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내가 키우게 된 S급들 (10)
나는 곧장 옆방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 세차게 두드린 문이 열리고 김상혁이 얼굴을 내밀었다.
당황한 표정의 김상혁이 내게 말을 걸었다.
“……이 시간에 웬일이냐?”
나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말했다.
“옷 좀 줘 봐.”
“넌 나한테 옷을 맡겨 놨냐……?”
김상혁은 어이없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바로 후드 티를 가져왔다.
나도 별로 빌리고 싶지 않지만 내 옷은 기장이 안 맞는다고.
그래도 김상혁은 우진이랑 키가 비슷한 편이니까 기장은 맞을 것 같다. 나는 김상혁에게 얻어 낸 옷들을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우진이는 내가 건네준 옷을 받고서야 누에고치처럼 몸을 말고 있던 이불을 걷어 냈다.
저 회색 후드 티랑 트레이닝복 바지는 김상혁이 입은 걸 많이 봤지만….
‘분명 저런 옷이 아니었는데?’
김상혁이 입었던 그 옷은 분명 근육 뭉치들이 꽉 들어찬, 터질 것 같은 감자 포대 자루 같았다.
그러나 우진이가 입은 옷은 달랐다. 우진이가 걸친 옷은 딱 맞는 어깨부터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선이 내려와 멋스러웠다. 적당하게 여유 있는 옷은 그동안 김상혁이 입었던 모습과 전혀 딴판이었다.
김상혁이 영원히 따라 할 수 없는 옷 태를 보여 준 우진이는 말없이 침대 위에 쪼그려 앉았다.
그래서 나도 그 옆에 같이 앉았다.
이제 오주현이랑 약속한 걸 지킬 때가 온 것 같다.
나는 우진이의 등을 살살 쓰다듬으며 적당히 말을 골랐다.
‘뭐부터 시작하지? 역시 위로가 먼저겠지?’
하지만 내가 고민을 끝내고 입을 열려는 순간, 우린이가 우진이 품으로 덥석 안겼다.
“…….”
내가 당황해서 빤히 쳐다보자 이 어린이는 보호자 품에 안겨서 더욱 몸을 깊게 파묻었다. 가능하면 어린이가 어리광을 실컷 부리도록 놔두고 싶었지만 나는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래서 떼어 내려 하는 차에 우린이가 입을 열었다.
“오빠, 이제 고양이 안 하는 거지? 안 나가는 거지?”
우린이의 질문이 무슨 연유로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아내야 할 정보가 곧 나올 말인 건 알겠다.
나는 손만 슬쩍 움직여서 스마트워치의 녹음 기능을 켰다. 그리고 곧 우진이가 말했다.
“……어, 오빠 이제 여기 있을 거야. 안 나갈게.”
둘은 그 말만 주고받고 서로 껴안은 채 한참을 훌쩍였다. 그리고 중요한 대화가 이어질 거란 내 예상은 빗나갔다.
교육받는 가이드가 본인 의지로 나가려고 했다는 중요한 정보가 막 드러난 참인데.
그렇다고 지금 당장 말을 걸어 분위기를 깨는 건 자칫하면 일을 망칠 위험이 있었기에 그냥 우진이를 토닥여 줬다.
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으니까.
이윽고 우는소리가 멎자, 나는 우진이 등을 쓰다듬던 걸 잠깐 멈추고 음성 녹음을 실시간 녹음 공유하기로 바꿨다. 직접 나서서 일할 시간이었다.
“그, 나간다는 게 어딜 가려 하신 건가요?”
내 질문에 우진이의 등이 뻣뻣해졌다.
긴장한 모습이 가여웠지만 나도 최대한 미뤄 준 일이기 때문에 이젠 더 이상 봐줄 수 없었다.
“단순히 가이드 시설 밖으로 나가려고 하신 건 아닌 것 같고……. 가이드가 시설 밖으로 나가는 건 협회에서도 막지 않잖아요. 물론 시설 밖에서 묵는 건 협회의 허락이 필요하지만요.”
내 말에 우진이는 희게 질리며 굳어 버렸다.
우진이의 긴장을 조금이라도 풀어 주려고 열심히 등을 문질러 주고 있었지만, 효과는 별로 없는 듯했다.
벌벌 떨다가 바짝 굳은 우진이를 보고 있으니 그냥 심문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어졌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음성뿐이라도 전부 오주혁과 공유되고 있다.
나는 차라리 빨리 끝내자는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우진 씨, 혹시 시설이 답답해서 밖에서 지내고 싶으신가요?”
우진이가 직접 협회 밖으로 나가려고 한 건지 확인해야 하는데 그것까진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
왜 그러냐면 에가협은 세상을 구원하는 자비로운 단체인 척하지만, 협회에 협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비가 없다.
지금 우진이가 협회에 비협조적인 게 감찰부에 밝혀지면 좋을 게 하나도 없는 말이다.
이제 사흘째인 교육생이 탈출을 꿈꾸다니 에가협이 가만둘 리가 없다. 그것도 교육은 첫날만 겨우 받았지, 이틀은 요지경이잖아.
당장 내 머릿속에도 이 싹수 노란 교육생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고 협회가 내놓을 교정 방법만 수십 가지가 떠오르는걸.
물론 우진이는 에스퍼가 아니고 가이드니까 냉장고 수납은 안 당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우진이를 위해 대화의 흐름을 살짝 꺾는 게 좋을 듯했다.
“그래도 고양이로 지내고 싶어 하진 않으셨을 텐데, 어쩌다 그렇게 되셨어요? 우리 반 학생이 그랬나? 그렇지만 그 애들은 그런 종류의 이능이 아닌데……. 혹시 제가 자리 비운 사이에 누가 다녀갔어요?”
추궁하는 흐름에서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흐름으로 바꿨더니 우진이도 긴장이 좀 풀린 듯했다.
앞으론 우린이를 껴안고 뒤로는 내 도닥거림을 받던 우진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
감찰부 오주혁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러겠지. S급 에스퍼의 이능력 발굴로 사건이 터졌는데 별 피해 없이 수습했으니 감찰부는 칭찬받을 일만 남은 것이다.
무려 S급 에스퍼의 이능력 발굴이니 덩달아 연구부도 행복하고 말이다.
‘이능력 발굴’이란 말 그대로 ‘이능력의 발굴’, 에스퍼에게 새로운 이능력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에스퍼에게 새로운 이능력이 발견되는 경우 붙이는 말이며, 일반인이 에스퍼로 각성하는 ‘이능력 개화’라고 부른다. 보통 구분하기 귀찮아서 발현으로 퉁쳐 부르기도 한다.
보통의 경우에 이능력이 새로 발견될 때는 꼭 사고가 터진다.
갓 발현된 이능력은 제어를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려 S급의 이능력이 발굴됐는데도 불구하고 인명 피해는커녕 재물 피해도 없으니 감찰부가 얼마나 신났겠어.
아무튼, 에가협 한국 지부의 8명의 S급 에스퍼 중에서 새로 발굴이 생겼으니 엄청난 일이긴 하다.
이능력 발굴이 흔한 일도 아니고 말이다. 연구부도 축제 분위기다. 한국 지부의 역사에 이런 일은 최초가 아니냐는 둥 아주 신이 났다.
물론 S급의 이능력 발굴에 모두가 기쁜 건 아니다. 정작 이능력을 새로 발굴한 S급 에스퍼 당사자는 곤란해졌으니까.
이능을 다시 측정하는 게 얼마나 귀찮고 피곤하고 괴로운 과정인지는 모든 에스퍼가 알 것이다.
그리고 이 S급 에스퍼는 재측정 과정에 앞서 더 귀찮은 과정을 앞두고 있었다.
에스퍼가, 그것도 S급이 협회를 탈출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관한 심문은 나의 ‘고위험군 에스퍼 특별 교육’ 시간에 이루어졌다.
왜냐면, 그 S급 에스퍼가 우리 반 애니까.
***
사방이 꽉 막히고 중앙에 책상과 의자만 덜렁 있는 조사실 안에서 장하나는 똥 씹은 표정으로 얌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 장하나의 앞에는 오주혁과 장하나의 담당 연구팀장이 앉아 있다.
반항적인 끼가 가득한 청소년과 무뚝뚝한 어른 두 명의 시선이 한차례 오가고 폐쇄된 조사실에는 잠깐의 침묵이 맴돌았다.
그 속에서 오주혁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장하나 에스퍼, 11월 26일 오전 9시 20분경에 가이드에게 무단으로 이능을 사용한 게 사실인가?”
낮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조사실에 울렸다.
중저음의 목소리는 스피커를 통해서 통유리 창 너머에 있는 우리의 고막까지 똑똑히 전달되었다.
조사실의 벽 하나를 꽉채운 유리창 안에서는 두 명의 어른이 홀로 있는 청소년을 열심히 압박하고 있었다.
나는 사건의 관련자이자, 보호자이자, S급의 에스퍼의 관찰자이기 때문에 유리창 밖에서 진부하게 벌어지는 에스퍼 심문 과정을 관람하게 되었다.
그렇게 서서 약간 지루하게 조사실 안을 보던 나는 슬쩍 시선을 옆으로 내려, 내 옆에 앉아 있는 우진이를 보았다.
우진이는 의자에 앉아 심문이 벌어지고 있는 창 너머를 내다보며 차우린을 끌어안고 있었다.
차우린은 아침잠이 부족했는지 오빠 품에 안겨서 곯아떨어진 상태였다.
우진이가 키가 좀 큰 편이다 보니 품이 넉넉해서 아주 편안해 보였다. 동생을 안고 있는 우진이의 모습은 예술가가 빚어 놓은 피에타상처럼 자애롭고 우아했으며 조사실을 바라보는 눈은 형형했다.
그런데 장하나가 퉁명스럽게 말대답하는 모습을 노려보는 우진이의 눈빛에는 의외로 두려움이 없었다.
물론 경계는 한다만 뭐랄까, 날 보고 기절했던 것만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고 해야 되나. 장하나가 아직 애라서 만만해 보이는 건지 아니면 이젠 에스퍼가 별로 안 무서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우진이를 살펴보는 사이에도 심문은 계속되었다.
싫어하는 어른들에게 압박을 받는 게 짜증 난 건지 결국 큰소리가 유리창 너머에서 울려 댔다.
“아, 그러니까! 새로 발현한 거 아니라니까요! 내 머리 봐! 그냥 이거 염색하듯이 한 거라고요!”
“장하나, 네 이능 중에 인지에 왜곡을 줘서 현실과 다른 상을 만드는 게 있다는 건 우리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이번엔 형체를 완전히 바꿨잖아! 그동안 이런 현상은 관찰한 적이 없어! 새로 발굴한 이능이 맞다니까?”
“나 진짜,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다시 봐봐! 이거! 이거 원래 내가 바꾼 거 그대로라니까?! 이 얘기 언제까지 할거냐고요~! 말해도 듣지도 않고 완전 답정너면서!”
제대로 안 듣고 있던 사이에 화제가 이능 발굴로 넘어왔나 보다. 한참 전부터 장하나가 이능력을 새로 발현했다고 몰아붙인 듯했다.
결국, 계속되는 일방적인 공방에 열이 받은 장하나가 눈 크게 뜨고 다시 관찰하라면서 머리를 마구잡이로 흔들어 댔다. 기다란 무지갯빛 생머리가 똑같이 마구잡이로 흔들리며 앞의 두 사람을 때려 댔다.
하지만 장하나의 기행으로 머리채에 얼굴을 맞은 두 사람은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오히려 심문의 방청객인 우진이만 쟤들의 행동에 놀랐다.
나야 이런 상황을 하도 봐서 그러려니 하고 있었지만, 외부에서 온 우진이의 반응을 보니 새삼 쟤들이 참 남부끄러웠다.
빨리 끝내 줬으면 좋겠지만 저 사람들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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