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37화 (37/81)

37. 훌리건 (1)

“차우진! 차우진 맞지?”

우진이와 나는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봤던 가이드가 약간 흥분한 상태로 우진이를 보고 있었다.

우진이도 상당히 놀란 표정인 게 아는 사람인가 보다.

“이, 이한새? 너 살아 있었구나.”

내 앞에 있던 우진이가 이한샌지 뭔지 하는 가이드에게로 가 버렸다.

우진이 발치에 꼭 붙어 있던 우린이도 우진이가 갑자기 낯선 사람에게 가 버리니 당황한 것 같았다.

우린이는 나와 우진이를 보며 갈팡질팡하다가 제 오빠한테로 가 버렸다.

“…….”

우린이는 잘 모르는 눈치인 듯하니, 저 가이드는 우진이가 아마도 7년쯤 되는 오래전에 만난 지인인 것 같았다.

‘일반인 출신이 예전에 알고 지낸 사람을 살아 있는 모습으로 만나는 건 드문 일이지.’

우진이가 저렇게 저 가이드를 반가워하는 모습을 이해하기로 했다.

죽었을 거라 예상했던 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당연히 반갑겠지.

난 우진이가 헤집어 놓은 내 옷이나 추슬렀다.

구겨진 옷깃을 펴고 지퍼를 올리고 소매를 정돈하다가 아까부터 느껴지던 손의 위화감을 확인했다.

어쩐지 정교한 손놀림을 할 때 평소보다 힘이 많이 들어간다 싶더니 손톱이 거의 다 녹아내렸다.

‘손톱이야, 다시 자라니까 별 상관은 없지만, 한동안 불편하겠네.’

녹은 손톱을 보고 있는 동안, 박해미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세심하게 살펴보는 척하더니 손톱이 그 지경인 건 못 본 거야? 쟤도 그렇고 너도 참 대단하다.”

염세적인 박해미는 우진이가 멀어지자 곧바로 흉을 봤다. 날 욕하는 건 이해해도 우진이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나는 우진이를 위해 변론을 시작했다.

“그건 아니지. 우진이는 내 몸에 잔뜩 묻은 그 누런 액체가 웬만한 건 다 녹여 버리는 물질이라는 걸 듣고 많이 놀랐다고. 네가 설명해 줬다며. 우진이가 다 말해 줬어. 내 피부가 조금이라도 녹았을까 봐 얼마나 걱정해 줬는데. 너처럼 냉혈한은 우진이 마음을 몰라.”

“유일하게 녹은 부위도 못 알아보고 참 대단한 걱정이네. 그것도 아니면 사람이 허술한 건지.”

“사람이 저렇게 생긴 게 완벽한데 어떻게 섬세함까지 완벽하게 갖추겠어. 우진이는 약간 허술한 부분도 완벽하지만 말이야. 모자람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오히려 허술해 보이는 부분이 의외의 매력을 보여 준다고.”

“허…….”

“저런 외모에 덜렁거리는 면모도 있다니, 완전 귀엽지 않아? 꼼꼼하지는 않지만 착해서 내가 안 다쳤나 걱정도 해 주고 말이야. 잘생기고 멋지고 예쁘고 귀엽고 착하고 혼자서 모든 걸 다하고 아주 완벽하다니까.”

“……미친놈.”

나랑 대화를 나누던 해미는 갑자기 뒷걸음을 치더니 이제 일하러 가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떨어져 있는 가이드를 불렀다.

“이한새! 농땡이 다 쳤으면 일하러 가!”

해미가 큰 소리로 이야기하자, 우진이랑 같이 있던 가이드가 반응했다.

벼락 맞은 것처럼 등을 고쳐 세운 가이드는 우진이랑 우린이에게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하더니 나한테까지 와서 인사를 했다.

“유명한 하나 씨를 만나게 되어서 반가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만나요.”

말을 마치고 싱긋 웃어 보이기까지 한 싹싹한 가이드는 박해미를 쫓아서 후다닥 뛰어갔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A급 가이드가 연구 센터에 새로 들어왔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은데 그게 저 사람인가 보다.

어쨌든 우진이한테 친구가 생겨서 다행이다.

우진이가 말해 주길, 저 가이드는 게이트 브레이크가 있기 훨씬 전부터 우진이의 친구였다고 한다.

비록 박해미가 금방 데려가 버린 바람에, 대화를 오래 나누진 못했지만, 가이드의 연락처를 받은 모양이었다.

이제 가이드 친구가 생겼으니 우진이가 협회에 적응하는 일도 더 쉬워지겠지? 우진이 친구가 괴수에게 안 먹히고 가이드가 되어서 참 다행이다.

우진이도 그 가이드에게 연락처를 주고 싶었지만, 나랑 마찬가지로 스마트 워치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우진이에게 그래도 받은 연락처가 있으니 시계만 다시 배급받으면 얼마든지 연락할 수 있다고 위로해 주며 시계를 받으러 갔다.

마침 여기가 연구 센터라서 스마트워치를 관리하는 부서가 가까웠다.

우진이랑 나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 스마트워치를 받았다.

과연 해미의 말대로 비용은 협회에서 지불되었고 우리 계좌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나는 아직 남은 주말은 우진이와 노는 데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스마트워치를 켰다.

그런데 시계를 켜자마자 부재중 연락이 와 있었다.

가이드 국장의 연락이었다.

***

가이드 국장의 정신 나간 연락으로 나의 일정은 더 바빠졌다.

김 국장이 나에게 연락을 한 건 곧바로 다음 주에 있을 우리 임무에 배정될 가이드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별것도 아닌 흔해 빠진 건으로 국장씩이나 되는 자가 연락을 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제 막 기초 교육을 끝낸 생초짜 가이드를 데리고 현장에 나가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으니까.

김 국장이 나에게 연락한 이유는 우진이를 다음 주에 나갈 현장에 데려가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김 국장이 정말 미친 게 아닐까?’

우진이는 기초 교육이론만 배웠을 뿐 현장에 대한 교육은 아직 하나도 듣지 못했는데, 바로 임무에 투입하다니.

‘게다가 우진이는 아직 회복이 덜 돼서 숟가락보다 무거운 건 못 든단 말이야. 물론 짐은 내가 다 들어 줄 수 있지만, 호신용 무기는 직접 들어야 하잖아.’

내가 이런 호소를 했더니, 김 국장은 위험도가 높은 임무가 아니며 가이드 한 명 정도는 내가 충분히 지켜 줄 수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아니, 물론 충분히 할 수 있기는 한데,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 원칙을 중시하며 절대로 어기지 말라고 나를 가르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요.’

하지만 원래 김 국장이 저런 사람이 아닌데, 많이 조급하긴 한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수락은 했다.

어차피 간단한 임무고 내가 우진이를 털끝 하나 안 다치게 지켜 줄 자신은 있으니까.

나는 가이드국이 3년 전에 잃은 인력을 아직까지 수복하지 못해서 초조한 상태라는 걸 알지만, 동시에 가이드국이 생각 없이 초짜 가이드를 사지로 내몰지도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김 국장은 내가 이번 임무에 우진이를 데려간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저러는 것이다.

본래 김 국장은 원리 원칙 주의자에 인명 사고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게다가 옛날부터 김 국장은 호되게 가르치지만, 엘리트 인력만은 확실하게 키웠으니까.

김 국장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면 결과적으로 우진이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다.

이렇게까지 날 믿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우진이를 위험 속으로 내몰고 있는 상황에 화를 내야 할지 심란했지만, 이건 다 우진이를 위한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다음 주를 위한 준비를 했다.

결국, 주말은 우진이와 놀러 가지 못하고, 우진이를 위한 장비를 맞추기 위해 하루 종일 우진이를 끌고 다녔다.

우리는 주말 내내 전용 보호 장비를 둘러보았으며, 나는 특히 우진이를 위한 호신용품을 꼼꼼하게 살피고 골랐다.

***

그렇게 숨 가쁜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 수업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애들 사이에 우진이를 앉히고 다음 주를 위한 수업을 시작했다.

일단 현장에 나가려면 그 현장에 나가는 이유와 우리가 할 일을 알아야 한다.

보통 임무 설명을 읽어서 개별적으로 파악하는데, 생초짜들은 읽어도 잘 모른다.

그래서 보통 교육 시간에 첫 임무를 데려가면서 관련된 설명을 해 주는 것이 에가협의 관례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도 나름대로 있다.

현역들만의 상식과 관례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임무에 대한 브리핑을 주로 할 생각이었다.

나는 내가 준비해 온 자료들을 추리며 화면을 켰다. 나의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화면으로 향했다.

지금부터 내가 설명할 내용은 “훌리건”에 대한 것이다.

에가협이 말하는 “훌리건”이란, 협회 밖에서 활개 치는 에스퍼를 말한다.

어원은 축구보다가 난리 치는 그 불한당들에게서 따온 게 맞다. 물론 그 의미도 비슷하다. 둘 다 맘에 안 들면 폭력을 일삼는 치들이니까.

“훌리건이란 협회가 맘에 안 들어서 밖으로 나가 생존자들을 쥐어짜는 에스퍼 폭군들이다.”

그냥 이렇게 외워 두면 편하다.

내 말을 얌전히 듣던 장하나가 말했다.

“협회에서 겨울마다 대대적으로 훌리건 잡는다는 게 에스퍼 잡으러 간다는 뜻이었어요?”

“우리 인간 사냥 가는 거야?”

나는 조용이 헛소리를 추임새로 넣는 걸 무시하고 장하나에게 대답을 해 주었다.

“그렇지. 협회에 소속되길 거부하고 밖에서 살아가는 에스퍼들이지만, 자꾸 생존자들을 괴롭히니까 괴수랑 비슷하잖아. 인도적인 차원에서도 하는 게 좋고, 걔네 그냥 놔두면 다운타운 거주자들도 건드려서 다 우리가 피해 본다? 괴수들이 잠잠한 겨울에 한번 싹 잡아 놓는 게 좋아. 다른 날은 괴수 때문에 바쁘니까.”

“그럼, 잡은 에스퍼를 어떻게 해요?”

함소영이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얘네치고는 꽤 괜찮은 질문이군. 난 곧바로 대답해 주었다.

“생포한 훌리건은 교화 교육을 받고 협회로 들어와. 우리가 밖에서 각성한 에스퍼를 바로바로 데려올 수 있지는 않아서 꽤 흔한 케이스야. 요즘 신규 에스퍼들은 아무래도 훌리건 출신이 많지.”

“밖에서 사람들을 학대한 에스퍼들을 여기에서 다 받아 주는 건가요?”

우진이가 굉장히 중요하고 예리하고 똑똑한 질문을 했다.

역시 우진이는 역시 머리가 아주 좋은 사람인 게 틀림없다.

“물론 다 받아 주지는 않지요. 죄의 경중을 따져서 임무 중에 즉결 처분하는 에스퍼도 많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교화에도 한계가 있고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요.”

내 설명을 듣던 우진이의 표정이 별안간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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