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내가 키우게 된 S급들 (9)
나는 곧바로 스마트워치를 켜서 고양이 번역기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오, 진짜 있네?”
나는 별 희한한 게 다 있다는 생각을 하며 바로 번역기를 켜 보았다.
-기분이 좋지 않아요.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아요.
-저에게 집중해 주세요.
-기분이 좋지 않아요.
-몸이 좋지 않아요.
-저에게 집중해 주세요.
-저에 대해 생각해 주세요.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아요.
번역기를 켜자마자, 진짜로 이놈이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문장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번역기의 문장이 진실인지는 오리무중이지만, 녀석을 보니 기분이 안 좋아 보이긴 한다.
“근데 이건 번역기 없어도 알겠는데?”
울음소리를 번역한 결과들이 쭉 올라오는 걸 보고 있으니 어느새 음식이 다 준비되었다는 알람이 화면에 떴다.
아직도 고양이를 들고 쭈그려 앉아 있는 우린이에게 금방 올 테니 잠시 기다려 달라 하고 밥을 가지러 갔다.
도시락통에 담긴 식사는 꽤나 정갈하게 담겨 나왔다.
우린 우린이가 앉아 있던 벤치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우린이도 고양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막 한술 뜨려고 하는데 우린이가 말했다.
“고양이 밥이 없어요.”
듣고 보니 그러네. 그렇지만 식당에서는 사람 음식만 팔아서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이놈 때문에 식당에서 쫓겨난 건데 밥까지 챙겨 줘야 한다니 살짝 귀찮기도 했다.
나는 이미 음식이 나왔으니 밥을 다 먹고 고양이 밥을 주자고 우린이를 달랬다.
하지만 우린이는 고양이에게 지금 꼭 밥을 줘야 한다며 도시락 뚜껑에 음식을 덜었다.
내용물을 보니 제육볶음에 들어 있던 당근이었다.
물론 고양이는 우린이가 덜어 준 음식을 건들지도 않았다.
식사 후에 우리는 고양이 먹이를 받으러 생태 보존소에 갔다.
나는 간 김에 겸사겸사 고양이도 맡겨 버리려고 했지만 우린이가 강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결국, 나는 고양이 사료만 한 포대 받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보니 점점 룸메이트가 늘어났다.
***
새로운 룸메이트는 건방지게도 편식이 심했다. 기껏 사료를 받아서 한 그릇 가득 주어도 입도 대지 않은 채 물만 몇 모금 마실 뿐이어서 우린이의 걱정을 샀다.
결국, 건방진 털 뭉치는 어제 종일 굶었다.
‘그래도 곧 한계일 테니 오늘은 먹겠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조깅을 나섰다.
아직은 해도 뜨지 않아 매우 어두웠고 우린이는 아직 고양이랑 함께 내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아마 오늘도 내가 조깅 다녀와서 샤워를 다 하고 깨우면 일어날 것이다.
‘오늘도 묵묵히 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지나겠지.’
그런데 조깅을 하고 돌아와서 샤워까지 마쳤더니 누가 내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직 8시도 안 됐는데 누구지?’
다들 이 시간이면 업무 시작을 준비하느라 바쁠 시간이다.
나는 투덜거림을 삼키고 어깨에 걸친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며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앞에는 감찰부 오주현이 서 있었다. 그것도 감찰부 유니폼을 쫙 빼입은 채로.
“??”
슬쩍 그 뒤를 보니, 똑같이 감찰부 옷을 입은 애들이 두 명 더 있었다.
오주현은 내 방에 들어서면서 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한술 더 뜬 소릴 꺼냈다.
“강하나 에스퍼, 가이드 납치 및 감금 혐의로 거주실 수색하겠습니다.”
‘아니, 이게 뭔 개소리지?’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쟤들이 내 방에 들어오는 꼴을 멍청히 보기만 했다. 사람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면 몸이 굳는 법이다.
방 안으로 성큼 들어온 오주혁은 수색용 탐지기를 꺼내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냅다 고양이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감찰부 전용 막대기를 꺼내 들며 다짜고짜 나를 욕했다.
“수법 한번 진부하면서 변태 같은 취향이군. 협회에 있던 시간이 얼만데 이런 게 안 들킬 거라고 생각했나?”
중얼대며 욕을 마친 오주혁은 막대기로 가만히 침대에 앉아 있는 고양이를 꾹 찔렀다.
감찰부가 들고 다니는 저 막대의 끝에는 에가협에서 만든 연구의 결정체가 달려 있다. 저 조그만 하얀 결정은 전사체(全赦體)라는 물건으로 오래전부터 협회에서 단독으로 관리된 특별한 물질이다.
‘전사체’라는 게 어떤 것이냐 하면 이능으로 인해 일어나는 비물리적 현상을 무시하는 물질이다.
그러니까 이 물질을 갖다 대면 에스퍼가 이능으로 만들어 낸 현상이 물로 씻어 내는 것처럼 깔끔하게 사라진다.
지금 침대 위의 고양이가 방금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우진이가 된 것처럼 말이다.
‘……대체 이게 뭔 상황인 거지? 왜 우진이가 실오라기 하나 없는 몸으로 내 침대에 앉아 있는 거냐고!’
물론 우진이는 그 상황에서도 예술가가 조각한 대리석 석상처럼 아름답고 섬세했다.
나는 곧바로 우진이에게 담요를 덮어 주고 오주혁을 현관 앞으로 끌고 갔다.
우진이는 에스퍼를 무서워하는데 저 딱딱한 녀석이 앞에 떡하니 서 있으면 얼마나 두려워하겠어?
그리고 오주혁과 할 얘기도 있고 말이다. 오주혁도 나랑 얘기하고 싶을 거고.
내 방이 아주 넓진 않아서 나는 적당히 욕실 앞까지만 가고 오주혁을 놔줬다.
오주혁은 잡혔던 손목을 문지르며 나를 노려봤다. 나는 오주혁의 눈빛에도 개의치 않고 궁금한 걸 물어봤다.
“우진이가 납치 감금당했다는 얘기 자세하게 좀 해 봐. 쟤가 왜 저런 꼴로 내 방에 오게 된 건지 나도 모르겠으니까. 우진이가 겁먹을 수 있으니까 너무 큰 소리로는 말하지 말고.”
“……그걸 용의자인 너한테 왜 말해야 하지? 피해자랑 온종일 붙어 있어 놓고 아는 게 아무것도 없군.”
“그거야 내가 납치 감금한 게 아니니까 그렇지. 난 그냥 우린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었을 뿐이란 말이야!”
나는 열심히 항변했지만 싸가지 없는 오주혁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 새끼가 또 이능으로 남의 기억을 들여다보는구나.’
“…….”
내 기억을 함부로 읽어 본 오주혁은 내 발언과 행적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는지, 날 용의선상에서 제외하겠다고 선언했다.
너무 당연한 일이라 별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오주혁의 말은 날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차우진 가이드는 어제 오전 9시 8분경 교육 시간에 자리를 이탈했다. 그 후로 복귀하지 않았지. 숙소마저 복귀하지 않아, 오늘 0시부터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다. 그래서 우린 자리를 이탈한 이후 시간대부터 차우진 가이드의 행방을 추적했지. 계속 너와 같이 있더군.”
‘아, 역시 그랬구나. 협회에서 교육도 안 받은 가이드에게 견학 허가를 내줬을 리가 없지.’
우진이가 교육 시간에 멋대로 탈출하는 전문 땡땡이꾼이라는 건 그동안 짐작했기 때문에 놀랍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얘길 협회 사람에게 직접 들으니 기분이 새로웠다. 우진이는 생긴 거만 보면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완전 반전 매력이 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우리 반전 매력의 주인공은 침대 위에서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런 우진이의 양옆에는 오주혁을 따라온 감찰부 직원들이 뭐라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곧장 우진이 앞으로 다가가 시끄러운 놈들을 양팔로 밀어냈다. 갑작스레 양쪽으로 밀려난 놈들이 휘청거렸으나 내 알 바 아니었다.
‘우진이 기분 안 좋은데 양옆에서 수사 협조해 달라고 염불만 외는 놈들 따위 알 게 뭐야.’
이불 밑의 우진이는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이런 썩을 것들이 우진이를 겁에 질리게 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다들 한 대씩 때려서 쫓아내고 싶지만 나는 이성을 가진 인간이니까 일단 때리고 싶은 충동은 참아 냈다.
그렇지만 내 앞에서 우진이를 괴롭히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나는 우진이 앞에서 얼쩡대던 두 녀석을 붙들고 오주혁 옆에다 세워 놨다.
그리고 아직도 손목을 문지르며 째려보는 오주혁에게 딜을 건넸다.
오주혁이 내 기억을 읽어 내면서 내 혐의가 벗겨졌으니 가능성이 있었다.
***
불청객을 쫓아냈더니 방이 꽤나 조용해졌다. 조용해지니 오히려 우진이의 훌쩍이는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잠깐만. 훌쩍이는 소리? 그렇다는 건…….’
나는 당황하여 곧바로 담요를 들춰 보았다. 몸을 웅크리고 무릎과 포개어진 양팔 위에 머리를 숙이고 있던 우진이가 고개를 들었다. 역시 눈가에 물기가 어려 있다.
난 아름답게 빛나는 눈동자가 마치 잡지 사진 속에서 본 다이아몬드 사진 같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우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 음. 무슨 얘기를 하려 했더라?’
아름다운 걸 보면 기억력이 감퇴한다 그랬나. 갑자기 내가 뭘 하려던 건지 잊어버렸다. 그때 옆에서 우릴 지켜보던 우린이가 말했다.
“오빠, 엉덩이 보여!”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영문을 몰라 멍한 사이에 우진이가 발치까지 흘러내린 담요를 급하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나는 그때야 다시 깨달았다. 우진이가 나체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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