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27화 (27/81)

27. 내가 키우게 된 S급들 (8)

“일단은 빠듯한 일정 안에 우리가 성과를 내야 하니까 다음 주부터는 임무를 나가려고 해. 어렵지는 않을 거야. 훌리건 임무니까. 임무 전까지 평소에는 기초 체력을 기르고 그 후에는 실전 감각을 익혀 보도록 하자.”

“근데 선배 저 궁금한 거 있어요.”

“어, 말해 봐. 뭔데?”

“그냥 성과 안 내면 안 돼요? 어차피 선배만 이득 보는 거.”

항상 반항의 기미를 보이는 장하나가 질문을 하길래 내심 기특해했는데 오늘도 장하나는 장하나답게 굴었다.

“이게 왜 나만 이득 보는 거야? 지금 하는 수업이 정식 전투 훈련으로 유지돼서 정기적으로 임무 나가면 너희도 수입 생겨. 모든 협회원은 임무 출동하면 임무 수당금을 받는다고. S급도 다 그래.”

“와! 진짜?!”

“쩐다!”

그동안 수입 없이 연구 센터에만 갇혀 살던 청소년들이 제각기 환호성을 질렀다. 그동안 실험 동물 신세 비슷하게 지내서 그런지 돈을 못 받을 줄 알았나 보다.

‘그 마음을 알기는 하지만 삐딱하게 나오면 내가 힘들어.’

그렇지만 이제 본인에게도 이득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애들도 내 수업에 열의를 보일 것 같다.

애들이랑 다음 주부터 임무에 나가기로 합의를 보고, 임무를 최대한 골라서 신청하기 위해 바로 중앙 센터에 갔다 오기로 했다.

그러고는 애들에게 내가 다녀올 동안 근력 훈련을 하고 있도록 명령하고 잠시 다녀올 채비를 했다.

그러다 갑자기 우진이가 뭐 하는지 궁금해져서 고개를 돌렸다.

우진이는 무릎에 우린이를 앉히고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둘이서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귓속말을 나누는 모습이 귀여웠다.

우진이가 옆에 있으니 우린이도 스마트워치를 거들떠도 안 본다.

오랜만에 내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는 액정에 기스 하나 없이 깨끗했다. 까만 액정 화면 속에 홀로 비친 내 얼굴은 잠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켜진 화면 불빛 속에 사라졌다.

***

중앙 센터는 예상했던 대로 붐비지 않았다.

하지만 남은 임무가 많지 않아서 적당한 걸 골라내느라 애를 먹었다.

나는 다음 주에 나갈 수 있는 적당한 임무를 하나 찾아내 등록하고 곧바로 172호실로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172호실 안에는 우진이가 없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또 땡땡이를 치는 S급 3명과 그 앞에 선 우린이, 그리고 어린애 발치에 있는 검은 고양이뿐이었다.

중앙 센터에 다녀오는 게 오래 걸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우진이가 벌써 172호실을 나가 버렸다.

‘우진이도 자기 일정이 있으니 아쉬워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나는 스스로를 달래며 내 할 일이나 하기로 했다.

일단은 내가 없으면 바로 땡땡이를 치는 저 애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내야겠다.

나는 한량처럼 농땡이 칠 궁리만 하는 애들을 나무라며 앞으로 다가갔다.

내가 그나마 애들을 부드럽게 대하고 싫은 소릴 잘 안 한다지만 이렇게 비협조적이면 마냥 좋게 대할 수가 없다.

게다가 훈련은 협회를 위한 것뿐만 아니라 에스퍼 본인을 위한 것이기도 한데, 센터 안에서만 사는 애들이라 중요한 걸 모른다. 요즘 같은 세상에 센터 밖에 나가면 제 한 몸 지킬 줄은 알아야 하잖아.

뒤이어 에가협 밖의 사람들을 이야기하려 할 때쯤, 웬 동물 소리가 내 말을 끊었다.

냐옹-

어디서 나는 소린가 했더니 우린이 발치에 있는 검은 고양이였다.

이 겁 없는 녀석은 계속 울음소리를 내면서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기어이 내 다리를 벅벅 긁었다.

훈련실에 짐승이 어떻게 들어온 건지 모르겠지만, 살던 곳에 돌려보내는 게 순리에 맞을 것이다.

나는 짐승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창가로 다가갔다.

아마도 창가로 들어왔을 테니 다시 내보내면 알아서 잘 살겠지.

비록 나무 한 그루 옆에 있지 않은 3층 창가지만 말이다.

‘요즘 고양이는 벽을 타나 봐.’

고양이를 본 지가 하도 오래돼서 잘 모르겠다.

무단 침입한 고양이를 창문 밖으로 놓아주려는 순간, 애들이 괴성을 지르며 나를 붙잡았다.

“선배!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고양이 밖으로 내보내려고.”

“……3층 창문 밖으로 떨어뜨려서?”

“사람이 아니면 죽어서 나가야 하는 건가.”

아니, 이 녀석들이 왜 나를 정신 나간 사이코패스처럼 보는 거지? 들어온 길로 내보내는 것뿐이잖아?

거기다 내 손에 붙들린 짐승도 아까부터 발버둥을 치면서 울어 대는 바람에 귀가 다 아팠다.

결국, 나는 소음과 애들의 만류에 못 이겨 하던 걸 멈췄다.

그래도 이 검은 털 짐승은 울음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귀가 너무 따가워서 슬쩍 흘겨보니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짐승의 윤곽이 드러났다.

부드러운 검은 털 아래에, 눈이 쌓인 겨울 호수 같은 회색빛 눈동자는 광채가 돌았다.

반짝거리는 게 보석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보석 같은 눈에서 물이 뚝 하고 흘러내렸다.

‘고양이도 우는구나.’

처음 알았다.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었더니 애들이 동물을 학대한다면서 시끄럽게 굴었다.

“에휴, 알았어. 안 내보내면 되잖아.”

나는 고양이를 도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된 녀석은 뛰는 건지 걷는 건지 모를 애매한 걸음걸이로 뒤뚱거리며 우린이 뒤로 이동하고선 바로 주저앉았다.

***

오늘치의 ‘고위험군 이능력자 특별 교육’이 모두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172호실을 비워 줘야 하는 시간이다.

물론 털 뭉치 친구도 우리와 함께 여길 나가 줘야 한다.

우리가 나갈 채비를 하는 동안에도 녀석은 아까 주저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웅크린 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린이가 옆에서 계속 쓰다듬어도 미동도 하지 않는 걸 보니, 들고 나가야 할 것 같다.

웅크린 녀석의 날갯죽지를 찾아내서 들어 올리니, 털 뭉치 같은 검은 짐승이 연체동물처럼 쭉 늘어났다. 이렇게 보니 꽤 커다랗다.

‘우린이가 들고 가기에는 힘들 것 같군.’

나는 아까처럼 고양이의 뒷덜미를 잡아 올리려다가 우린이가 만류하는 바람에 팔로 안아 들기로 했다.

미동도 없던 녀석은 곯아떨어져 있던 상태여서, 이런 실랑이가 끝날 때까지도 눈 한번 뜨지 않았다.

172호실을 비웠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었다.

내 품 안에 있는 이 짐승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봐야 했다.

이걸 그냥 밖에 풀어 두자니 왠지 괴수한테 사냥당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밖은 괴수들한테 점령당해서, 평범한 동물들은 다들 잡아먹혀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다. 센터 바깥의 세상은 이런 뜀박질도 못 하는 짐승이 살 만한 곳이 아니다.

‘그럼 이놈은 어디서 온 걸까?’

생각을 해 보니 연구 센터에서 기존의 동식물을 보존하는 장소인 생태 보존소가 떠올랐다.

‘좀 떨어진 건물인데 용케도 여기까지 왔군.’

생태 보존소에 고양이를 데려다주고 식당에 가면 되겠다.

나는 우린이에게 고양이를 집에 데려다주자고 말하고 곧바로 생태 보존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가 좀 멀어서 부지런히 갔다 와야 밥을 먹으러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장하나가 나를 붙잡았다.

“선배, 고양이 어디에 버리려고 그래요?”

“버리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냥 원래 있던 데에 두고 오려는 거지,”

“……원래 어디 있던 건지 알아요?”

“생태 보존소에서 키우던 거겠지. 거기 말고 서식지가 있겠어? 가져다주면 알아서 잘 관리해 주겠지.”

“헐! 여기 그런 데도 있어요?! 아니, 근데 거기서 온 거 아닐 거예요! 그냥 밖에 두면 될 텐데?”

“밖에 두면 얼마 안 가서 괴수한테 먹히겠지. 그냥 보존소에서 키우는 게 제일 나아.”

뭐야, 쟤 왜 저래? 갑자기 고양이 소재에 대해 관심을 갖는 모습이 엄청 이상하네. 아까 내가 창밖에 놓아주려 할 때는 막으려고 난리를 치더니.

그렇지만 장하나는 자기 모습이 내게 어떻게 비치는지 전혀 모르는 듯 고양이에 엄청 집착했다.

그렇게 찜찜한 의심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우린이가 말했다.

“난 고양이랑 같이 살 거야.”

우린이의 뜬금없는 자기주장에 장하나와 나는 말을 잃었다.

그사이에 우린이는 내 품에서 고양이를 받아 가서 계속 말을 했다.

우린이의 작은 품에는 커다란 고양이가 다 안기지 못해서 고양이의 뒷다리가 땅에 질질 끌렸다.

“밖에 안 나가고 나랑 같이 살 거예요. 괴물이랑 안 만날 거야.”

어느새 고양이도 깨어나서 시끄럽게 울어 댔다. 이에 장하나도 같이 끼어서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야, 동물은 야생에서 살아야 하는 거야~ 사람은 집에서 동물은 밖에서~ 알았어?”

“아니야! 나랑 같이 있을 거야! 너나 밖에서 살아!”

“이 쪼끄만 게 언니한테 ‘너너’거리네?!”

장하나는 이제 시끄럽게 떠드는 걸 넘어서서 우린이랑 말싸움을 시작했다. 우린이도 장하나에게 열이 받아서 기어이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이 꼬맹이, 전부터 느꼈지만, 성질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

‘에휴… 일단 얘들을 떼어 놓아야겠다.’

나는 우린이를 번쩍 안아 들고 장하나와 애들에게 밥 맛있게 먹으라고 인사하면서 성큼성큼 뛰어갔다.

***

자신은 고양이랑 같이 있을 거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우린이를 안고 곧장 연구 센터를 뛰쳐나왔다. 급하게 자리를 피하기 위해 나오기는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생태 보존소로 갔다간 우린이가 여기서 더 뒤집어지겠지?’

일단 뒤로 제쳐 놓고 밥이나 먹이면서 애를 달래야겠다. 나는 그대로 중앙 센터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대로 식당에 들어갔다가 동물은 출입 불가라며 그대로 쫓겨났다.

어쩔 수 없이 포장해서 밖에서 먹겠다는 조건을 붙여서 음식을 주문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우린이는 중앙 센터 앞에 있는 벤치 위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안고 있던 고양이는 여전히 놓아 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가엾은 털 뭉치는 어린아이의 팔에 머리와 앞다리만 걸린 채 기다란 몸통과 꼬리를 벤치에서 바닥까지 늘어뜨렸다.

자세 때문에 까만 얼굴과 몸통이랑 달리 하얀 배를 그대로 드러내게 된 녀석은 내가 나타나자 또다시 시끄럽게 울어 댔다.

‘원래 고양이라는 게 이렇게 시끄러운 동물이었던가?’

고양이가 너무 울어 대니까 이젠 단순히 듣기 싫다는 감정을 넘어서서 얘가 뭐라고 하는 건지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지나가면서 고양이 울음소리 번역기가 있다는 얘길 들은 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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