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훌리건 (2)
혹시 몸이 안 좋아졌나? 막 걱정이 되는 차에, 장하나가 또다시 질문을 했다.
“와, 즉결 처형 쩐다. 무시무시하네. 그러면 우리 주말에는 훌리건 때려잡으러 가는 거예요, 선배?”
오늘도 장하나는 호전적이고 과격한 헛소리를 했다.
우진이의 상태를 살펴보고 싶었지만 일단 내게 주어진 일은 쟤네를 교육하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대답을 해 주어야 했다.
“아니. 우리가 할 일은 훌리건의 동태를 살펴보는 일이야. 직접적으로 마주칠 일도 별로 없을걸, 아마도.”
훌리건에 대한 업무는 크게 3종류로 분류된다. 훌리건에 대한 ‘관찰’, 훌리건 생태로의 ‘잠입’, 훌리건 ‘진압’으로 말이다.
훌리건 임무가 3종류로 나뉘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괴수가 난무하는 세상은 혼자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것도 생존을 위해서 만들어 낸 생활 방식이잖아.
그런 이유로 훌리건도 홀로 살아가는 놈이 없다.
꼭 패를 이뤄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려 든다.
속한 무리는 클수록 살아남기에 유리하기 때문에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경우가 많다.
그런 훌리건과 뜻이 맞아서 함께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온건한 방식으로는 무리를 크게 만들 수 없다.
그래서 훌리건은 생존자들을 납치하는 방식으로 무리의 몸집을 불린다.
사람을 납치하는 놈들이 납치한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겠어. 살림 차리는 노예로 쓰겠지.
이런 훌리건들이 활개를 치게 놔두면 협회원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학대받는 노예 생활만 하다가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가뜩이나 인간의 부흥에 목매는 에가협이 그 꼴을 놔둘 리가 없다.
에가협은 훌리건이 인간 사회의 적폐 세력이라고 못을 박고 괴수처럼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구출한 훌리건의 피해자들이 동조해 준 덕분에 에가협은 이 프로파간다를 손쉽게 밀고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걸 그대로 실천하는 건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훌리건은, 밖에서 생활하는 에스퍼들은 결국은 인간이기 때문에 괴수랑 똑같이 대할 수가 없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에가협은 괴수만큼 인간에게 큰 피해를 끼친다고 판단되는 훌리건을 골라서 소탕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떤 훌리건이 얼마만큼의 피해를 주는지 확인하는 과정과 임무가 ‘관찰’과 ‘잠입’이다.
우리가 할 임무는 이 중에서 ‘훌리건 관찰’이다.
위험도가 제일 낮은 임무라서 초짜들을 데려가기 좋다.
그렇다고 훌리건 관찰 임무가 마냥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
훌리건과 마주쳐서 대립할 수도 있고, 관찰 도중에 괴수를 만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모든 팀원은 위기에 대비할 수 있는 게 좋다.
나는 학생들에게 설명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했다.
기본적인 강의를 다 했으니, 이제 얘네를 현장 팀원으로서 최소한의 기능이라도 할 수 있게 가르쳐야 했다.
지금까지 해 왔던 일과 크게 차이가 없다.
애초에 현장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을 만드는 게 이 수업을 하는 이유고, 이 모든 건 체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평소에 하던 대로 90분 동안 체력 운동을 시켰다.
“하아… 하아…”
고작 90분 동안 기초적인 체력 훈련을 끝냈을 뿐인데 우진이가 너무 힘들어했다.
우진이는 아직 상태가 안 좋으니까 똑같은 훈련을 시키지 않고 애들 훈련할 동안 우린이랑 172호실 내부를 걷도록 했다.
그것도 쉬엄쉬엄 산책하듯이 걷게 했을 뿐인데 힘들어해서 큰일이었다.
임무 내내 우진이를 업고 다녀야 하는 걸까? 6살짜리 애보다 체력이 약한 우진이를 현장에서 어떻게 데리고 다닐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나에게 장하나가 말을 걸었다.
“선배. 선배가 시킨 거 다 했어요.”
말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이미 숨을 다 고르고 바닥에 늘어진 애들이 보였다.
쓰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걷고 있는 우진이가 걱정됐지만, 애들을 놀게 놔둘 순 없었다.
나는 수업 준비물로 챙겨 온 커다란 가방을 가져와 애들 앞에 내용물을 쏟아 냈다.
사격 연습용으로 가져온 총이었다.
온갖 이능력이 판치는 세상이라도 총은 여전히 강력한 물리력을 발휘하는 좋은 무기다.
다루는 법을 익혀 두면 위급 시에 늘 도움이 된다. 기본 호신용품 필수템이기도 하고.
전투 훈련에서도 사격 교육은 필수로 넣어야 한다.
나는 애들에게 시범을 보이기 위해 먼저 총을 들고 과녁을 맞혔다.
총마다 소음기를 부착해 놔서 총소리가 크진 않았다.
6발의 총소리가 지나가고 과녁에는 내 사격의 결과물이 공개되었다.
과녁에서 빗나간 게 한 발도 없건만 애들은 내 과녁을 보며 야유했다.
“에이, 뭐야. 정중앙을 맞힌 게 한 발도 없잖아요.”
“모든 무기를 다 잘 다룬다더니 구라였나 봐.”
헛소리에 동조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함소영까지 보고 있자니, 시범은 그만 보여 줘도 되겠다.
직접 해 봐야 자신의 수준을 깨닫겠지.
나는 애들에게 보호 장비를 착용하게 하고 기본적인 총 다루는 방법을 알려 주고 직접 하도록 했다.
남을 함부로 비웃던 청소년들은 예상대로 과녁의 가장자리도 제대로 못 맞혔다.
애들이 형편없는 사격 실력을 보여 주는 사이에 우진이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충분히 쉬다가 왔는지 아까보다는 안색이 나아져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우진이가 갑자기 쓰러지거나 탈진할 수도 있으니까, 나는 우진이에게 물도 주고 비상용 포도당 캔디도 쥐여 줬다.
그리고 혹시나 우진이가 무리할까 봐 걱정이 돼서 휴식을 충분히 하도록 당부했다.
우진이는 내 걱정을 들어주며 사격 연습을 하는 애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우진이도 사격 연습을 해야 한다.
‘연약한 우진이가 총의 무게와 사격 시의 반동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냥 BB탄으로 연습시킬까?’
그렇지만 호신용품으로는 총이 최고다. 현장에서 BB탄을 들고 다니게 할 수는 없잖아.
내가 머리를 굴리는 동안, 우진이는 사격 연습용 총을 들어 올리더니 찬찬히 살펴봤다.
그 모습이 어쩐지 거룩한 사냥의 신처럼 보여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신성한 얼굴의 우진이가 내게 말했다.
“저도 해 봐도 될까요?”
원래 우진이도 해야 하는 거라서 당연히 해도 된다.
내 대답을 들은 우진이는 나에게 기본적인 사격 지식도 배우지 않은 채로 과녁 앞에 서서 안전핀을 뽑고 총구를 겨눴다.
소음기로 절제된 총성이 6번 날아들고 과녁판의 불스아이에는 6개의 구멍이 남겨졌다.
우진이는 외모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사냥의 신이었다.
“우와아아-”
우진이가 사격 솜씨를 보여 주자, 사방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고작 4명의 박수 소리였지만 광활한 172호실을 울리게 하는 것쯤이야 충분했다.
우린이는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우리가 박수를 치니 따라서 쳤다.
같은 공간의 모두에게 갈채를 받은 우진이는 얼굴을 약간 붉히면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우리를 둘러보았다.
“와, 진짜 잘 쏘시네요! 가이드님이 선배를 가르쳐 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맞아, 완전 사격 선수 같아요!”
애들이 지당한 얘기를 하며 달려들자, 우진이의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겸손의 미덕까지 갖춘 우진이는 애들을 물리며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도와주겠다는 말까지 해 주었다.
명화 속에 나오는 천사같이 아름다운 우진이는 마음씨도 천사 같았다.
착한 우진이는 어린 동생이 자기도 하고 싶다며 투정을 부리자, 안전장치가 풀리지 않은 총을 손에 들려 주었다.
그러고는 총을 쥐고 있는 차우린의 양손을 뒤에 서서 감싸 안고 안전장치를 내렸다.
동생을 껴안은 듯한 모습으로 과녁을 겨눈 우진이가 그대로 발포했다.
이번에도 탄환은 과녁의 정중앙을 지나갔다.
저런 불편한 자세로도 저런 명중률이라니 역시 우진이는 대단하다.
자신이 맞춘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차우린은 자신이 맞춘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신나 했다.
나도 차우린과 마찬가지로 내 업적도 아닌 일에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우진이가 이렇게 명사수일 줄이야.’
어쩌면 이번 임무가 내 생각보다 훨씬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우진이 사격 솜씨를 알면 김 국장도 좋아하겠지? 생긴 것도 완벽한데 유능한 우진이를 싫어하는 것도 이상하겠지만 말이다.
***
우진이가 유능한 덕분에 임무에 나가기 위한 준비는 순조로웠다.
우진이는 꾸준히 체력을 늘리기 위한 준비만 하면 되었고, 애들도 체력 훈련은 약간이나마 틀이 잡혀 있기 때문에 사격이나 기본적인 무기, 도구 다루는 법을 위주로 가르쳤다.
일주일 내로 다 가르치는 건 촉박한 편이었지만 그럭저럭 훌리건 임무에는 내보내도 될 수준이 되었다.
사실, 애들의 실력보다도 우진이의 체력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저녁마다 꾸준히 우진이를 붙잡고 체력 운동을 봐줬지만, 일주일로는 여섯 살보다 못한 체력을 여섯 살 정도의 체력으로 올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게 팀원 육성으로 시간은 흐르고 현장 임무의 날이 밝았다.
오늘은 평소보다 3시간이나 앞당겨서 중앙 센터에 모였다.
임무에 출동하기 전에 출동 팀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업무 때문에 중앙 센터 메인 카운터는 언제나 운영 중이다.
여기서 근무하는 승환이도 당직이면 이 시간에 근무한다.
‘오늘 당직은 승환이는 아니네.’
지금 당직을 서는 저 사람은 아마도 이름이 권석현이었을 것이다. C급 에스퍼였나 그랬던 것 같다. 권석현도 나를 알아보고 아는 척을 했다.
“강또! 팀장으로 현장 간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출세했다, 야. 감투도 쓰고 옆에 가이드도 끼고 좋겠네~”
권석현이 아는 척을 하며 시비를 걸었다.
권석현이 나보다 약간 더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팀장 자격으로 현장 나가는 나를 약간 질투하는 것 같았다.
부팀장으로 있는 조승환은 9년 차인 A급 에스퍼라서 찍소리도 못하더니, 나는 B급이라 만만한가 보다. 난 12년 찬데.
5년 차 에스퍼인 권석현이 나에게 친근감을 느끼며 헛소리를 하는 동안에 내 학생들이 도착했다.
모든 팀원을 행정 직원에게 확인도 시켰으니 출발하면 되겠다.
나는 팀원들을 이끌고 에가협 건물 부지의 바깥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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