이가 잔뜩 얽혀 있고 시멘트 골격만 남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찬 기운이 돌고 조용한 게 괴수가 둥지로 쓰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주변에 민간인이 숨어 있는 것 같지도 않아서 쉬었다 가기 딱 좋았다.
괜히 협회와 관련 없는 민간인을 만나면 임무에 방해만 되니까 뭐든 간에 안 만나는 게 최고다.
바닥에 잔뜩 어질러져 있는 유리 조각이나 건물 잔해물을 대충 치워 버리고 우진이가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우진이는 많이 힘들었는지, 내 부축을 받아서 자리에 철퍼덕 앉았다.
추운 날씨 때문에 우진이의 코랑 귀가 빨갰다.
우진이가 많이 추워 보여서 우진이한테 내 목도리를 둘러주고 모자까지 씌워 주었다.
목마를 것 같아서 물병을 꺼내 주고 아직도 추울까 봐 손난로까지 꺼내서 우진이한테 쥐여 주는데 장하나가 말을 걸었다.
“선배, 너무 지극정성인 거 아니에요? 여기서 가이드님이 제일 어른인데 말이야.”
“맞아, 우리는 아직 미성년자라고요. 어른의 보호가 필요해.”
튼튼하고 혈기 왕성한 S급 에스퍼들이 연약한 가이드를 질투했다.
당장에 괴수도 때려잡을 수 있는 애들이 말이야.
덩치도 큰 애들이 약한 사람을 배려할 줄도 몰라서 참 큰일이다.
본인 짐 가방도 못 드는 우진이를 챙겨 줘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배려심이 없는 애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고 있는데 우진이가 내 옷을 잡아당겼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귀가 벌겋게 달아오른 우진이가 내게 말했다.
“제발, 그만해요…….”
마음씨가 고운 우진이는 팀 내에서 불화가 생기는 걸 안 좋아하나 보다. 그나저나 얼굴이 너무 빨간데 혹시 열나는 건 아니겠지?
우진이의 상태를 살펴보려는데 장하나가 또 말을 걸었다.
“근데 선배. 아까 우리한테 줄 거 있다면서요. 설명 길어지니까 출발하고 나서 준다고 한 거. 그거 그냥 지금 주면 되지 않아요?”
이번엔 쓸데없는 소리가 아니었다.
맞아, 귀한 장비니까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도록 출발하고 나서 나눠 주려고 한 장비가 있었다.
나는 장비 가방에서 손바닥만 한 패드 5개를 꺼냈다.
“그래, 네 말대로 지금 주면 되겠다. 일단 받기 전에 설명부터 들어. 다들 현장 나가 본 적이 없어서 이게 뭔지 잘 모를 거야. 이건 ‘텔레포트 패드’라는 물건이고 패드마다 고유 번호가 있어. 이렇게 뒤집으면 번호가 쓰여 있는 게 보이지?”
“네.”
“옆에 달린 버튼 눌러서 화면을 켜고 상대방의 패드 번호를 입력하면 그 번호를 가진 상대방에게 이동할 수 있어.”
“오오…”
“다들 팀원 번호 외워 두도록 해. 일회용이니까 위급 상황에만 쓰고. 한번 쓰면 끝이니까, 궁금하다고 쓰면 이거 그냥 고물된다.”
나는 팀원들에게 텔레포트 패드를 나눠 주었다.
이건 연구 센터에서 텔레포트 이능을 연구해서 만들어 낸 물건으로, 위험한 임무에서나 가끔 나눠 주는 장비다.
일회용이라 가성비도 별로일뿐더러 만드는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훌리건 임무에서는 절대로 배급 안 하는 물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걸 팀원에게 나눠 주는 건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내 사비로 협회에서 산 것이다.
우진이가 나랑 떨어진 곳에서 괴수를 만나거나 훌리건에게 납치될지도 모르니까.
되도록이면 쓰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우리는 패드를 나눠 갖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에 다시 이동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훌리건 박건형의 아지트를 맨눈으로 보게 됐다.
에가협에서 받은 정보에 따르면 훌리건 박건형의 아지트는 백여 명 정도가 모여 있는 규모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머무는 장소는 생각보다 협소했다.
무너진 건물에 지저분한 컨테이너 박스를 10개 정도 모아서 만든 아지트는 백 명이나 되는 인원을 모두 수용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 장소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건물의 주변엔 낡은 천을 여러 개 덧대어 만든 천막이 수십 개가 있었다.
천막 근처에는 모닥불을 여러 개 피워 놓았고 모닥불마다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불을 쬐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호할 만한 수단은 잡동사니를 쌓아 올린 야트막한 바리케이드뿐이었다.
컨테이너 박스 위에서 망을 보는 사람 몇 명도 있긴 했지만 50명이 훌쩍 넘는 인원을 모두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저들은 훌리건일 것이며, 야외 생활을 하는 그들을 보호하려는 목적보단 망을 보고 감시하려는 목적으로 배치한 구성 같았다.
‘박건형의 아지트도 여느 훌리건의 아지트와 다르지 않네.’
보통 훌리건들의 아지트 인원은 에스퍼와 가이드, 일반인으로 이루어져, 그 안에서 계급이 나뉘어져 있다.
우두머리는 당연히도 훌리건 당사자들인 에스퍼들이고, 가이드와 일반인들은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고 살림을 꾸리는 ‘생산 인력’으로 쓴다.
그리고 훌리건들이 생산 인력에게 어떤 대우를 하는지에 따라 에가협이 그들을 제압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잘살고 있는 사람들한테 괜히 개입하면 안 되는 이유도 있고 학대받는 사람들이 있으면 구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협회는 훌리건 무리를 발견하면 ‘훌리건 관찰’ 임무로 팀을 파견해서 그들을 판단한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살고 있는지, 사람을 억압하고 탄압하는지를 말이다.
‘바깥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훌리건에게서 사람들을 구해 내는 에가협’의 그림을 만드는 것. 이것이 훌리건 임무의 주요 목적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훌리건들이 생산 인력들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관찰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임무를 수행하면 된다.
일단 생산 인력들을 이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생활하게 놔두고 감시하는 건 우리가 원하는 그림이다.
이제 여기서 더 나아가 얼마나 괴롭힘을 당하는지 자세한 사례들을 수집하면 된다.
마침 망보던 놈이 밑으로 내려오더니 불 가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제 보니 불 가에 앉은 사람들은 제각기 요리를 하거나 도구를 만들거나 옷가지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딴짓을 하는 듯한 기미가 보이면 저렇게 때리는 모양이다.
나는 스마트워치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훌리건의 모습을 그대로 녹화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장하나가 또 말을 걸었다.
“우리가 할 건 이게 다예요? 이렇게 멀찍이 떨어진 곳에 숨어서 영상이나 찍는 거?”
하, 장하나가 말을 걸어서 영상에 장하나의 목소리까지 들어갔다.
‘따로 편집해야겠네.’
난 귀찮은 일을 늘려 준 장하나를 째려보려던 걸 참고 고개를 돌려 장하나를 보았다.
우리는 박건형의 아지트에서 700미터 떨어진 폐허에 숨어 있다.
천장은 절반도 채 안 남았지만, 벽은 아직 사면이 다 남아 있어 몸을 숨기기 적당했다.
짐은 상하지 않도록 건물의 구석에 놔두고, 우리는 무너진 벽 사이로 몸을 숨겼다.
각자 배급받은 망원경을 갖고 아지트를 감시하면서 특이 사항은 녹화를 하라고 지시했는데, 장하나는 나에게 와서 방해나 하고 있었다.
장하나의 불만 사항이 이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껏 오늘을 위해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전투 훈련을 했지만, 막상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전투 능력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건 현장을 잘 모르는 초짜나 하는 생각이고, 고작 2주 훈련받은 사람들을 데리고 어떻게 전투 상황 발생이 높은 임무를 나가겠어.
얘들한텐 이런 임무가 딱이다.
그냥 바깥 분위기나 익히라고 이런 임무를 고른 건데 내 깊은 뜻도 몰라주고 말이야.
장하나에게 본인의 수준에 맞는 임무의 중요성을 알려 주는 중인데 별안간 조용이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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