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내가 키우게 된 S급들 (16)
우진이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착한 학생이었다.
내가 수업하는 내용도 나름대로 열심히 듣고, 내가 시키는 숙제도 착실히 했으며 밥 먹는 동안 하는 구술로 하는 복습 문제도 열심히 대답했다.
사실 약 한 달 동안 만나본 우진이는 의료 센터에서도 그렇고, 그제도 그렇고, 갑자기 어디론가 도망간 적이 은근히 있었기 때문에, 오늘 수업에서도 화장실로 도망가고 안 돌아올까 봐 살짝 걱정은 했다.
‘거기다 사람 말을 흘려듣는 경향도 있어 보이고.’
그래서 우진이를 가르치기 전에 나름의 준비는 철저하게 한 상태였다.
어젯밤에 우진이의 GPS 열람권을 신청해서 아침에 다 받아 놨고, 우진이가 수업을 흘려들어도 오늘의 수업을 복기하기 쉽게 수업 자료도 열심히 준비했다.
사실 우진이는 기초 교육을 강의실에서 따로 받아야 하지만, 내가 시간을 뺄 수 없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일정에서 짬을 내어 직접 가르치게 됐다.
물론 그것도 김 국장이랑 얘기가 된 사안이라 문제는 없다.
걱정할 건 우진이가 3일 뒤에 있는 기초 교육 시험에 통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협회원이 되어서 기초 교육을 받은 지 닷새 만에 치르는 이 시험은 사실 성적만 있을 뿐, 통과 여부가 있지는 않지만 오래된 협회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저 시험의 성적표가 앞으로 이뤄질 세 달간의 집중 교육에서 어떤 취급을 받을지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보통 60점을 넘기면 무난한 협회원으로 분류되어서 무탈한 교육 기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우린 그 점수를 합격 점수라고 불렀다.
반대로 말하면, 60점을 못 넘기면 비협조적인 태도를 가진 협회원으로 생각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진이는 이미 김 국장한테 찍혀서 통과를 못 하면 상황이 더 힘들어질 터였다.
‘난 우진이가 그렇게 힘들어지는 꼴 못 봐.’
무슨 일이 있어도 김 국장 눈 밖에 나는 건 피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우진이에게 내줄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본래 있던 ‘고위험군 에스퍼’ 수업 시간에 짬을 내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짧은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해 가르쳐 주려고 했지만, 쪽지 시험의 결과를 보니 우진이에겐 부족했나 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수업 내에 다 채우지 못한 지식은 다른 방식으로 채우면 그만이다.
숙제와 구술 문제로 말이다.
나는 점심 이후 일정이 꽉 차 있기 때문에 우진이와 우린이를 방에 데려다주고 다시 나왔다.
우진이가 숙제를 잘하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중앙 센터로 향해야 했다.
약 일주일 뒤에 있을 우리 반 애들의 현장 임무 신청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임무는 적절해서 별로 어렵지 않고 위험도도 낮은 훌리건 시찰 임무였지만 팀원 비율이 좋지 않아서 허가를 아직 못 받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장 임무팀에는 치유계나 가이드가 한 명 이상이 있어야 해서 가이드국에 파견 신청을 넣어 놓았다.
기다리면 알림을 보내 주겠지만 직접 가 보면 상황 돌아가는 걸 볼 수 있어서 편하다.
나는 중앙 센터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앞에 있는 메인 카운터로 향했다.
운 좋게도 오늘의 메인 행정 직원은 조승환이었다.
“어, 왔어? 가이드국으로 신청은 들어갔는데 좀 걸릴 거야. 훌리건 시즌이라 많이들 나가잖아.”
“등급 낮아도 괜찮다고 했는데 오래 걸려? 이번 주 안으로 매칭 잡혀야 하는데.”
“현장 경력자로 조건 달아 놨잖아. 그래도 등급은 안 가리니까 이번 주 안으로는 연락 갈 거야. 귀찮으니까 그만 찾아오고.”
나는 귀찮은 듯이 이만 가 보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승환이에게 인사를 하고 이동했다.
승환이는 날 아니까 빠르게 원하는 정보를 줘서 편하다.
승환이가 말하길 이번 주 안으로 연락은 온다니까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이제 다음 주 현장 임무를 위한 내 개인적인 준비만 하면 된다.
비록 정식 팀으로써 활동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임무에서 나는 팀장으로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준비할 것이 많았다.
옛날에 들었던 인명 구조 및 응급 처치 교육 과정을 재이수해야 하고 보급받을 장비도 확인하고 골라야 한다. 또 현장 나가는데 개인 수련을 게을리할 수도 없다.
나는 오늘 처리할 일들을 떠올리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휴, 정신없었네. 이제 우진이 보러 가야지.”
약간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일정이 끝났다.
나는 식당에서 저녁을 포장 주문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우진이가 숙제를 다 했는지도 검사하고 복습도 해야 하니까, 식당보다 방이 편하겠지.’
방에 들어가니 우진이가 침대에 차우린을 눕히고 재워 놓았다.
우진이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약간 놀랐는지 내 쪽을 돌아보았다.
겁먹은 토끼 같던 모습은 날 보더니 바로 풀어졌다.
장인이 그려 낸 수묵화처럼 기품 있는 우진이의 얼굴에는 봄바람같이 부드러운 미소가 드리워졌다.
우진이의 미소로 불어온 봄바람은 그대로 나에게로 불어와 내 가슴에 깃들었다.
***
우진이는 첫날의 쪽지 시험 점수에 충격을 많이 받았는지 둘째 날부터는 필기까지 하며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쪽지 시험 점수는 첫날보다 나아졌지만 아직 만족할 수 있는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숙제는 계속 내줬다. 우진이가 숙제 때문에 팔 아파하는 건 가슴 아프지만, 우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할 건 해야 하니까. 다 하고 어젯밤처럼 팔 주물러 주면 되지. 아픈 건 잠깐이다.
어제처럼 정신없는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고 우진이의 시험 날이 되었다.
나는 우진이를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우린이를 품에 안아 들고 일을 보러 갔다.
그동안 들은 응급 처치 교육 수료증을 떼고, 당장 다음 주에 사용할 장비 확인에 여러모로 할 일이 많았다.
빨리 마치고 시험 끝난 우진이도 데리러 가야 하고.
그래서 우린이의 걸음 속도를 배려해 줄 수가 없다.
물론 우린이는 이런 사정을 하나도 모른 채, 내가 안고 빠른 속도로 뛰니까 그저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재빨리 중앙 센터로 뛰어 들어와서 수료증을 떼고 임무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나서 장비 대여소로 이동하려 하는 순간이었다.
손목의 스마트워치가 울렸다.
우진이한테 온 전화였다.
우진이가 전화로 얘기해 주길 시험은 10분도 안 돼서 문제를 다 풀 수 있을 만큼 쉬웠다고 한다.
그래서 금방 시험지를 제출했다고 한다.
역시 우진이는 머리도 좋다.
나는 연락을 받자마자 차우린을 고쳐 안고 우진이에게 달려갔다.
우진이가 조금이라도 덜 기다리도록 열심히 고사장 앞으로 달려가니, 복도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우진이가 보였다.
나는 내 품에서 크게 오빠를 부르는 차우린과 함께 반갑게 우진이를 불렀다.
바닥을 보고 있던 우진이는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우진이의 겨울 호수 같은 눈동자에 나와 우린이가 담겼다. 갓 내린 새하얀 눈발과 같이 티 없이 깨끗하고도 고요하던 우진이의 얼굴에 맑은 웃음이 피었다.
아름다운 우진이의 얼굴에 잠시 넋을 놓았다가 금방 현실로 돌아왔다.
차우린이 우진이 품으로 건너가 안기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직 차우린을 안아 들 수 없는 우진이를 위해 차우린을 내려 줬다.
차우린이 짜증을 내며 내 발을 밟고 정강이를 찼지만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우진이에게 중요한 걸 물었다.
“시험은 잘 봤어요? 1시간짜리 시험인데 빨리 나오셨네요. 렵지는 않았어요?”
“네에…”
“그동안 고생한 게 잘 끝났네요~ 축하해요. 그런데 점수는 어떻게 나왔어요?”
“…….”
기초 교육 시험은 다 풀고 나올 때, 수험생이 자신의 시험지를 채점기에 제출한다.
채점기에 시험지를 넣으면 늦어도 10초 안에는 채점 결과가 나오며 점수가 협회에 등록된다.
채점된 시험지도 수험생에게 돌려주기 때문에 시험 결과는 모를 수가 없다.
우진이는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고 아까 통화했던 목소리도 아쉬운 기색은 없었으니 분명 잘 봤을 것이다.
그런데 우진이가 나를 보며 미간을 살짝 구겼다.
‘왜 저러지? 설마 시험 결과가 별론가?’
나는 우진이를 보며 마음을 졸였지만, 인상을 구긴 우진이가 나에게 내민 건 백 점짜리 시험지였다.
‘역시 우리 우진이는 머리까지 좋고 완벽하다. 1시간짜리 시험을 10분 만에 백 점으로 풀고 나오다니.’
이 정도면 김 국장이 우진이의 태도가 이렇더라 저렇더라 하면서 고깝게 보던 걸 만회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날을 그냥 보낼 수 없지.
마침 주말이라 오늘은 수업도 없고 우진이 데리고 놀러나 갈까?
장비 확인은 내일 아침부터 빡세게 하면 될 것이다. 수료증이야, 놀고 와서 밤에 무인으로 떼면 되니까.
나는 뾰로통한 우진이를 토닥이며 재차 고생 많았고 축하한다고 말해 주었다.
우진이가 문제 난이도에 비해 너무 과하게 가르친 게 아니냐고 투덜댔지만, 최상의 결과가 나왔으니 상관없잖아. 그리고 우진이는 머리가 좋아서 시험이 쉬웠던 거라는 내 말에 금세 기분을 풀었다.
우리는 화기애애하게 밖에서 뭐 하고 놀지 궁리를 했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쯤에는 빨간 리본에 알록달록한 방울을 많이 달아서 장식을 하던데 그냥 거리만 구경해도 재밌을 것 같다.
우진이가 여기는 크리스마스도 챙기냐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
얼굴을 확인하니 박해미다. 일 시켜 먹으려고 왔구나.
박해미는 늘 그랬듯이 다짜고짜 이능인 텔레포트로 나를 이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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