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내가 키우게 된 S급들 (11)
한참을 실랑이를 벌인 끝에 장하나의 심문이 마무리됐다.
장하나가 난리 친 보람이 하나도 없게도 이번 사건은 ‘S급의 이능력 발굴 사건’으로 결론이 났다.
장하나 담당 연구팀장이 휴대용 파장 관측기로 장하나 머리털을 살펴보더니, 예전에 관찰한 상태와 다르다고 못 박아 버렸기 때문이다.
연구팀장이 장하나와의 대화로 추측한 바에 따르면 장하나는 자기들이 모르는 사이에 ‘무증상 이능력 발현’을 했고 본인도 별다른 자각 없이 이능 소모가 적은 방식으로 새로 염색한 것 같다나 뭐라나.
기존의 장하나의 이능은 대상이 실제와 다른 모습으로 인지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면 이번에 사용한 이능은 대상의 실제 형태를 조작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최종적으로 장하나는 새로 개화한 이능으로 우진이를 고양이로 바꿔 놨다는 거다.
대상의 형태를 시전자 마음대로 조작하는 이능으로.
게다가 장하나가 우진이에게 입힌 피해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장하나는 심문 중에 정말 쓸데없는 헛소리를 해 버리고 말았다.
자신은 그냥 우진이가 원해서 나갈 수 있게 도와줬기 때문에 납치한 게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중 이능력자인 장하나는 원래 가지고 있던 기본 이능인 ‘마인드 리딩’으로 우진이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걸 읽었기 때문에 겸사겸사 도와준 거라나 어쨌다나.
아무튼, 우진이한테 불리한 소리를 마구 내뱉었다.
안타깝게도 조사실에서의 심문만이 아니라 중앙 센터의 재판에서도 장하나는 당당했다.
자신은 죄가 없고 이능력 발현도 숨긴 적이 없단다.
이 모든 건 무증상으로 발현된 이능과 갑자기 협회원이 되어 혼란스러운 가이드에 대한 동정 때문이라나 뭐라나.
장하나의 헛소리에 에스퍼 국장이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해서 살짝 걱정했으나, 다행히도 협회는 장하나의 무고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의도는 협회를 탈출하기 위한 실마리를 잡기 위한 것으로 매우 불순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방식이 매우 단순하고 미수에 그쳤다는 점에서 장하나는 매우 자비로운 처벌을 받았다.
협회를 나가려는 목적으로 가이드를 납치했는데 봉사활동 500시간이라니. 다른 에스퍼들한테 소문나면 S급이라고 차별하는 거냐 뭐냐 난리가 날 것이다.
실제로 이능력이 새로 개화한 S급이라고 특별히 우대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막상 가벼운 처벌을 받은 당사자는 불만이 가득해 보이지만 말이다.
***
에가협 한국 지부 협회원은 이제 5천 명이 조금 넘어가는 형국이라, 절차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지금처럼 감찰부에서 사건을 해결하면 곧바로 국장이 재판을 열어 형을 결정한다.
그래서 장하나의 심문과 재판은 4시간 만에 모두 끝났다.
가해자 에스퍼의 상황은 좋게 좋게 마무리됐지만, 피해자 가이드의 상황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우진이는 장하나의 이능, ‘마인드 리딩’으로 협회를 탈출할 계획이었던 게 들통났기 때문에 협회에서 가만히 두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권을 쥔 가이드 국장은 부재중이라 우진이에 대한 결정은 밀린 상태였다.
그래서 우진이도 오전 시간은 나와 같이 장하나를 쫓아다니며 방청을 했다. 중간중간에 우린이가 보채서 밖에 나갔다 들어오긴 했지만.
그렇게 장하나가 봉사 활동 500시간 받는 과정을 구경했더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재판이 끝나면서 감찰부, 연구팀은 알아서 근무지로 돌아갔고 장하나도 에스퍼 국장에게 가 버렸기 때문에 중앙 센터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나와 우진이, 꼬맹이 차우린뿐이었다.
가이드 국장이 언제 올지도 모르고 중앙 센터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으니 우리도 결국 밖으로 나왔다.
가이드 국장은 에스퍼 국장보다 훨씬 깐깐하고 빡빡하게 구는 사람이다.
‘그 인간의 성격상, 복귀하면 바로 중앙 센터의 가이드국으로 우진이를 호출해서 처벌하겠지.’
처음부터 삐딱하게 구는 가이드에게 온화한 처벌을 내리진 않을 것이다.
우진이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을 살짝 귀뜀해 준 탓인지 우진이의 표정도 어두웠다.
그 모습이 좀 안타깝긴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로 휩쓸리는 것보단 나을 테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우진이는 풀 죽은 모습도 눈송이처럼 하얀 히아신스처럼 청초하고 아름다웠다.
힘없이 걸어가는 옆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우진이가 휘청했다.
범인은 우진이의 종아리에 매달린 차우린이었다.
요 꼬맹이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하나도 모르고 그저 즐거워 보였다.
‘하기는 하루 종일 오빠 품에 매달려서 응석 부리고 있으니 기분이 좋겠지.’
혼자서 즐거운 어린이는 배가 고프시다고 한다.
점심때가 지나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침도 거르고 자판기에서 뽑은 과자나 좀 먹였으니까.
나는 차우린 때문에 고꾸라질 뻔해서 주저앉은 우진이를 부축하며 점심을 어디서 때울지 고민했다.
‘협회 밖으로 나가서 먹을까? 근처에 차가 있기는 한데…….’
그러다 별안간 큰소리가 났다.
꼬르륵—
‘와, 나 이렇게 큰 꼬르륵 소리 처음 듣는 것 같아.’
배고프다고 말한 차우린이 낸 소리인가 했는데 우진이 귀가 새빨갰다.
‘그러고 보니 우진이는 어제부터 거의 굶었지.’
그냥 가까운 중앙 센터 식당이나 가야겠다.
***
나는 우진이와 우린이를 데리고 다시 중앙 센터로 돌아갔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굶길 수는 없잖아. 가장 가까운 중앙 센터 식당으로 가서 뭐라도 좀 먹여야지.
점심시간은 좀 지났기 때문에 식당은 한산했다. 그래서인지 음식도 주문하고 곧바로 나왔다.
나는 음식들을 들고 우진이가 앉아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우진이는 꼬맹이의 손을 닦아 주고 머리를 묶어 주고 있었다. 오늘은 사무적인 일밖에 없었는데 혼자서 뭘 한 건지 꼬맹이 머리가 산발이었기 때문이다.
빗이 없다 보니 우진이가 대충 손으로 빗어서 한 가닥으로 묶어 줬는데, 그 모양이 참…… 보기 그랬다.
‘애 머리숱이 얼마나 많다고 다 삐져나오고 튀어나오고……’
분명 깨끗이 씻기고 잘 돌봐주고 있는데도 폐허 속에 방치된 애 같았다. 그래도 풀어 헤친 것보단 나은가 싶었지만 묶어 준 끈이 힘없이 점점 내려오더니 다시 쑥대머리로 원상 복구됐다.
보다 못한 나는 우진이 옆으로 이동해서 아침마다 해 주던 것처럼 우린이 머리를 빠르게 빗고 화영이에게 배운 방법대로 하나로 땋아 내렸다. 만화 주인공 머리라면서 좋아하는 모양이라 우린이는 보통 그 머리를 해 달라고 조른다.
나는 땋은 머리의 끝을 고무줄로 꽉 동여매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내 앞에 마주 앉은 우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에게 물었다.
“그동안 우린이 머리를, 하나 씨가 묶어 주셨어요?”
“음, 평소에는 아무래도 그렇죠. 제가 데리고 다니잖아요. 오늘은 좀 경황이 없어서 못 해 줬지만요. 그래도 장하나 걔가 아침에 우린이 머리 정도는 묶어 줘서 다행이에요.”
“아……”
“걔가 좀 성격이 까칠하고 독특하긴 한데 나쁜 애는 아니라서~ 아, 물론 이번 일은 걔가 백 번 천 번 잘못했죠! 쓸데없는 소리까지 해서 아주 질이 나빠!”
생각 없이 제자의 허물을 감싸주려다 우진이한테 헛소리를 할 뻔했다. 위험했어.
나는 적당히 위기를 극복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사수했다.
그렇게 평화 속에서 식사를 하던 우리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내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내려치더니 거칠게 내 머리통을 잡아 흔들었다.
“꼬맹아! 남들 밥 먹을 때 뭐 하고 지금 먹어?”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왜 때리고 그래요.”
“끼니는 제때 챙겨 먹어. 아니, 이게 뭐야?! 웬 아기가 있네? 아유~ 이뻐라~”
갑자기 들이닥친 중년 여인은 처음 보는 어린이를 보더니 매우 반가워했다. 그러고는 잘못된 추억을 꺼내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 너도 딱, 저만했는데. 옛날 생각나네~”
“무슨 소리야. 내가 훨씬 컸지. 나는 그때 열 살이 넘었는데.”
“너야말로 무슨 소리야. 네가 얼마나 조그마했는데. 아가도 그 나이쯤 됐겠구먼. 그렇지~? 우리 아가, 몇 살이니?”
관심의 화살이 우린이에게 꽂혔다.
불청객은 우린이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우린이는 낯선 사람한테 당황했는지 자기 오빠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우진이는 손가락 여섯 개를 펼치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여섯 살이야. 여섯 살. ‘여섯 살이에요.’ 해.”
“여섯 살이에요.”
우린이는 우진이가 알려 준 대로 따라 했지만, 손가락은 여덟 개를 펼쳤다. 자기 나이도 모르고 숫자도 모르는 천진한 모습에 불청객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유, 귀여워~. 정말 아기네, 아기야. 여기 아기 아빠가 신규 가이드 맞지?”
우와, 나올 수 있긴 한데 나와서는 안 될 것 같은 단어가 나왔다.
나는 곧바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노력했다.
“에이~ 아기 아빠라뇨. 무슨 저 나이에 그래요~”
“왜?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럴 수도 있지. 옛날에도 좀 빠른 편이라 그렇지, 가능은 하지. 난 그런 거 편견 없으니까 털어놔도 돼요.”
불행히도 노력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우진이가 곧바로 반박했다.
“자식 아니고 동생이 맞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불청객은 그 침묵 속에서 그저 웃으며 우진이를 쭉 훑어봤다.
조각 같은 우진이의 외모가 맘에 드는 건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사과를 입에 담았다.
“그래요? 이거 실례했네. 미안합니다. 난 우리 꼬맹이가 애 딸린 남자 데리고 와도 괜찮다는 얘기였지~”
마귀할멈의 빈정거림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저 할망구가 헛소리를 더 하기 전에 재빨리 끼어들었다.
“아하하~! 우진 씨 많이 놀랐죠? 이분은 제 은사님이세요. 제가 아는 모든 것은 이분이 가르쳐 주셨죠.”
“훤칠하니 아주 잘생겼구먼. 우리 꼬맹이가 안목이 꽤 좋은걸?”
아 진짜.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참고 있는 중에 할망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안나리도 쓸 만한 재목이라고는 했지만…… 이건 뭐 너무 말라서 못 쓰겠는데? 구출된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나?”
이 할망구는 우진이의 어깨를 한 손으로 주무르며 품평하기 시작했다.
“아 진짜! 처음 만난 사람 더듬으면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더듬긴 뭘 더듬어! 어깨 한번 잡았구먼!”
“남의 몸을 함부로 잡으면 안 된다고요!”
“어휴, 알았다 알았어. 손 안 댄다. 이따 밥 다 먹고 와. 잘생긴 가이드랑 아가도 밥 맛있게 드시고 이따 봅시다.”
불청객은 가면서까지 우진이의 어깨를 툭툭 치고 퇴장했다. 나는 마침내 되찾은 식사 시간의 평화에 안도하며 우진이에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우진 씨. 많이 당황했죠? 좀 괴팍한 면모가 있는 분이셔서요…… 하하…….”
“그런데 저분은…… 왜 이따가 만나자고 하시는 거죠?”
“음, 그게…… 저분이 가이드 국장이거든요.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
“……네? 그, 그 얘길 왜 이제야 해요?”
“우진 씨 밥 먹다가 체할까 봐…….”
“…….”
“그, 그래도~ 우진 씨를 괜찮게 보시는 것 같아요. 아하하~”
“…….”
웃으면서 대충 넘겨보려 했지만, 지옥 같은 침묵 시간은 기어이 찾아왔다.
‘아니, 나는 그냥 편하게 밥 먹으라고 말 안 한 건데. 이왕 불편할 거 뒤로 미루면 좋잖아.’
그래도 이런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어린이는 즐겁게 식사를 했다.
‘그래, 한 사람이라도 즐거우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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