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내가 키우게 된 S급들 (12)
똑똑.
가이드국 국장실의 문을 여니, 가이드 국장이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의 뒤에는 「한국 지부 가이드 국장 김하나」라고 적힌 화려한 자개 명패가 형광등의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서류를 읽고 있던 김하나는 우리의 인기척에 이쪽을 쳐다봤다.
“식사는 잘들 하셨나? 일단 여기 좀 앉아 봐.”
김하나는 앞에 있는 소파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우리 맞은편에 앉은 김하나는 보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손깍지를 꼈다. 서류는 개인 신원 서류였고 내용은 당연히 우진이와 관련된 서류였다.
“그래, 보니까, 아직 심신 미약 환자네. 의료국에서 퇴원한 지도 일주일이 안 지났고.”
가이드 국장은 소파에 앉아,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오만한 눈빛으로 우진이를 훑어내렸다.
나는 그 눈빛에 우진이가 비 맞은 병아리처럼 긴장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손을 꼭 잡아 줬다. 매정한 가이드 국장 김하나는 전혀 신경 쓰는 기색도 없이 다시 우진이를 품평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뼈대는 좋고. 덩치도 쓸 만해. 회복만 잘하면 계획 중인 프로젝트에 쓸 수 있겠어. 그런데 말이야.”
그러고는 또 긴장하게 하는 말을 준비했다.
“나는 여기가 제일 문제라고 생각하거든?”
김하나는 그 말을 하면서 검지로 우진이의 이마를 눌렀다.
덕분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긴장감과 정적이 맴돌았다.
김하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 속을 뚫고 할 말을 전했다.
“몸이야 금방 회복하겠지. 하지만 이쪽이 문제야. 사람을 쓰려거든, 그 사람이 무슨 정신머리를 갖고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지 않겠어?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게 사람 일이잖아.”
가이드 국장은 우진이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댄 뒤 다시 소파에 앉아서 몸을 기대고 팔짱을 꼈다.
나는 국장이고 뭐고 콱 뒤집어 버리고 싶지만 참아야 했다.
국장 옆구리에 찬 권총에 사살 안 당하려면 말이다.
가이드 국장은 즉결 처분을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나야 뭐, 국장의 심심풀이 사격대로 많이 쓰여도 상관없지만, 우진이는 그럴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국장의 지랄을 일단 견뎌야 했다.
“게다가 일주일 과정인 기초 교육을 싹 빠지고 있어. 싹수가 노래. 시작부터 이런 식인데 나중에는 뭔들 못 할까? 안 그래? 난 이런 노란 싹들은 그냥 연구소로 보내 버리는데. 너도 그렇게 해 줄까? 사육당하는 실험 쥐처럼 살고 싶어?”
마귀할멈 같은 김하나는 어느새 일어나 우진이의 턱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겁먹어서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우진이를 보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김하나를 막았다.
“그만 좀 하세요! 우진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래!”
국장실에 함께 있던 보좌관과 경호 인력들이 나를 향해 바로 총구를 겨눴다. 나한테 실탄을 쏘든지, 전기탄을 쏘든지 간에 할 말은 해야겠다.
“그냥 나 보려고 온 거예요. 국장님 말대로 이제 막 들어온 사람인데 뭘 알겠어요. 그리고 낯설어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왜 그렇게 겁을 줘요. 여기서 그런 생각 안 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네가 뭔데, 가이드국 일에 끼어들어? 꼬맹이 너, 보호자라고 수작 부리길래 방청 좀 하게 해 줬더니 아주 기어오르네? 그리고 너, 말 한번 잘했다. 다들 생각만 하지 행동하는 경우는 많지 않거든. 그런데 오자마자 기회를 보는 저놈이 어디 보통 놈이겠어!”
“아니야! 내가 불렀어! 적응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나 있는 곳으로 오라고 불렀다고!”
가이드 국장의 낌새가 심상치 않아서 나는 아무 말이나 꺼내며 박박 우겼다.
김 국장은 일에 있어서 변수가 생기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우진이가 수업 땡땡이친 게 정말 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이대로 가면 연구소 행이다.
거기로 보내지면 연구원들 지시에 따라 남들 다 보는 곳에서 기분 나쁜 기계들을 주렁주렁 달고 가이딩만 주야장천 할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절대 탈출만 안 하면 되는 거잖아요. 협회 지시 사항 잘 따르고. 지금은 아직 사리 분별이 잘 안 돼서 그래요. 심신 미약 환자잖아. 내가 잘 돌볼게. 응?”
김하나가 입가에 주먹을 대고 잠시 고민했다. 좋은 징조다. 위기를 한 고비 넘긴 것 같아서 다행이다.
우진이 쪽으로 돌아보니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이거 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는 애를 왜 겁부터 주냐고.’
어리둥절해하는 얼굴의 우진이는 흩날리는 눈송이를 처음 보는 강아지처럼 귀여웠다. 우진이를 감상하는 나에게 김하나가 말했다.
“그럼 네가 밀착 감시한다는 걸로 알겠다.”
비서에게 서류를 건네받은 김하나는 곧바로 무언가를 마구 휘갈겨 썼다.
그러더니 나와 우진이에게 서류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사인해. 에스퍼랑 가이드 합숙 동의서니까.”
***
김하나는 나에게 밀착감시를 명령하고 우진이 생활 반경을 모두 나에게 맞춰 변경했다.
가장 먼저 결정되고 눈에 두드러진 변화는 우진이의 숙소와 관련된 것이었다.
가이드는 대개 연구 센터와 연결된 가이드 시설 건물 내에서 지낸다.
가이드가 시설 밖으로 나가는 걸 막지는 않지만, 시설 밖으로 나오는 가이드는 적은 편이다.
게다가 시설 내부는 숙소 및 식당부터 운동 시설까지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가이드들이 생활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없다고는 들었다.
협회에서 가이드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건물에 편의 시설을 다 넣어 줬지만, 정작 가이드 국장은 가이드 시설 자체에 반감이 있다.
김 국장의 말에 따르면 이건 가이드를 가두는 방침이 될 뿐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가이드 국장은 가이드가 시설 밖에서 거주하는 것에 대해선 꽤나 호의적이다.
덕분에 우진이는 곧바로 가이드 시설에서 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우진이의 짐을 빼러 가이드 시설로 이동했다.
하지만 3~4명 정도가 같은 방을 쓰는 가이드 시설의 숙소는 가이드와 시설 전담 치유계 에스퍼가 아니면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나와 차우린은 우진이를 따라서 짐을 싸러 들어갈 수가 없었다.
우린 어쩔 수 없이 그냥 시설 입구 통로 문 앞에 서서 우진이가 나오길 오매불망 기다렸다.
기다림의 끝에 문이 열리고 우진이가 나왔다.
우진이 옆에는 낯선 사람이 함께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우린이와 나는 드디어 밖으로 나온 우진이를 반겼다.
“오빠!”
그렇지만 곧바로 달려가 안기는 우린이가 나보다 빨랐다.
이건 좀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다. 내가 6살짜리 어린애를 제치고 우진이 앞에 설 수도 없잖아.
오늘따라 애교가 넘치는 우린이는 오빠의 바지춤을 붙잡고 꼭 끌어안았다.
어린애라 키가 작기 때문에 머리 높이는 우진이의 허벅지에 닿았다. 다정한 우진이는 차우린 때문에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한 손으로 붙들고 남는 손으로 우린이를 안아 주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남매의 재회를 우진이 옆에 선 남자는 헛기침으로 끊어 버렸다.
분위기를 파괴한 남자는 우진이를 보며 말했다.
“짐은 여기 이분께 드리면 될까요?”
우진이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이, 나는 남자가 건네주는 가방을 받아 들었다.
가방에는 내가 우진이에게 사 준 옷가지들이 들어 있었다.
우진이에게 들으니, 이 사람은 우진이가 지낸 숙소의 룸메이트라고 했다.
남자는 우진이가 짐을 들고 가기 힘들어 보여서 도와줬다고 한다.
또한 그 남자는 우진이의 짐은 옷 가방 하나가 전부라고도 말해 줬다. 우리는 짐을 옮겨 준 남자에게 고맙다고 말을 전하고 헤어졌다.
우진이는 그렇게 딱 이틀을 지낸 가이드 시설을 나왔다.
***
우리가 이동 중인 우진이의 새로운 숙소는 바로 내 방이다.
비록 침대는 1개뿐이지만 나는 소파에서 자면 되니까 지낼 만할 것이다.
아침부터 우진이와 우린이를 데리고 감찰부로 갔다, 에스퍼국을 갔다가 가이드국을 거치고, 가이드 시설까지 다녀온 뒤에야 내 방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드디어 방문 앞에 당도한 순간, 내 옆 방의 문이 열렸다.
옆집 이웃 김상혁이었다.
김상혁은 너무 당연하게도 우릴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이야, 다들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진 씨가 에스퍼 숙소에 놀러 오셨나 보네. 우린이 좋겠다~”
김상혁의 인사에 맞서 예의 바른 어린이인 우린이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 어…….”
아직 6살인 우린이는 옆집 이웃에게 걸맞은 호칭을 못 찾은 듯했다.
나는 친절하게 곤란한 상황에 처한 우린이에게 김상혁에게 쓰면 좋을 호칭을 알려 줬다.
“‘상혁이 아저씨’라고 부르면 돼, 우린아. ‘김상혁 아저씨~’해.”
“나만 왜 아저씨야? 나랑 쟤네 오빠랑 동갑인데. 나도 오빠라고 불러 줘.”
“너는 액면가가 달라서 안 돼.”
김상혁이 양심 없는 요구를 하면서 실랑이를 하는 동안, 우진이는 뭔가 위화감을 느낀 듯했다.
약간 심각해 보이는 우진이가 김상혁에게 질문을 했다.
“제 나이를 어떻게 아시는 거죠?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아~ 그건, 우진 씨가 처음 협회로 왔을 때 저희가 다 조회를 했거든요. 우진 씨가 원래 대한민국 국민이라 신원이 다 국가에 등록돼 있잖아요. 그거 지문 한번 싹~ 채취해서 돌려 보면 정보가 쫙 다 나와요~ 나이가 26살인 것부터 생일 3월 20일인 거까지 싹 다 나온다니까요.”
김상혁은 본인이 한 문장씩 말을 뱉을 때마다 우진이 얼굴이 점점 굳어지다 못해 하얗게 질리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나불댔다.
‘나이 외운 건 그렇다 쳐도 생일까진 왜 외워 놓은 거야.’
김상혁의 징그러움이 오늘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견디지 못한 우진이가 할 말이 있는지 뭔가 말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상혁이 놈이 재빨리 우진이 입을 막았다.
“우리 중요한 얘기는 들어가서 할까요?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내면 위험하거든요. 아닌 것 같아도 듣는 귀가 많아서~”
김상혁은 그 말을 내뱉고 우진이의 입을 막은 그대로 자신의 숙소로 끌고 갔다.
나는 우린이랑 옷 가방을 그대로 안아 들고 김상혁을 쫓아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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